다시 걷는 사람

📱안나의 한페이지 소설

2026.04.30 | 조회 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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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걷는 사람

 

이제 겨우 모든 것으로부터 풀려났다. 학교와 학원으로 실어 날랐던 딸들은 대학에 입학하자 자취를 하겠다고 집을 떠났고, 그 무렵 데면데면해진 남편과도 헤어졌다. 자식과 남편 뒤치다꺼리를 겨우 끝내고 맡은 늙은 부모님도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

 

누워서 지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느지막이 일어나 멀뚱히 천장을 보다가 스르르 눈이 감기면 다시 잠을 잤다. 그리고는 해질녘이 되어서야 첫 끼를 때우곤 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니 팔다리가 흐물흐물해졌다. 거울 속 내 모습은 못에 걸린 옷가지처럼 축 처져 보였다. 오랜만에 체중계에 올라가보니 몸무게의 앞자리수가 달라질 정도로 살이 빠져 있었다. 모두가 떠났고 온전히 혼자가 되었지만 홀가분하기보다 헛헛했다. 기력과 의욕이 같이 빠져나가서일까. 갑자기 알 수 없는 허기가 밀려왔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갈색이 된 파 몇 줄기만 가로로 누워있었다. 몸이 망가지고 나서야 다시 움직이고 싶어지다니, 만들고 허물고 다시 만드는 것을 반복하며 흐르는 것이 삶인가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지갑을 챙겨 집을 나섰다. 잔잔한 바람이 얼굴을 부드럽게 스쳤다. 누군가가 따뜻하고 말랑한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는 듯했다. 동네 마트로 향하던 발걸음을 공원으로 옮겼다. 종아리가 당기고 무릎이 뻐근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이십 분 남짓 지나있었다. 매일 몸을 쓰며 수십 년을 지냈는데 고작 삼십 분도 걷기 힘들다니... 그동안 쓴 내 시간과 체력은 어디로 다 흩어진 것일까. 억울했다. 되찾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일단 산책부터 하기로 했다. 머리 감을 힘도 없어 자꾸만 드러눕고 싶어질 때도 모자를 뒤집어쓰고 밖으로 나왔다. 잠시라도 나갔다 오는 것을 하루의 가장 중요한 일과로 삼게 되었을 무렵 다리에 힘이 붙기 시작했다. 새로운 길을 걷고 싶어졌다. 동네를 벗어나 좀 더 멀리 가보기로 했다.

 

 

 

 


📖한페이지 소설을 시작하며

 

소설이라는 장르와 길이에 대한 조금은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A4 한 장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 그릴 수 있는, 그리고 전달할 수 있는 것들은 생각보다 깊고 넓을 수 있습니다. 소설인 듯 수필인 듯, 소설과 수필 사이 그 어딘가에서, 수필의 진솔함이 주는 친근함편안함, 소설의 반짝이는 상상력에서 얻게 되는 유쾌함위로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첫 글인 다시 걷는 사람의 주인공처럼 작은 움직임이 씨앗이 되어 삶을 끌어가는 큰 힘이 될 수 있길...

-S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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