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 - 깎아지른 벼랑 너머에는 (4)

군대에서 겪은 우울증 이야기

2023.01.29 | 조회 2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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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별 에세이

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

 

깎아지른 벼랑 너머에는 (4)

 

나는 오만한 나르시스트였다. 사회 생활에서는 내내 부적응자였던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그 조금은 비뚤어진 자기애였다. 학과 행사에서는 구석에서 혼자 맥주잔만 기울이다 조용히 자리를 나오는 아싸였을지언정 글재주 하나는 그럭저럭 인정을 받았고, 가끔은 조그만 공모전에서 상을 타오기도 했다. 희나에서는 나를 대단한 사람인 마냥 우러러 보는 회원들도 있었고, 내가 무슨 짓을 하든 나를 사랑해주는 여자친구도 있었다. 그 부적응의  보상작용이었는지 나는 학교 밖에서 나의 모습에 심취했다. 그런 나를 사랑하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나는? 그런 나 자신도 나는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선임이 입만 떼면 수첩을 꺼내들어 그 말을 받아적고도 뒤돌아서면 까먹어버리는 나를 나는 사랑하지 못했다. 일만 하면 실수만발인 나를 나는 사랑하지 못했다. 밥을 먹다가도 샤워를 하다가도 허구헌 날 질질 짜는 나를 나는 사랑하지 못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넋이 나간 것처럼 멍을 때리고 있는 나를 나는 사랑하지 못했다. 그러다가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해져서 별 것 아닌 것에 불같이 화를 내는 나를 나는 사랑하지 못했다.

 

사랑할 만한 모습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렇지 못한 모습까지 사랑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존재는 양면성을 품고 있다. 그 양면성이 부정되고 파편화될 때, 우리는 존재를 존재가 아닌 사물로서 접하게 된다. 나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모습만 나 자신이라고 인정했었다. 그런 모습을 잃어버린 군대에서의 나는, 더 이상 하나의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나의 존재 그 자체를 인정하지 못했고, 나르시시즘을 잃음으로 나를 사랑할 근거를 잃었다. 내가 군 시절 동안 겪은 절망의 가장 깊은 뿌리가 이것이리라 생각한다. 

 

한두 달에 불과했을 경비소대에서의 생활은 지옥 같았다. 엄밀히는 소대가 지옥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소대 안에서 나는 내가 만든 지옥에 빠져 있었다. 중대 행정병으로 보직이동을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나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당장이라도 이 소대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나는 부끄러웠다. 다른 동기들은 다들 나름대로의 고생 끝에 소대 생활에 적응하고 있었다. 나도 그 고생을 감당하고 싶었다. 이 곳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자신이 없었다. 나는 소대장 앞에서 한참을 흐느끼다, 누가 대신 결정을 내려주면 좋겠다고,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헌병대대의 행정병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었다. 하나는 소위 말하는 ‘빽’이 있어서 편한 보직을 주선받았거나, 일처리가 야무져서 간부의 눈에 들어 행정병으로 온 경우였다. 다른 하나는 대대에서 온갖 사고뭉치 부적응자들을 행정병이라는 명목으로 모아 둔 경우였다. 나는 물론 후자였다. 그런 관심병사들에게 제대로 된 업무를 시켜 줄 리가 없었다. 사고를 안 치도록, 자살이라도 안 하도록 간부들이 잘 지켜볼 수 있는 곳에서 얌전히 있는 것이 우리 부류의 병사들이 하는 일이었다. 

 

그 즈음 나는 군 병원에 2주마다 정신과 통원 치료를 다니며 군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고모 뻘 나이는 되었을 손씨 성의 여성 상담사였다. 어떤 상담을 받았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에 대한 기억들은 아주 흐릿하다. 다만 그 상담실에 처음 찾아간 날 상담실의 푸근한 분위기와 과자를 건네던 선생님의 웃음이 기억이 날 뿐이다. 입대 이후 처음으로 나는 환영받는 것을 경험했다. 아마 그 기억은 나를 상담의 길로 이끄는 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행정병 선임을 따라 군 교회에서 병사 찬양팀에 들어갔다. 경비 소대에서는 주말도 없이 24시간 근무를 해야 해서 교회를 다니는 것이 눈치가 보였다. 별다른 할 일도 없었고 주말에는 쉴 수도 있었던 중대에서는 마음껏 교회에 들락거려도 상관이 없었다. 교회에서는 정말 행복했다. 거기서만큼은 나는 내가 우울증 환자라는 것을 믿을 수 가 없었다.  나는 찬양팀에서 사귄 친구들과 낄낄대며 기타를 튕기고 노래하며 생기있게 우정을 쌓아갔다. 교회에는 식사가 끝난 후 주방을 정리하거나, 찬양팀 연습에 집사님들이 사온 간식을 나르는 것 같은 작은 일이나마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었다. 그런 작은 봉사에도 교회 사람들은 진심으로 내게 고마워해주었다.

 

교회에서 경험한 그 따스한 온정은 지금도 내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나는 물론 신앙심이다. 예배도 나가지 않는 소위 ‘나이롱’ 신자가 된 지는 오래지만, 여전히 나는 하나님에게 큰 빚을 진 기분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온정마저 없었으면 나는 군 생활을 기어코 견뎌내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이다. 다른 하나는 오늘까지도 남아있는 조금 엉뚱한 버릇이다. 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심코 ‘내일이 무슨 요일이지?’라고 중얼거리곤 한다. 그건 교회를 가는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 헤아려보는 것이다. 그 때의 나는 교회에 가는 날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렸기 때문에 생긴 버릇이었다. 대면 예배에 출석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나는 지금도 머리가 복잡할 때에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일요일까지는 며칠이 남았는지 세어보곤 한다.

 

다행히 우울은 빠르게 나아졌다. 맡겨진 아주 단순한 업무라도 잘 처리하거나 여기서는 선임들과의 관계가 괜찮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우울증 환자라는 딱지가 붙은 후 아무도 내게 거창한 기대를 품지 않았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내게 사람 구실을 기대하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편할지언정 나는 여전히 부끄러웠다. 하는 일이 없으니 일과 시간에는 책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읽고, 퇴근 후에는 기타를 치고 글을 쓰며 노닥거리다가 10시에는 잠이 들었다. 그 무료한 생활은 경비소대에서 밤이슬을 맞으며 경계 근무를 서는 동기들에게 빚을 지고서야 가능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경비소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이제는 그 놈의 ‘고장’이 좀 고쳐진 것 같았다. 적어도 이제 매일 울지는 않았으니까. 그러나 내가 간과한 점이 있었다. 겉으로는 멀쩡해진 것처럼 보일지언정 내게 실질적인 변화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점이다. 타인의 평판에 병적으로 민감했던 나의 성격이 두어 달 정도 소대를 떠나 있었다고 더 야물딱진 것으로 바뀌었을 리는 없었다. 지금의 괜찮음은 단지 내가 버거워했던 선임들과의 인간 관계들이 조금 멀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람들과 부대끼며 공동생활을 해야 하는 환경으로 돌아간다면, 이전의 소대 생활과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아니, 어쩌면 그저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해 그리 믿기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저 부끄러움을 덜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도망친 것인지도 모르겠다. 처음 내가 소대에서 중대로 올 때 그러했듯이 말이다.

 

간부들은 나의 이런 ‘용기’를 반가워했다. 보직 변경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나는 이전과 다른 경비소대로 배치되었다. 아마 병사 찬양단에서 리더를 맡고 있었던 L형이 그 소대에 있었기 때문에 나를 그리로 배치해주었을 것 같다. 나보다 다섯 살 즈음이 많았던 그 형은 묵묵하고 푸근한 사람이었다. 병사들끼리는 자신보다 1년 늦게 들어온 후임을 아들 기수라고 부르며 잘 챙겨주는 문화가 있었다. 나의 ‘아버지’였던 L형은 소대에 아들 기수가 없었는데 이제야 생겼다며 기뻐했다.

 

새로운 소대 생활을 한동안은 그럭저럭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L형, 그리고 그 소대에 두 명 더 있는 아버지 기수 선임들의 따스한 관심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L형은 전역을 하며 내게 잡다한 일상용품과 선물을 주고 떠났다. 그 중 하나는 전동 면도기이다. 다른 사람이 쓰던 면도기를 선물받는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찝찝하고 껄끄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몇 푼 하지도 않을 그 전동 면도기는 내가 전역한 지 한참이 지난 우리 집의 화장실 선반에 지금도 놓여 있다. L형은 늘 조금 쳐지는 눈꼬리로 활짝 웃음을 지으며  ‘아들!’하며 나를 부르곤 했다. 아버지에게는 느끼지 못했던 끈끈한 애정을, 나는 나보다 고작 다섯 살이 많은 군대 선임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글쓰기 공동체 흰 종이 위의 날개 소속 작가입니다. 심리상담과 문학치료를 공부했습니다.

https://litt.ly/heena_day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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