깎아지른 벼랑 너머에는 (6)
아버지 기수가 전역한 날, 나는 정말 아버지를 잃은 것처럼 울었다. 나도 1년의 복무기간을 채우고 상병 계급장을 다는 날이기도 했다. 슬슬 짬이 쌓이고 몸이든 마음이든 편해질 때였다. 일과가 없을 때 생활관 침대에 마음대로 드러눕고, 선임들에겐 인정을 받고 후임들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권력의 달콤함도 맛볼 수 있는 때가 온 것이다. 내 동기들의 경우는 그랬다. 그러나 나는 다시 내가 만든 지옥으로 떠밀리듯 돌아갔다. 아버지라는 닻을 잃은 배가 풍랑을 만난 것처럼.
여담처럼 적건데, 우울증은 결코 마음의 감기가 아니다. 우울증은 훨씬 복잡한 문제다.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하는 건 그게 감기 바이러스처럼 환자가 어쩔 수 없는 외부의 요인에 의한 일이며, 그 우울증의 책임을 환자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대한 긴 이야기는 뒤에서 하게 되겠지만, 결론만을 이야기하자면 난 이런 생각에는 그리 찬성하지 않는다.
학자마다 의견은 다르지만, 오늘날까지 광범위하게 쓰이는 우울증 검사인 BDI(Beck Depression Inventory, 벡 우울 척도)를 만들고 인지치료를 제창한 아론 벡에 따르면 우울증은 사고의 문제, 정확히는 부적응적 자동적 사고에 기반한다. 외부의 환경을 인지할 때 너무도 익숙해서 자동적으로 흘러가는 사고를 자동적 사고라고 한다. 우리가 마치 신호등의 빨간 불을 보면 '멈춰야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동적으로 흘러갈 만큼 익숙해진 사고는 그 사람의 성격, 성장 배경, 타고난 기질이나 삶에서 중요했던 경험 등 정말 복잡하고 다양한 요인들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자동적 사고가 환자를 괴롭힐 때, 그 사고를 바꾸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우울증이란 감기처럼 가볍게 앓고 지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닐 때도 많다. 당시의 나에게 우울이란 운명이 내게 씌워놓은 굴레와도 같은 것이었다. 평생에 걸쳐 익숙해진 ‘우울한 사고방식’이란 아무리 발버둥쳐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내용은, 13년 가량 내게 항우울제를 처방해주고 있는 선생님의 말을 옮기자면, 평판에 대한 것이었다. 그건 어린 시절 나를 따스하게 안아주는 온정의 부족함으로부터 비롯했으리라 나는 생각한다. 여전히 나는 내 내면의 아이가 보살핌을 갈구하는 것을 이따금 느끼곤 한다. 누군가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기를 갈구하며 눈치를 살피거나, 혹은 이 사람이 나를 정말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싶어 일부러 속을 썩인다거나…
당시 나의 자동적 사고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나도 그 사람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소대의 선후임들은 마땅히 이 소대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 하는 나를 좋아해야 했다. 그러지 않는 사람은 잘못된 것이므로 나의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나 또한 사람들의 애정을 받기 위해 마땅히 안간힘을 다 해야 했다. 애정을 받지 못한다면 그건 내가 더 노력해야 하거나, 내가 구제불능인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분노하는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분노했다.
그러나 아버지 선임들은 나를 마땅히 사랑해주었다. 나 또한 마땅히 그 선임들을 따랐다. 내가 스스로를 사랑할 힘을 기를 수 있을만큼 그 관계가 안정적으로 오래 유지되었다면 아마 나의 우울증은 천천히 나아졌을 것이다. 그러나 10여 년이 지나 돌이켜보면, 군대에서 고작 몇 달을 함께 지냈을 뿐인 선임과의 관계가 그런 단단한 애정의 기반이 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물론 가치있는 것이었지만, 그들의 사랑은 내게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넘길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에게 진짜 아버지에게 기대해야 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선임들은 전역했고, 나는 아버지를 잃은 충격과 슬픔에 빠져야 했다. 22살의 군복을 입은 나는, 부모를 잃고 엉엉 우는 고아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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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대 안에서 사랑받기 위해서, 인정받기 위해서 나는 여전히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내가 다리가 부러진 마라토너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기분은 이따금 좋아질 때가 있었지만, 건망증과 떨어진 집중력은 도저히 회복되지 않았다. 나의 업무능력은 단호하게 폐급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폐급의 업무능력은 갈수록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었다. 나를 바라보는 선후임들의 눈빛은 다시 싸늘해지기 시작했다. 이전과 달리 변함없이 따뜻했던 아버지 기수의 애정어린 눈빛은 그 중에 없었다.
나는 분노했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다. 나아지기 위해 발버둥치는 내 노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분노했다. 그 사람 중에는 나 자신도 포함되었다. 어쩌면 나뿐이라도 나 자신의 노력을 가치있게 여길 수 있었다면, 그 노력의 결과가 실패와 상처 뿐인 기억들이라 할지라도, 나는 나 스스로를 미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절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피해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항우울제와 관련된 기억들이다. 나는 우울증이 나아져 경비소대에 복귀하며 끊었던 항우울제를 그 즈음에 다시 복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항우울제를 비롯한 항정신성 약물은 마약류로 분류되는 모양이었다. 치료 목적이었지만 나는 마약을 복용하는 사람이 되었다. 2주에 한번씩 대전의 군인 병원에서 받아오는 항우울제는 곧장 소대 간부실의 책상 서랍에 들어갔다. 나는 매일 자기 전, 간부실에 들러 약 한 포를 받아야 했다. 그 자리에서 약 봉투를 뜯어 약을 삼키는 것을 간부가 직접 확인한 후에야 나는 잠을 잘 수 있었다.
항우울제를 복용한다는 걸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지도 않았지만, 소문은 필요 이상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거 먹으면 기분 좋아지냐’거나, ‘나도 요새 힘든데 하나만 주면 안 되냐’는 말을 나는 꽤 자주 듣게 되었다. 그런 말들이 악의가 없었으며 단순한 무지에서 비롯했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항정신성 약물은 의존성이나 중독성이 있건 없건 무조건 마약류로 취급하는 이 나라의 법과, 그 법을 너무 고지식하게 따르는 융통성 없는 군 조직이 문제인 것 또한 안다.
그러나 당시의 나는 그런 호기심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 같은 시선이 너무도 싫었다. 그러면서도 모순적이게도 나는 나의 절절한 고통이 이해받기를 원했다. 그런 모순 속에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역설적이게도 그 항우울제였다. 의존성은 없는 약이었지만 나는 그 약에 정서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다. 우울과 분노에 지쳐 울음을 터뜨리거나 악에 받치는 날이 늘어날수록, 매일 저녁 내가 소대 간부실에서 나오는 것을 물끄러미 보는 눈빛들을 마주할 수록 나는 약에 더 의존하게 되었다.
그건 희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꽤나 노력파이고 성실한 편인 것 같다. 그런 내가 군에서 노력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고 있었다. 습관처럼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려 애썼지만 그 최선은 모조리 최악의 결과로 돌아왔다. 그 상황에서 내가 믿을 수 있는 것은 항우울제 뿐이었다. 내가 나아질 수 있다고, 좋아질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은 그 한 포의 항우울제가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전역을 하고 나는 단편 소설을 썼다. ‘사진은 시간을 죽인다’는 그 짧은 소설에서 연인을 폭격으로 잃고 연인의 사진에 광적으로 집착하는 병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사진을 두고 참호 작업에 나섰다 사진을 잃어버린 것으로 착각한 병사는 발광을 하며 작업지를 이탈하고, 상관에게 무자비한 매질을 당한 후에 외딴 초소에 관리병으로 좌천된다. 동료 병사들은 그런 그를 업신여기기 시작하고, 그가 자리를 비운 틈에 그 사진에 정액을 뿌린다. 이성을 잃은 병사는 총기 난사를 벌이고, 동료 병사의 반격에 총상을 입고 쓰러진다. 죽어가는 그를 따스하게 덮어 준 것은, 자신의 연인을 빼앗아 갔던 네이팜 폭격이었다.
한참 후에야 깨달았지만, 그 사진은 명백히 내가 간부실에서 매일 받아먹던 항우울제의 은유였다. 연인의 포옹처럼 온정 어린 관계에 목말라 죽어가는 마음의 편린이었다. 주인공이 삭막한 현실에서 하루 하루를 버틸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정작 주변의 인간관계를 파탄내어 주인공을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넣는 소재였다. 주변으로부터 온정 어린 관계를 유지할 수 없었던 주인공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관계를 극단적으로 파괴하는 광기의 표출 뿐이었던 셈이다.
한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초소 관리병으로 좌천된 주인공은 사람을 볼 일이 거의 없는 초소에서 하늘에 폭격기가 지나가는지 살펴보는 것이 하루 일과의 전부였다. ‘사람이 겨웠던 병사는 이 일이 외로워서 좋았다.’ 애정을 갈구하지만 애정어린 관계를 회복하려는 시도는 번번히 좌절되었고, 병사는 사람들에게서 새로운 상처를 입느니 그저 외로워하는 것이 낫다고 믿게 된 것이다. 고요한, 그러나 한 까풀을 뒤집어 까보면 맹렬한 분노가 날뛰는 절망이었다. 나는 절망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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