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 (16) - 서로를 성숙케 하는 사랑이라면 (3)

서로를 성숙케 하는 사랑이라면 (3)

2022.08.24 | 조회 3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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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별 에세이

나의 어둠을 소개합니다

 

서로를 성숙케 하는 사랑이라면 (3)

 

온라인에서 만나 번개를 하며 친해지고 사귀었던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 꽤나 신기한 일이었다. 한국의 기성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던 K는 영어 성적으로 갈 수 있는 전형이 있는 대학에 지원을 했는데, 눈에 차는 대학마다 모두 퇴짜를 맞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대학은 내가 다니는 학교였고, 하필 K가 그토록 자신이 없었던 언어 논술 시험이 있는 전형이었다. 토플 공부만 죽어라 했던 K가 한국어로 쓰는 논술 시험이 자신이 있을 리가 없었다. 고등학생 때 몇몇 논술 대회에서 상도 타봤던 내가 도와줄 수 있었던 것도 원고지를 쓰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K는 덜컥 합격 통보를 받았다. 우리 동네의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다가 K의 핸드폰으로 합격 통보를 받아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이대로 K가 재수를 하는 것을 슬슬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우리는 뛸 듯 기뻐했다. 그 날 처음 뵈었던 분식집 사장님도 축하해주며 음료수를 서비스로 주셨던 것 같기도 하다. 이후 이 일은 내가 여자친구 얘기를 할 때 꺼내드는 단골 래퍼토리가 되었다. 얼마나 날 좋아했으면 대학교까지 따라왔겠느냐고 말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였지만, K도 그걸 싫어하진 않았다.

 

덕분에 내 대학생 시절은 학창 시절만큼 내내 황량하지만은 않았다. 2주만에 끝났던 첫 연애를 눈감고 본다면 K와의 만남은 내가 처음 경험한 연애다운 연애였다. 학과에서는 여전히 아싸였을지언정 나는 K의 손을 맞잡고 열심히 캠퍼스와 대학가 골목골목을 들쑤시고 다녔다. 희나에서 오프라인 모임도 함께 꾸려나갔다. 우리는 연인이기 이전에 가장 죽이 잘 맞는 최고의 절친이었다. 함께 하는 것마다 어수룩하고 엉망진창이었을지언정 그 난장판 하나하나마다 즐거웠다.

 

K에게 가장 고마웠던 것 중 하나는 내가 군대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주었다는 것이다. 나의 2년의 군 생활은 항우울제로 점철되어 있었다. 나는 거의 매일 K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K는 거의 항상 전화를 받았다. 단 10초라도 우리는 서로가 하루를 무사히 견뎌냈음을 악착같이 확인하려 하였고, 그 안도의 힘으로 또다른 하루를 살아냈다. 발목에 잠기는 얕은 물이 누군가에겐 무저갱같은 절망일 수 있다. 내게는 군 생활이 그러했다. 그러나 그 절망 속에서도 전화를 걸면 언제든 K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건 한 치 앞에 어떤 낭떠러지가 있을지조차 가늠할 수 없던 군 생활에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확고한 진실이었다.

 

나는 무사히 전역을 했고, 우리는 만남을 이어 나갔다. 싸우기도 했고, 삐지기도 했고, 헤어지기도 했고, 울면서 매달려 다시 만나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매달리는 쪽은 내가 되었다. 그리고 인연이 다했을 때, 우리는 정말로 헤어졌다. 그렇게 죽이 잘 맞던 여자와 왜 헤어졌냐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막연함을 느낀다. 헤어지기 전에 있었던 싸움이 결정적이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마지막 이별을 앞두고 우리는 아마 직감적으로 이제 연인으로 서로 다시 만날 일은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우리는 낯선 카페에서 만나 담담하게 헤어졌다. 그 날도 K는 내가 선물했던 커플링을 끼고 나타났다. 내게는 너무 작아서 나는 거의 끼지 않았던 커플링이었다. 덕분에 내 반지는 몇 년이 지나도 새 것처럼 반짝였지만 K의 것은 닳고 닳아 광택을 잃어가고 있었다. 심지어 얼마 전에 나는 그 반지를 잃어버리기까지 한 터였다. 나는 K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커플링을 직접 빼서 K의 손바닥에 쥐여 주었다. 반지를 끼고 있었던 K의 손마디에는 굳은살이 두껍게 박혀 있었다. 나처럼 바보같이 잃어버리지 말고 간수 잘 해, 라고 나는 말했다. 그리고 우리의 연애는 막을 내렸다.

 

나는 K를 통해 처음으로 단단한 애정의 지반을 경험하였다. 외로움과 불안한 가정 환경으로 인해 흔들리던 어린 우리는 서로에게 발을 딛을 수 있는 안전한 단단함이 되어 주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아무리 길을 잃었더라도, 아무리 다치고 지쳤더라도 그런 나를 품어 줄 사람이 나와 함께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방황으로 가득 찬 20대 초반을 보낼 수 있었다. 서로가 있었기에 우리는 조금 더 용감해질 수 있다. 감히 눈 앞의 두려움 너머에는 무엇이 펼쳐져있을지 상상하고, 그 상상에 몸을 맡길 수 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내가 단단한 지반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 굳은 땅 위에서 우리는 자유로이 춤을 추는 존재다. 나로 하여금 타인의 삶이 춤을 추는 것을 지켜볼 때, 우리는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된다. 사랑은 서로를 자유롭게, 또 용감하게 한다.

 

덕분에 나는 어둠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K가 있었기에 내가 희나에서 글을 읽고 쓰던 활동들이 어린 날의 불꽃놀이같은 유희로 끝나지 않았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K가 내게 상담을 공부하라고 권유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경험한 문학의 치유력 또한 나의 진로로 구체화하기에는 아직 아주 막연한 것이었다. 그 막연함에 끌려 상담과 문학치료라는 미답지에 발을 디딜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시기, 내가 그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K의 애정 덕분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이따금 만난다. 우리는 그저께에도 만났던 절친처럼 커피잔을, 때로는 맥주잔을 기울이며 낄낄댄다. 구여친이 만만해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지 내가 되도 않는 수작을 부릴 때마다 K는 단호하게 철벽을 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뜻 모를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한다. 애처럼 유치하게 연애를 했던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타인에게서 애정의 기반을 찾아 발을 딛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가 단단해져야 할 때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런 어른이 되기까지 우리에겐 서로가 있었다. 가끔 서로가 함께 했던 시절을 뒤돌아보는 것만으로 우리는 또 하루치만큼 어른의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글쓰기 공동체 흰 종이 위의 날개 소속 작가입니다. 심리상담과 문학치료를 공부했습니다.

https://litt.ly/heena_day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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