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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81 이제는 정치권이 광장의 목소리에 응답할 때

2025.01.16 | 조회 1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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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헐리버리

‘헐리버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성뉴스 큐레이션 뉴스 헐리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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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안녕하세요. 2025년 새해 첫 번째 뉴스 헐리버리는 PERSPECTIVE EDITION으로 인사드립니다. PERSPECTIVE EDITION은 여성의제 기사들 가운데 관점과 깊이가 있는 심층기사를 모아 전해드립니다.

먼저 12.3 계엄 이후 광장에 집결하고 있는 여성들을 새롭게 조명하는 기사들이 다수 쏟아졌는데요, 그들은 광장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정치권은 이들의 목소리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 관련 기사들을 모았습니다. 또한 장기화되고 있는 동덕여대 공학 전환 이슈와 관련해 학생들의 투쟁의 의미를 조명한 기사도 함께 정리했습니다.

통신매체이용음란죄 판결에서 '성적 욕망'에 대한 협소한 해석이 무죄 판결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비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오가는 여성혐오 표현을 혐오 범죄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기획재정부가 일·가정 양립 제도 개선의 하나로 공공기관별 출생률과 가임기 여성 수를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필리핀 드라살대 철학과 크루즈 교수가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과 관련해 대두되고 있는 이주 돌봄노동 문제에 대해 “남성이 돌봄노동에 제대로 기여할 때 한국의 문화가 가장 많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반성폭력 운동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동의'의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들여다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여성주의 신간 <몸과 고백들>과 <실패 없는 젠더 표현 가이드북> 도서 리뷰와 외모지상주의를 통렬하게 꼬집고 있는 화제의 영화 <서브스턴스> 리뷰도 함께 소개해드립니다.

뉴스 헐리버리가 이번 호에서 준비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호에서는 주목할 만한 여성 인물 관련 기사들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 에디터 소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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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 여성’이 12·3 ‘서울 여성’에게

1980년의 광주에서도, 2024년의 서울에서도 이름 모를 여성들이 거리를 지켰다. 총을 들고 독재를 꾀했던 부당한 국가권력에 맞서,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낸 두 경험이 세월과 공간을 넘어 만났다. 경향신문은 1980년 5월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전남도청을 지켰던 취사반 김경임씨(61)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서울로, 또 탄핵 촉구 집회가 줄이었던 여의도·농민과 시민들이 하나가 된 남태령을 지킨 전연수씨(가명·25)가 1980년 광주로 보낸 편지를 받았다. 1980년 광주 금남로에 선 여성과 2024년 서울 여의도 광장, 남태령 언덕에 선 여성은 다른 시공간을 건너 말을 건네고, 안부를 묻고, 서로를 ‘우리’로 묶었다. (중략)

2024년 겨울 여의도와 남태령에 모인 여성들의 모습에서 1980년 5월 저와 제 곁의 동료들을 만났습니다. 3·1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가 봐도 알 수 있지만, 위기에는 여성들이 늘 강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광주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에 할 수 있는 일을 했었어요. 2024년 광장에 나온 당신들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나온 게 아닐까 짐작합니다. 1980년이나 2024년이나 민주주의를, 나라를 생각하는 소녀로서 무엇이 옳은지 고민하고 판단하는 일은 변함 없을 거로 생각해요. 당신이 거리에 들고나온 반짝이는 응원봉은, 전남도청 취사반에서 제가 날랐던 식판과 같은 것이에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 최고의 선택을 한 것입니다.

광장으로 나온 여성들에게 ‘눈치 보지 말고, 주저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라’고 말하고 싶어요. 용기를 갖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향해서요. 저는 지금도 도청으로 돌아간 제 선택이 잘못됐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어린 것들이 뭘 아냐’고 하겠지만 그때의 우리와 지금의 여러분은 결코 어리지 않아요. 서로를 믿고 지지해주고, 격려해주세요. 이렇게 말하고 나니, 마치 제가 44년 전 도청으로 향했던 17살의 저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배시은, 경향신문, 25.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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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의 거리에 선 ‘2030 여성’···그들의 광장과 연대는 어느 때보다 넓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각지에서 벌어진 탄핵·퇴진·하야 촉구 집회 주축은 ‘2030 여성’이다. 광장을 밝힌 케이팝(K-Pop) 응원봉, 여의도와 남태령을 가득 메운 환호성, 신문 보도사진·방송 뉴스 영상을 꽉 채운 밝고 앳된 얼굴들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숫자로도 확인된다. 경향신문 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가 서울시 생활인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난달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든 인파 가운데 약 30%가 2030 여성이었다.

이들은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광장에서 멈추지 않고 남태령 농민 곁으로, 혜화역 장애인 곁으로 달려갔다. 온라인에서 연대와 후원, 지지와 응원을 넓게 확장했다. 방향을 종잡기 어려울 정도였다. 거침없이 광장으로 향하는 이들의 용기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향할까. 여성학·정치학 연구자들 시선으로 2030 여성들의 행보와 의미를 짚어보았다. (중략)

광장에서 확인된 이들의 영향력은 현실 정치에서 얼마나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청년 여성들이 22대 국회와 향후 대선에서 그들의 요구를 어떻게, 얼마나 많이 반영할 것인가로 이어진다.

최근 총선 및 대선 등 대형 정치 이벤트에서 2030 세대는 주요 유권자로 호명됐다. 지난 대선에서 2030 세대 표심이 ‘최대 승부처’로 지목된 게 단적인 예다.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 등으로 20대 남성에 소구하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청년 여성들을 타킷팅한 정책과 행보를 이어갔다.

거기까지였다. 정치권은 ‘젠더 갈라치기’로 청년 표심을 공략했지만 그들의 요구와 목소리를 유의미한 정책으로 담아내지는 않았다. 이는 각 정당이 총선에서 내건 공약을 보면 잘 드러난다. ‘2024 총선 여성 주권자 행동 어퍼’는 각 정당 공약을 분석한 결과 ‘의제 설정’ 수준에서부터 여성·성평등 공약을 포함한 정당은 녹색정의당, 진보당, 조국혁신당 등 3개라고 발표했다. 거대 양당인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생색내기용 세부 정책을 내놓는 수준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여성단체연합도 두 거대 양당의 여성·성평등 정책 비중이 작다고 지적했다.

연구자들은 2030 여성을 향한 사회적 관심이 정치적 동원에 그쳐선 안 된다고 말한다. 권수현 경상국립대 교수는 “현재 여성들에게 보내는 환호가 광장에만 국한돼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며 “광장은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를 대변할 인물·세력이 현 거대 정당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배시은, 경향신문, 25.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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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특한 2030여성? 우린 계속 존재했다"

그러나 정작 2030여성들은 이런 관심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강남역 살인사건과 각종 미투 사건을 지나 최근의 딥페이크 성착취물 사태까지, 이들은 자신과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꾸준히 거리로 나섰다. 동물권·기후위기·공공돌봄 등 다양한 의제에서 이들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들을 꾸준히 외면했다. 심지어 페미니즘을 외치는 2030여성들을 적극적으로 비난하고 조롱하며 낙인찍기도 했다.

드디어 2030여성들이 정치적 주체로 크게 인정받았으니 이제 상황이 좀 달라질 수 있을까?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되고 정권이 바뀌면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민주주의',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을까? 그 길은 어떻게 열어야 할까? 김지수 청년참여연대 운영위원은 이 질문 앞에서 "잘 모르겠다", "쉽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어렵고 복잡한 현실을 풀기 위한 열쇠가 그렇게 쉽고 간단할 리 없다. (중략)

"청년들, 특히 여성 청년들은 그 전부터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꾸준히 집회를 해왔어요. 우리 사회가 주목하지 않았을 뿐 계속 존재한 거죠. 한편으로는 집회에 나갈 때 여성들이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신분을 가리는 경우가 많아서 존재가 더 안 드러난 것 같기도 해요. 이번 집회에서도 (여성 참가자가) 자신이 페미니스트라며 발언을 할 때 야유가 나왔잖아요. 또 '집회에 젊은 여성들이 많이 나오니까 (이들을 만나기 위해) 젊은 남성들도 나오라'는 발언도 논란이 됐죠.

그리고 집회에 나온 청년을 기특하게 여기는 중장년층은 사실 청년을 동료 시민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 아닐까 생각해요. '이건 우리가 할 일인데 너희가 도와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느껴지거든요. 청년들은 (비상계엄이) 자신에게 닥친 일이라서 나온 것이고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하는 행동인데 말이에요.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어 학생인권이 보호받지 못하는 학교, 일하다 죽은 청소년과 청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기업, 부동산으로 돈을 벌게 하고 청년에게는 안전한 주거공간을 제공하지 못하는 정부, 이것들은 윤석열정부 집권 이전부터 청년들이 마주한 일이에요. 거기에 쌓여온 윤 정부에 대한 불만이 비상계엄으로 폭발적으로 나온 것뿐이에요. 청년들에게 기특하다고 말하는 중장년층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당신들의 일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 내가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의 일이라서 함께하는 것'이라고."

(박효원, 오마이뉴스, 25.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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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여성, 그들이 왜 광장에 나왔는지 고민해야”… 정치권 커지는 자성론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시위를 주도하는 2030 여성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응원봉을 손에 쥔 2030 여성이 광장을 가득 메우자 그간 백래시(backlash·사회 변화에 대한 반발심리)로 여성 의제 언급을 기피했던 정치권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저도 (열린우리당 정책위원회) 여성가족 전문위원과 (민주당) 여성국장을 지냈을 때 젠더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백래시(backlash·사회 변화에 대한 반발심리)로 인해 이러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제 스스로가 비겁하게 느껴졌습니다.” (중략)

정춘생 의원은 “혐오와 차별, 백래시로 억압받았던 2030 여성이 윤석열 탄핵 이후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연대하고 있다”며 “단순히 정권 교체, 대통령 한 명의 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열망이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당 내부 회의 때 2030 여성의 반응에 관심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남성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왜 2030 청년이 아닌 2030 여성이 (광장에) 나왔는지, 그들이 어떠한 메시지를 내고 싶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 의원은 또한 “민주당도 유력 대선 주자가 있는 정당인만큼 정책과 공약을 마련하는 데 있어 이러한 문제를 정확히 진단해야 한다”며 “여러분도 목소리를 더 세게 내주셔야 하며, 당도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계속해서 소통하겠다”고 강조했다. (중략)

이날 토론회에서는 2030 남성의 낮은 집회 참여율에 대한 의견도 오갔다. 더불어민주당 강유정 의원은 “2030 여성이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 많이 공감된다. 그런데 왜 소위 말하는 젊은 남성은 잘 보이지 않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커뮤니티에서 암약하는 분은 굉장히 많다. 국가적 재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왜 (광장으로) 나오지 않는 것일까. 2030 남성을 대상으로 비공개 간담회라도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세원, 여성신문, 25.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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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덕여대 투쟁, 시민의 힘으로 소수자의 상아탑 재건축하기

동덕여대 학생들은 윤석열의 계엄 이전부터 대학 사회에서 '작은 계엄'을 경험해왔다. 윤석열이 비판 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며 정치활동과 여론을 통제하려고 했듯이, 동덕여자대학교 본부는 동덕학원과 김명애 총장을 비판하는 학생들의 입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 11월 5일 동덕여자대학교 대학비전혁신추진단 2차 회의가 시작이었다. 여기서 처음으로 특성화 부문 단과대학의 발전방안으로 '남녀공학 전환'이 제시됐다. 해당 회의에 학생 대표가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수업 중 교수의 스쳐 지나가는 언급을 통해 소식을 들을 수밖에 없다. 비민주적인 공학 전환 시도에 분노한 학생들은 11월 11일부터 본관점거와 농성에 돌입했다. 그 와중에 12.3 내란 사태가 발생했다.

총학생회 '나란'은 원만한 논의를 위하여 점거를 해제했다. 그러나 대학본부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본관 퇴거 및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과 공동재물손괴·공동건조물침입·업무방해 등 6개 혐의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중략)

"소멸할지언정 개방하지 않는다." 동덕여대 투쟁에서 가장 많이 등장했던 구호이다. 여자대학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수준의 성평등에 이룩할 때까지 자립하겠다는 뜻이다. 개방하지 않는다는 것은 문호를 닫고 관계자의 출입만을 허용하는 쇄국정책이 아니라, 여자대학의 자연적 소멸을 방해하는 가부장적 질서에 저항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동덕여대 투쟁에 대한 연대가 물리적 결합에서 화학적 결합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윤석열이 체포·구속된 이후에도 여자대학이 가부장적 질서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시민사회가 그 해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박인희, 오마이뉴스, 25.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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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덕여대’라는 이름으로: 공학 전환 반대 시위로 시작된 동덕여대 학생들의 투쟁에 부쳐 (1)

동덕여대는 2003년 동덕 민주화 투쟁으로 사퇴했던 비리 총장이 2015년에 이사장으로 돌아온 학교, 학교 법인 설립자 논쟁과 친일 설립자 행적 미화, 3대 족벌 사학재단의 세습경영과 비리에 대한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던 학교이다. 적립금이 사립대학 상위 10위 안에 들어갈 정도로 학교 규모에 비해 적립금 순위가 높고 교육비 환원율이 낮아서, 학생총회마다 열악한 교육 환경 개선에 대한 요구가 끊이지 않았던 학교이기도 하다. 2023년에는 교내 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26일간의 본관 점거와 1500명이 모인 추모 촛불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기습적으로 이루어진 학과통폐합 등 비민주적 대학 운영 때문인시위도 매해 꾸준히 진행되어왔다. 동덕여대 시위에서 학생들의 분노는 꾸준한 문제 제기에도 소통에 응하지 않은 대학 본부의 비민주적 태도와 학생 보호의 부재라는 상황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략)

학생들의 의견 수렴 없이 검토된 동덕여대의 공학 전환 시도는 한국 사회에 ‘여대’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을 불러왔고, 여대 학생회들의 전례 없는 빠른 지지 성명 발표와 함께 여대 구성원들을 ‘여대’라는 정체성 아래 결집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동덕여대를 비롯한 여대들의 공학 전환 논의는 공학 대학의 총여학생회들이 페미니즘 대중화에 대한 ‘백래시’로 공격의 대상이 되어 연이어 사라진 것에 비견되기도 했다. 동덕여대가 ‘뚫리면’ 다른 여대들도 도미노처럼 우르르 공학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일각에서는 정부개입설까지 제기되었다. 여자대학의 공학 전환을 반여성적 탄압으로 해석하는 이러한 입장은 여대의 공학 전환 반대 운동을 ‘여성 의제’로 만들었다.

(소양, 페미니스트 연구웹진 Fwd, 2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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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애미 XX’ 패드립은 성범죄 아니다?… “‘여성혐오’ 포괄 못 해, 입법 필요”

"니 X미 XX값 얼만지 너는 아노"

대법원이 성폭력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한 메세지다. 최근 온라인 게임에서 속칭 ‘패드립(패륜 드립)’을 해도 성폭력처벌법 위반(통신매체이용음란죄)으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연달아 나왔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에서 이뤄지는 ‘패드립’의 대부분이 어머니의 성기에 대한 비하인 가운데, 혐오 표현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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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매체이용음란죄(통매음)란,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키기 위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을 타인에게 온라인으로 전달할 때 성립하는 범죄다. 주로 온라인게임 채팅이나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커뮤니티 댓글 등 다양한 환경에서 발생한다. 모욕죄와 달리 특정성과 공연성을 입증할 필요가 없어 처벌 범위가 넓다.

대법원의 통매음 무죄 판결은 경찰의 통매음 송치율에 직격타를 입혔다. 최근 5년간 통매음 발생건수가 압도적으로 뛰었지만 송치율은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9년 1437건이던 통매음 발생건수는 지난 2023년 8004건으로 뛰었다. 반면 2021년 74.8%였던 송치율은 2022년 62.0%, 2023년 50.3%로 떨어졌다. (중략)

온라인에서 오가는 여성혐오 표현을 혐오 범죄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 변호사는 “온라인에서 흔히 사용되는 여성혐오적 표현들은 혐오 범죄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현행법상으로는 이런 혐오 범죄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혐오 범죄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법적 근거가 필요한 상황”고 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패드립의 대상이 되는 유저의 어머니, 나아가 그러한 표현이 널리 사용됨으로써 성적 모욕과 차별의 대상이 되는 '집단으로서의 여성'에 대한 성적인 폭력으로서 개념화돼야 한다”고 했다.

(신다인, 여성신문, 2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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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별 가임기 여성 수’ 집계해 ‘일·가정 양립제도’ 개선하겠다는 기획재정부

기획재정부가 일·가정 양립 제도 개선의 하나로 공공기관별 출생률과 가임기 여성 수를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한 것으로 드러났다. 기재부는 의견 수렴 과정에서 ‘여성을 도구화한다’는 내부 지적이 나오자 재검토에 나섰지만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만 인식하고 저출생의 책임을 떠민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4일 경향신문 취재결과, 기재부는 기관별 출생아 수와 ‘18~49세 가임기 여성 직원 수’를 공시항목으로 담은 ‘공공기관 일·가정 양립을 위한 제도개선 방안’ 공문을 지난해 12월 328개 공공기관에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문에는 출생아 수를 가임기 여성 수로 나눈 출생률까지 기록하고, 남성 직원의 배우자까지도 ‘18~49세 여성’에 포함하도록 했다.

‘기관별 출생률’ 공시 양식은 향후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 심사를 거쳐 확정되고 2분기 중으로 알리오 홈페이지에 공시될 예정이었다. 공시 항목을 기재부 방식대로 기재하지 않으면 공공기관 평가 점수가 깎인다. (중략)

저출생 이슈를 여성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정부의 성차별적 인식 논란은 이번에 처음이 아니다. 2016년 행정안전부는 출생율을 높이겠다며 ‘전국 여성 가임기 여성수를 나타낸 출산지도’를 공개했다. 당시에도 여성을 출산도구로 본다는 사회적 비판이 이어지자 철회한 바 있다.

논란이 되자 기재부는 뒤늦게 출생률 지표 신설을 재검토하겠다고 한발 물러섰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재 의견수렴 단계로 아직 지표 항목이 확정되지 않았다”면서 “출생 지표 관련해서는 공공기관과 부처 내부에서 프라이버시 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어 재검토 들어갔다. 향후 공운위 등을 거쳐 지표가 삭제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세훈, 경향신문, 2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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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외주화하면 저출생 해결? 한국 남성 정치인들이 틀렸다”

지난해 9월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이 서울에서 시작됐다. 100명 규모였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이를 1200명 규모로 확대하기 위해 수요조사를 했지만 서울에서 900명, 부산 및 세종에서 20명 이하 등 수요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17개 지방자치단체에선 수요가 아예 없었다.

세계 최저의 출생률 문제가 심화하면서 일각에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며 ‘외국인 가사관리사 사업’을 통해 필리핀 사람들은 필리핀에서보다 많은 돈을 벌고 한국 사람들은 돌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서로에게 ‘윈윈(win-win)’ 아니냐고 묻는다.

노엘 레슬리 델라 크루즈 필리핀 드라살대 철학과 교수는 “문제를 간단하게 해결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피상적으로는 좋게 보인다. 하지만 여성의 돌봄을 착취하는 동시에 여성을 평가절하하는 체제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손해를 가져온다”고 말했다. (중략)

크루즈 교수는 이주 돌봄노동 문제는 젠더, 인종, 탈식민주의가 복잡하게 얽힌 문제로 초국적 관점에서 돌봄 위기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유럽 국가처럼 강력한 복지국가, 성평등 지수가 높은 사회에서도 “(이주) 돌봄 제공자들은 휴식을 취할 틈이 없다”고 말했다.

후기 산업 사회가 발전하면서 여성이 유급 노동 시장에 진출했지만 남녀 간 돌봄 책임이 실질적으로 재분배되지 않았고 공공 돌봄 인프라도 충분히 구축되지 않았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초국적 돌봄 시장’이다.

크루즈 교수는 이러한 구조에서 필리핀은 돌봄노동의 수출에 의존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구조는 필리핀 내에서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의 수요를 해결하기 어렵게 한다. 그는 “현대판 국민 영웅으로 불리는 이주 노동자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노동력 수출 전략은 필리핀의 실업, 불완전 고용, 일자리 불안정성을 완화시키지 못한 채 ‘떠도는 값싼 노동력’만을 생산하는 데 그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필리핀 경제는 해외 진출 노동자들의 송금액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중략)

그는 젠더 관점에서 문화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오랫동안 저출생 관련 가족 정책을 내놨지만 아무리 현금을 준다고 해도 출생률이 떨어지는 이유는 젠더 관점에서 문화적으로 변하지 않는 정책을 내놓기 때문”이라며 “남성이 돌봄노동에 제대로 기여할 때 한국의 문화가 가장 많이 바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아영, 경향신문, 25.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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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권리로서 ‘동의’를 말한다

반성폭력 운동은 ‘동의’의 문제에 집중해왔다. 많은 피해자들은 ‘동의하지 않은’ 관계이므로 성폭력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형법 제297조 강간죄는 동의가 아니라 ‘폭행 또는 협박’을 법의 구성요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한 판례에 따르면, 폭행 또는 협박의 정도가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 이를 ‘최협의설’이라 한다.

비록 판례상 폭행 협박의 판단 기준이 점점 완화되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피해자들의 경험, 해석, 언어가 법으로 인정받지 못하곤 한다. 실제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에서 강간 및 유사강간 사례를 분석한 결과, 60~70%의 사례가 명시적 폭행 협박이 없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피해자가 성폭력을 인정받으려면 저항이 불가능할 정도의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단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여기에는 피해자가 일관되게 무력했는지, 취약했는지도 증명할 것이 요구된다.

어떻게 이런 법이 만들어지고 유지될 수 있었을까? 여성운동 단체들과 학자들은 1953년 형법제정 당시 존재했던 ‘정조에 관한 죄’의 법적 틀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해왔다. 여성은 순결을 지키기 위해 사력을 다해 저항해야 하고, 저항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여성에게는 국가가 보호의 의무를 철회하는 것이 ‘정조에 관한 죄’의 틀이다. 이는 성폭력은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라기보다는 가족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 심지어 남성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죄라는 인식이기도 하다. (중략)

그러나,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동의’의 문법은 현재 이분법의 함정에 빠져있기도 하다. 동의/비동의, 자발/강제가 이분법적으로 딱 떨어지게 구분된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이 경우, 동의를 자유롭고 합리적인 두 개인의 계약 관계로 인식하게 되어, 젠더 등 불평등한 권력 구조에 대한 인식과 맥락을 삭제하는 한계를 가진다. 개개인의 성적인 행위에 대한 자기결정에만 집중함으로써 그 행위, 그 관계에 개입하는 ‘불평등’을 보기 어렵게 하는 것이다.

동의를 관계나 맥락 내에서 살피지 않고, 개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능력’으로 보는 것도 우려할 만한 지점이다. 대표적으로 안희정 성폭력 사건 1심 무죄 판결에서 “고학력”, ”성년의 나이”, “사회 경험”을 근거로 피해자가 충분히 동의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사후적으로 번복하면서 상대방의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스스로 부인하는 행위”라고 보았다. 성폭력의 발생 원인을 ‘충분히 능력이 있음에도’ 거부하지 않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않은 피해자의 문제로 돌리는 판결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동은,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2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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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가 되지 못했던 ‘여성의 몸’을 연결하는 ‘고백들’

이서수 작가의 <몸과 고백들>은 여성의 몸에 대한 다채로운 고백들을 담은 연작소설집이다. 수록작 ‘몸과 금기들’에서 거침없이 ‘여성의 쾌락’이라는 금기를 깨나가는 화자가 등장한다. ‘나’는 타인의 감각까지 “알고 싶고 느끼고 싶다”라는 욕망으로 뻗어 나가며 “십자가 대신 텔레딜도닉을 짊어지고 저는 어디까지 가 볼 수 있을까요”라고 말한다. 여성에게 강요됐던 금기와 윤리와의 결합을 끊어내며, 이를 쾌락과 윤리와의 연결로 전복시키는 일종의 선언처럼 읽히는 대목이다.

작가는 ‘몸과 금기들’을 비롯해 ‘몸과 여자들’ ‘몸과 우리들’ ‘몸과 무경계 지대’ ‘몸과 비밀들’ 등 5편의 작품에서 논바이너리(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성별 구분을 벗어난 젠더 정체성), 동성애, 양성애, 범성애(정체성을 구분 짓지 않고 사람 그 자체에 대한 사랑), 무성애 등을 다루지만, 단순한 분류법에 따라 구분 짓기를 경계한다. 작품 속 화자들은 각기 다른 정체성을 보이지만, 다층적인 이들의 목소리는 결국 자신의 몸에 관한 다양한 탐구를 통해 경계를 허물고 비로소 ‘내’가 된다는 점에서 연대의 기록이기도 하다.

‘몸과 금기들’이 여성의 쾌락이라는 금기의 타파를 다뤘다면, ‘몸과 여자들’에서는 그와 대척점에 있는 듯한 작품이다. ‘몸과 여자들’의 화자는 쾌락을 탐닉하는 ‘몸과 금기들’의 화자와는 정반대로 “섹스에 내 몸을 사용하고 싶지 않다”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여성의 성욕과 쾌락을 긍정하는 것처럼 성적 욕구를 경험하지 않는 것 역시 인정돼야 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목소리는 결코 충돌하지 않는다. (중략)

작가는 작품들에서 여성의 몸을 규정해 온 각 시대적·사회적 조건 등을 자세히 살피면서 여성의 몸을 둘러싼 사회적 통념과 억압의 메커니즘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연인 사이엔 강간이 일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던 시절에 애인에게 강간을 당한 적이 있고, 회식 자리에서 선정적인 영화 얘기를 꺼내며 은근한 성희롱을 일삼는 상사의 얼굴에 맥주를 끼얹은 적도 있습니다.”(‘몸과 여자들’) “섹스를 좋아한다고 원한다고 말하면 성범죄를 당했을 때 보호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습니다. 당해도 싼 여자. 그렇게 손가락질 당하고 맙니다.”(‘몸과 금기들’) “여자의 몸은 전쟁터야, 너는 아군이 없어. 그런 말들은 여자의 몸을 더욱 전쟁터로 만들고, 저에게 아군이 없다는 사실을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몸과 우리들’)

(박송이, 경향신문, 25.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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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사’는 꼭 써야 하는 말인가[새 책]

일과 가정의 양립은 왜 ‘여성 문제’인가? ‘여사’와 ‘영부인’은 꼭 써야 하는 말인가? 일본신문노동조합연합(신문노련)의 ‘젠더 표현 가이드북 편집팀’이 펴낸 ‘실패 없는 젠더 표현 가이드북’(조지혜 옮김, 마티 펴냄)은 압도적인 남성 중심 사회인 미디어 업계에서 먼저 평등하고 안전감을 주는 젠더 표현을 제안하기 위해 쓰였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혔다시피 “젠더 표현은 지금 전세계의 리터러시”다. 미디어는 젠더 표현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이 책이 일본어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 곧바로 적용하긴 어렵겠지만 일치하는 부분도 상당수 있다. 예를 들어 여성에게만 사용되는 ‘영부인’ ‘미망인’ ‘여사’ 등은 “여성을 과도하게 특별 취급하는 표현”이라고 지적한다. ‘미망인’은 ‘남편이 죽을 때 같이 죽었어야 하지만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란 뜻을 담고 있어 한국 언론에서도 대체로 사라진 표현이다. 그러나 ‘영부인’ ‘여사’ 등의 표현은 여전히 사용된다. 이렇게 여성에게만 사용되는 호칭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여고생’ ‘여사장’ ‘여의사’ ‘여자 아나운서’라는 말 또한 과도하게 외모에 눈길을 주거나 공공연히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만드는 표현이 될 수 있으므로 성별성을 삭제하도록 안내한다.

(이유진, 한겨레21, 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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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할 것 같은 친절함,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경고

현대 사회의 젊음에 대한 집착과 노화에 대한 두려움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인간이 나이가 들어가며 노화를 겪는 것은 죽음만큼 당연한데, 그 당연한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통은 때론 처참할 지경이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적당한 선에서 멈출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영화 속 그들처럼 멈추지 못해 끝내 자신을 파괴하고야 만다.

비교와 집착은 자신을 갉아먹는다. 흉측하게 변한 손가락을 가리고 자존감 회복을 위해 모처럼 데이트에 나서기로 마음먹은 엘리자베스. 그녀는 수의 눈부신 젊음을 따라가 보려다 결국 거울 앞에서 자괴감과 절망감 가득한 얼굴로 데이트 약속을 포기한다. 거울 앞 그녀는 스스로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녀는 자기 존재의 의미를 자신에게서 찾지 못했다. 이를 계속해서 외부에서 찾고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가뒀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을 늙은 여자로만 보는 프로듀서 하비(데니스 퀘이드)의 시선에 한 번 갇혔고, 병원 앞에서 우연히 만나 동창이라 말하는 프레드의 시선에 또 한 번 갇혔다. 프레드는 여전히 아름답다며 엘리자베스를 칭송했지만, 그녀에게 흙탕물에 빠진 연락처가 적힌 종이를 건넨다. 그런데 과연 감탄사를 불러일으킬 만큼 여전히 아름다운 그녀에게 다 젖어 구질구질해진 종이를 건넬 남성이 몇이나 되겠나. 여분의 종이가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정작 그녀 자신은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 내내 아쉽다.

타인이 자신을 예쁘게 보아주고 말고가 뭐 그리 중요한가. 스스로 자신을 예쁘게 보아주고 인정할 줄 알아야지. 영화는 노화를 자연스럽게 수용하지 못하고 추함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현재를 거부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 그녀를 끝까지 추적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를 들여다보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이언정, 오마이스타, 25.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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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버리’는 ‘her’와 ‘delivery’를 합성한 조어로, 뉴스 헐리버리는 매일 같이 기사로 접하는 현실 속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진단하는 여성 뉴스 큐레이션입니다. 월 2회 PERSPECTIVE EDITION과 PEOPLE EDITION으로 큐레이팅된 뉴스레터가 15일과 말일경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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