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안녕하세요. 3월 첫 번째 뉴스 헐리버리는 관점과 깊이가 있는 심층기사와 칼럼을 모아 전해드리는 PERSPECTIVE EDITION으로 인사드립니다. 이번 호에도 함께 읽어보시면 좋을 의제 기사들을 모았습니다. 관련 기사들을 통해 여성의제의 현재와 확장성을 함께 생각해본다면 의미 있을 것 같습니다.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이제 석 달도 남지 않았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지선에서 여성 등 정치 신인을 최우선 순번인 ‘가’번에 배치하기로 했습니다. 그간 정치 영역에서 과소 대표됐던 여성과 청년, 장애인 등에 실질적인 당선권을 보장한다는 의미입니다. 민주당에서 경기도지사에 도전하는 후보는 총 5명입니다. 이 가운데 유일한 여성인 추미애 의원에게 주어질 여성 가산점 혜택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6선 국회의원이 여성 우대 정책의 수혜를 받는 것이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입니다. 한국일보 노조원들이 사측의 성차별적 인사 기준과 처우, 조직문화 등을 총체적으로 비판했습니다. 한국일보는 창간 이래 여성 편집국장이 나오지 않은 10대 종합일간지 4곳 중 하나입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이 저서 <이처럼 친밀한 살인자>를 출간하고 북토크를 가졌습니다. 허 조사관은 교제폭력의 가장 큰 위험징후인 ‘강압적 통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들여다보았습니다. 최근 벌어진 ‘36주 임신중지 유죄판결 사건’을 계기로 임신중지를 둘러싼 윤리적 논쟁이 다시 촉발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최근의 논쟁이 성·재생산 건강 정책의 제도 공백이 드러난 결과라고 분석합니다. AI의 젠더 편향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권오남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은 젠더 편향이 차별적 시스템을 굳히게 된다고 지적하며 여성의 과학기술 참여는 정의의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대학가 페미니즘 동아리들이 존폐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이를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대학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여성의 날을 맞아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가 열렸습니다. 저마다의 전투를 웃음으로 승화하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화제 속에 종영한 두 편의 드라마 <언더커버 미쓰홍>과 <아너: 그녀들의 법정>이 바꾼 여성서사의 공식을 돌아봅니다. 여성들의 연대는 장르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공연계에서도 여성서사의 방향성이 바뀌고 있습니다. 여성의 목소리로 시대의 보편적 사회 문제와 다채로운 인간사를 논하며 서사의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4·19 혁명 이후 문학장에서는 ‘청년-남성-지식인’을 혁명의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이 정전으로 확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연희 작가는 <목마른 나무들>에서 혁명의 틈새에서 빚어진 여성들의 이야기에 주목했습니다.
영어 단어 ‘비라고’는 과거에는 영웅적인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였지만 오늘날에는 드센 여자 등과 같은 여성 멸칭으로 사용됩니다. 그 이유를 알아보았습니다. 2월 11일은 세계여성과학자의 날이었습니다. 여성 과학자는 미디어에서 어떻게 재현되어 왔는지 들여다봅니다. 일본 민법은 부부가 같은 성을 갖도록 강제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여성이 혼인신고와 동시에 남편의 성을 따르고 있어 이렇게 성이 바뀔 경우 커리어에서 손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인도에는 월경과 관련된 여러 금기가 있으며, 월경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는 소녀들도 많습니다. 인도 오디샤주의 월경권 활동가 파얄 파텔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뉴스 헐리버리가 이번 호에서 준비한 기사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호에서는 주목할 만한 여성 인물 기사들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에디터 김예빈 드림

기초의회 성별 불균형 해법, ‘공천 숫자’보다 당선권 ‘기호’에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6.3 지방선거에서 여성 등 정치 신인을 최우선 순번인 ‘가’번에 배치하기로 했다. 이는 그간 정치 영역에서 과소 대표됐던 영역의 신인 후보들에게 실질적인 ‘당선권’을 보장함으로써, 풀뿌리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인적 쇄신을 이루겠다는 취지다.
여성신문이 입수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이하 지선) 공천 방안’ 자료에 따르면, 민주당은 기초의원 선거에서 정치 신인(여성·청년·중증장애인)을 ‘가’번에 우선 추천하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중략)
정당이 ‘기호’ 운용에 집중하는 이유는 데이터가 증명하는 위력 때문이다. ‘제8회 지방선거 실증연구’(한국여성의정, 2022)에 의하면, 기초의원 더불어민주당 1-가 당선율은 95.9%에 달했다. 국민의힘의 2-가 당선율 역시 96.1%를 기록했다.
중대선거구제 하의 ‘1인 1표’ 구조에서 투표용지 상단 점유는 사실상 당선을 의미한다. 제8회 지선 당시 민주당은 가번 배정자 중 여성 비율이 33.3%였던 반면, 국민의힘은 22.4%에 그쳤다.
정당이 선거구에 단 1명만 공천해 단일 기호를 받는 ‘기호군’에서도 민주당(30.3%)이 국민의힘(24.9%)보다 높았다.
국민의힘이 ‘공천 비율 확대’라는 선언적 논의에 머물고 있다면, 민주당은 오랜 기간 ‘당선권 기호 배분’이라는 실무적 문법을 통해 실질적인 성별 균형을 꾀해온 셈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전략적 유연성이 성별 균형의 성패를 가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명 전 국회의원(한국여성의정 전 대표)은 “정치 신인을 발굴한다는 취지는 공감하나, 재선 이상 여성들을 일률적으로 ‘가’번에서 배제하는 것은 사실상 여성 정치인의 성장을 가로막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박진경·서정순, 여성신문, 26.03.03)
경기도지사 나서는 6선 의원 추미애에 '여성 10% 가산' 적용
더불어민주당의 여성 후보 ‘10% 가산점’이 6·3 지방선거 경기지사 경선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후보 5명 중 추미애 의원이 유일하게 10% 가산점 혜택을 받게 되는데, 일부 후보 측은 “6선 국회의원까지 지낸 후보가 신인에게나 주는 가산점을 받는 게 말이 되냐”는 입장을 당 지도부에 전달할 것으로 13일 알려졌다.
민주당 경기지사 예비후보로는 추 의원을 비롯해 연임에 도전하는 김동연 경기지사, 권칠승·한준호 의원, 양기대 전 의원 등 5명이 등록했다. 이들은 오는 21일부터 이틀간 권리당원 100% 투표로 예비경선을 치러 후보 3명을 추린다. 이 3명은 다음 달 5일부터 사흘간 본경선을 치른다. 이때는 권리당원 투표 50% 국민 여론조사 50%로 후보를 뽑고,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1·2등 간에 결선 투표로 최종 후보를 정한다.
추 의원은 이 모든 과정에서 가산점 10%를 받는다. 민주당 당헌 제99조에 따르면 경선에 참여한 여성 후보자는 ‘25% 가산점’을 받는데, 현직 국회의원의 경우 ‘10% 가산점’을 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친여 커뮤니티에서는 이 룰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일부는 “6선 국회의원에게 여성 우대는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인 반면, “지금까지 여성 광역단체장이 없었기 때문에 여성 가산점은 당연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신지인, 조선일보, 26.03.14)

"여성기자, 국장 될 수 없나"… 한국일보 내부서 인사기준 비판
여성 편집국장(뉴스룸국장)이 창간 이래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한국일보에서 성차별적 인사 기준과 처우, 조직문화 등을 총체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회사의 인사 기준 등에 대해 상당 구성원들이 ‘여성 국장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일보지부는 12일 발행한 노보 <우리는 국장이 될 수 없는가, 여성 기자들이 묻는다> 기사를 통해 회사의 인사 기준에 대한 구성원 중론을 전했다. 지난 1월 조합원 대상 설문에서 뉴스룸·콘텐츠제작부서 응답자 41.6%(64명)는 이성철 사장의 주요 인사 기준으로 ‘여성 기자의 고위직 진출 배제’를 꼽은 바 있다. (중략)
실제 한국일보는 여성 편집국장이 창간 이래 나오지 않은 10대 종합일간지 4곳 중 하나다. 2005년 한겨레(권태선)를 시작으로 2013년 세계일보(황정미), 2016년 서울신문(김균미)·경향신문(김민아), 2017년 중앙일보(이정민), 2025년 조선일보(강경희)에서 여성 편집국장이 배출됐다. 국민일보, 동아일보, 문화일보, 한국일보에선 아직 전례가 없다.
한국일보지부는 이 같은 현실을 언급하며 “과연 고의성 없는 우연이기만 할까. 한국일보 사회부장 명단을 약 15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봐도, 불가피한 사유를 제외하면 뉴스룸국장 지명이 안된 기자는 단 2명, 모두 여성이었고 나머지 남성들은 모두 국장으로 지명됐다”고 지적했다.
(최승영, 기자협회보, 26.03.13)

‘친밀한 살인자’에게 죽는 여자들, 어떻게 살릴 수 있을까
한국 여성들에게 가장 위험한 공간은 밤길이 아니라 가장 안전해야 할 내 집이나 애인과의 내밀한 공간입니다. 2025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애인 등 파트너에게서 신체적·성적·정서적 폭력, 통제 피해를 평생 한 번 이상 경험한 성인 여성 비율은 19.2%로, 5명 중 1명꼴이라고 합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매년 3·8 여성의 날 발표하는 ‘분노의 게이지’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남편이나 애인 등 남성 파트너에게 살해당한 여성은 ‘언론에 보도된 것만’ 137명에 달하죠.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이 최근 발간한 책 <이처럼 친밀한 살인자>는 교제폭력과 교제살인의 원인과 실태를 들여다보고 이를 막기 위한 실질적 대책을 찾아보는 책입니다. (중략)
책은 ‘강압적 통제’라는 개념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한 TV 프로그램에 부부가 나왔어요. 남편은 홈캠을 설치해 놓고 항상 아내를 지켜봅니다. 그리고 말하죠. “너 지금 왜 놀고 있어? 너 공부해야 하는 거 아냐?” 아침이면 몸무게를 재도록 하고, 운동을 시키겠다며 같이 달리기를 하죠. 아내를 사랑해서 자기계발과 건강까지 챙겨주는 걸까요?
방송은 대수롭지 않게 다뤘지만 사실 이것은 매우 커다란 위험 신호라는 게 허 입법조사관의 지적입니다. 교제폭력의 가장 큰 위험징후인 ‘강압적 통제’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강압적 통제는 연인이나 배우자처럼 가까운 관계에서 한쪽이 상대의 일상을 지나치게 통제하고 사소한 일까지 허락을 받게 하거나 원하지 않는 일을 억지로 강요하는 것입니다. 강압적 통제는 친밀한 관계 폭력의 명확한 전조입니다. 피해자들은 폭행에 앞서 강압적 통제를 겪는 경우가 많거든요. (중략)
드라마에서 로맨스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손목을 잡고 끌고 가는’ 장면에서 시작될 때가 많죠. 수많은 ‘손목잡기 신’을 화면에 띄우며 허 입법조사관은 말했습니다. “이건 폭행이고 성추행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드라마가 여성이 남성을 고소해서 승소하는 걸로 끝나나요? ‘오빠가 날 너무 사랑했던 거야’ 이렇게 끝나잖아요.” 남성이 여성을 통제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문화적 지배’가 교제폭력과 강압적 통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는 분석입니다.
(남지원, 경향신문, 26.03.12)

[성·재생산권은 민생이다] ①임신 36주 중지 살인죄 논쟁, 사건을 넘어 정책으로
성·재생산권(sexual and reproductive rights)은 낙태 문제보다 훨씬 넓은 개념이다. 1994년 국제인구개발회의(ICPD)는 인구정책의 목표를 단순한 출산율 관리에서 개인의 성과 재생산 건강, 그리고 권리 보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원칙을 선언했다.
이후 세계보건기구(WHO)는 성·재생산 건강을 성적 관계와 임신·출산, 생식 기능 전반에서 신체적·정신적·사회적 안녕이 보장된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ICPD 행동계획 7.3항 역시 재생산권을 구체적인 인권으로 규정한다. 행동계획은 △모든 개인과 커플이 자녀의 수와 출산 간격을 자유롭고 책임 있게 결정할 권리, 이를 위한 △정보와 수단에 접근할 권리 △최상의 성·재생산 건강을 누릴 권리를 포함한다고 밝히고 있다. (중략)
최근 성·재생산권 논의가 다시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인구 구조 변화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출생률이 감소하고 있으며 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출산 장려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단순한 출산 장려 정책만으로는 인구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임신과 출산을 둘러싼 건강권과 선택권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는 정책 효과 역시 제한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성교육, 피임 정책, 예방접종, 임신중지 의료체계, 공공의료 접근, 인구정책까지 이어지는 성·재생산권 보장 정책이야말로 시민의 삶과 직결된 민생 정책이라는 것이다.
사건이 촉발한 논쟁이 다시 윤리적 대립으로만 끝난다면 한국 사회는 같은 문제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 질문을 바꿀 때다.
“낙태를 허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성과 재생산 건강 및 권리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박진경, 여성신문, 26.03.13)

이력서에 ‘여성·여대’ 들어가면 불이익…AI 젠더편향 막는 방법은
2018년 인공지능(AI) 채용 시스템을 개발해오던 아마존이 해당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폐기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젠더 편향성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당시 아마존 관계자들을 인용한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아마존은 2014년부터 구직자들의 이력서를 검토한 뒤 우수한 지원자들을 추려내는 시스템을 개발해왔다. 하지만 해당 시스템은 ‘여성 체스 클럽 회장’처럼 ‘여성’이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거나 여대 출신들의 이력서를 낮게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수정을 시도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자 결국 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해 이를 폐기한 것이다. (중략)
권 회장은 “‘데이터를 더 많이, 더 균형 있게 모으면 해결되지 않는가’라고 말할 수 있지만 AI는 존재하는 편향을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다”며 “새로운 결과물을 생성할 때 그 편향을 더 크게 부풀린다. 데이터만 고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에 젠더 편향을 막기 위해 AI 개발과 데이터 해석에 참여할 더 많은 여성 과학기술 인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권 회장은 “기술의 설계 단계에서 다양한 관점이 빠지면 그 기술은 반드시 편향된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편향된 기술이 사회의 판단 기준이 될 때, 채용과 의료, 사법에서 우리는 차별을 시스템으로 굳히게 된다”며 “여성의 과학기술 참여는 단순한 참여율의 문제를 넘어선다. 이는 정의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김세원, 여성신문, 26.03.11)

존폐 위기의 대학 ‘페미니즘 동아리’…“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말할 것이다”
대학가 페미니즘 동아리들이 수난시대를 맞고 있다. 지난해에만 세 개 대학 동아리가 존재의 위협을 마주했다. 성균관대 여성주의 교지 ‘정정헌’과 동덕여대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 ‘사이렌’이 동아리 지위를 잃었고, 고려대 여학생위원회는 소수자위원회와 강제로 합쳐졌다.
이들의 소멸 위기엔 각기 다른 맥락이 있다. 코로나19 유행기를 지나며 학생들의 목소리가 줄어든 탓에 더해 2010년 후반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대중화)’ 이후 극심해진 ‘백래시(반동)’ 움직임의 영향도 컸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여전히 대학 안에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중략)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대학 사회가 점차 경쟁과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로 바뀌면서 페미니스트들이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는데, 이는 페미니즘뿐만 아니라 대학 민주주의가 무너진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어 “삶의 불안정성을 해결할 수 있는 민주주의 발전의 엔진을 끌어가는 주요 세력 중 하나가 페미니스트”라며 “대학 사회 구성원들이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은 곧 민주주의 전반에 대한 공격이란 확장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채연, 경향신문, 26.03.11)

“이 좋은 걸 이제야” 계급장 떼고 ‘웃음’ 승부 보는 여자들
추한 분장도, 고통스러운 슬랩스틱도 없다. 오로지 마이크 하나만 믿고 맨몸으로 무대에 오른다. “여기가 웃음 포인트입니다”라고 설명할 필요 없이, 50여명의 관객 앞에 선 여성 코미디언들이 어젯밤에 작성한 일기를 읽듯 말을 술술 풀어내면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진다. 펜싱 선수가 상대의 약점을 찌르는 것처럼 웃음에 연약한 공감 포인트를 살살 간지럽혀댄다. 관객은 무심한 시선, 여유 가득한 표정, 적절한 호흡 중단, 밀고 당기기 등 코미디 기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중략)
“스탠드업 코미디는 정말 공평한 장르예요. 스펙, 계급 다 떼고 한 개인이 가진 이미지와 말로 싸우죠.”(고민지)
이들이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된 계기는 각양각색이다. 뉴욕 컬럼비아 대학 출신 고민지는 비정부기구(NGO) 단체와 유엔(UN)에서 일하다 붓을 잡았고, 초상화를 그리러 뉴욕의 한 공연을 찾았다가 스탠드업 코미디에 눈을 떴다. 그는 뉴욕에서 쌓은 오픈 마이크(누구나 자유롭게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치는 시간) 경험을 바탕으로 2023년 부산 유일 스탠드업 코미디 단체 부산코미디클럽을 발족했다. 10여년간 국제코미디페스티벌이 열린 부산에 스탠드업 코미디 단체가 전무했다는 사실도 놀라운 점이다. (중략)
흔히 코미디언들은 “남들을 웃기는 것이 좋아서 코미디를 한다”, “관객이 웃어주면 행복하다”고 말한다. 누가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 것처럼 당당해 보인다.
송은이, 김숙, 이수지, 강유미 등 여성 코미디언들이 망가짐에 개의치 않고, 미디어가 주입하는 여성성을 과장하거나 반기를 들며 웃기는 모습을 볼 때면 그들도 웃음을 주는 행위가 ‘기뻐서’ 자기 자신을 소모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슬픔’이 웃음의 원동력이 될 줄 몰랐다. ‘사회의 불편함’이, ‘멸시를 전복하고 싶은 의지’가, ‘망상의 쓸모를 찾는 여정’이 원동력이 될 줄은 몰랐다. 필드 위에 선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언은 저마다 내면과 외면의 전투를 웃음으로 승화하고 있었다.
(나혜인, 여성신문, 26.03.08)

여성 캐릭터는 더 이상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지 않는다
한때 여성 캐릭터는 사랑받는 방식으로 존재를 증명했다. 누군가의 연인이 되고, 누군가의 선택을 받고, 누군가의 구원 서사에 편입될 때 비로소 이야기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흥행하는 여성 서사는 이 오래된 공식을 분명하게 거부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누가 사랑받는가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누구의 편이 되어주는가다.
최근 주목받는 tvN <언더커버 미쓰홍>과 ENA <아너 : 그녀들의 법정>는 바로 그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두 작품 모두 여성들이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지만, 그 연대의 결은 다르다.
<언더커버 미쓰홍>이 1997년 증권가라는 남성 중심 조직 안에서 여성들의 생활형 연대를 보여준다면, <아너>는 성폭력 피해와 증언, 법적 대응을 둘러싼 증언형 연대를 그린다. 그럼에도 두 작품이 함께 증명하는 것은 분명하다.
여성은 더 이상 사랑을 통해서만 의미를 획득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서로의 삶을 지켜내는 주체라는 점이다. (중략)
이 두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여성 캐릭터가 단순히 더 강해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변화는 여성들이 서로 관계 맺는 방식 자체에 있다. 한때 여성들의 관계는 질투와 견제, 이른바 '여적여' 프레임 안에서 소비되곤 했지만, <언더커버 미쓰홍>과 <아너>는 그 낡은 도식을 비껴간다.
여성들은 더 이상 서로를 깎아내리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서로의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동료로 등장한다. 증권가 비리와 성폭력 사건 같은 거대한 범죄를 함께 파헤치는 순간부터 서로의 일상을 지키는 장면까지, 여성들의 연대는 이제 장르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으로 기능한다.
(이인혜, 오마이뉴스, 26.03.10)

틀을 깬 여성 캐릭터들, 무대 위 다양성을 넓히다
최근 공연계에 여성 서사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이 잇따라 개막하고 있다.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창작극부터 고전까지 장르와 소재의 경계를 허무는 뚜렷한 경향으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흐름은 뮤지컬 ‘렘피카’ ‘안나 카레니나’ ‘홍련’ ‘A여고 사서의 영광과 비극’, 연극 ‘말벌’ ‘정희’ 등이 그 예다. 과거 천편일률적인 남성 캐릭터 위주의 극에서 벗어나 여성 주체, 젠더프리 캐스팅 등 무대 위 다양성을 추구해 온 흐름의 연장선으로 분석된다.
이 가운데 올해 초연되는 작품들은 공연의 성격과 캐스팅 구조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보인다. 그동안 대학로 소극장 무대는 남성 배우 중심의 2~3인극이 주류를 이뤘다. 이 같은 환경에서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A여고 사서의 영광과 비극’은 보기 드문 여성 4인 서사를 채택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1990년대 여고 도서부를 배경으로 사라진 문학 선생님의 흔적을 쫓는 네 여학생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여성 배우들에게 더 많은 무대와 입체적인 배역을 열어주겠다는 창작진의 의지를 담고 있다.
과거의 여성 서사가 누군가의 아내나 어머니 등 여성으로서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면, 현재는 여성의 입과 캐릭터를 빌려 시대의 보편적 사회 문제와 다채로운 인간사를 논하는 추세다. 여성 서사가 단지 여성만의 이야기나 젠더적 특수성에 머물지 않고 그 스펙트럼이 한층 넓어지고 깊어졌다는 의미다.
(박정선, 데일리안, 26.03.15)

연애 서사와 혁명 서사의 불편한 공존[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24)
1960년 4·19 시민혁명은 한국문학 장에 ‘청년-남성-지식인’ 주체를 혁명의 주인공으로 호명하며 그들의 고뇌를 문학 정전으로 구축했다. 하지만 이 견고한 문학 정전의 틈을 비집고 여성의 목소리로, 혹은 낯익은 대중소설의 양식으로 4·19 혁명 전후를 그린 작품들이 있다. 박경리의 <푸른 운하>·<노을 진 들녘>, 강신재의 <오늘과 내일>, 정연희의 <목마른 나무들>이 그러하다. 1963년 발간된 정연희의 장편소설 <목마른 나무들>은 혁명의 광장 밖에서 다른 방식으로 자유를 꿈꾸었던 여성들의 이야기에 주목한다. 소설은 4·19 혁명을 경유하면서 여성들이 겪는 실존적 방황과 욕망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서사를 통해 4·19의 또 다른 풍경을 그린다. (중략)
<목마른 나무들>은 주인공 주연뿐만 아니라 오성우의 누이인 성희, 그리고 김재훈의 연인이었던 이윤이와 같은 여성 인물들을 통해 사회가 규정한 일부일처제와 현모양처라는 프레임에 포섭되지 않는, 위반적인 움직임들이 혁명 전야 한국사회의 저층을 뚫고 나오는 현장을 보여준다. 성희는 김재훈과 결혼해 아이를 낳자마자 가족을 버리고 유학을 가버린다. 사실 그는 재훈을 “나의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하는 독점욕 때문에 결혼을 결정한다. 하지만 이 관계가 불가능함을 깨달은 순간 결혼이라는 계약을 스스로 깨버린다. 그는 낭만적 사랑의 결과물인 결혼 신화와 여성에게 강요되던 모성(성)을 동시에 부정함으로써 여성에게 덧씌워진 역할과 윤리를 해체한다.
(김양선, 주간경향, 26.03.13)

‘여성 영웅’이 ‘드센 여자’로? 언어의 젠더 정치학
영어에는 ‘비라고’(Virago)라는 단어가 있다. 남성을 뜻하는 라틴어 ‘비어’(Vir)에서 파생된 단어는 과거 ‘영웅적인 여성’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됐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드센 여자, 바가지 긁는 여자 등 여성을 비하하는 의미로 전락했다. 한때의 예찬이 어쩌다 멸시의 언어가 됐을까? (중략)
언어학자 뮤리엘 슐츠는 이러한 단어 전이에 대해 “여성이 ‘남성처럼’ 행동하는 것은 사회 지배 계층인 남성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비단 ‘비라고’만의 문제가 아니다. 주부를 뜻하는 고어 ‘하우스와이프’(Huswif)나, 높은 직위의 여성을 일컫던 ‘마담’(Madam) 등도 부정적인 은어로 격하됐다. 이는 남성형 호칭인 ‘서’(Sir)가 여전히 격식 있는 존칭으로 남은 것과 대조적이다.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언어학자 파멜라 먼로가 1980년대부터 약 30년간 펴낸 ‘UCLA Slang Dictionary’(UCLA 속어 사전)에 따르면 여성 관련 은어는 90%가 부정적 의미를 내포한 반면, 남성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전 세계 언어는 특정 권력의 규범을 강화하는 형태로 진화해 왔다. 흑인보다 백인을 위한 형태로, 여성보다 남성을 위한 형태로, 아이보다 성인을 위한 형태로 변했다. 기득권은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언어를 이용했다.
(나혜인, 여성신문, 26.03.06)

우리는 여성 과학자의 얼굴을 모른다
2월11일은 세계여성과학자의 날이었다. 과학자의 날도 아니고 여성과학자의 날이라니. 생각해보면 과학의 세계는 유난히 여성에게 배타적인 분야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과학 교수이며 자신도 훗날 지구물리학자가 되는 『랩걸』의 저자 호프 자런조차 어릴 때는 여성과학자에 대해 들어본 적도, 본 적도, TV에서 본 적도 없다고 했을 정도다. 과학이라는 학문을 여성과 가깝지 않은 영역처럼 만들었다. 과거에는 물리학자, 수학자, 의사 등은 교과서에서도 늘 남성으로 그려졌다. 그럼, 이쯤해서 떠올려본다. 최초의 여성과학자는 누구였을까. 아니, 여성과학자는 어떻게 재현돼 왔을까.
히파티아(Hypatia)는 4세기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철학자이며 수학자이다. 19세기에 찰스 킹즐리의 소설 『히파티아』(Hypatia, or New Foes with an Old Face, 1853)로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후 이 소설에 기초한 연극과 미술 덕분에 히파티아의 이미지를 재현한 배우의 사진이나 그림 등으로 그의 이미지가 남았다. 찰스 윌리엄 미첼의 그림 ‘히파티아’도 킹즐리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비참하게 알려진 죽음때문에 그의 삶은 소설의 소재가 됐고, 그후 다양한 장르에 영감을 주고 오늘날 영화로도 재현됐다. 히파티아의 삶을 다룬 영화 ‘아고라’가 2009년 개봉하기도 했다. (중략)
히파티아에 대해서는 그의 학문적 업적보다 아름다운 외모와 비참한 죽음이 더 회자된다. 히파티아는 늘 젊고 아름다운 외모로 재현돼 왔다. 소크라테스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떤 외모인지 그 정도의 관심을 보인 적이 있을까.
(이라영, 여성신문, 26.02.28)

하와이에서 결혼하는 일본인들, 왜?…“내 이름 지키려고”
일본 고베에 사는 반노 미사키(26)와 남편(26)은 지난해 9월 미국 하와이에 가서 결혼식을 치렀다. 하와이 결혼식이라면 부유층의 호화 결혼식을 떠올리기 쉽지만 반노 부부의 예식은 결혼 중개인인 목사 1명만 참석하는 간소한 결혼식이었다. 이들이 가족도 친구도 없이 멀리 하와이에서 외로운 결혼식을 치른 이유는 부부별성이 허용되지 않는 일본에서 결혼 전 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와이를 원해서가 아닌 이름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었던 것이다. (중략)
일본 민법은 부부가 같은 성을 갖도록 강제하고 있다. 민법 750조는 ‘부부는 혼인 시 정한 바에 따라 남편 또는 아내의 성을 칭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아내의 성을 따르는 경우는 극소수다. 대부분 여성이 혼인신고와 동시에 남편의 성을 따르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여성계와 야당 일부가 법제화를 주장해온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는 부부가 다른 성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는 제도다. 하지만 지난 2월 실시된 중의원 선거의 당선자 중 절반에 가까운 47%가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에 반대하고 있어 이 제도 도입은 현재로선 어려운 상황이다.
교토대 대학원생으로 고대 로마사 연구자인 반노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 하와이에서 결혼을 하면서까지 자신의 성을 유지하려는 것은 자신의 학술 분야에서의 커리어 때문이다. 논문과 학위, 학회 발표, 국제네트워크 등에서 모두 이름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특히 성을 바꾸면 지금까지의 업적이 다른 사람의 것처럼 취급될 가능성도 있다고 마이니치는 전했다. 결혼 전 성을 통칭으로 사용할 경우 호적명을 따르는 여권과의 불일치 때문에 학회 참석을 위한 해외 입국이 거부될 우려도 있다.
(김기범, 경향신문, 26.03.12)

침묵을 깨자, 생리 때문에 학교를 그만두는 소녀가 없도록
“월경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우리가 침묵을 깰 때 인식이 시작되고, 인식이 시작되면 자신감이 자라납니다. 그래서 ‘침묵을 깨자(Chuppi Todo)’는 곧 용기를 상징합니다.”
14억 인구의 인도는 ‘월경 빈곤’과 월경 보건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으로 꼽힌다. 가부장적이고 종교의 영향이 강한 인도에는 월경과 관련된 여러 금기(터부)가 있다. 사원에서 여성을 출입금지하는 것은 물론 보수적인 가정에서는 월경 중인 여성을 내쫓기도 한다. 월경을 지칭하는 ‘비밀스러운’ 표현도 넘쳐난다. 월경 때문에 학교를 관두는 소녀들이 많다는 게 무엇보다도 큰 문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도 월경에 대해 계속해서 말하는 여성들이 있다.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인도 오디샤주의 월경권 활동가 파얄 파텔(31)을 이달 초 e메일과 메신저로 인터뷰했다. 파얄 파텔은 지난 10년 동안 자신의 고향 오디샤주에서 지역사회 여성들에게 무상으로 월경 관련 강의를 하고 재사용 가능한 생리대를 보급하는 활동을 이어 와 ‘패드 걸(pad girl)’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그는 여성들이 월경 기간 낡은 천, 신문지 등을 사용하고 월경에 관한 문제를 알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실태를 목격하면서 활동가의 길을 걷게 됐다. 파텔은 “침묵을 깨자”라는 구호를 사용한다. ‘월경을 말한다’는 것은 단순히 몸을 생물학적으로 인식하는 것을 넘어서 여성의 존엄을 회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서영, 경향신문, 2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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