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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03 남성 역차별은 없다, 구조적 성차별은 있다

2025.12.15 | 조회 1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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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헐리버리

‘헐리버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성뉴스 큐레이션 뉴스 헐리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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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안녕하세요. 12월 첫 번째 뉴스 헐리버리는 여성의제 기사들 가운데 관점과 깊이가 있는 심층기사와 칼럼을 모아 전해드리는 PERSPECTIVE EDITION입니다. 이번 호에서도 한 문장 한 문장 꼭꼭 씹어 읽으면 좋을 기사들을 엄선해 소개해드리니 주의 깊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숙영 계명대 여성학과 교수가 <아이슬란드가 멈추던 날>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통해 아이슬란드의 여성파업을 재조명하며 한국이 멈추는 날을 제안했습니다. 박진경 일과여가문화연구원 사무총장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성 대표성 논의에서 기준점으로 제시되는 30%라는 숫자의 함정과 지방정치의 현실을 진단했습니다.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국민의힘 박민영 대변인의 장애혐오 발언을 통해 소수자로서 정치를 한다는 것의 의미를 돌아보았습니다. 성평등가족부 주관으로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된 토크콘서트는 남성 역차별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현실의 구조적 성차별을 재확인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영국에서 금융권 내 여성 고위직 확대를 담당해 온 금융권 여성 대표성 확대 책임자가 새로운 인물로 교체됐습니다. 영국 최대 상호금융기관의 하나인 네이션와이드 최초의 여성 CEO 데비 크로즈비입니다. 소년범 이력이 보도되며 논란의 중심에 선 배우 조진웅 씨가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이은의 변호사가 그 소년범으로부터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 이야기는 담론으로 제대로 다뤄지지 못한 현실에 대해 개탄했습니다. 대전지역 성착취피해 아동·청소년 지원체계의 현황을 점검하고 대안 마련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대전성착취피해아동청소년지원센터와 여성인권티움 공동주최로 열렸습니다. 청소년 성착취는 단일 사건이 아니라 누적된 취약성이 폭발하는 구조적 문제라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전남 곡성군 죽곡면 삼태마을이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특별디딤돌상을 수상했습니다. 성폭력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데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삼태마을의 수상은 마을이 상을 받은 최초의 사례입니다. 지난달 열린 인천국제마라톤에서 성추행 논란이 일어났습니다. 김완기 감독이 결승선을 통과한 이수민 선수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했다는 것입니다. 양민영 운동친구 대표가 운동 중 벌어지는 신체 접촉에 대해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이야기합니다.

사회 전반의 성적 불평등이 여성의 뇌에 상처를 남긴다는 연구가 나왔습니다. 넷플릭스 드라마 <당신이 죽였다>를 통해 여성폭력 방관자들이 답해야 할 질문을 돌아보았습니다. 퀴어 아티스트 이반지하와 최현숙 작가가 동성혼에 대해 토론하며 가족중심주의가 사회 불평등을 유지하고 강화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합니다. 프랑스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는 모성을 축복이 아니라 사회가 부여하는 가장 강력한 규범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김양선 한림대 교수는 <토지>가 보여주는 젠더 정치학의 핵심을 여성들이 수동적인 피해자에서 벗어나 욕망, 경제, 생명의 주체로 거듭나는 과정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뉴스 헐리버리가 이번 호에서 준비한 기사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호에서는 주목할 만한 여성 인물 관련 기사들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에디터 오진달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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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1위' 아이슬란드서 일어난 일… 여성이 파업하니 나라가 멈췄다

그 가을날 아침, 아이슬란드 여성의 90%가 성별 임금 격차에 항의하며 가정과 직장에서 나와 광장에 구름처럼 모여 '휴일(day-off)' 시위를 벌였다. 그들이 하던 일을 멈추자 아이슬란드 전체가 멈췄고, 이후 아이슬란드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늘날 아이슬란드는 '성평등 천국' '성평등 선도 국가'로 불리며 전 세계에서 '여성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됐다. 세계경제포럼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 성 격차 지수에서 아이슬란드는 올해도 1점 만점에 0.926점을 기록하며 16년 연속 성평등 1위 국가임을 과시했다. 50년 전 아이슬란드 여성들은 집 안팎에서 수행하던 유·무급의 모든 노동을 거부함으로써, 오늘날 아이슬란드를 정치, 경제, 교육 및 건강 등 4개 분야에 걸쳐 성별 격차가 가장 작은 나라로 변화시킨 것이다.

그들이 멈추자, 그들이 하던 수많은 일이 뭐였는지 비로소 보였다. 요리, 육아, 간병, 세탁 등을 비롯해 '여성의 일'로만 알려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던 일들이 한 나라의 기능을 완전히 마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마침내 모두의 눈에 선명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 사회였던 아이슬란드에서 여성들은 하루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노동 없이는 아이슬란드 사회도 존재할 수 없음을 명명백백히 보여줬다. (중략)

13%의 성별 임금 격차도 지나치게 크다며,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실현을 위해 총리까지도 시위에 동참하는 아이슬란드를 보고 있자니, 그 격차가 30%를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심각한 수준임에도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던 한국 전직 대통령의 안이한 인식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안숙영, 한국일보, 2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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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경의 지방정치 젠더포커스] ②기초의회 33.4%의 착시를 넘어 : 이제는 남녀동수

여성 대표성 논의에서 오랫동안 기준처럼 따라붙는 숫자가 있다. 바로 '30%'다. 1990년대 이후 국제사회에서 여성 의원 비율이 30%를 넘어서면 정책 의제와 정치문화 전반이 달라진다는 연구가 쌓이면서, 30%는 단순한 목표치를 넘어 "정치가 변하기 시작하는 임계선"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UN은 이미 2015년부터 30% 기준을 넘어 '50:50 남녀동수'를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로 채택했다. 세계 각국이 동수제로 향하는 가운데, 한국 지방정치에서도 최근 '기초의회 여성 비율 33.4%'라는 통계가 등장하며 마치 뒤늦게 국제 기준을 따라잡은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매우 위험하다. 이 33.4%는 지방정치의 실제 구조를 반영하는 지표가 아니라, 비례대표와 최소 의무공천이 누적적으로 만들어낸 통계적 착시효과에 불과하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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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기초의회 중 지역구 여성 비율이 30%를 넘는 곳은 전체의 33.6%에 불과하며, 여성 지역구 의원이 단 한 명도 없는 기초의회가 28곳이나 된다. 더 심각한 단면은, 지난 5회~8회 지방선거까지 4회 연속 여성 당선자가 한 번도 없는 지역구 '여성 제로 의회'가 17곳(2022년 기준)이라는 점이다.

이는 특정 지역에서는 여성에게 정치로 진입하는 문이 구조적으로 닫혀 있음을 보여준다. 단순히 후보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공천 경쟁 단계에서부터 여성은 배제되고 지역 정당조직과 정치 네트워크의 접근권이 차단되어있는 것이다.

(박진경, 여성신문, 25.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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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인이 자당 국회의원에게 혐오발언…“자그마한 일” 아냐

사람들은 정쟁이란 보통 다른 정당끼리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선거철을 앞두면 공천심사나 규칙 등을 둘러싸고 같은 당 안에서도 치열한 정쟁이 일어납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같은 당 내에서 일어나는 정쟁이야말로 정치인들의 진짜 약점을 드러낸다고들 하지요.

최근에는 국민의힘 박민영 대변인이 원색적인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시각장애인인 자당의 김예지 국회의원에게 노골적인 장애혐오발언을 쏟아낸 사건이 이목을 끌었습니다. 김예지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당대표와 원내대표는 공격 당한 국회의원이 아니라 공격한 대변인을 감쌌습니다. 이 사건은 ‘소수자로서 정치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디오라마(작은 모형으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 같은 장면입니다. (중략)

박민영 대변인의 언행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비판의 지점이 있습니다. 우선 공당의 대변인으로서 비속어와 욕설이 난무하는 유튜브 채널의 방송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합니다. 그리고 그의 발언들은 명백한 장애혐오 표현입니다.

박 대변인이 김 의원을 비난하는 이유는 당의 핵심 현안에 대한 정견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국민의힘은 현재 장동혁 대표의 반탄(탄핵 반대)파와 한동훈 전 대표의 찬탄(탄핵 찬성)파로 나뉘어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습니다. 김 의원은 대표적인 찬탄파 인물로서 내홍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공격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사안에 대해 같은 당내에서도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나의 의견이 옳고 상대의 의견이 그른지 논리적으로 주장해야 합니다. 반탄파라면 왜 윤 전 대통령의 계엄이 정당했는지 설득하면 됩니다.

그런데, 박 대변인은 뜬금없이 ‘장애할당’을 문제 삼았습니다. 이것은 상대의 정치적 행위를 공격하기 위해 정당한 논리와 근거를 제시하는 대신, 장애인이라는 소수자성을 이용하는 비열하고 전형적인 장애혐오입니다. 자신의 발언이 비판 받자, 박 대변인은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자신은 장애혐오를 한 것이 아니라 ‘장애할당’을 비판한 것이라는 변명을 했습니다. 이 변명이 조금이라도 그럴듯하게 들린다면 그것은 박 대변인의 얕은 눈속임에 넘어간 것입니다.

(장혜영, 일다, 25.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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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역차별' 찾으려 열린 토크콘서트… 현실은 구조적 성차별 재확인

"남성들이 구체적으로 차별받는 부분이 무엇인지, 어떻게 시정할 수 있을지 알아봐 달라."

폐지 위기를 딛고 확대 개편된 성평등가족부 앞에 떨어진, 이재명 대통령의 사실상 첫 지시였습니다. 대통령의 발언에 성평등부는 여성 차별뿐 아니라 '남성이 느끼는 차별'까지 조사할 임무를 띤 성형평성기획과를 신설했죠.

원민경 성평등부 장관이 일차적으로 내놓은 대책은 성형평성기획과 주최로 20명 내외 2030 청년을 모아 게릴라형 토크콘서트를 여는 것이었습니다. 살면서 청년들이 직간접적으로 겪은 차별 사례를 공유하고 청취하는 자리로, 성차별 의제에 대한 청년들의 성별 간 인식 차이를 직접 알아보겠다는 취지였어요. (중략)

4차에 걸친 토크콘서트 참여자 평균 성비는 남성 47.3%, 여성 52.7%로 비등했지만 행사에서 언급된 차별 경험은 여성의 사례가 월등히 많았어요. 여성들은 대부분 취업 전후 과정, 임신·출산·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등 생애주기 전반에서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부당한 취급을 당하거나 활동에 제약을 겪은 적이 있다며 경험담을 전했습니다.

물론 남성 발언자들 역시 차별이라고 느꼈던 사례를 공유했는데요. 특히 매 회차마다 남성 육아휴직을 마음 편히 쓸 수 없는 문화가 자주 꼽혔습니다. 한 30대 남성 참여자는 "유치원에서 아이에게 일이 생기면 1차 연락망이 다 엄마로만 돼 있다"며 "또 남성이 육아휴직을 쓰면 유별나게 보는 측면도 있다"고 했어요. (중략)

그런데 남성들이 겪은 이 사례들을 여성 인권 향상 때문에 발생한 '역차별'로 진단하는 건 적절할까요? 이선희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남성이 육아휴직을 못 쓰는 것, 출산·아동 관련 의료 행위에 남성이 진입하기 어려운 것은 여성으로 인해 남성이 '역차별' 받는 문제가 아니라 성 역할 고정관념으로 인해 생기는 일"이라고 설명했어요. 국가가 '전투에 적합한 신체 능력을 갖춘 남성'만을 징병하고, 여성과 '능력이 미달된 남성'은 배제하는 병역 문제도 마찬가지죠. 원민경 장관도 줄곧 "'역차별'보다는 성별 간 인식 차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강조해 왔습니다.

(최은서, 한국일보, 2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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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야망에 한계란 없어야 한다" 실현할 영국의 이 '제도'

[여성과 기업]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이부진 91위, 최수연 92위

미국 경제매체 포브스가 선정한 2025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최수연 네이버 대표가 올랐습니다. 10일(현지시간) 포브스 발표에 따르면, 이부진 사장이 91위, 최수연 네이버 대표가 92위입니다. 한국인 중에는 두 사람만이 순위에 포함됐는데요.

이 사장은 지난해 85위에서 소폭 하락, 최 대표는 99위에서 소폭 상승했습니다. 포브스는 혁신성·영향력·문화적 파급력·재무 성과 등을 바탕으로 매해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을 선정하고 있습니다. (중략)

[여성과 세계] 영국에만 있다는 '금융권 여성 대표성 확대 책임자', 새로운 여성 CEO 임명 돼

영국 금융권 내 여성 고위직 확대를 담당해 온 '금융권 여성 대표성 확대 책임자(Women in Finance Champion)'가 새로운 인물로 교체됐습니다. 영국 정부는 11일 데비 크로즈비(Debbie Crosbie)를 새 책임자로 임명했다고 밝혔습니다.

영국 정부는 '금융권 여성 대표성 확대 책임자' 제도를 통해 금융업계 전반의 여성 임원 및 고위관리자 비율을 높이도록 관리하고 있습니다. 규제보다는 '비율 공개'와 이에 따른 '점검'을 통해 업계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현재 440개 넘는 금융회사가 이 제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이 역할을 맡아온 아만다 블랑이 퇴임함에 따라 크로즈비가 뒤를 이었는데요. 블랑은 재임 기간 동안 금융권 고위직 여성 비율을 32%에서 36%까지 끌어올리는 성과를 남겼습니다.

크로즈비는 영국 최대 상호금융기관 가운데 하나인 네이션와이드(Nationwide Building Society)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는 2022년 6월 네이션와이드 최초의 여성 CEO로 취임했는데요. 크로즈비는 "여성이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모습은 다음 세대에 강력한 메시지를 준다"며 "지금까지의 성과를 바탕으로 업계 전반에서 더 큰 진전을 이루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여성 최초로 영국 재무장관에 오른 레이첼 리브스는 이번 인선에 대해 "취임 당시 '내 임기가 성공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더 많은 젊은 여성과 소녀들이 자신의 야망에는 천장이 없고, 이룰 수 있는 것에도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며 "여성 고위직 확대에 관한 자율 협약(Women in Finance Charter)은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핵심 수단"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주연, 오마이뉴스, 2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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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의 변호사의 시선] 난쟁이가 쏘아 올린 큰 공

조진웅의 소년범 이력이 석연치 않은 과정을 통해 보도되면서 큰 파문이 일었다. 이후 조진웅이 전격 은퇴했다. 조진웅의 선택이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이나 대중에게 숨겨운 과거에 대한 반성에 기한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입을 후유증을 최소화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인지도 높은 스타배우의 은퇴는 큰 파문을 불러왔고, 돌연 소년범 보호에 대한 오만사람들의 의견이 넘쳤다. (중략)

19세 미만 소년의 범죄사건은 성인 범죄 사건과 다른 절차를 거친다. 형사법원이 아니라 가정법원 소년부에서 소년보호사건으로 진행되는데, 소년범의 환경을 바꾸고 변화시키는 등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형사재판은 공개를 원칙으로 하지만 소년보호사건은 비공개가 원칙이다. 증인신문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피해자나 피해자의 부모가 재판을 방청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다. 피해자의 변호사조차도 소년보호사건 담당판사의 허가가 있어야 참석이 가능하다. 피해자가 판결문을 받아볼 수도 없다. 피해자가 가해자와 같이 소년이어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소년보호사건에서 소년범 보호를 위해 파생되는 어려움과 무게가 피해자 어깨 위로 얹어지는 일이 많다. 소년범의 범죄행위가 피해자에게 일신전속적 피해를 안기는 중범죄일수록 더 그렇다. (중략)

하지만 정작 사회가 다변화되고 소년범들의 범죄행위도 다양하고 위중해지는 속에서, 그 소년범으로부터 피해입은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어째 제대로 담론되지 못 한 채 밀려났다. 이것은 온당하지도 않고, 공평하지도 않다. 소년범도 보호해야 할 대상임에는 분명하지만, 소년범의 피해자 소년 역시 보호되어야 함은 더 당연하고 절실한 문제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진웅의 소년범 이력 보도와 은퇴를 둘러싸고 그저 소년범의 비밀스런 이력 보호가 안 된 것을 비난하는 고결한 말들은 공허하다.

(이은의, 여성신문, 2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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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성착취, 개인의 선택 문제 아닌 구조적 폭력"

현재의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지원체계는 성착취 피해 사건 중심의 단기적 개입에 방점을 두고 설계돼 있어 지원에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성착취 피해 청소년에게 긴급한 생계·의료·법률지원을 비롯해 지속적으로 심리·자립·자원 연계를 통합 지원할 수 있도록 통합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대전지역 성착취피해 아동·청소년 지원체계의 현황을 점검하고 대안 마련을 논의하는 토론회가 11일 오후 대전청소년위캔센터 다목적회의실에서 열렸다. (중략)

이날 첫 번째 발제에 나선 김현정 대전아청센터 '다락' 팀장은 대전아청센터의 성착취 청소년 지원 현황 분석을 토대로 청소년 성착취는 빈곤·정서적 고립·가정 내 학대·플랫폼 사업자의 방임·성매수자의 착취 구조 등이 결합된 '사회적 폭력'이라고 규정했다.

김 팀장은 "성착취는 단일 사건이 아니라 누적된 취약성이 폭발하는 구조적 문제이며, 현재도 낮은 연령층으로 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피해 회복과 문제 해결을 위한 통합지원체계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현행 아청센터는 '사건 중심 단기 개입'에 초점을 두고 있어, 피해 이후 장기적 회복과 재피해 방지를 포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피해 이후에도 청소년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생계·의료·법률·심리·자립 지원이 끊김 없이 이어지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지역 간 지원 격차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모든 피해자가 차별 없이 지원받도록 제도가 전면 재설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재완, 오마이뉴스, 25.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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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훼손 벌금 4백? 그거 내고, 마을이 성폭력 해결하자!

혈연·친족으로 이뤄진 배타적 공동체 구조, 신고·수사에 대한 접근성 부족, 가부장적·위계적 문화, 결혼이주여성·고령 1인가구여성 등 취약한 인구가 많은 농촌의 현실을 고려했을 때 농촌에서 성폭력은 신고도, 피해자 보호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농촌 마을이 피해자를 보호하고 성폭력 사건에 대응해 1년 7개월여를 싸워온 후 “마을 주민들이 안전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게”했다니, 어떻게 가능했을까? (중략)

가해자는 피해자와 사돈지간으로 피해자 고모의 시동생이며, 한 마을에 거주하는 이웃주민이었다. 피해자 부모의 장애(부친: 청각장애, 언어장애/모친: 뇌병변장애, 경계선 지능장애)로 인해, 평소 가해자가 부모 외출 시 이동을 도와주면서 ‘사돈으로서 돕는다’는 미명하에 피해자 부모를 관리, 통제하며 경제적 착취를 일삼았다.

피해자가 부(父)의 건강 악화로 인해 병간호를 위해 집에서 지내게 된 이후,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애인하자’며 여러 차례 강제추행 및 1회의 폭행이 있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동네 지인에게 처음 말했고, 이를 전해 들은 동네 이장에 의해 장애권익옹호기관, 상담소로 연계되었다.

호미: 성폭력 사건에 어떻게 마을이 함께 대응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잎싹: 은희 씨가 저를 찾아와 피해 사실을 말했죠. 피해자에게 동의를 구하고, 삼친회에서 의논했어요. ‘삼태리에서 친한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마을 젊은이들, 귀농인들 모임이에요. 마을일을 대부분 여기서 의논하죠. 이장님도 있고요. 자연스레 이장한테 신고한 게 되었지요. 우리는 처음부터 이 일은 은희 개인의 일이 아니라, 마을의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호미, 일다, 25.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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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사이] 마라톤 성추행 논란, 손보다 말이 먼저였더라면…

11월 23일 인천국제마라톤 우승자인 이수민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하자 김완기 감독이 몸을 감싸안듯 붙잡았다. 선수는 불쾌한듯 몸을 뺐고 이 장면을 본 시청자들이 성추행 의혹을 제기했다. 이튿날 감독은 '선수 보호 차원'이라 밝혔지만 선수의 입장은 달랐다. 같은 달 25일 이수민 선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성추행이라고 단정하지 않지만 문제는 강한 접촉으로 인한 통증과 부적절성"이라고 밝혔다. 여기서 핵심은 의도가 아니라 절차다.

운동의 특성상 신체 접촉이 불가피한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그러나 아무리 운동 중에 벌어진 접촉이라 해도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접촉했는가에 따라 의미가 바뀐다. 감독과 선수, 남성과 여성 간의 신체 접촉은 윤리 문제로 전환되기도 한다. 그래서 접촉으로 인해 논란이 발생했을 때는 접촉의 목적(위급한 상황을 위한 보조인가?), 방식(접촉 부위, 시간, 강도), 맥락(장소, 제삼자 여부, 사전 혹은 즉시 동의) 등을 면밀하게 고려해야 한다. (중략)

다시 김완기 감독의 경우로 돌아가면 이번 일은 앞서 밝힌 세 가지 기준에서 모두 부적합하다. 응급 상황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접촉으로 인해 강한 통증을 느꼈다는 선수의 증언에 따라 '선수 보호'라는 접촉의 목적이 흐려졌다. 접촉의 방식도 위급한 상황이 아닌 만큼 겨드랑이를 파고들며 강한 힘으로 껴안을 게 아니라 어깨나 팔을 잡는 정도로 대신할 수 있었다. 마지막 기준인 맥락 또한 선수의 사전 혹은 즉시 동의를 구하지도 않았으니 적절치 못하다.

이 사건을 두고 일부에서는 "선수 보호를 위한 접촉을 성추행으로 몰아가면 앞으로는 선수가 쓰러지더라도 도와줄 수 없다"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움에도 절차가 있다. 절차의 일 순위는 접촉이 아니라 소통이다. 즉각적인 위험 상황이 아니라면 선수의 상태를 말로써 확인해야 한다.

(양민영, 여성신문, 2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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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에 남은 상처'... 성적 차별, 여성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

일상생활에 뿌리내린 미묘한 성차별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기 쉽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성차별은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두뇌의 일부 영역을 '얇아지게' 만드는 것도 그중 하나다. (중략)

성차별은 여성의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그 영향이 항상 즉각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29개국에서 수집된 7800건 이상의 뇌 스캔 자료를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사회 전반의 성적 불평등은 여성의 뇌를 물리적으로 변화시킨다. 성 불평등이 심한 국가의 여성들은 감정 조절, 회복탄력성, 우울증 및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관련된 뇌 영역의 피질이 더 얇은 것으로 나타났다.

칠레 가톨릭대 정신과 의사 니콜라스 크로스리는 여성들이 겪는 불평등이 "뇌에 상처를 남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뇌는 경험과 학습에 따라 변화하고 적응하는 '가소성'을 갖고 있다. 예컨대 저글링 같은 간단한 기술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뇌는 변한다. 크로스리는 "저글링으로도 변하는 뇌라면, 자신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경험 역시 뇌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성평등한 국가에서는 이러한 뇌 변화가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났다는 것이다. 불평등이 큰 국가에서는 남성의 뇌에서도 변화가 관찰됐지만, 여성만큼 크지는 않았다. 크로스리는 "따라서 성적 불평등을 개선하면 여성의 건강이 나아질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부담하는 비용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성차별이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다른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영국의 한 연구는 약 3000명의 여성을 수년에 걸쳐 추적 조사했다. 대상자의 5명 중 1명은 공공장소에서의 불안감, 모욕, 신체적 공격 등 다양한 형태의 성차별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그렇지 않은 집단에 비해 4년 후 심리적 고통을 호소할 가능성이 세 배 더 높았으며 삶의 만족도도 더 낮았다.

(멜리사 호겐붐, BBC뉴스 코리아, 25.12.13)


'당신이 죽였다'... 여성폭력 방관자들이 답해야 할 질문

최근 넷플릭스에 방영된 <당신이 죽였다>는 한국사회에 여전히 횡행하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여성폭력의 잔인성과 주변인의 방관적 태도를 폭로한다. '당신'이라는 2인칭 대명사를 통해 우리 각자에게 여성폭력을 인지했음에도 외면하고, 보호 의무가 있음에도 묵과하는 인간의 잔인성을 지적한다. 드라마의 내용은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친구를 구하기 위해 단짝 친구와 피해자가 폭력적인 남편을 살해하게 되는데, 살해에 이르기 전에 가족과 이웃, 수사기관, 의료기관, 상점 등에서 인지했음에도 모두 방관한다. 누가 죽인 걸까? (중략)

약 30년 전에는 '가정폭력처벌법'이 입안됐고, 2019년도에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 그리고 몇 해 전 '스토킹처벌법'도 입안됐지만 왜 여전히 여성들은 살해당하고, 폭력을 당해도, 법과 제도로부터 그리고 수사기관 등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것일까? 반면, 최근 아동학대 관련 법률과 제도, 정책, 사회적 인식은 여성폭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됐다.

각 기초자치단체에는 아동학대를 전문적으로 조사, 보호조치, 모니터링 등을 수행하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배치되어 있다. 이와 함께 학대로 가정과 분리조치 된 아동을 보호하는 학대피해아동쉼터가 마련되어 있으며, 관련 법령에 따라 가정에서 2회 이상 학대가 이루어진 경우, 아동을 가정으로부터 즉각분리할 수 있다. 아동학대신고가 접수되면 경찰과 아동학대조사 전문공무원이 동행하여 현장으로 출동한다. (중략)

이처럼 아동학대에 관해서는 관청과 수사기관, 사회복지기관 등이 합심하여 조사부터 보호조치, 모니터링, 자원연계 및 원가정 복귀까지 촘촘하게 기능하는 데 반해, 여성폭력에 대한 관청과 수사기관, 지역사회, 언론 미디어 등은 그렇지 않다. 이는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가정폭력과 스토킹 범죄 등은 사적 영역이라는 낡은 가치관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스토킹 범죄 또한 안일한 판단으로 인해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기도 한다. 이는 여성이 명백한 피해자이면서 약자, 당장의 국가적,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대상자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문화·사회적 잠재의식 때문이 아닐까?

(김진웅, 오마이뉴스, 2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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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논단] 최현숙과 이반지하가 ‘가족’을 만들지 말라 신다

퀴어 아티스트 이반지하의 '이반지하의 이면지'가 그의 유튜브 채널에서 절찬리 방영 중이다. '공개퀴어토크쇼'라는 소개말을 붙인 이 기획은 소위 '퀴어 셀럽'이 게스트로 초청돼 이반지하의 차에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는 형식이다. 최근 공개된 최현숙 작가의 출연분은 '70대 퀴어 노인'이라는 묵직한 상징성만큼이나 새로운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동성혼은 반대한다"는 두 사람의 입장이 눈길을 끌었다.

'긴급진단: 동성결혼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소제목 아래 두 사람은 '가족중심주의'가 사회 불평등을 유지하고 강화한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중략)

평등권 관점에서 동성혼 법제화를 반대하기란 쉽지 않다. 동성혼은 성소수자의 가시성을 높이고 제도적 권리를 보장하는 중요한 통로다. 따라서 최현숙과 이반지하의 '동성혼 반대'는 권리 확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동성혼만으로는 가족 제도에 내재한 불평등 구조—사회적 재생산 책임을 가족에 떠넘기는 방식과 부·돌봄의 독점—을 해소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즉, 권리 보장을 넘어서는 근본적 사회변화의 상상력이 필요하단 주장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최현숙 작가는 성소수자 인권운동 내부에서도 '가족'에 대한 관점 차이가 존재함을 지적한다. 결혼과 출산으로 배타적 공동체를 강화하는 방향은 보수적 접근이라면, 혼인과 혈연을 넘어 다양한 돌봄 관계를 '가족'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보다 진보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진보적 관점에서 보면 현실에는 이미 다양한 상호 돌봄 공동체가 '가족'으로 존재한다. 성소수자나 장애인의 주거 공동체, 탈가정 청소년들의 '팸', 보육원을 함께 퇴소한 보호종료 청년들의 동거, HIV 감염인의 공동 생활 등이 그렇다. 이 공동체들은 경제적 취약성을 덜어주고 돌봄 부담을 분산시키며, 무엇보다 서로의 처지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문제는 이 관계들이 가족 제도 밖에 있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최나현, 여성신문, 2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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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들고 가는 여자가 묻길 ‘이 불을 받겠는가’

슬리마니는 1981년, 모로코 라바트에서 태어났다. 당시 모로코는 이미 독립국이었지만, 행정, 교육, 문화 영역에서는 프랑스어가 절대적 우위를 차지했고, 상류층의 정체성도 프랑스 문화 안에서 형성됐다. 하지만 가정에서는 달랐다. 전통적 규범과 가부장적 질서가 여성의 몸과 욕망을 강력하게 통제했다.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 허용된 몸과 통제된 몸이 한 사람 안에서 부딪힌다면 어떻게 될까. 그 충돌은 어린 슬리마니 안에서 두 개의 돌처럼 맞부딪혀 불꽃을 일으켰고, 그것은 훗날 그의 문학을 타오르게 하는 첫 불씨가 된다.

자유를 선망하며 동시에 몸을 통제하는 사회에서 마주하는 가치관의 충돌은 결코 관념의 차이로 끝나지 않는다. 특히 여성에게 그렇다. 여성에게 그 충돌은 언제나 몸으로 도착한다. 욕망을 인식하면서도 비난이 두려운 이의 경직된 어깨, 오므라든 다리, 가늘어지는 호흡으로. 여성의 몸은 세계를 이해하기 전에 먼저 감각하고, 그 감각은 금기의 공기, 억눌린 욕망이라는 형태로 신체에 저장된다. 그래서 슬리마니의 인물들은 모두 몸으로 존재한다. (중략)

슬리마니의 ‘몸의 진실’은 자연스럽게 ‘모성’이라는 주제로 이어진다. 모성이야말로 감각과 육체성의 총체이며, 몸이 가장 크게 열리고 가장 깊게 상처받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임신으로 장기가 밀리고, 출산으로 신체가 찢기고, 수유와 육아로 수면과 식사가 무너진다. 애정과 피로, 책임과 불안이 신체적 반응으로 밀려들며, 그 모든 것은 추상적 감정보다 먼저 몸이 반응하는 경험이 된다. 슬리마니가 모성을 ‘침투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인 경험’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략)

슬리마니는 모성을 축복이 아니라, 사회가 부여하는 가장 강력한 규범으로 바라봤다. 엄마이기 때문에 느끼는 사랑이 아니라, 엄마이기 때문에 감당해야 하는 구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때, 보이는 세계 뒤에 숨은 폭력을 들춰내는 그의 글쓰기는 금기의 내부로 걸어 들어가는 행위가 된다.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들고나온 것처럼, 슬리마니는 사회가 덮어둔 모성의 이면, 금지해온 여성의 욕망, 돌봄의 고통을 들고나온다. 가장 안쪽, 뜨겁고 위험한 곳까지 몸을 들여놓는다.

(신유진, 한겨레, 25.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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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적 봉건 질서 파괴하는 여성 괴물과 여성 입법자의 탄생[거꾸로 읽는 한국 여성문학 100년](18)

<토지>가 그리는 세계는 거대하다. 공간 스케일의 측면에서 1부 ‘평사리’에서 시작된 서사는 용정, 하얼빈, 러시아, 일본으로 국경을 넘어 확장된다. 1부 1장 ‘서희’로 시작한 이 대하소설의 인물들은 최치수와 윤씨 부인이 이끄는 최참판댁 일가와 주변의 양반, 평사리의 민중, 밀정과 독립운동가, 신여성과 기생, 지식인과 사상가, 자본가와 장사꾼까지 다양한 계층과 직업군을 아우르며 그 수는 600~700명에 이른다. 시기적으로는 구한말부터 해방 직전에 이르기까지 식민지 근대를 포괄한다. 말 그대로 <토지>는 공간과 시간을 날줄과 씨줄 삼아 다양한 인물의 네트워크를 지리적·계층적·시간적으로 촘촘하게 직조해낸 거대서사(grand narrative)다. (중략)

한편 <토지>는 음모와 살인, 공모와 야합, 사랑과 집착과 같은 격한 감정이 계급과 젠더를 가로지르며 소용돌이치는, ‘원한(resentment)’의 텍스트이기도 하다.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제시한 ‘원한’은 강자에게 패배하거나 억압받은 약자가, 자신의 약함으로 인해 직접 복수할 수 없을 때 마음속으로 품게 되는 만성적인 복수심과 증오를 뜻한다. (중략)

니체는 ‘노예의 도덕’을 약자들이 강자에게 직접 맞서지 못하는 상태에서 원한을 내면화하고, 강자의 힘과 위험을 ‘악’으로 규정하고, 약자의 유순함·동정·착함을 ‘선’으로 내세우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토지>의 악인들은 도덕적으로 선한 노예의 위치에 있을 것을 거부한다. 이들은 원한을 내면화하지 않고 외부로 발산한다. 신분 상승에의 의지, 재산과 권력에의 의지를 실천하는 이들은 원한 감정 때문에 자신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이들로 인해 봉건 공동체는 더 이상 회복과 재건이 불가능할 정도로 철저히 파괴되고, 이 파괴 뒤에야 근대 질서가 자리할 수 있게 된다. (중략)

서희에게 원한은 파괴적 감정이 아니라 자본 축적의 원동력이 된다. 그는 길상과의 결혼을 통해 스스로 아씨와 하인이라는 주인-노예의 위계도 무너뜨린다. 서희의 욕망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돈’과 ‘토지’로 치환된다. 식민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이 주체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 경제력임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성’이라는 젠더적 한계를 ‘자본가’라는 새로운 계급적 정체성으로 돌파한다. 2부 마지막에서 그는 용정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평사리 사람들과 함께 조선으로 귀환한다. 평사리 사람들을 이끌고 간도 용정으로 가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그 안에서 살 도리를 마련해 주고, 이들을 다시 거느리고 귀환하는 그의 모습에서 우리는 단순히 한 여성의 성장이 아닌, 새로운 규칙과 가치를 창조하는 ‘입법자’의 형상을 보게 된다.

(김양선, 주간경향, 25.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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