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안녕하세요. 8월 첫 번째 뉴스 헐리버리는 관점과 깊이가 있는 심층기사와 칼럼을 모아 전해드리는 PERSPECTIVE EDITION입니다. 이번 헐리버리는 광복절에 인사드리게 되었는데요. 여성 독립운동가를 조명하고 연구해온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심옥주 소장을 연합뉴스가 만났습니다. 그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한국의 역사를 지탱해온 어머니의 역사로 여겨 모두가 공감대를 형성하길 바란다는 소망을 내비쳤습니다. 경향신문 여성칼럼 에프워드에서 위안부 생존자들이 어떻게 목소리를 낼 수 있었는지, 그 기적 같은 의미를 되짚어보았습니다.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여성의당 유지혜 후보는 0.83%의 득표율을 기록했습니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이 여성의당 득표율이 의미하는 성평등 정치의 가능성을 분석했습니다. 대한축구협회가 외국인 심판들을 대상으로 한 ‘성접대’ 사건으로 비판받고 있습니다.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정책자문위원은 ‘성접대’라는 범죄성이 희석된 용어 사용을 비판하며 국가의 책임을 물었습니다.
형사소송법 개정에 따라 검사의 보완수사권이 폐지되면서 여성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난호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담당 검사였던 김세희 변호사와 피해자 김진주 씨, 검찰개혁에 목소리를 높여온 서지현, 박은정 두 전직 검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매일신문의 고전팩션 기획기사에서는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을 사건 암장과 보완수사의 관점으로 다시 읽었습니다. 이슬기 칼럼니스트가 한국의 ‘여경 논란’ 확산의 주범으로 언론을 지목했습니다. ‘여경’을 ‘여성 경찰’로 바꿔 보도하자는 제안도 내놓았습니다.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서울고법은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공동재산 비율을 33.3%로 산정했습니다. 김효선 여성신문 발행인은 액수가 아니라 비율을 주목하며 공동재산에서 아내의 몫이 3분의 1에 그치는 것이 정당한지 질문합니다. 보호출산제가 시행된 지 2년이 지났습니다. 정부는 유기아동이 줄어들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김민정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보호출산으로 아동 인수 방식이 바뀌었을 뿐 유기아동은 오히려 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가족이 아닌 개인 중심으로 가족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제언을 내놓았습니다. 20~40대 비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통해 비혼 동거와 비친족가구 등 개인이 맺은 다양한 관계를 정책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산부인과 전문의이자 페미니스트 활동가인 박슬기 씨가 논문 「의료지식-권력과 여성 주체의 불/가능성: ‘여성’ 성기성형 사례를 중심으로」를 통해 ‘여성 성기성형’이 상업화된 의료시장에서 여성의 ‘선택’으로 작동하게 되는 구조를 지적했습니다. 2026 유럽육상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유럽방송연맹과 유럽육상연맹이 여성 선수의 성적 대상화를 막기 위한 카메라 촬영과 영상 편집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선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라는 스포츠 중계의 원칙을 다시 묻고 있습니다. 72년 만에 부활한 미국 여자프로야구가 개막했습니다. 여자야구 현장을 꾸준히 취재해온 황혜정 기자가 첫 시즌이 진행 중인 리그와 지역 풍경, 역사적 의미를 조망했습니다.
뉴스 헐리버리가 이번 호에서 준비한 기사는 여기까지입니다. 한 가지 공지드릴 것은 뉴스 헐리버리는 지난 2022년부터 올해까지 거의 5년 동안 발행하며 뉴스 큐레이션 레터라는 포맷을 유지하고 있었는데요. 다음 호인 120호 PEOPLE EDITION을 마지막으로 시즌1을 마무리 짓고 잠시 휴식기를 갖고자 합니다. 돌아오는 31일에는 주목할 만한 여성 인물 기사로 시즌1의 마지막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에디터 소원 드림

"독립운동 함께했어도 기록 없는 여성·어머니들…잊혀선 안돼"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한국의 역사를 지탱해온 어머니의 역사로 여겨 모두가 공감대를 형성했으면 좋겠습니다."
2009년 3월 1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를 설립해 18년간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조명하고 연구해온 심옥주 소장은 지난 11일 연합뉴스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최초 여성 의병장으로 알려진 윤희순 선생의 활동 연구로 2011년 부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길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심 소장은 '지도자 중심'으로 이뤄졌던 독립운동 역사 발굴의 틀을 깨고, 운동에 참여한 평범한 사람들에 주목했다. 여성 독립운동가들도 그중 하나였다.
심 소장은 3·1 운동 100주년이었던 2019년을 여성 독립운동 연구의 '터닝포인트'로 꼽는다. 당시 국가보훈부가 여성 독립운동 재평가를 시작하자 "물꼬가 터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의 벽은 높다.
1949년 공적조서 작성 제도로 시작된 독립운동가 포상제도로 현재까지(지난 6월 기준) 총 1만8천776명의 독립유공자가 포상받았지만, 그중 여성 독립운동가는 676명으로 전체의 3.6%에 불과하다.
민간 연구소로서 여성 독립운동가를 발굴하는 과정은 매우 어렵다고 심 소장은 전했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경우 (남성 독립운동가에 비해) 자료 확보와 추적이 3배 정도는 힘들다"고 그는 토로했다.
당시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은 '보조자'로 저평가되거나 기록조차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독립운동에서 은신처 제공 등 드러나지 않는 비공식적인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도 한몫한다.
(정지수, 연합뉴스, 26.08.14)

‘위안부’ 생존자, 다른 이름은 ‘기적’ [플랫][에프워드]
1991년 8월14일, 고 김학순 선생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세상에 처음으로 증언했다. 당시 그는 “일본 정부가 정신대를 부인하는 것이 너무 기가 막혀 증언하게 됐다”며 약 50년의 침묵을 깬 이유를 밝혔다. 그가 나서기 전에도 ‘마을 처녀들이 일본군에 끌려갔다’ 류의 풍문이 한국 내에 존재했지만, 김학순 선생의 증언을 계기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국제적 여성 인권 의제로 올라섰다. 그가 세상에 나온 8월 14일은 아시아연대회의(2012년)와 한국 정부(2017)에 의해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로 지정됐다. (중략)
‘위안부(Comfort Women)’는 일본 측 문서와 ‘일본군에 위안부란 것이 있더라’고 기록한 연합군의 문서 등에 등장하는 용어다. 전시에 일본 군인에게 ‘위안’을 준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철저히 가해자의 시선만이 담겨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이 이 용어에 반발을 표했고, 대안으로 일본군(전시) ‘성노예’라는 표현이 혼용된다. 한편으로 피해자를 지칭하기에 ‘성노예’란 말의 수위가 너무 높은지라 이 역시 반감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중략)
일본군은 침략·점령한 사실상의 모든 지역에서 ‘위안부’와 민간 여성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저질렀다. 그렇지만 피해자의 ‘커밍아웃’이 모든 피해 지역에서 고르게 나타난 건 아니다. 피해자들의 말하기는 그 자신이 속한 사회의 영향을 무척 크게 받았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발생한 국가들은 현대사의 격랑을 겪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쟁, 분단, 권위주의 통치 등 국가와 사회를 휩쓰는 지배적인 사상이 수시로 흔들리고 자리잡는 과정에서 여성 개인의 목소리는 나오기 어려웠다. (중략)
한국에서도 ‘잊혀진’ 생존자가 있다. 한반도 출신으로 ‘위안부’ 피해 경험을 밝힌 첫 생존자는 오키나와로 끌려갔던 배봉기 선생이었다. 해방 후에도 돌아오지 못하고 오키나와에 머물렀는데, 1972년 미국이 오키나와를 일본에 반환하며 그는 1945년 8월15일 이전에 입국한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1975년 오키나와로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피해 사실이 반강제로 드러났고 언론에 노출됐다. 생전 그는 자신을 찾아온 방문객에게 “전쟁터에서의 일이 부끄러워 돌아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1970년대 당시 배봉기 선생을 도우려던 이들은 존재했지만, ‘위안부’ 운동이 불붙은 1990년대에 비하면 여러 환경이 척박했다. 한국에서도 ‘위안부’ 생존자의 말하기는 민주화, 시민사회 형성, 성평등 의식 성장 등이 전제된 후에야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다.
(김서영, 경향신문, 26.08.13)

[김은주의 다른 정치] 1%의 정치가 남긴 질문: 여성의당 득표는 무엇을 말하는가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은 당선자 숫자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기존 정당이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 여성의 요구가 어디로 그리고 어떻게 향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주목할 만하다. 거대 양당의 경쟁 속에서도 여성의당, 정의당, 개혁신당 등 소수정당 후보들의 선전이 있었다. 특히 여성 의제(issue)를 전면에 내세운 여성의당 유지혜 후보는 “성매매 없는 서울”이라는 슬로건(slogan)을 내걸고 출마하여, 유권자들에게 새로운 정치적 선택지를 제시했다. (중략)
여성의당은 기존 진보정당과도 구별된다. 정의당 역시 대학가와 청년층이 밀집한 지역에서 비교적 높은 지지를 받는다. 하지만 정의당이 노동과 복지, 불평등 해소를 중심축으로 성장해 왔다면, 여성의당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 디지털 성폭력 등을 정치의 중심 의제로 삼고 있다. 정의당은 성평등을 진보 정치의 여러 의제 가운데 하나로 다루지만, 여성의당은 성평등을 정치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노동 중심의 진보 정치가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던 젠더 불평등의 문제를 여성의당은 독자적인 정치 언어로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결국 여성의당은 성평등과 청년 여성이라는 특정 의제와 특정 유권자층이라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정치 공간을 형성한 '니치(niche) 정당', 즉 틈새 정당의 성격을 가진다. 득표율은 낮지만, 관악-마포-서대문-성북-광진으로 이어지는 대학·청년층을 기반으로 기존 정당이 충분히 대변하지 못한 젠더 의제에 특화된 정당이다.
1% 안팎의 득표만으로 정치적 성공을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 1%가 던진 질문은 절대 가볍지 않다. 왜 일부 청년 여성들은 민주당도, 정의당도, 개혁신당도 아닌 여성의당을 선택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한국 정치의 새로운 균열과 미래의 정당 지형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숫자가 아니라, 그 숫자 속에 담긴 성평등 정치의 가능성과 한국 민주주의가 앞으로 응답해야 할 새로운 과제이다.
(김은주, 여성신문, 26.08.11)

문제의 핵심을 교묘하게 비켜 가는 축구협회의 일명 ‘성접대’ 사건 보도 유감
10년이 훌쩍 지나 묻혀 진 사건이 이제야 공개되면서 분노 지수를 높이고 있다. 일명 ‘축구협회의 성매매알선 범죄’. (중략)
실제로 성매매 행위가 일어난 업소에 대한 경찰의 단속도 아예 없었고 어떠한 수사도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나마 경찰이 적용한 축구협회 직원들의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해 검찰은 ‘불기소’로 마무리한다. 검찰은 어떠한 보완수사도 진행하지 않은 상태로 불기소 사유를 ‘직원들이 심판들 대상으로 성접대를 한 것은 사익이 아닌 축구협회 이익을 위한 행위’라고 했다. 성매매 사건을 성접대로 축소해서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문제를 넘어서서 범죄행위가 ‘축구협회의 이익'으로 포장되었다. 축구협회의 조직적 공모범죄가 협회 이익이라니!! 그야말로 정부기관,수사/사법기관이 공모하여 성매매 범죄를 ‘성접대’로 포장하고 조직적 공모를 단순히 일탈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중략)
성구매 범죄에 관대함을 넘어서서 문제의식이 전혀 없는 태도는 공직사회가 성매매/성착취 문제를 젠더폭력의 문제로 접근하지 않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주고있는 것이다. (중략)
‘성접대’라는 말로 여성을 성적도구화/대상화 시키면서 성착취 행위를 한 문제의 본질을 무마해서는 안 된다. 한국 사회의 성구매 행위의 관대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검찰이 말하는 ‘협회의 이익’ 달리 말하면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조직적으로 범죄행위가 일어나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정미례, 여성신문, 26.08.14)

'부산 돌려차기' 담당 검사 "보완수사 영향 없었다? 사건기록은 보고 하는 말인가"
30대 남성이 일면식도 없는 20대 여성을 폭행하고 CCTV가 없는 사각지대로 끌고 가 성폭력을 시도한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 이모 씨는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성폭력 의도가 없었으며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점조차 몰랐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 씨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중상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경찰과 다르게 판단했다. 수사 검사는 이 씨가 성폭행 및 살인을 목적으로 피해자를 폭행했다고 판단했다. 이 씨의 혐의를 살인미수로 바꿔 기소했으며 피해자 의류에서 이 씨의 DNA가 발견되면 강간살인미수 혐의로 공소장을 변경하라는 의견을 냈다. (중략)
수사 검사의 판단이 옳았다. 항소심 과정에서 피해자의 의류를 검사한 결과 청바지 안쪽에서 이 씨의 DNA가 발견됐다. 이에 재판부는 이 씨에 강간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20년 형을 선고했다. 이후 피해자가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하자 재판부는 경찰의 초동수사가 부실했다며 위자료 1500만 원의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했다. (중략)
현실에 맞지 않는 매우 이상적인 제도다. 이미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많은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부작용을 시정하는 방향이 아니라 가중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찬성 측에서는 이 개정안이 굉장히 잘 만들어진 형사소송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경찰도 검찰도 곡소리가 나는 현실을 하나도 반영하지 않은 개정안이다.
2021년 검사의 수사지휘권이 사라졌을 때 보완수사요구는 이미 가능해졌다. 보완수사요구가 가진 가장 여실한 한계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는 점이다. 보완수사요구를 주고받는 동안 시간이 지체되면서 경찰이나 검사가 바뀌고, 담당자가 바뀌면서 사건은 더욱 적체된다. 그런데 이제는 직접 보완수사를 하던 검사들마저 "너희 직접 수사하지 마"라고 막아버렸다.
지금 개정안은 게으른 검사와 경찰이 법대로 시간만 때우기 좋은 구조다. 게으른 검사는 기록 검사하기 귀찮으니 경미한 보완수사요구를 내리고, 게으른 경찰은 대충 송치하고, 보완수사요구가 내려오면 "이 보완수사는 필요 없다"는 수사보고서 한 장 써서 다시 보낸다. 지금도 10개 요구사항 중 5개만 이행해서 보내거나 "기록 몇 쪽에 다 있다, 필요 없다" 하고 재송치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면서 "보완수사요구를 이행했다"며 건수를 채운다.
(박상혁, 프레시안, 26.08.14)

"피해자들 앞으론 복불복"… '부산 돌려차기' 피해자가 본 개정 형소법
김씨는 어느샌가 '유명인'이 됐다. 보완수사권 폐지가 결정된 최근엔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기념사진을 찍으며 "숙제를 끝냈다"고 한 김용민 의원을 향해 "지옥에나 가세요"라고 독설을 던져 세간에 화제가 됐다. 얼마 전에는 한동훈 무소속 의원이 연 간담회에도 나갔다. 자연스럽게 여당 강성 지지층으로부터는 공격의 대상이 됐다. '관심받고 싶으냐' '정치에 관심 있느냐'는 댓글이 달렸다. 명백한 2차 가해로 받아들여졌다.
"대체 왜, 누가, 범죄피해로 관심을 받고 싶어하느냐"고 김씨는 물었다. "내 아픈 과거가 자랑스러운 업적이라도 될 수 있다는 얘기냐"고도 물었다. 김씨는 정치권과 엮인 상황부터가 "짜증난다"고 했다. 그럼에도 "공론화를 하고, 제도를 바꾸려면 그들에게 호소할 수밖에 없지 않나요"라고 묻는 그의 표정은 절박했다. (중략)
여당은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대신,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7대 범죄(아동학대·가정폭력·성범죄·아동 성범죄·스토킹·장애인 학대·노인 학대)'에 한해 전건 송치 제도를 도입하는 방식으로 보완 장치를 두겠다고 했다. 김씨는 한번 더 물었다. "7대 범죄가 아닌 경우 피해자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부산 돌려차기 사건도 맨 처음 성범죄가 아니었다.
김씨는 "그땐 솔직히 '내가 차라리 성범죄를 당했다면 국선변호사 선임은 쉽게 했을 텐데'라는 생각도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론 피해자들이 '7대 범죄'를 당했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 수사 단계부터 엄청난 노력을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라며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제도를 만들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도 스스로 이어갔다. "(정치인들이) 평범한 피해자가 돼 본 적이 없어서다. 자신은 절대 피해자가 되지 않을 거라는 오만일 수도 있다."
(위용성, 한국일보, 26.08.14)


기쁨 대신 쓸쓸함, 서지현·박은정 "검찰개혁은 전리품 아닌 뼈아픈 역사"
윤석열은 탄핵됐고 다시 감옥에 갔다. 당시 즉시항고 포기를 주도한 검찰총장 심우정은 내란에 가담한 혐의로 수사를 받는 중이고 개혁의 대상이 된 검찰은 곧 그 이름을 잃고 공소청으로 다시 출발한다.
두 전직 검사는 이 과정에서 누구보다 강하게 검찰개혁을 역설했다. 최근 형사소송법 개정 과정에서 불거진 보완수사권 폐지 논란에서도 수사·기소 분리 원칙을 확고히 강조하며 검사의 수사권 박탈 여론을 주도했다. 박은정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으로서 개혁의 소용돌이 복판에 있었고, 서지현은 갈등 상황을 "아수라"라고 표현하는 등 적극 논쟁에 뛰어들었다.
다시 두 사람을 만난 이유는 최근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며 검찰개혁이 일단락됐기 때문이다. 이보다 앞서 통과된 법안에 의해 오는 10월 검찰청 또한 사라지고 공소청과 중수청(중대범죄수사청)이 새로 출범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마냥 환호할 수만은 없었다"(서지현), "약간의 쓸쓸함이 있는 것도 사실"(박은정)이라고 말했다. 서지현은 "검찰 수사권 폐지는 누군가의 승리도 패배도 아닌 뼈아픈 역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 모두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중략)
서 : 한쪽에선 검찰이 사라졌다고 환호하고 한쪽에선 대한민국이 범죄자 천국이 됐다며 저주와 악담을 퍼붓고 있다. 그런데 검찰 수사권 폐지를 그토록 주장해왔고 검찰 권력으로부터의 깊은 상처로 여전히 잠 못 이루는 저는 마냥 환호할 수만은 없었다. 검찰 수사권 폐지는 누군가의 승리도, 패배도 아닌 뼈아픈 역사이기 문이다.
제가 2018년 '미투'에 나선 이유는 '다시는 검사도, 변호사도 하지 못하고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되더라도 부패한 검찰이 개혁돼 후배들이 나와 같은 일을 겪지 않을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이들이 검찰개혁을 부르짖었지만 정확한 의미를 알고 구체적 청사진을 가진 이는 찾기 어려웠다. 검찰개혁은 주로 정치적 구호로 소비됐고 이를 독점하거나 전리품으로 생각하는 이들마저 있었다. 검찰은 늘 힘이 셌고, 때문에 검찰개혁은 매력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검찰을 너무 몰랐다. 검찰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내 말은 피해의식으로 폄하됐다. 늦었지만 다행이고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하고 싶다. (중략)
서 : 검·경 대립이란 말은 추상적이다.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에 우려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럴수록 지금이 시스템을 가장 정교하게 만들 기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예전엔 검사가 경찰 단계의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기 어려웠다. 이제는 사건 접수 단계부터 진행 상황을 전산으로 실시간 공유해야 한다. 그 시스템을 잘 구축해야 할 것이다. 사건번호의 동일성 유지와 책임 수사관제 실시 그리고 보완수사 요구의 미이행 시 가능한 징계 요구권을 실질화하는 등 사건 지연을 막을 노력도 필요하다.
경찰도 검찰도 완벽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느 기관을 더 믿느냐가 아니라 어느 기관도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정보 공유, 법리 협의, 보완 요구, 기한 관리, 책임 명확화 등을 모두 시스템으로 설계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사람을 믿는 제도가 아니라 최선의 제도를 만드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부족하면 고치면 된다'는 말을 매우 싫어한다. 제도의 시행착오는 통계 속 숫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을 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완벽한 제도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처음부터 완벽한 제도를 만들겠다는 각오만큼은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소중한·김화빈, 오마이뉴스, 26.08.13)

[고전팩션] ③장화홍련전…장윤기 사건과 보완수사권 폐지
원혼설화는 억울하게 죽은 인물이 죽음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이승 세계에 개입해 자신의 억울함을 풀고 진실을 드러내는 구조를 갖는다. 단순한 공포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 해결되지 못한 사건이 다른 방식으로 해결되는 서사다. (...)
과거 사회에서 특정 사건은 단순 범죄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로 확장될 수 있다. 심지어 국가의 근간 이념을 흔들 수도 있다. 그러니 은폐해야 한다. 아울러 가문, 권력, 재산 같은 게 얽히는 경우 사건의 진실은 기득권에 의해 기록되지 않거나 변형될 여지가 충분히 생긴다.
참고로 작품의 모티브가 된 1656년 철산 자매 살인사건은 사건을 맡았던 철산부사 전동흘의 8대손이 의뢰해 200년이나 지난 뒤인 1865년 '가재사실록'에 실렸다.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장화홍련전의 근간을 활자로 기록하게 된 동기는 후손들이 전동흘을 기리는 것이었지, 자매의 억울함을 널리 호소하는 건 아니었을 것이다. (중략)
귀신의 증언은 결정적이지만, 동시에 법적 증거로는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이 모순이 바로 장화홍련전의 핵심이다. 진실은 드러나지만, 그 진실은 현실의 기록으로 남지 못한다. 대신 이야기로만 존재하게 되고, 결국 판결문이 아닌 소설로 적힌다.
따라서 장화홍련전은 공포 이야기가 아니라, 당대 법과 기록의 한계를 드러내는 텍스트다. 귀신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기록되지 못한 사실이 남는 방식이다.
그러니 장화홍련전에서 새로 부임해 장화와 홍련의 원혼으로부터 사건의 실체를 인지한 사또는 단순한 판관이 아니다. 보통의 수사나 재판이었다면 '증거불충분' 같은 판단이 가장 먼저 나타나 진행을 가로막았을 테지만, 사또는 법의 실패를 보완하는 역할을 뚝심 있게 수행한다.
(황희진, 매일신문, 26.08.14)

‘여경’ 말고 ‘여성 경찰’
한국에서 어떤 직업은 여성이 수행한다는 이유만으로 ‘논란’이 된다. ‘여경’이라 불리는 여성 경찰이 그렇다. 유튜브에서 ‘여경’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여경 논란’, ‘여경 도망’ 등이 뜬다. (중략)
여경이라는 직업인을 논란 거리로 만든 데는 언론의 탓이 크다. 2019년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서 취객 2명이 남녀 경찰 2명을 폭행한 사건은 이른바 ‘대림동 여경 논란’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해당 사건은 여성 경찰이 남성 주취자를 제압하지 못하고 다른 남성 시민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등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상의 의견을 언론이 적극 퍼나르며 ‘여경 무용론’의 도화선이 됐다. 취객을 제압하는 것은 남성 경찰에게도 쉽지 않으며, 해당 경찰관의 대처는 현장 매뉴얼에 따른 것이었음이 밝혀진 이후에도 구로동 경찰 폭행 사건은 ‘대림동 여경 논란’으로 두고두고 소비됐다. (중략)
오늘도 포털 사이트에 ‘여경’을 검색하면 ‘여경 논란’에서부터 ‘환승 불륜’이라며 자극적인 성적 대상화를 감행하는 보도들이 쏟아진다. 씨리얼의 영상에서, 12년 차 경찰관을 향해 중년 남성인 집회 참가자가 “아줌마인줄 알았다”고 혐오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데도 언론은 제 몫을 톡톡히 해왔을 것이다. 이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며, 언론계에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게 있다. ‘여경’을 ‘여성 경찰’로 바꿔 보도하는 일이다. 다른 직업군과 달리 남성 경찰을 일컫는 ‘남경’도 일부 쓰이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여경’이 등장할 때 성별을 구분하는 용도로나 제한적으로 쓰인다. 그리고 이러한 지칭이야말로 여성을 예외적인 존재로 치부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앞서 한국여기자협회도 비슷한 맥락으로 한국여성기자협회로 명칭을 변경한 바 있다. 일선 기자들서부터 실천해볼 일이다.
(이슬기, 미디어오늘, 26.08.15)

노소영 재산분할 9440억원… 33.3%는 충분한가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서울고법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9440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산분할은 위자료와 다르다. 위자료가 혼인 파탄의 책임에 대한 배상이라면, 재산분할은 혼인 중 함께 만든 재산의 소유권과 기여분을 정산하는 제도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944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액수보다 공동재산의 33.3%라는 비율이다. (중략)
한 여성의 권리가 판결문에 기록되면 다음 여성의 재판에서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노소영 재판이 여성운동의 관점에서도 중요한 이유다.
여성신문은 1심 직후부터 이 사건을 여성의 재산권 문제로 다루며 ‘이혼 재산분할 리포트’를 연재하고 한국가족법학회와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 재판이 노소영 개인을 넘어 수많은 여성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노 관장 역시 긴 법정 다툼을 포기하지 않고 여성의 재산권을 확장하는 판결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33.3%라는 비율은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가사·양육과 SK그룹 대외활동에서 맡아온 역할을 인정받고도 노 관장의 몫은 공동재산의 3분의 1에 그쳤다.
일본은 2024년 민법을 개정해 혼인 중 재산의 취득·유지에 대한 부부의 기여가 명백히 다르지 않으면 동등하게 보도록 했다. 이른바 ‘2분의 1 원칙’으로, 올해 4월부터 시행됐다. 반면 우리 민법에는 부부의 기여도를 동등하게 보거나 50%를 기본값으로 삼는다는 규정이 없다.
(김효선, 여성신문, 26.07.27)

아동을 구하려면, 그 어머니부터 도우라
2023년 6월 발생한 수원 냉장고 영아 유기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를 계기로 ‘출생통보제’(부모의 자진 신고에 의존하지 않고 의료기관이 아기의 출생정보를 지방자치단체에 통보) 도입 법안이 빠르게 국회를 통과하였다. 태어났지만 기록되지 않는 ‘유령 아동’이 더 이상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출생통보제와 함께 ‘보호출산제’도 함께 통과되어 버렸다.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시민단체와 시설퇴소인, 해외입양인, 장애인과 미혼모 당사자 단체들의 반대와 우려에도 불구하고, 보호출산제는 2024년 7월 19일부터 시행되었다.
보호출산제는 경제적·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임산부가 국가의 보호 속에 신원을 숨기고(가명으로) 병원에서 출산한 후, 국가에 출산한 아기를 인도하는 제도다. 임산부의 보호와 아동의 안전을 앞세웠지만, 아동의 권리 측면에서 보면 여러 문제가 있다. 유엔아동권리협약이 명시한 아동의 기본 권리를 살펴보면, 보호출산제가 이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중략)
보호출산제 시행 이후 2년간 206명의 아동이 보호출산을 통해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는 유기 아동이 2023년 88명에서 2024년 30명, 2025년 19명으로 빠르게 감소했다고 발표하며 이 제도의 실효성을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 국가가 보호출산이라는 제도를 통해 아동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지, 아동의 입장에서 보면 부모로부터 유기된 것은 마찬가지다. 형태만 바뀌었을 뿐, 보호출산으로 부모와 분리된 아동까지 합친다면 버림받은 아동은 오히려 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제도가 위기 임산부나 원가정 지원 체계를 강화하지 않고 실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김민정, 일다, 26.08.11)

삶의 기본 단위는 ‘가족’ 아닌 ‘개인’…2040 여성은 ‘다양성’ 원한다 [플랫]
혼인율이 감소하고 1인 가구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가족이 아닌 개인의 일상과 삶의 기반 조건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족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국책연구기관의 제언이 나왔다. 혈연·혼인 관계로 가족의 개념을 한정하지 않고 비혼 동거, 비친족가구 등 개인이 맺은 다양한 관계를 정책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9일 ‘가족변화에 대응하는 포괄적 가족정책 모색’ 보고서에서 “가족 구성 여부가 점차 개인의 선택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번 연구는 지난 6월 같은 연구진이 발표한 정책과제의 후속 보고서로 20~40대 비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가 새롭게 담겼다.
연구진이 2040세대 비혼 여성 25명을 심층 조사한 결과 참여자들은 기존 혈연관계의 가족 안에선 심리적 부담과 어려움, 차별과 불편, 폭력과 은둔 등의 문제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문제가 위계적이고 일방적인 가족관계와 개인의 개성과 가치가 존중받지 못하는 문화에서 비롯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참여자는 가족과 관계를 끊거나 거리를 두기도 했다.
참여자들은 삶의 기본 단위를 ‘가정’이 아닌 ‘개인’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였다. 연구진은 이를 단순히 1인 가구나 비혼에 대한 선호가 아닌 가족 형태가 불확실한 현실에서 일상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삶의 전략으로 해석했다.
(우혜림, 경향신문, 26.08.11)

‘여성 성기성형’ 사례 연구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
-몸과 권력을 화두로 고민해 왔기에, 논문에서 ‘여성이 스스로의 몸을 말하고 알고 선택할 권리’라는 해방의 언어가 상업화된 의료시장에서 성기 성형이 여성을 소비 주체로 호명하는 신자유주의적 자기 담론과 공명하고 있는 현실을 문제적으로 짚어낸 것 같아요.
“‘선택’이라는 말이 사실 굉장히 위험하게 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언니들의 병원놀이〉 활동에서 저희 모토가 ‘여성이 내 몸을 알고 말하고 결정할 권리’였어요. 그때도 결정과 선택이 진짜 권리가 되려면 일단 여러 선택지를 다 알고, 이에 대한 편견 없이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그 선택지들에 대한 접근이 장벽 없이 모두 보장되어야만 한다고 이야기해 왔어요. 그런 상황에서 하는 것이 진짜 ‘선택’이라고요.
그러던 중 ‘낙태죄’ 폐지 운동에서 ‘마이 바디, 마이 초이스’라는 구호를 보았을 때, 퍼뜩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구호가 오히려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지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든 것이 이것을 ‘선택’한 여성 개인의 책임이 되면, 정작 그 선택에 작동하는 진짜 권력들은 더 보이지 않게 되고, 그 선택에 내몰리거나 선택할 수도 없는 삶들이 가려지면서 결과적으로 선택지는 더 협소해지게 되니까요. 그런데도 ‘마이 바디, 마이 초이스’는 굉장히 직관적으로 와닿잖아요.
의료에서도, 정말 싫은 말인데 이미 ‘의료 시장, 의료 서비스’라고 하잖아요. 성기 성형뿐 아니라 원하는 것들을 정말 쇼핑하듯 고를 수 있죠. 그렇게 이미 시장화된 현실에서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한다’는 말은 그것이 무엇에 의한 선택인지, 그 선택을 욕구하는 바탕에는 무엇이 있는지를 감춰버려요. 여성의 몸에 대한 정상화된 규범성, 완벽한 몸에 대한 신화,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불건강에 대한 불안과 공포 마케팅들이 계속 작동하면서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몰아가는 것을요.
이 논문은 성기 성형을 중심으로 다뤘지만, 성기 성형은 다만 하나의 예시에요. 여성의 몸에 더 많은 규범성이 작동하고, 더 많은 금기와 공포가 작동하고, 수치심이 강하게 작동함으로써 여성의 몸 자체가 ‘시장화’되고, 그것이 ‘선택’이라는 미명에 가려져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박지하, 일다, 26.07.30)

“몸 아닌 경기력 비춰라” 여성선수 담는 카메라의 새 원칙
여성 선수들은 오랫동안 경기력보다 신체에 주목하는 ‘불편한 시선’과 싸워 왔다. 처음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경기복을 둘러싼 논란이다. 2021년 노르웨이 여자 비치 핸드볼 대표팀은 유럽선수권대회에서 규정상 의무였던 비키니 하의 대신 반바지를 입고 출전했다. 남성 선수에게 허용되는 반바지를 여성 선수는 왜 입을 수 없느냐는 항의였다. 유럽핸드볼연맹은 선수 10명에게 총 1500유로의 벌금을 부과했지만, 국제적 비판이 거세지자 결국 여성 선수도 반바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규정을 바꿨다. (중략)
최근 여성 스포츠의 성적 대상화를 둘러싼 논쟁은 경기복을 넘어 방송카메라가 선수를 어떻게 바라보고 보여주느냐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카메라를 어디에 두고 어떤 각도에서 촬영할지, 어떤 장면을 골라 시청자에게 보여줄지는 단순한 기술적 선택이 아니다. 그 과정에는 선수를 바라보는 중계진의 시선과 태도가 담기기 때문이다. 유럽방송연맹이 카메라 위치와 촬영 각도, 화면 구성은 물론이고 슬로모션과 리플레이 사용법까지 구체적인 지침을 내놓은 이유다. (중략)
가이드라인이 도입되기 이전, 그동안 관행대로 제작된 중계 화면은 경기 중계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특정 신체 부위가 부각된 장면이 재편집돼 온라인에 유포되면서 경기와 전혀 다른 맥락으로 소비되기도 했다. 영국의 장대높이뛰기 선수이자 2020 도쿄 여름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홀리 브래드쇼는 부적절하게 편집된 자신의 경기 영상이 온라인에 퍼진 뒤 성적인 메시지까지 받은 경험을 공개했다. (중략)
여성 선수들은 한때 “왜 여성만 이런 옷을 입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은 경기복 규정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이제 질문은 카메라를 향한다. “왜 카메라는 우리를 이런 방식으로 바라보느냐”고 말이다. 유럽방송연맹의 이번 가이드라인은 여성 선수의 몸을 얼마나 보여줄 것인가를 정하는 규칙이라기보다, 선수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라는 스포츠 중계의 원칙을 다시 묻는 지침에 가깝다.
(홍진환, 동아일보, 26.08.12)

잊혀진 66번 국도 위에서, 지워진 여자야구가 돌아왔다..."우리의 리그, 우리의 시간"
미국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는 66번 국도가 지나는 도시다. 1926년 개통돼 대공황기 이주민들과 전후 여행자들을 서쪽으로 실어 날랐던 길. 한때 미국의 꿈과 이동을 상징했던 이 오래된 길 위에서, 길이 놓인 지 꼭 백 년이 되는 올해, 72년 만에 부활한 여자 프로야구의 첫 시즌이 치러지고 있다. (중략)
작은 도시는 온통 새로 태어난 리그 이야기다. "신문 가판대마다 우리 기사가 걸려 있고, 거리 곳곳에 광고판이 서 있어요. 도시 전체에서 우리 얘기가 보여요." LA 퀸즈의 주장이자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 에이스인 애슈턴 랜스델(Ashton Lansdell)의 말이다. 이 떠들썩함이 오기까지 꼬박 72년이 걸렸다. 1954년 AAGPBL이 해산한 뒤, 여자 프로야구는 미국의 지도에서 지워진 채였다. 그 마지막 시즌에 태어난 아이가 있다면 올해 일흔둘이 됐을 시간이다. (중략)
이날 그 깃발 아래 마운드에는 김라경(뉴욕 하이츠)이 있었다. 구심이 쓰러졌던 바로 그 낮 경기, 뉴욕의 선발투수였다. 4회까지 안타 하나만 내주는 완벽에 가까운 투구. 그러나 5회, 심판마저 쓰러뜨린 더위에 체력이 떨어지면서 자신 있던 커브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팀에 투수가 부족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김라경은, 괜찮냐고 묻는 감독에게 "나 완전 멀쩡하다"고 답하며 마운드를 지켰다. (중략)
그 온기가 고인 곳이 하필 이 길가라는 사실을, 우연이라고만 부르기는 어렵다. 66번 국도는 1985년 미국의 공식 지도에서 지워진 길이다. 그러나 사라진 것과 지워진 것은 다르다. 길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지도에서,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흐려졌을 뿐이다. 그러다가 이 길이 41년 만에 다시 기억될 이유를 얻었다. 여자 프로야구가, 이 길가의 낡은 구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 야구도 같은 운명을 살았다. 모두가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지워지고 잊혔을 뿐이었다. 72년. 리그의 마지막 공을 지켜봤던 소녀들이 할머니가 되고도 남는 시간 동안, 어딘가에서 여성들은 묵묵히 공을 놓지 않았다.
(황혜정, 여성신문, 26.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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