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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83 교제폭력의 시작은 강압적 통제

2025.02.16 | 조회 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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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헐리버리

‘헐리버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여성뉴스 큐레이션 뉴스 헐리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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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안녕하세요. 2월 첫 번째 뉴스 헐리버리는 여성의제 기사들 가운데 관점과 깊이가 있는 심층기사와 칼럼을 모아 전해드리는 PERSPECTIVE EDITION입니다.

먼저 피해자다움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깨고 법정 투쟁에 나선 두 여성, 한국의 최말자 씨와 프랑스 지젤 펠리코 관련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교제폭력과 비동의강간죄에 대한 해외 사례를 취재한 기사도 소개해드립니다. ‘강압적 통제부터 교제폭력으로 바라보며 젠더폭력의 공적 개입을 강조하고 있는 호주 사례와, 교제폭력이 빈번하게 살인으로 이어지고 있는 한국에서와 달리 교제폭력에서 살인 피해율이 낮은 스웨덴 사례, 그리고 강간죄명칭을 부동의 성교죄로 바꾼 일본 사례를 돌아보았습니다.

법을 여성과 젠더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성평등의 실현을 위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여성신문 젠더법 강좌첫 번째 연재를 소개합니다. 김엘림 한국방송통신대 명예교수가 기고했습니다. 시민사회단체 70여 개와 150여 명의 활동가들이 모여 결성한 체제전환운동포럼이 두 번째 포럼 승리하는 광장을 향해을 열어 광장과 페미니즘의 상관관계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탄핵 집회에서 ‘TK의 콘크리트는 TK의 딸들이 부순다라는 문구의 대자보로 주목받은 소결 씨의 인터뷰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베를린에 사는 70대 한인 레즈비언 커플 김인선·이수현 씨 부부의 삶을 그린 다큐영화 두 사람이 개봉했습니다. 시사 프로그램이 남성 패널에 편중된 구성으로 수용자들이 남성들의 발화만을 듣게 되는 미디어 환경에 대해 이슬기 기자가 비판했습니다. MBC 기상캐스터 고 요안나 씨 죽음으로 본 프리랜서와 비정규직 노동 환경의 문제점을 이진송 계간홀로 발행인이 짚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화오션과 케이조선, 두 조선소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11인의 삶과 일에 관한 이야기를 구술 기록한 도서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를 소개합니다.

뉴스 헐리버리가 이번 호에서 준비한 기사들과 함께 관점과 깊이가 있는 휴일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다음 호에서는 주목할 만한 여성 인물 관련 기사들로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에디터 소원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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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투쟁 나선 한·프 70대 여성들, ‘피해자다움 통념’ 부쉈다

한국과 프랑스에서 동시에 70대 여성이 영웅으로 떠올랐다. 의식이 없던 자신을 성폭행한 가해자 50명과 이 같은 범죄를 기획한 남편을 법정에 세운 프랑스의 지젤 펠리코와 ‘56년 만의 미투’ 당사자인 최말자씨가 그 주인공이다. 범죄 피해자는 침묵해야 한다는 ‘피해자다움’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깨고 당당히 목소리를 낸 이들의 용기는 수많은 여성으로부터 응원을 받고 있다.

지난해 9월 프랑스에서는 강간 피해자 지젤의 재판이 시작됐다. 뉴욕타임스(NYT)와 BBC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남편인 도미니크 펠리코는 2011년부터 2020년까지 약 10년간 지젤에게 약물을 먹여 의식을 잃게 만든 뒤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서 모집한 남성들을 불러들여 지젤을 성폭행하게 했다.

도미니크의 범행은 2020년 그가 슈퍼마켓에서 휴대전화로 여성들의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하다 붙잡히면서 적발됐다. 도미니크를 포함한 51명의 남성이 법정에 섰으며 1심 법원은 도미니크에게 징역 20년을, 나머지 50명의 공범에게는 3∼15년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이 중 17명이 항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목할 만한 점은 피해자의 신원이 공개됐으며, 재판 역시 공개적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통상 피해자 보호 차원에서 피해자의 신원은 언론에 공개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젤은 자신의 신원을 공개하기로 결정한다. 또한 당초 검찰은 ‘대중의 구경거리’가 될 수 있다며 비공개 재판을 요청했지만, 펠리코는 공개 재판을 요구했다. 프랑스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강간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였다.

당당하게 증언에 나선 지젤은 지난해 10월 아비뇽 법원에서 “수많은 사람이 제게 용감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용기가 아닌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와 결단”이라며 “모든 피해 여성이 ‘펠리코도 해냈으니 우리도 할 수 있다’고 말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수치심은 가해자들의 몫”이라고 강조했다. (중략)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는 성폭력 가해자에게 저항하려 그의 혀를 깨물었다는 이유로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던 최말자씨에게 재심 길이 열렸다. 1964년 만 18세였던 최씨는 길을 모르겠다던 노모씨에게 길을 알려주다 성범죄를 당했다. 최씨는 노씨에게 맞서는 과정에서 그의 혀를 절단했다는 이유로 ‘가해자’가 됐다. 정당방위였지만 중상해죄로 6개월간 구속된 채 수사와 재판을 받았다.

최씨는 2020년 여성단체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청구했다. 60세가 넘어 입학한 방송통신대학교에서 ‘성, 사랑, 사회’라는 수업을 듣던 중 피해자로 보호받지 못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방통대 동기의 도움으로 2018년 한국여성의전화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미투’(Me too) 운동도 최씨에게 용기를 줬다. 이후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전문위원으로도 활동하던 김수정 변호사가 최씨의 변호를 맡아 재심 청구를 지원하게 됐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최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한 원심결정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중략)

지젤과 최씨는 피해자다움이라는 잘못된 사회적 통념과 맞서 싸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이들의 목소리와 결단력은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용기를 안겨줬다. 아울러 앞으로 이들처럼 더 많은 피해자가 당당히 목소리를 낼 수 있으려면 2차 가해 예방에도 힘써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세원, 여성신문, 2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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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압적 통제’부터 ‘교제폭력’으로 보는 호주, 젠더폭력의 ‘공적 개입’ 강조해”

2020년 2월 하나 클라크와 세 자녀가 호주 퀸즐랜드주 브리즈번의 한 거리에서 살해됐다. 하나는 오랫동안 남편의 폭력에 시달렸고 법적 보호를 요청했지만 법원은 전남편에게 자녀들에 대한 접근권을 허용했다. 전남편 로완 박스터는 하나의 차량에 불을 지르면서 결국 하나와 아이들은 사망한다. 하나의 사건은 친밀한 관계의 폭력이 단순한 신체적 폭력을 넘어 정서적, 경제적 통제를 포함한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전남편은 하나가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도록 했고 화가 나면 아이들을 처벌하는 방식으로 그녀를 조종했다. 하나가 집을 떠난 후에도 따라다니며 감시하기도 했다.

하나 사건 이후 ‘강압적 통제’ 행위를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고 퀸즐랜드주에서 ‘강압적 통제’를 범죄화하는 내용을 담은 가정폭력처벌 법안이 통과됐다. 강압적 통제에는 신체적 폭력뿐 아니라 심리적·경제적·사회적 측면에서 피해자를 억압하고 지배하는 행위가 포함된다. 올해 5월부터 퀸즐랜드주에서 강압적 통제 행위를 하는 경우 최대 1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강압적 통제’를 범죄화한 것은 뉴사우스웨일주가 먼저다. 지난해 7월부터 최대 7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물론 ‘강압적 통제’를 입증하는 일은 쉽지 않다. 2004년 호주 최초로 강압적 통제를 범죄로 규정한 주는 타즈매니아주지만 20년 간 처벌 판결을 받은 경우 10건이 되지 않아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있다. 조혜인 호주 모내시대 ‘젠더와 가정폭력 예방센터’ 책임연구원(한국학과 조교수)은 “호주도 비신체적 폭력을 중요하게 생각한지 오래되지 않아 아직 데이터가 부족하다”면서도 “강압적 통제를 범죄화한 것은 젠더폭력의 형태가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젠더폭력이 단순히 사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적 개입이 필요한 사회적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는 중요한 행보”라고 말했다. (중략)

-‘강압적 통제’가 범죄가 됐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보는가.

강압적 통제의 범죄화를 통해 젠더폭력에 대한 법적 정의를 확장하는 의미가 크다. 특히 신체 폭력의 증거가 없어도 정서적 학대나 경제적 착취를 증명할 수 있다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게 된 점이 큰 변화다.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는 이 정책을 효과적으로 홍보하기 위한 예산도 50억원 정도 배정했다. 이렇게 접근하는 것은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을 넘어, 젠더폭력을 예방하고 젠더 불평등 및 가부장적 관습에 도전하며 사회 전반에 걸친 인식 변화를 촉진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중략)

-한국에선 젠더폭력이 젠더의 위계에 따른 범죄라는 인식이 아직 자리잡지 못했다. 호주 상황은 어떤가.

호주의 일부 커뮤니티에서도 젠더폭력을 목격해도 그것이 젠더폭력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빅토리아주에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변인 개입 훈련’을 활발히 하고 있다. 일반 시민들이 젠더폭력을 목격했을 때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다. 최근 호주에서도 디지털 성범죄가 큰 문제 중 하나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빅토리아주 ‘성평등 기구’와 같은 기관에서는 ‘소셜미디어 도구모음’과 비디오를 개발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소셜미디어 이용자를 기존의 ‘수동적 주변인(Passive Bystander)’에서 ‘적극적 주변인(Active Bystander)’으로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전 세계에서 최초로 시행하는 프로젝트로 알고 있다.

(임아영, 경향신문, 25.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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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서도 발생하는 ‘교제폭력’, 그럼에도 ‘살인 피해율’ 낮은 이유는”

교제 폭력이나 교제 살인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젠더 위계에 따른 여성 폭력, 특히 가까운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고 심각한 문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00년부터 2018년까지 161개국 유병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전세계 여성 3명 중 1명이 평생에 걸쳐 친밀한 관계에 의해 물리적·성적 폭력을 당했거나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유럽의 선진국인 스웨덴의 통계도 비슷하다. 유럽연합(EU)의 젠더 기반 폭력 조사에 따르면 스웨덴의 18~74세 여성의 31%가 평생 한번 이상 친밀한 파트너로부터 신체적 폭력이나 위협 또는 성적 폭력을 경험했다는 통계가 있다. 폭행, 협박, 강간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스웨덴의 여성 폭력 관련 통계에서 눈에 띄는 점은 살인 피해율이 낮다는 점이다. 스웨덴 범죄 예방 위원회의 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10명의 여성이 현재 또는 과거의 파트너에 의해 살해됐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의 평균을 보면 매년 약 15명의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반면 한국은 2023년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 여성 살해 피해자만 최소 138명이었다. 이는 다섯배 정도 차이 나는 양국의 총 인구(2025년 기준 스웨덴 1063만5489명, 한국 5168만4564명) 대비로 살펴봐도 많은 수치다. 이는 스웨덴과 한국에서 폭력을 받아들이는 인식과 법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건이어도 민감하게 피해로 인지하는 비율 자체가 더 높은 것으로 보인다. (중략)

- 스웨덴에서는 여성에 대한 폭력, 살인 등의 범죄를 법적으로 어떻게 처벌하고 있나.

“기본적으로 형법 제3장 생명과 건강에 관한 범죄, 제4장 자유와 평화에 관한 범죄, 제6장 성범죄 등의 조항에서 각각 폭행, 불법 협박, 강간 등의 범죄를 처벌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친밀한 관계 내 여성 폭력을 처벌할 수 있도록 ‘여성의 존엄성 침해(Gross violation of a woman’s intergrity)에 관한 법’을 마련했다.

이 법은 친밀한 관계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 1998년 만들어졌다. 남성이 친밀한 관계의 여성에게 반복적으로 가한 폭행, 불법 협박, 강간 등의 범죄를 처벌하도록 한다. 이 관계에는 현재 혼인 상태이거나, 과거 결혼한 적 있거나, 결혼과 유사한 관계에서 동거 중이거나, 동거한 적 있는 관계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 조항의 목적은 여성의 존엄성을 반복적으로 훼손한 범죄를 하나로 묶어 형벌의 가치를 높이는 데 있다. 이런 범죄는 짧거나 긴 기간 동안 반복적으로 발생했으며, 여성의 자존감과 존엄성을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본다.”

(김정화, 경향신문, 25.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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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죄’ 명칭을 ‘부동의 성교죄’로 바꾼 일본, “성폭력 피해 신고·처벌 늘었다”

일본에서 부동의성교죄 개정 논의의 촉매제가 된 것은 2019년 성폭력 사건에 내려진 4건의 무죄 판결이었다. 취한 여성을 성폭행한 남성에게 “희미하게나마 여성의 의식이 있었다”며 면죄부를 준 후쿠오카 지방법원, 폭력을 당하는 상황에서 피해 여성이 반항하기 어려웠으나 “분명하게 알 수 있는 형태로 저항한 것은 없었다”는 시즈오카 지방법원,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친부에게 성학대를 당해온 피해자에게 “피해자가 저항하려고 했으면 저항할 수 있었다”고 한 나고야 지방법원, 친부가 12세 딸을 2년에 걸쳐 주 3회 강간한 사건에서 “좁은 집 안에서 다른 식구가 몰랐을 가능성이 작다”고 판단한 시즈오카 지방법원의 무죄 판결이 그것이다.

4건의 판결이 나온 이후 일본 각지에서 성폭력 관련 형법 개정을 촉구하는 ‘플라워 데모’가 열렸다. 여성들이 광장에 모여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피해 경험을 말하는 길 위의 ‘미투 운동’이었다. 스프링은 플라워 데모와 연대해 캠페인을 진행했고, 성범죄 관련 형법 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해 13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플라워 데모 이후 문제의 성폭력 사건 판결 4건 중 3건이 고등법원에서 유죄로 뒤집혔다. (중략)

지속적인 노력은 정치인들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스프링의 두 활동가가 형법 개정의 높은 문턱을 넘을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로 꼽는 것 중 하나는 연이은 여성 법무상(법무부 장관) 취임이었다. 노다는 “두 명의 여성이 법무대신이 되면서 여성계가 법 개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폭제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노다는 “법 개정과 관련한 부정적인 여론이 일어날 때 정치인들이 법 개정 운동을 보호해준 적도 있었다”며 “보수적인 정치인이 나서서 ‘성범죄 관련 논의에서는 시민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해 스프링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프링은 부동의성교죄 도입을 위해 국회의원들과 500회 이상 면담하는 등 적극적으로 입법 활동을 펼쳤다. (중략)

다도코로는 “No means No 모델의 문제점은 ‘거절할 수 있었음에도 왜 하지 않았냐’는 식의 2차 가해 위험이 있다는 것”이라며 “Yes means Yes 모델 반영과 성범죄 공소시효 철폐를 위해 법무성에 촉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다는 “성관계 동의에 대한 교육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것도 강조하고 있다”고 했다.

(배시은, 경향신문, 25.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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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법 강좌] 성평등 실현을 위한 헌법 톺아보기

국가의 기본질서를 규정한 ‘헌법’은 1948년에 제정돼 9차례 개정됐다. 19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헌법 제10호)은 “성별”, “여자”, “양성의 평등”, “모성보호”를 명시한 5개의 조항을 두고 있다.

이 젠더관련 조항들은 제정된 ‘헌법’(제헌헌법)의 3개 조항(성별에 의한 차별금지·여자근로에 대한 특별보호·혼인에서의 남녀동권)에 뿌리를 두고 발전된 것이다. 제헌헌법의 이 조항들은 광복 후 여성단체들과 여성정당이 여성의 참정권과 남녀동등권의 보장, 축첩제 등의 여성차별적 제도와 관행의 폐지, 여성의 노동조건 개선과 임산부 보호 등을 요구한 것을 반영하고 소수 남성의원들의 발의와 주창에 의해 이뤄졌다. 이와 같이 여성의 인권과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법을 만들려는 여성주의 입법운동은 광복 직후부터 전개됐는데 이는 1898년에 여성들이 교육권, 참정권, 경제활동권 등을 요구하며 선포한 ‘여권통문’과 이를 실현하기 위해 조직된 여성단체(찬양회·근우회 등)의 입법 요구와 활동을 계승, 발전한 것이다.

1980년대부터는 여성주의를 본격적으로 실현하려는 여성단체들과 여성문제를 전담하는 정부출연기관(한국여성개발원)이 생겨나 법의 제정과 개정을 위한 활동을 활발히 했다. 1980년 ‘헌법’ 개정 때 한국여성유권자연맹은 여성헌법학자들이 작성한 헌법개정의견서를 제출하고 그 관철을 위해 노력했다. 그 성과로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본으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한다”는 획기적 조항이 마련됐다. 1987년 ‘헌법’ 개정 때엔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여성개발원이 각각의 헌법개정의견서를 제출하고 여성의원 등 많은 사람들이 협력해 여성계의 입법 의견이 일부 반영됐다.

여성단체들과 여성의당,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국회 헌법개정 특위는 현행 ‘헌법’의 젠더관련 조항의 문제를 개선하고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개정안을 각각 제시했다. 실질적 성평등의 실현, 공직과 경제활동의 남녀 동등한 진출을 촉진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의 실시는 공통적으로 포함됐다. 그런데 ‘여자의 근로와 복지증진 및 권익향상’을 규정한 제32조제4항과 제34조제3항을 없애고 “국가는 선출직·임명직 공직 진출에 있어 남녀의 동등한 참여를 촉진하고, 직업적·사회적 지위에 동등하게 접근할 기회를 보장한다”로 고치자는 개정안이 있다. 또한 제11조제1항에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금지를 명시하고, 제36조제1항의 ‘양성평등’을 ‘평등’으로 고치자는 개정안과 제36조제2항에서 모성보호를 없애고 “국가는 자녀의 출산·양육을 지원하여야 한다”라고 고치자는 개정안도 있다. 성소수자와 남성의 인권보장엔 획기적인 제안이지만, 여성의 인권보장엔 뿌리가 지워지는 중대한 제안이라 큰 논란이 예상된다.

(김엘림, 여성신문, 2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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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과 페미니즘의 상관관계를 밝혀라

오매 소장은 “‘안티페미니즘’을 사회적 소수자를 제물 삼는 우익화의 기제”로 보아야지, “‘이대남’과 ‘이대녀’의 젠더 갈라치기로 치환”해 버리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한 분석은 “정치경제적 관점이기보다 ‘파이 싸움’의 세계관을 승인할 뿐”이라며, “이대남 분석에서 이대녀를 세트로 붙이는 이성애적, 이분법적, 파이적 담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당부했다. “세상에 남자와 여자 두 그룹이 있고, 여성이 커지면 남성이 그에 대해 공격할 것이다, 혹은 여성이 커지면 남성이 쪼그라들 것이라는 식의 세계관을 부숴야 한다”는 것.

김찬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부산지부 활동가는 “폭주하는 남성성이 갑작스럽게, 어디선가 출현했다는 말들이 참 밉다”고 했다. “원래부터 있었는데”, 그 사실을 지우기 때문이다. 김찬 활동가는 “주변부로 밀려난 존재들에게는 (이 남성성으로 인한 위협이) 이미 실존해왔던 것인데, 마치 12.3 내란으로 갑작스럽게 급부상한 것처럼 진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서부지법의 폭동 사건 이후, 폭도의 다수가 10대, 20대 남성인 것으로 밝혀지자 사회적으로 ‘남성성’에 대한 관심이 쏟아졌다. 그리고 극우 유튜버들과 청년 남성들의 관계를 끊어내기 위한 ‘방법’들도 등장하고 있다. 김찬 활동가는 “그 방법으로 진보 유튜버의 파이를 키우고, 알고리즘에 의한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리터러시 교육 강화, 또는 내집단화 경향이 강한 온라인 커뮤니티 견제, 토론과 소통 중심의 논술교육 등을 말하고 있는데, 청소년운동을 해 왔던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실효성이 전혀 없다.”라고 꼬집었다.

김찬 활동가는 오히려 우리 사회가 집중하고 들여다 봐야 하는 것은 “극우화를 가능케하는 생애경로인, 남성성을 체득하는 학교-군대-일터”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소위 친민주당 세력이 “그 분석을 회피하는 중”이라며, “극우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도 PC(정치적 올바름), 페미니즘, 퀴어, 차별금지법 등 수많은 것들을 유예하고 부정해 왔기 때문에. 그것을 숨기고 싶어한다”고 비판했다.

(박주연, 일다, 25.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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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K 콘크리트는 TK의 딸들에 의해...' 이 대자보를 쓴 이유

같은 2030세대이지만, 남성과 여성은 왜 다른 길을 걷고 있을까? 남성은 우파 폭동의 주체로 떠오른 반면, 여성은 평화적 시위의 상징이 됐다. 이렇게 여성들이 이끄는 변화 중, 집회에서 'TK의 콘크리트는 TK의 딸들이 부순다'는 문구의 대자보가 주목을 받았다. 대자보를 내건 주인공, 소결과 지난달 31일 이야기를 나눴다.

- 1월 19일, 서부지법 극우 폭동에 대해 묻고 싶어요. 이에 대한 대자보도 쓰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내용을 담았나요?

"서부지법 폭동이 익숙하다는 내용을 썼습니다.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폭도가 아닙니다. '페미니스트는 맞아야 된다'라며 편의점 직원을 폭행하던 여성 혐오자의 폭력성과 서부지법 폭동의 야만성이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기준을 벗어나면 해고돼야 마땅하고, 맞아야 마땅하고, 죽어야 마땅하다고 굳게 믿는 반페미니즘적 정서를 우리는 오랫동안 봐왔습니다. 서부지법 폭동은 폭력의 주체는 그대로고 폭력의 대상이 '페미니스트'에서 '법원'으로 바뀐 사건일 뿐이며, 여성 혐오 범죄에 대한 미온적 수사와 가벼운 처벌이 이들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키운 것입니다." (중략)

- 탄핵 정국, 'TK의 콘크리트는 TK의 딸들에 의해 부서질 것이다'라는 대자보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처음 그 대자보를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기필코 저 오만함에 흠집을 내고야 말겠다'는 심정으로 대자보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국민의힘의 뻔뻔함과 오만함은 어디서 나오는가, 되짚어 봤을 때 영남 지방의 '콘크리트 지지'를 믿고 이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또 뽑아줄 것 같으니까 이번 위기만 넘기자는 생각으로 대응하는구나 하고 짐작했습니다. 행보가 괘씸할 뿐만 아니라 대구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어차피 또 뽑아줄 호구로 싸잡히는 것이 분통 터졌습니다.

계엄령 선포 직후, 야당 의원들이 국회 담장을 넘을 때 당사에 모여 꿈쩍도 하지 않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보면서, '윤석열과 한 패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국민의 힘'을 참칭하면서, 정작 국민의 위험은 나 몰라라 하고, 민의를 대변해야 할 국회의원이, 국민의 자유와 안전 대신 정당의 존립이라는 사사로운 이익을 택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으니 괘씸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중략)

- 지치고 외로운 상황에서도 계속 대자보를 쓰고 집회에 나갈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광화문 집회로 가는 대절버스에서 한 아주머니가 해주신 말이 답이 될 것 같습니다.

'대구에 살면서 그런 말 많이 듣지요. 앞에 앉은 학생이 말한 것처럼 '그런다고 뭐가 바뀌냐'고... 그런데 학생한테 꼭 말해주고 싶어요. 이런다고 바뀝니다. 저를 믿으세요. 제가 학생 시절 데모할 때는요, 눈 밑에 치약 바르고 데모하고 그랬어요. 지금은 보세요. 화염병 대신 촛불 들고 시위하잖아요. 유모차(유아차)도 끌고 나오잖아요. 느려서 체감 못 하는 거지, 분명히 바뀌고 있습니다.'"

(김세희, 오마이뉴스, 25.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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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레즈비언 부부의 황혼 로맨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김씨와 그의 35년 동반자 이수현(76) 씨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 영화 ‘두 사람’이 12일 개봉했다. 베를린에 사는 70대 한인 레즈비언 커플의 삶을 통해 한국과 독일의 성소수자 권리 현실을 조명한다. 새로운 세계에 용감하게 뛰어들어 자신만의 길을 내 온 두 사람이 서로를 만나 자신들의 세계를 넓히는 모습을 담았다. 퀴어영화, 여성영화이자 가족영화다.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으며, 그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새로운 선택상을 수상했다. 2024년 런던 BFI 플레어 LGBTQIA+ 영화제, 암스테르담 시네마시아 영화제 등 여러 해외 영화제에서도 관객과 만났다. 올해 전국 극장 개봉으로 더 많은 관객과 만난다.

두 사람은 1970년대에 독일로 간 파독 간호사다. 30대에 베를린의 한 교회 수련회에서 처음 만나 불같은 사랑에 빠졌다. 한국 남자와 결혼해 살고 있던 김씨는 이씨에게 가기 위해 이혼했다. 둘은 1990년부터 함께 살았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이혼하고 여자를 좋아해 가지고, 이게 정말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인가 (...) 신학교 교수님이 ‘내가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당신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고 당신이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고 하셨죠.” 영화에서 김씨가 들려준 이야기다. (중략)

두 사람은 함께라서 행복했으나, 행정적인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었다. 비행기 연착 시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동반자의 소재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2019년 김씨가 암 재발로 투병할 때도 이씨는 법적 보호자가 아니어서 병원 상담에 함께할 수 없었다. 나이 들어서도 서로를 잘 돌보려면 법적인 자격이 필요했다. 마침 독일 정부가 2017년 동성 간 혼인할 권리를 인정했다. 그래서 한 집에 산 지 31년 만인 2022년 8월, 두 사람은 혼인신고를 해 공식 부부가 됐다. 결혼 후 가족으로 떳떳하게 동행할 수 있어서 편안하고 좋다고 한다.

(이세아, 여성신문, 25.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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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토론

시사 프로그램에서, 특히나 정치 이슈를 다루는 코너에서 패널들은 ‘그 나물에 그 밥’ 아니 ‘그 남자에 그 남자’다. 지난달 29일 돌아온 ‘손석희의 질문들’의 포문을 연 이는 유시민과 홍준표였다. ‘유시민 VS 홍준표’는 MBC ‘백분토론’에서부터 수십년 간 이어져온 구도다. 지난달 15일부터 시작돼 4회분이 방송된 ‘특집 썰전’에서는 패널들 14명 가운데 딱 한 명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만 여성이었다. ‘김현정의 뉴스쇼’는 ‘놓지마 뉴스’를 제외한 모든 고정 코너의 패널들이 남성이고, ‘정치인싸’도 진행자인 이선영 아나운서를 제외한 출연자 4명이 모두 남성이다. 처음으로 여성 비율이 20%를 넘은 22대 국회보다도 못한 성비다.

‘남자만 쓰는’ 풍토 탓에 미디어 수용자들은 남성들의 발화만 듣게 된다. 또한 이들 프로그램이 적극적으로 남성 스피커들의 체급을 키워 사회적 영향력을 강화하고 이들의 정치적 성장을 도왔다. 지난 5일, 오랜만에 ‘썰전’을 찾은 이철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썰전 덕에 국회의원이 됐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안티페미니즘 선구자인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도 2015년 ‘썰전’에 고정 출연하며 이듬해 열린 20대 총선에 서울 노원병에 출마했다. 이들의 방송 출연분은 온라인에서 ‘짤’로 도는 한편 많은 언론들이 무한히 받아쓴다.

방송가가 여성 정치 패널을 발굴하지 않는 것은 결국 ‘의지의 문제’다. 지난해 8월 콜린 크룩스 주한 영국 대사로부터 성비 불균형을 지적받았던 통일부 주최 국제한반도포럼이 불과 이틀 만에 여성 연사를 6명 추가한 것처럼. 지난해 1월 폐지된 KBS1라디오의 ‘뉴스브런치’처럼 여성 패널을 적극 기용한 사례도 있다. ‘뉴스브런치’는 여성 시선의 시사 프로그램을 표방, 여성 진행자(정용실·신성원 아나운서)에 패널을 ‘3040’ 여성들 위주로 구성했다. 정쟁보다는 시민들 피부에 와닿는, 생활과 직결되는 정책을 다루는 데 포커스를 맞췄다. 건강보험 급여 적용 기준의 축소, 고독사 실태, 최저임금 이슈 등에서부터 1인 여성 가구의 주거권, 젠더 폭력, 성별 임금격차 같은 여성들 현안도 다뤘다 ‘여성 시선’의 시사 프로그램은 확실히 생활 전 영역을 정조준했다. 당리당략이나 정략적 해법에만 매몰되지 않았다.

(이슬기, 미디어오늘, 25.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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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요안나씨 죽음으로 본 프리랜서·비정규직 노동 환경의 문제점

“우린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할 수 없어. 노동자가 아니니까.” 드라마 <멜로가 체질>(JTBC)에서 방송 작가인 임진주(천우희)의 대사는 직관적이다. “노동자가 아니면?” 진주의 질문에 메인 작가는 대답한다. “자영업자.” 2024년 연애 프로그램 <나는 솔로>(ENA·SBS PLUS)에서 방송 작가들과 남규홍 PD의 분쟁이 불거졌다. 남 PD는 작가들에게 서면 계약 없이 일을 시키고, 재방송료 지급을 보장하지 않았으며, 이 문제로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되었음에도 불출석했다. 작가들은 전원 퇴사했다.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에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고, 프로그램의 작가 기여도를 폄하하는 남 PD의 발언은 작가를 포함한 방송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받는 처우를 짐작하게 한다. 드라마 <이번 생은 처음이라>(tvN)에서 윤지호(정소민)는 막내 작가로 일하며 선배에게 아이디어를 뺏기고, 입봉을 미끼 삼은 감독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결국 일을 그만두고 뛰쳐나오지만,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 때문에 은행 대출을 받는 것에도 실패하고 좌절한다. 다시, <멜로가 체질>로 잠시 돌아오자. 자영업자에게 노동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고, 노력만 있다는 메인 작가의 논리에 진주는 되묻는다. “자영업자도 노력한 만큼 버나요?” 메인 작가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 보는 듯한 얼굴로 말한다. “꿈에 가까워지는 거지.” 진주의 세계관이 드라마이자 멜로다. 진주에게 주어진 전개는 작가로서도 성장하고, 방송국에서 입지가 있는 남자를 만나 시너지 효과를 내는 일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미래의 가능성을 담보 잡고, 사랑과 열정 같은 청년의 자원을 착취하는 방송국의 비정규직 문제는 젠더 이슈와 밀접하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2020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공공부문 방송사 프리랜서 10명 중 7명은 여성(71.2%)이고 이 중 2030 여성이 75% 내외를 차지한다. 그 많던 여성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또한 여성만 프리랜서로 활용되는 직무가 16개이며, 성별 임금·직무 분리가 확인된다. 여성 다수의 직무인 리포터, 캐스터에 비해 남성 다수인 조명, 편성 등의 직무가 두 배 이상의 보수를 받는다. 여성 캐스터나 리포터는 젊고 아름다운 육체가 중요시되고, 그래서 더 빨리 교체되며, 전문성이 부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적은 임금과 부당한 대우가 당연시되고, 교체가 빠르기에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정치적 응집력을 갖추기 어렵다. 스타 PD는 언제나 남성이되,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역할인 방송 작가는 여초 직군으로서 그 공로와 역량이 지워진다. 방송 제작 및 지원과 같은 노동이 오랫동안 비공식화된, 비가시적인 영역으로 취급받으면서 경제적 보상과 법적 보호로부터 배제된 것에는 여성화된 노동이라는 특수성도 작동했던 것이다.

(이진송, 경향신문, 2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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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나운” 조선소에서 여성 노동자로 일한다는 것

배를 만들거나 고치는 시설인 조선소에서 일한다는 걸 상상해 보면 일단 ‘무척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부터 든다. 엄청난 크기의 공간, 시끄러운 소리, 수많은 노동자가 혼재되어 있으니까. 그리고 위험한 일터라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도 그렇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선박 건조 및 수리업의 사망만인율(근로자 1만 명당 발생하는 사망자 수 비율)은 3.68%로, 제조업 평균의 3배에 달한다.

여성 노동자의 비율도 극히 적다.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에 따르면 “진해 케이조선에서 일하는 정규직 사무직 노동자의 6%, 비정규직 현장직의 15%가 여성”이다. 한국 사회의 여성 고용율이 이제 60%를 넘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조선소 내 여성 비율은 정말 적다. 조선소는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공간이다.

그렇다면 왜 여성들은 “이 사나운” 조선소에서 일하게 됐을까? 세상엔 조금 더 ‘편하고’, ‘여성에게 어울리는’ 그런 직업도 있지 않냐고 묻는 이들도 있을 테다. 하지만 세상 일이 어디 뜻대로 되냔 말이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면 좋으련만 아직 그런 세상은 오지 않았고, 여성들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했다.

〈조선소, 이 사나운 곳에서도〉는 거제 한화오션(구 대우조선해양)과 진해 케이조선(구 STX조선), 두 조선소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11인의 삶과 일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11명의 여성 노동자가 조선소에서 일하게 된 경위는 각기 다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비슷한 결이 있다. 남편 사업이 망해서, 이혼하게 돼서, 남편이 갑자기 사망했거나 혹은 아파서 일을 할 수 없어서… 여성들은 자신의 삶과 가족의 삶을 책임져야 했다. 거제 혹은 근방에서 살던 이들에게 조선소에서 일하는 건 당연한 혹은 다른 선택지가 없는 일이었다. ‘주부’에게 주어지는 파트타임 일자리가 아니라 풀타임 일을 구한다면 말이다. 이 여성들에게 애초에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중략)

이들은 ‘여자’이기 때문에 자주 조선소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임을, 노동자됨을 증명해야 했다. 그 과정은 때론 악에 바치는 일이었고, 때론 절박했으며, 때론 묵묵히 버텨야 했다. 그렇게 일하다 보니 안 아픈 곳이 없다. “도장하는 사람은 거의 다 천식 있고 비염 있고, 페인트 가루, 조명 때문에 시력이 나빠진” 상황이고, “안전모 안 썼으면 벌써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할 만큼 위험에 자주 노출된다. 부족한 여성 화장실 때문에 방광염에 걸리기도 하고,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는 일도 기본이다. “돈을 버는 건지 병을 키우는 건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다.

(박주연, 일다, 2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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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버리’는 ‘her’와 ‘delivery’를 합성한 조어로, 뉴스 헐리버리는 매일 같이 기사로 접하는 현실 속 여성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현재를 진단하는 여성 뉴스 큐레이션입니다. 월 2회 PERSPECTIVE EDITION과 PEOPLE EDITION으로 큐레이팅된 뉴스레터가 15일과 말일경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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