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예술

[vol.132 | 리뷰&뉴스 편] 용서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다 外

2025.12.25 | 조회 1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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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극장 허시어터의 프로필 이미지

여자들의 극장 허시어터

여성주의 공연 큐레이션 뉴스레터 허시어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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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안녕하세요.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고 계신가요? 여자들의 극장 허시어터가 다양한 공연 리뷰와 현장의 흥미로운 기사들을 모은 리뷰&뉴스 편으로 올해 마지막 인사를 드립니다.

먼저 리뷰로는 국립극장 마당놀이 <홍길동이 온다>,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자 이오진 연출의 <히스테리 앵자이어티 춤추는 할머니>, 조진호 안무가의 <전야제; 겨 터를 열다>, 국립극단 청소년극 <19호실>과 박정희 단장 연출의 <태풍>까지 총 다섯 편의 리뷰를 준비했으니 함께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기사로는 구독자 여러분들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뇌종양으로 투병 중이던 배우 윤석화 씨의 별세 소식 전해드리며 그의 공연예술인으로서의 행로를 돌아보았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 외에 연극 <노인의 꿈>으로 9년 만에 무대에 복귀하는 배우 김영옥 씨 소식, 이데일리 문화대상 국악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국립창극단 <심청> 소식, 제10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 최다 후보작이 된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소식, 여성 마법사의 등장으로 새로운 문법을 선보인 김용걸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 소식을 준비했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가 배우 오영수 씨의 강제추행 사건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가 선고되자 <심판의 대상은 “피해자/다움”인가?>라는 제목으로 이번 판결의 문제점을 짚는 평석회를 열었습니다. 호암미술관이 내년 첫 전시로 준비하고 있는 한국 여성 작가 최초 회고전의 주인공 김윤신 작가 소식과, 개인전 <고어 데코>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장파 작가의 여성주의 회화 세계도 함께 전해드립니다.

허시어터가 이번 호에서 준비한 소식은 여기까지이고요, 이번 호 발행 후 편집부에서는 내부 정비 차원에서 잠시 휴식기를 갖기로 하였습니다. 매달 쏟아지는 공연들을 뒤따르며 여성들을 만나고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일상이 되다 보니 공연 없는 일상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습니다만, 연말이 되어 한 해를 돌아보는 지금이 휴식기에 들어갈 가장 좋은 시기라고 판단했습니다. 상반기 동안 에디터들 각자 호흡을 고르고 현생도 정비하며 다시 달릴 준비를 마친 뒤 하반기에 돌아오겠습니다. 하여 허시어터 활동은 이번 호 큐레이션 레터 발송과 다음 주 ‘이번 주 이 공연’ 카드레터 발송으로 일단락 짓고, 내년에는 컴백 전까지 유튜브에서 짬짬이 인사드리겠습니다. 허시어터가 없어 적적하시더라도 조금만 기다려주시고, 모쪼록 따뜻하고 즐거운 크리스마스와 연말 보내시길 바랄게요. 올해도 감사했습니다. Merry Christmas & Happy New Year!

허시어터 편집부 윤단우, 이수아, 한보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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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니, 사자보이즈까지 합세…현대판 마당놀이의 정수 ‘홍길동이 온다’ 허세민 기자, 한국경제, 25.11.28

2025년 한국으로 날아온 ‘조선의 영웅’ 홍길동은 등장부터 시선을 압도했다. 이날 홍길동 역을 맡은 배우는 국립창극단의 간판스타 이소연. 와이어에 몸을 실은 그는 5m 높이 상공을 날아오르면서도 시원한 창(唱)을 흔들림 없이 뽑아냈다. 홍길동의 상징인 패랭이와 두건, 푸른색 쾌자가 여성 소리꾼에도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공중부양 장면으로 놀라기엔 이르다. 홍길동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마술부터 배우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아크로바틱, 롤러스케이트 퍼포먼스 등 고난도 동작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마당놀이와 서커스의 경계를 넘나들며 2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무대다.

대중문화 코드를 과감히 입혀 객석의 호응을 끌어낸 점도 탁월했다. ‘난세의 영웅’ 홍길동의 인기를 “BTS(방탄소년단) 뺨치는 홍길동 신드롬”이라고 표현하고 오늘날의 영웅 중 한 명인 축구선수 손흥민을 무대 위로 소환하는 등 홍길동전이 낡은 이야기로 머물지 않도록 다양한 장치를 더했다. 올해 전 세계를 사로잡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사자보이즈’는 극 속에서 홍길동을 뒤쫓는 역할을 맡고 귀여운 호랑이 캐릭터 ‘더피’는 홍길동이 공중으로 날아오를 때 등을 내어주며 웃음을 자아냈다.

시대적 감수성을 고려해 여성 배우의 참여를 늘린 것도 세심했다. 홍길동 역을 맡은 이소연과 국악그룹 ‘우리소리 바라지’의 김율희 외에도 원작에는 없던 여성 활빈당원 ‘삼충’ 캐릭터가 추가됐다. 남성 중심의 영웅 서사인 홍길동전을 그대로 따르지 않음으로써 차별 없는 세상을 외치는 ‘홍길동 정신’을 오히려 더 뚜렷하게 새겨 넣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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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미래여도 괜찮아 - 히스테리 앵자이어티 춤추는 할머니 박정빈 에디터, 아트인사이트, 25.12.02

누군가는 노벨상을 타고 누군가는 아파트에 산다. 이것이 불공평한 것일까? 사회가 고도로 발전하며 집단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변했다. 이따금씩 금전적인 좋은 기회를 만나 삶에 여유가 생기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대부분 보통의 사람들은 주어진 삶 속에서 희미하기만 한 미래를 점쳐보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히스테리 앵자이어티 춤추는 할머니>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6명의 등장인물은 모두 개인의 모습으로 무대에 서지만, 사실은 모두 가난이라는 공통된 고민이 있다. 2025년의 비교적 젊은 우리가 시간이 들어 할머니가 되었을 때, 궁핍하게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함이다.

이 위태로운 불안함은 특히 1막 ‘2025년의 여자들’에서 아스라이 줄을 타는 연출로 깊이를 더했다. 잔잔한 독백이 이어지다가 급변하는 사운드가 공연장을 가득 채우며 배우들이 노래를 부른다. 또 빗소리와 침울한 서사로 다시 분위기를 한껏 끌어내렸다가, 번쩍거리는 조명과 요동치는 비트로 유머러스함을 더하는 등 극과 극을 오가는 흐름이 유독 인상적이다. 무엇보다도 1막에서는 각 배우가 저마다의 서사를 직접 시나리오로 작성했다. 이오진 연출가는 작은 민주주의를 실천하며 배우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했다고 언급했는데, 무대와 객석 사이의 간격을 순식간에 좁히기라도 하는 듯, 정말 어디선가 존재하고 있을 또 다른 나를 마주하는 것만큼이나 반가운 효과가 있었다.

이처럼, 결국 <히스테리 앵자이어티 춤추는 할머니>는 ‘연대’에 관한 내용이다. 1막 2025년 두산아트센터에서 연극으로 맺어진 배우들이 2막 ‘2058년의 여자들’이라는 현실적인 내용으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2막 안에서는 주인공 ‘유림’의 죽음으로 그녀의 재산을 다른 배우들이 상속하는 과정을 담았다. 가족이 아닌데 어떻게 상속받을 수 있을까? 극의 배경은 평범한 가정집인데, 주인공들은 그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동거하는 사이로만 그려지는 것이 아니다. 대신 언젠가 미래 사회에 제도로 등장할 수도 있는 ‘생활동반자법’, 그리고 ‘사회적가족법’처럼 재치 있고 독특한 상상으로 개인들의 관계를 새로운 가족의 형태로 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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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을 내어주고 터를 벌리다: 조진호 <전야제; 겨 터를 열다> 윤단우 공연칼럼니스트, 댄스포스트코리아, 25.12.20

조진호의 <전야제(前夜祭); 겨 터를 열다>(이하 ‘전야제’)는 지난해 선보인 <춤출 때 웃고 있지만>에 이어 다시 한번 ‘한국무용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춤출 때 웃고 있지만>에서 발레와의 교차성을 통해 한국무용이 요구하는 여성상에 대해 질문했다면 <전야제>에서는 한국무용의 신체성에 대해 질문한다. 두 질문 모두 제주(祭主)가 아니라 인간이자 여성에게서 발원된 것일 뿐 아니라 질문 없는 세계에서 발생된 것이기에 더욱 각별하다. (중략)

공연은 ‘夜’라는 글자가 겨드랑이 안에 달을 감추고 있다는 재기 넘치는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조진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평소에는 특별히 의식되지 않던 달이 누군가의 시선과 마음이 닿는 순간 특별한 빛을 발한다고 느낀다면서, 겨드랑이 역시 평소에는 그러한 신체 부위가 있다는 걸 의식하지도 못한 채 지내다 특별한 관계를 맺은 상대에게만 안심하고 드러낼 수 있는 내밀한 부위인 데 주목했다. 그는 우리가 관계의 거리가 좁혀지고 친밀함이 올라가는 어떤 순간이나 계기에 대해 ‘곁을 내주다’라는 표현을 쓰는 데 착안해 관계의 개폐성과 밀도, 거리를 표현하고자 했다.

17세기 문헌에 따르면 ‘겨드랑이’는 ‘겯’(현재의 ‘겨드랑이’를 의미하는 옛말)에 접미사 ‘-으랑’이 붙어 ‘겨드랑’이 된 것으로 보이며, 18세기 이후 ‘-이’가 결합해 ‘겨드랑이’가 되었다. 국어학자들은 ‘겯’이 ‘몸을 가까이하다’는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전야제>는 조진호와 허윤경 두 다른 장르의 무용수가 어떻게 몸을 가까이하며 ‘겯’을 서로에게 보일 수 있는 사이가 되는지를 움직임으로 탐색한다. 두 무용수의 몸이 가까워지는 동안 움직임의 범위가 겹쳐지고, 호흡도 질감도 다른 움직임이 어색함 없이 어우러진다. 공연의 전개는 서로를 겨드랑이에 품어주는 과정이자 서로에게 달이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터벌림과 강강술래로 이어지는 공연의 마지막 장은 신체와 움직임에 대한 상상력이 폭발하는 장면이다. 허윤경이 관객들에게 말을 건네는 동안 그의 뒤에 바짝 붙어 누운 조진호는 다리를 길게 뻗어 발바닥으로 허윤경의 겨드랑이를 밟아댄다. 터벌림의 대무(對舞)를 해체해 다시 조립한 이 장면은 함께 춤을 추는 사이에서 서로에게 곁을 내주는 사이가 되었다는 관계의 도착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윽고 둘은 달 아래 손을 잡고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신명을 나눈다. 각자의 몸에 밴 춤사위는 다르지만 이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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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막힌 세상을 ‘함께’ 뚫어 내는 열아홉 서툰 의지…국립극단 청소년극 ‘19호실’ 정수진 연극평론가, 스마트경제, 25.12.22

눈을 떠 보니 낯선 곳이다. 사방이 막힌 붉은 방, 창문도 없고 그저 두 개의 문만 보인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 말고도 6명이 더 있다. 

우리는 왜 이 작은 방에 함께 갇힌 것일까. 

여긴 어딜까. 과연 우리는 여기서 탈출할 수 있을까.

이번주 수요일 개막한 국립극단 청소년극 ‘19호실’(이성권 작, 김수희 연출, 더줌아트센터, 2025.12.17.~12.28)이 그리는 살풍경한 현실이다.

꽉 막힌 좁은 방에 느닷없이 내던져진 6명의 열아홉 살 청소년들과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해진 어른 하나의 이야기다.

인물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 여기서 탈출하는 것이다. 

연극은 이토록 암담한 극적 상황 속으로 관객들을 끌어당겨서 인물들과 함께 탈출 방법을 고민하게 만든다. (중략)

이어지는 장면들에서 유효한 탈출 방법을 고민하는 인물은 혜정뿐이다. 

나머지들은 탈출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서로를 탓하거나(태규, 영준) 자책하거나(하영, 아린) 심지어 자살을 시도한다(원천).

이 과정 속에서 이들 모두 열아홉 살이었다는 유일한 공통점이 밝혀지고 혜정은 아무에게도 밝히지 못했던 임신 사실을 이야기하고 원천은 왕따로 시달리다 현재는 자퇴한 상태라는 사실을 말한다. 

평소라면 감당할 수 없을 법한 진실들이 탈출하기 위한 줄넘기의 사투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폭로될 때 비로소 연극 ‘19호실’의 목표가 방 탈출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탈출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과정의 신속함과 정확함이 중요한 방 탈출 게임과 달리, 이 극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그리스 연극에서 쓰인 무대 기법의 하나로,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 극의 긴박한 국면을 타개하고 결말로 이끌어 가는 기법)처럼 갑자기 나타난 세진을 통해 탈출의 단서가 극 초반에 드러난다. 

애초에 탈출 방법을 찾는 과정보다는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오히려 자유롭게 각자의 진실을 마주하는 인물들을 보여주기 위한 연극적 목표가 분명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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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의 시대에 '용서'를 말하다 - 연극 '태풍' 황수빈 에디터, 아트인사이트, 25.12.23

“인생은 한바탕 연극과 같다.”

셰익스피어의 이 오래된 문장은 국립극단의 연말 공연 <태풍>에서 더없이 구체적인 장면으로 되살아난다. 2025년 국립극단의 마지막 라인업 작품인 <태풍>은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걸작 『템페스트』를 오늘의 언어로 다시 불러낸다. 공연은 시작과 끝에서 끈질기게 관객에게 상기시킨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이 모든 것은 ‘연극’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렇기에 더 진실에 가까울 수 있다는 역설을. 복수 대신 용서를 택한 고전의 통찰은, 미움과 분노가 일상이 된 지금 이 시대에 오히려 더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중략)

이번 <태풍>의 가장 중요한 재해석은 주인공을 남성 ‘프로스페로’에서 여성 ‘프로스페라’로 바꾼 선택이다. 이는 단순한 젠더 스와프를 넘어, 권력과 복수, 용서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재구성한다. 여성 주인공으로의 각색은 ‘용서’라는 선택을 감정적 미화가 아닌 능동적 결단으로 읽게 만든다. 이는 오래도록 남성 서사의 결말로 소비되어 온 용서의 개념을, 다시 사유하게 하는 지점이다.

<태풍>은 관객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복수는 정말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오늘날 분노는 너무 쉽게 소비되고, 미움은 정당한 감정처럼 유통된다. 그런 시대에 <태풍>은 불편할 정도로 느린 질문을 던진다. 모든 것을 되갚을 수 있는 힘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작품은 유토피아가 먼 어딘가에 있는 이상향이 아니라, 이미 삶 안에 존재할 수 있음을 조용히 암시한다. 그 깨달음은 인물보다 관객에게 먼저 도착한다. (중략)

그래서 이번 공연은 단순히 셰익스피어를 기념하기만을 위한 공연이 아니다. 시대와 성별을 넘어 인간의 내면을 응시하는 질문, 그리고 그 질문을 오늘의 극장 언어로 다시 묻는 용기. 그 모든 것이 한데 모여 지금 우리의 마음을 건드린다. 연말의 명동에서, 이 태풍은 파괴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기적의 마법으로 관객을 휩쓴다. 그리고 조용히 말한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혁명적인 선택은, 어쩌면 용서일지도 모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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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후배들에게 길 내준 영원한 연극 선배, 윤석화 나혜인 기자, 여성신문, 25.12.19

“연극이라는 길 위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더 사랑하는 일’입니다.” (2010년 여성신문 인터뷰 中)

연극배우 윤석화가 세상을 떠났다. “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자랐고, 윤석화의 뒤를 이은 ‘신의 아그네스’들을 만났던 사람으로서는 기억 구슬 여러 개를 잃은 기분을 지울 수 없다. 윤석화는 연기하는 배우이자 일하는 여성으로, 입양아의 엄마이자 든든한 여자 선배로 여성의 자리를 만들어왔다. 그의 입은 배우의 입이었고, 연출가의 입이기도 했으며, 한평생 연극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입이기도 했다. 그는 입에서 흘러나오는 언어들로 후배들을 위한 주단을 깔았다. 자기 자신의 발은 자갈밭에 갈려 나가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연극과 후배들을 열렬히 짝사랑하며 살았다. (중략)

무엇보다 윤석화는 후배 여성에게 자산을 물려주는 선배였다. 2008년 대표작인 ‘신의 아그네스’로 복귀하며 주인공 아그네스 역을 신인 여배우에게 물려주고 닥터 리빙스턴 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자리를 물려받은 신인 배우가 바로 전미도다. 전미도는 윤석화의 응원 속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신인으로 주목받았고 그해 열린 ‘한국연극대상’에서 여자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윤석화는 전미도에게 “네가 닥터 리빙스턴 역을 할 때쯤 나는 원장 수녀 역을 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는 세대와 신념이 다른 세 여성의 이야기에서 가장 뒷자리를 맡아 새로운 세대를 맞이하겠다는 약속이었으며, 동시에 당신의 후배에게 다음 세대를 부탁하는 당부이기도 했다.

99년 공연예술전문 월간지 ‘객석’을 인수해 발행인으로 이야기의 장을 만들어갈 때는 여성 잡지인 이형옥에게 직접 객석을 맡아달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선배 여배우 박정자, 손숙 등과는 소극장 산울림에서 30년 넘게 ‘여성 연극’의 기반을 다졌고, 국내 입양기관과 미혼모 자립을 돕기 위한 자선 콘서트를 수차례 열어 수익금을 세상에 돌려줬다. 자금이 부족한 제작사가 갑작스럽게 공연 제작을 중단해 낙동강 오리알이 된 창작자들 대신 자비로 공연을 올리는 일도 있었다. 2017년에는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직을 맡아 연극인 권익 보호를 위해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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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세 국민배우' 김영옥, '힙 할머니' 춘애로 9년 만에 무대 복귀 정수영 기자, 뉴스1, 25.12.22

국민배우 김영옥(88)이 9년 만에 무대에 복귀한다. 다정하면서도 예측 불가한 '힙 할머니' 춘애 역으로 관객과 만난다.

공연 제작사 수컴퍼니는 연극 '노인의 꿈'을 내년 1월 9일부터 3월 22일까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에서 선보인다고 22일 밝혔다.

'노인의 꿈'은 현실의 벽과 세월의 흐름 속에서 잠시 꿈을 뒤로 미뤄둔 사람들의 일상에, 예상 밖의 인물 '심춘애'가 등장하며 벌어지는 변화를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극은 미술학원 운영과 복잡한 가족사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던 '봄희' 앞에 '춘애'가 자신의 영정사진을 직접 그리겠다며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춘애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는 미술학원의 공기를 단번에 뒤흔들고, 봄희로 하여금 일상의 무게에 눌려 오래도록 미뤄두었던 삶의 진짜 표정을 다시 마주하게 만든다.

수컴퍼니 관계자는 "'춘애'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며 하고 싶은 일 앞에선 언제나 솔직하게 직진하는 단단한 할머니"라며 "김영옥 배우는 누구나 한 번쯤 마음속에 묻어뒀던 꿈과 용기를 자연스럽게 꺼내 보게 만드는 인물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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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 인정받아 큰힘…판소리 재해석 계속 도전" 장병호 기자, 이데일리, 25.12.22

“전통의 틀을 깬 국립창극단의 새로운 시도에 대한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유은선 국립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21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제12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국악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국립창극단 ‘심청’에 대해 “판소리 다섯 바탕에 대한 현대적인 재해석을 시도한 첫 작품으로 수상의 영예까지 안게 돼 더 없이 기뻤다”며 이같이 밝혔다.

‘심청’은 국립창극단이 독일에서 활동 중인 한국 오페라 연출가 요나 킴과 함께 판소리 다섯 바탕 중 하나인 ‘심청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지난 8월 13~14일 ‘2025 전주세계소리축제’ 개막공연으로 먼저 선보인 뒤, 9월 3~6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으로 무대를 옮겨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효(孝)의 상징인 주인공 심청을 아버지 심학규를 대신해 희생당하는 인물로 재해석해 한국 공연예술계에 다양한 화두를 던진 화제작이었다. 심사위원단은 국악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큰 관심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심청’을 높이 평가했다. (중략)

국립창극단은 ‘심청’을 시작으로 판소리 다섯 바탕에 대한 현대적인 재해석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유 단장은 “다른 판소리 바탕들도 어떻게 파격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을 지 궁금하다”면서 “이번 ‘이데일리 문화대상’ 수상이 앞으로의 국립창극단 활동에 큰 힘이 될 것”이라며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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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 경쟁률”…‘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한국뮤지컬어워즈 최다 후보 박정선 기자, 데일리안, 25.12.22

한국뮤지컬협회가 제10회 한국뮤지컬어워즈 후보를 공개했다. 최다 후보작엔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이 이름을 올렸다.

이종규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장은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제10회 한국뮤지컼어워즈’ 최종 후보작 발표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해 사전 출품작이 102편으로, 뮤지컬 시상식 역사상 출품 작품수가 100편이 넘은 건 처음 102편이다. 역대 최고 참가율과 경쟁률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부분”이라고 전했다.

올해 최고의 국내 창작 초연 작품에게 돌아갈 대상 후보에는 ‘라이카’ ‘비하인드 더 문’ ‘쉐도우’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 ‘위대한 개츠비’ ‘한복 입은 남자’가 노미네이트 됐다. (중략)

눈여겨볼 점은 뮤지컬 ‘오지게 재밌는 가시나들’이 총 8개 부문으로 최다 노미네이트 됐고, 이어 ‘위대한 개츠비’가 7개, ‘라이카’와 ‘비하인드 더 문’이 6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또 ‘긴긴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쉐도우’ ‘알라딘’ ‘한복 입은 남자’가 5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다.

이종규 이사장은 “보통 예년엔 최다 노미네이트 작품이 2~3편이었는데, 올해는 5개 부문 이상 노미네이트 된 작품이 무려 9편에 달한다. 다양한 창작 작품들이 고루, 치열하게 경합을 벌이고 있다는 의미”라며 “그만큼 두터워졌다고 생각이 들어서 올해 결과도 어느 때보다 기대가 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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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호두까기 처음이야" 춤도, 세트도 다 바꾼 김용걸발레단 이해원 기자, 한국경제, 25.12.05

드로셀마이어가 검정색 망토를 휘날리며 무대 한가운데로 달려나온 순간,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권위와 마법의 힘이 남성에게만 있는 건 아니라는 점, 발레는 무언극이라는 고정관념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5일 서울 이화여대 ECC 삼성홀에서 개막한 김용걸발레단의 송년 공연 '호두까기 인형'은 여성 드로셀마이어에게 아이들의 꿈을 여는 신비한 인도자 역할을 맡겼다. 차갑고 강인한 시선 속에서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드로셀마이어가 클라라에게 호두까기 인형을 건네는 장면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부드러움 안에 숨어 있다는 걸 은유하고 있었다. (중략)

김용걸은 기존 호두까기 인형의 문법을 크게 세 가지로 바꿨다. 우선 주변부 인물에 지나지 않는 드로셀마이어를 서사의 주체로 키웠다. 원작에서 마법사이자 클라라의 대부로 나오는 드로셀마이어는 호두까기 왕자를 둘러싼 마법과 모험의 발단을 제공한 뒤 비중이 크게 줄어드는 보조적 역할에 머문다. 이번 공연엔 여성 드로셀마이어가 등장해 내레이션을 읊으며 관객의 이해를 돕는 해설자이자 극의 진행자로 나선다. 김용걸 예술감독은 "'왜 드로셀마이어는 늘 남성이어야 하며 조력자로만 존재해야 하는가'란 질문에서 이 캐릭터가 출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발레가 대사 없는 장르라는 점을 고려하면 처음 발레를 접할 때 다소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 드로셀마이어가 내레이션을 하도록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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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 성폭력, ‘구조적 위계’ 지우고 개인갈등으로 다루나? 박주연 기자, 일다, 25.12.24

지난 11월 11일, 수원지방법원은 연극계 원로배우 오영수 씨의 강제추행 사건 항소심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가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은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할 것을 명령했지만 항소심이 이를 뒤집은 것이다.

피해자를 지원한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는 “이번 판결은 구조적 성폭력 피해자의 용기를 법이 외면하고, 여전히 ‘피해자다움’을 판단의 근거로 사용하는 사법부의 현실”을 보여준 것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지난 15일 저녁, 한국여성민우회는 <심판의 대상은 “피해자/다움”인가?>라는 제목으로 이번 판결의 문제점을 짚는 평석회를 열었다. 이소희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소장의 사회로 진행되었으며, 오선희 법무법인 해명 변호사와 최원진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연대자D 반성폭력 활동가, 김보화 여성학 박사, 그리고 김지은 씨가 각각 발제를 진행했다.

평석회 참여자들은 입을 모아 항소심 판결이 미투 운동 이후의 변화된 사회적 흐름에 역행하며, 사법 시스템 전반의 신뢰도를 크게 떨어뜨렸다고 지적했다. (중략)

2018년 미투 운동을 통해 연극계에서 여러 성폭력 사건이 제기된 이래, 피해자와 연대자들은 입을 모아 권력 구조의 문제를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이것은 누군가의 일탈이나 삐뚤어진 행위가 아니라고 말이다. 최원진 활동가는 연극계 성폭력은 “연극계의 도제식 위계 구조, 인맥과 평판 중심의 불안정한 노동구조로 인한 생계 위협과 경력단절 위험, 공식적인 신고창구가 없는 등의 제도적 보호장치 부재가 결합된 결과”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 사건에서도 피해자는 인턴 배우였고, 피고인은 연출가가 특별 초빙한 명성과 지위를 가진 59년 경력의 원로 배우였다. 명백한 위계 관계가 존재했다. “1심 재판부는 이러한 구조적 위계와 권력 차이를 고려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혹시 서운한 일이 있었어요?’ 같은 질문을 하며 개인적 관계의 오해나 감정적 갈등으로 치부하는 퇴행적 접근을 했다”고, 최원진 활동가는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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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 내년 첫 전시는 김윤신…"한국 여성 작가 최초 회고전" 박현주 작가, 뉴시스, 25.12.01

호암미술관이 내년 첫 전시로 한국 여성 조각 1세대를 대표하는 김윤신의 대규모 회고전을 연다. 리움미술관은 티노 세갈(Tino Seghal)의 국내 첫 개인전을 비롯해 여성 설치미술의 계보와 동시대 감각 실험을 조명하는 전시들을 선보인다.

삼성문화재단 호암·리움미술관은 “2026년 한 해 동안 국제 공동기획을 확대하고, 근현대 소장품의 재해석과 다장르 협업을 중심으로 전시 프로그램의 지평을 넓힐 계획”이라고 1일 밝혔다. 이어 “여성 설치미술의 선구적 실험부터 동시대 퍼포먼스, 아시아 신진 작가 플랫폼까지, 2026년은 전시 스펙트럼의 확장을 본격화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호암미술관은 3월, 나무조각·판화·회화를 넘나들며 70여 년간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구축해온 김윤신의 첫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한다. 전후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합이합일 분이분일’로 대표되는 독창적 미감을 확립한 김윤신의 작업 세계를 총망라하는 자리로,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최초의 한국 여성 작가 개인전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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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하면서도 기괴한 여성적 기호가 가득 손영옥 기자, 국민일보, 25.12.24

입술 같기도 하고 항문 같기도 한 커다란 구멍에 물컹한 내장이 돌돌 말려 있다. 그 주위로 간과 쓸개 등 장기처럼 보이는 형체들이 벽돌처럼 쌓여 있다. 검붉은 색 장기 위에는 ‘Hole’(구멍)이라는 글자와 끈처럼 긴 내장에 얼굴이 달린 요괴, 십자가 등 중세 서적에서나 볼 법한 이미지들이 새겨져 있다.

작가 장파(44·사진)의 그림을 보면 그 강렬함에 섬뜩해진다. 굳이 밝히지 않아도 작가가 여성이라는 걸 단박에 짐작할 수 있는 회화들이다. 여성주의를 선명하게 외치는 회화 세계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온 장파의 개인전 ‘고어 데코’가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중략)

음순과 내장, 입술, 구멍, 눈 등 여성적 기호들이 가득한 작품으로 전시를 시작했을 때 그는 주변으로부터 “너의 작품을 페미니즘으로 설명하지 말라”는 염려 섞인 조언을 들었다고 했다.

2001년 군 가산점제 폐지를 계기로 ‘된장녀’ ‘김치녀’ 등 여성 혐오 발언이 한국 사회에 난무하던 2000년대 백래시의 시대를 통과하면서도 장파는 고집처럼 여성주의 회화를 추구했다. 고교시절부터 사촌의 영향으로 페미니즘 잡지 ‘이프’를 구독했다는 그가 화가로서 던지는 질문은 이러했다. “회화에서 여성적 감각이라는 게 있는가.” “여성으로서 그린다는 게 뭘까.”

그 고민 끝에 나온 것이 검붉은 신체 장기와 여성의 성기, 곳곳에 박힌 눈 등이 화면에 가득한 이미지들이다. 혐오감이 일 정도로 도발적이다. 그는 “주체성을 가진 섹슈얼리티를 그리고 싶었다”며 “그래서 성기의 도상도 과감히 들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표피 없이 내장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표현 방식을 두고 “고정되고 완벽한 몸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는 존재로서의 인간 신체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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