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배우 정혜안입니다.
사람은 정보의 70%를 시각에 의존한다는 말, 들어보셨나요? 그만큼 시각 정보가 인간에게 주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인체의 모든 감각 수용체 중 약 70%가 눈에 집중되어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 제게 (짧은 연기 생활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고민하지 않고 거리공연을 꼽을 거예요. 누구에게나 ‘처음’의 경험은 강렬하잖아요. 제게 거리공연은 온갖 ‘처음’ 투성이었거든요! 거리공연이라는 형식 자체도, 외국 연출님과의 작업도, 졸업 이후 오디션을 통해 처음 참여한 작품이라는 점까지요.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했던 요소는 ‘눈 맞춤’이었습니다. 이 공연에서 연출님이 가장 강조하셨던 디렉션이 ‘진심으로 한 사람에게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었어요. 표면적인 눈 마주침이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말을 거는 것이요(“I SEE YOU”…). 사실 설명으로 들었을 때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눈 마주치고, 인사를 나누는 게 어렵나요? …어렵더라고요. 사람들은 생각보다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는 일 자체가 적고, 오래 마주하는 힘 또한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평소 눈을 많이 마주치면서 대화를 하는 편인데도, 눈으로 무언가 전달한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를 위해 본격적인 공연을 만들기 전, 그 기반이 되어줄 활동들을 진행했습니다. 함께하는 배우들과 연출님, 통역을 해주시는 PD님과 매일매일 눈을 마주치는 시간들을 보냈어요. 그래서인지 만난 지 1주일(심지어는 평일 5일) 밖에 안 되었음에도, 한 달 이상 만난 사람들처럼 친근하고 애틋한 감정이 생기던 게 참 신기하더라구요. 함께했던 2주 조금 넘는 시간이 굉장히 꿈만 같았습니다. (아직도요.)
공연 당시 기억에 남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공연이 끝나고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익숙한 얼굴이 보여 반갑게 인사를 건넸는데, 상대방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더라고요. 그 반응에 제가 더 당황스러웠는데.. 아주 짧은 정적이 흐르고 나서야 맨 앞줄에 앉아계시던 관객분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공연 내내 깊은 교류를 나누었던지라(물론 눈빛으로만요), 그 인상이 꽤 강렬했던 나머지 무의식중에 나온 반응이었던 것 같아요. 머쓱하다가도, 그 장면 자체가 저에게 큰 추억이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지 뭐예요! 제 인생에서 가장 인상 깊은 관객분으로 남아있답니다.
최근에 그 감각이 번뜩,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제가 주말에는 카페에서 일을 하는데, 손님을 응대할 때 보통 눈을 마주치면서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대부분 메뉴판을 보거나 일행과 대화를 하며 주문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다 간혹, 저와 눈을 마주치며 ‘대화’를 건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좋은 눈빛을 주고받았다고 느껴지는 분들이요. 그럴 때면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분명히 마음에 여운이 남습니다. 일시적인 도파민 같은 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감각이 꽤 오래 남아 있는 걸 보면 신기하더라고요. “주문하시겠어요?” /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따위의 내용처럼, 대화는 지극히 형식적이고 평범했을지 모르지만요!
눈이 주는 힘이 이렇게 크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특히나 저는 연기를 하는 사람이기에, 눈으로 더 많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겠다고 몸으로 감각한 순간이기도 했고요. 말로 다 표현하지 않고도 전해지는 무엇..을 참 좋아하는데! 정작 제가 연기할 때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더 많이 훈련하고 노력해 보겠습니다.. 일상에서도 더 많은 눈 마주침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도 다짐해 보면서요!
과연 거리공연으로 다시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기대하며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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