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07 | 198호 | 구독하기 | 지난호

“맡겼는데 왜 내 일이 줄지 않을까.”
많은 리더가 속으로 이런 의문을 품는다. 분명 업무를 나눠줬다. 김 대리에게 이 일을, 박 대리에게 저 일을 배분했다. 그런데 정작 일이 진행되는 내내 구성원들은 사소한 것까지 “이건 어떻게 할까요?”를 들고 다시 찾아온다. 결정은 결국 하나씩 리더의 책상으로 다시 돌아온다. 일은 분명히 넘겼는데, 일이 줄지 않는다.

지난 글에서 되돌리는 비용이 작은 결정은 구성원에게 내려보내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무엇을 내려보내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으면, 위임은 이렇게 헛돈다. 리더는 맡겼다고 생각하지만 조직은 여전히 리더의 판단 속도에 묶여 있다.
문제의 출발은 위임을 무엇으로 이해하느냐에 있다.
대부분의 리더는 위임을 일을 나눠주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위임이라고 하면 업무 분담표를 떠올린다. 누가 어떤 일을 맡을지를 정하면 위임이 끝났다고 여긴다. 그러나 일을 나눠줘도 결정이 함께 넘어가지 않으면, 구성원은 실행만 할 뿐 판단은 매번 리더에게 되묻는다. 일의 양은 나뉘었지만, 결정의 부하는 고스란히 리더에게 남는다. 이것이 “맡겨 놓고도 바쁜 리더”의 정체다.
그래서 위임을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위임한다는 것은 일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권한, 곧 매번 되묻지 않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범위를 넘기는 것이다. 위임의 진짜 질문은 “이 일을 누가 하느냐”가 아니라 “이 일에서 어디까지를 스스로 정하게 하느냐”이다.
예를 들어 행사 준비를 맡긴다고 하자. 한 리더는 이렇게 말한다. “작년 그 업체에 견적부터 받고, 장소는 본사 근처로 알아보고, 예산안 짜서 나한테 먼저 가져와.” 그는 분명 일을 맡겼고, 친절하게 방향까지 일러줬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을 어떤 순서로 할지, 어디서 멈추고 누구에게 확인할지는 모두 리더가 이미 정해 두었다. 구성원에게 넘어간 것은 실행이지 결정이 아니다. 다른 리더는 이렇게 말한다. “이번 행사의 목표는 고객 50명을 초대하는 거야. 예산은 이 범위 안에서, 세부적인 건 네가 판단해서 진행하고 중요한 것만 공유해줘.” 이때 넘어간 것은 판단이다. 겉으로는 둘 다 “행사를 맡겼다”고 말하지만, 앞의 것은 작업의 이양이고 뒤의 것이 판단과 결정의 위임이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결정을 넘기지 않은 위임이 결국 두 사람 모두를 지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을 아무리 많이 나눠줘도 모든 판단을 리더 자신이 떠안으면, 리더는 조직의 병목이 된다. 구성원이 일을 진행하다 멈출 때마다 리더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고, 리더는 다른 사람의 일을 판단해 주는 것에 시간을 사용한다. 위임이 리더의 부담을 덜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늘리는 역설이 여기서 생긴다.
구성원도 마찬가지다. 결정 권한 없이 일만 받은 사람은 시키는 것만 하는 수동적 실행자가 된다. 자신이 판단할 여지가 없으니 일에 대한 책임감도 옅어지고, 스스로 결정하며 성장할 기회도 생기지 않는다. 분명 바쁘게 일하지만, 그 일은 통해 성장하지 못한다. 결국 조직 전체가 한 사람의 판단력에만 의존하는 구조로 굳어진다.

그렇다면 리더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맡길 때의 언어를 바꿔야 한다. “이것을 해 오세요”가 아니라 “이것을 당신이 정해서 진행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전자는 작업을 지시하는 말이고, 후자는 결정을 넘기는 말이다. 같은 일을 맡기더라도 어느 쪽으로 말하느냐에 따라 구성원이 받는 것은 달라진다.
둘째, 구성원이 되물어 올 때 곧바로 답을 주지 않아야 한다. “이건 어떻게 할까요?”라는 질문에 리더가 즉시 답을 내놓으면, 결정은 다시 리더의 것이 된다. 대신 “당신은 어떻게 하는 것이 맞다고 보나요?”라고 되물을 때, 결정은 비로소 구성원에게 남는다. 리더가 판단을 돌려주는 이 작은 습관이 위임을 완성한다.
셋째, 어디가 구성원의 결정 영역인지를 분명히 말해 주어야 한다. “이 부분은 당신이 정해서 진행하세요”라고 결정의 경계를 짚어 줄 때, 구성원은 자신이 판단해도 되는 범위를 알게 된다. 권한의 경계가 모호하면 구성원은 결국 안전하게 되묻는 쪽을 택하고, 위임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안다고 해서 위임이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말을 바꾸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위임이 어려운 진짜 이유는 결정을 내려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판단하는 편이 더 빠르고 정확하다고 믿기 때문이고, 구성원의 결정이 불러올 결과를 결국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며, 때로는 내가 판단하지 않으면 내 자리가 가벼워진다는 불안 때문이다. 그래서 위임의 가장 큰 장애물은 구성원의 역량이 아니라 리더 자신이다. 결정을 나누는 것이 위임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과, 실제로 그 결정을 내려놓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 인 것이다.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볼 차례다.
나는 일을 맡겼는가, 결정을 맡겼는가. “맡겼는데도 왜 내 일이 줄지 않는가”라고 느낀다면, 혹시 결정은 그대로 쥔 채 일만 넘긴 것은 아닌가. 우리 팀원은 시키는 일을 하는 실행자인가, 아니면 스스로 판단하는 사람인가.
위임은 일을 덜어내는 것이 아니다. 결정을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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