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4 | 200호 | 구독하기

반년 전, 한 팀장이 새로운 영업 채널을 열자고 했다.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의견도 있었고, 기존 채널의 인력을 빼는 것이 부담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그는 시장이 그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확신했고, 팀의 예산 일부와 사람 둘을 그리로 옮겼다.

석 달이 지났을 때 숫자는 오르지 않았지만 아직 초기라고 생각했다. 여섯 달째, 지표는 여전히 제자리다. 그날 회의에서 한 구성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팀장님, 이 채널 계속 가는 게 맞을까요?”
짧은 침묵이 흘렀다. 팀장은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이렇게 답했다. “이제 겨우 자리 잡는 중이잖아. 여기서 접으면 지금까지 쓴 게 다 날아가.”
말이 끝나자 아무도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았다. 회의는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지난 글에서는 구성원에게 맡긴 결정이 틀렸을 때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리더에게 더 어려운 순간은 따로 있다. 틀린 것이 내 결정일 때다. 남의 판단은 어떤 종류의 실패였는지 분류할 수 있지만, 내 판단은 좀처럼 분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 회의실에서 팀장은 무엇을 지키고 있었을까.

그는 사업을 지킨 것이 아니었다.
배리 스토는 오래전 이와 비슷한 상황을 실험으로 확인했다. 참가자들에게 한 사업부에 자금을 배정하게 한 뒤, 결과가 나빴다고 알려주고 다시 투자 기회를 주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집단의 차이였다. 처음 결정을 자신이 내렸던 사람들은, 남이 내린 결정을 이어받은 사람들보다 실패한 쪽에 훨씬 더 많은 돈을 넣었다. 결과가 나쁠수록 더 넣었다. 스토는 이를 확대 몰입(escalation of commitment)이라 부르고, 그 동력을 자기 정당화로 설명했다.[1]
같은 정보 앞에서 판단이 갈린 이유는 정보가 아니라 그 결정이 누구의 것이었느냐에 있었다. 이 실험이 알려주는 것은 단순하다. 리더가 물러서지 못하는 이유는 그 선택이 여전히 옳아 보여서가 아니다. 그 선택이 내 것이기 때문이다.
팀장의 입장에서 보면 더 분명해진다. 그가 채널을 접는다는 것은 숫자 몇 개를 정리하는 일이 아니다.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였던 지난 반년이, 사람을 옮기며 설득했던 시간이, 그때 자신이 했던 “시장이 그쪽으로 간다”는 말이 함께 정리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은 사람들 중에는 처음에 반대했던 이들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그는 사업을 지킨 것이 아니라 자신의 판단을 지켰다. 본인은 그 사실을 몰랐을 것이다. 확대 몰입이 무서운 것은 고집처럼 느껴지지 않고 인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일관성이라는 이름의 명분
여기서 리더는 일관성을 떠올린다.
우리는 신뢰가 일관성에서 나온다고 배웠다. 리더가 말을 자주 바꾸면 조직은 방향을 잃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버티는 리더는 자신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다. 접자고 말하는 순간 가벼운 사람이 될 것 같고, 지금까지의 자신을 부정하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 오해가 하나 있다.
일관성은 같은 선택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같은 기준을 지키는 것이다.
기준이 그대로인데 조건이 달라졌다면, 선택이 바뀌는 것이 오히려 일관된 행동이다. 반대로 조건이 완전히 달라졌는데도 같은 선택을 붙들고 있다면, 그것은 일관성이 아니라 기준을 놓친 상태다. 고집이 일관성의 얼굴을 쓰고 앉아 있는 것이다.
물론 반대편의 위험도 있다. 신호가 나쁠 때마다 방향을 바꾸면 조직은 리더를 예측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되돌리는 것과 흔들리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 흔들리는 것은 불안이 판단을 대신할 때다. 기준 없이, 최근에 들어온 강렬한 정보 하나로 방향이 바뀐다. 그러나 되돌리는 것은 미리 정해 둔 기준에서 벗어났을 때다.
그러니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설계다.
그렇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먼저, 시작할 때 접는 조건을 함께 적어 두는 일이다.
“이 채널은 6개월 안에 신규 계약이 O건에 미치지 못하면 규모를 줄인다.” 진행 중에 세우는 기준은 이미 자기 정당화의 영향을 받는다. 그때는 어떤 기준이든 지금 상황을 조금 더 봐주는 쪽으로 만들어진다. 사전에 정해 둔 기준만이 매몰비용을 이긴다.

다음은 스스로에게 한 문장을 묻는 일이다.
'지금 새로 시작한다면, 나는 이 일을 시작하겠는가?' 이미 쓴 돈과 시간을 모두 지우고 오늘의 정보만 놓고 판단해 보는 것이다. 그 답이 ‘아니다’라면, 지금 계속하는 이유는 전망이 아니라 이미 쓴 비용이다. 이 질문 하나가 과거를 계산에서 떼어낸다.
그 팀장이 그날 회의에서 다르게 말할 수 있었다면, 아마 이런 말이었을 것이다.
“이 채널은 시장이 이 속도로 반응한다는 가정 위에서 시작했다. 여섯 달을 봤는데 그 가정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규모를 줄이려고 한다. 무엇을 잘못 봤는지 같이 정리해 보자.”
여기에는 “내가 틀렸다”는 말이 없다. 무너진 것이 사람이 아니라 가정이기 때문이다. 리더가 이렇게 자기 결정을 접는 모습을 한 번 보여주면, 구성원은 자신의 판단도 접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반대로 리더가 끝까지 버티는 조직에서는 아무도 나쁜 소식을 먼저 꺼내지 않는다.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 지금 붙잡고 있는 일 중에, 전망이 아니라 이미 쓴 비용 때문에 유지하고 있는 것은 없는가?
● 나는 그 일을 시작할 때 멈출 조건을 함께 정해 두었는가?
● 최근 내가 접은 결정이 하나라도 있는가. 없다면, 그것은 내 판단이 늘 맞았기 때문인가?
좋은 리더는 자신의 결정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이 아니다. 지킬 것과 접을 것을 기준으로 가려내는 사람이다.
되돌릴 줄 모르는 확신은 신념이 아니라, 아직 검증되지 않은 고집이다.
[1]Staw, B. M. (1976). Knee-deep in the Big Muddy: A study of escalating commitment to a chosen course of action.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Performance, 16(1), 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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