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얼리, 워치, 주얼리 워치
피아제의 이야기는 1874년, 라꼬또페(La Cote-aux-Fees)에서 시계 무브먼트 제작 회사로 시작된다. 까르띠에, 오드마피게, 브르게, 제니스, 롱진, 바슈롱콩스탕탱 등 주요 시계 브랜드에 무브먼트를 공급하던 피아제는 1943년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시계 완제품을 생산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처음부터 기술력을 갖춘 브랜드로 시작해서일까? 피아제는 뛰어난 제조역량으로 시계 업계서 연이어 기록을 경신하는 놀라운 행보를 보인다. 1957년 선보인 Caliber 9P는 2mm로, 당시에 존재하던 수동 무브먼트 중 가장 얇은 것이었고, 이어서 1960년에 개발된 Caliber 12P는 당시 오토매틱 무브먼트 중 가장 얇은 2.3mm의 두께를 자랑한다.
시계 무브먼트 이야기는 피아제의 주얼리와 무관하지 않다. 극단적으로 얇은 무브먼트는 그 무브먼트를 기반으로 하는 시계의 디자인이 무브먼트의 크기에 제약받지 않을 자유를 부여한다. 그 덕에 정석적인 드레스 워치에 그치지 않고, 피아제는 주얼리 워치로 일찍부터 이름을 날리게 된다. 1960년대에 피아제에서는 시계 목걸이, 시계 브로치, 시계 커프 링크스, 시계 반지 등, 시계와 보석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제품을 만들어낸다. 제네바 근교의 쁠랑레와뜨(Plan-les-Ouates)에 주얼리 생산을 위한 공방을 따로 둘 정도였다.
지금도 피아제는 제네바 공방에서, 시계와 주얼리의 아주 작은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모두 생산할 수 있는 사부아페어(savoir-faire, 즉 노하우를 이야기한다)를 갖추고 있는 것을 큰 자부심으로 여긴다.
시계 하면 달리 아닙니까?
1960년대에 다이아몬드로 가득 장식된 시계로 유명인사들의 사랑을 받은 피아제. 그러나 쉽게 만족하는 성격이 아니었던 피아제 가문은 (가훈이 “필요보다 더 잘할 것” 이었다고 한다!) 혁신에 더욱 박차를 가하여, 세계 최초로 준귀보석으로 만든 시계 다이얼이나, 공작 깃털로 다이얼을 만드는 등 새로운 디자인을 잇따라 제안한다. 당시 재클린 케네디 영부인, 엘리자베스 테일러, 소피아 로렌, 마일즈 데이비스, 앤디 워홀, 살바도르 달리 등 당대의 아이콘이 피아제의 화려하고 우아한 디자인을 사랑했다.
특히 살바도르 달리는 자신의 작품활동의 일환으로 22K 금화를 주조하여 달리도르(Dali d’Or)이라고 불렀는데, 화폐의 뒷면에는 자신과 자신의 영원한 뮤즈이자 아내인 갈라의 초상이 찍혀 있었다. 둘의 초상의 주위에는 월계수와 플뢰르드리스(fleur-de-lys), 그리고 달걀이 장식되어 있다. (달리의 작품에서 달걀은 부활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달리는 이 황금 화폐를 다양한 형태로 모아 작품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친구들한테 빚을 갚을 때도 썼다고 한다.
달리는 피아제에게 이 달리도르 화폐를 활용한 주얼리 컬렉션의 제작을 제안했다. 단 하나의 조건은, “금화를 손상시키지 말 것”. 피아제는 메종의 디자인 역량을 십분 동원해 달리도르를 활용한 시계, 목걸이, 커프링크스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이 달리도르 주얼리는 아직도 수집가들에게 사랑받는다. 각 달리도르 화폐의 측면에는 연번호까지 새겨져 있기에, 한 점 한 점 아주 특별한 작품임이 분명하다.
모던 로맨틱, 피아제 로즈
피아제 메종의 상징인 장미, 피아제 로즈는 생각만큼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지는 않다. 어린 시절부터 장미 재배에 관심이 많았던 이브 피아제(Yves Piaget, 피아제 4대)는 장미 신품종 재배 국제 대회의 심사위원을 오랫동안 역임하며 장미 재배를 후원한 역사가 있다. 1982년,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품종은 이를 기려 <이브 피아제 로즈>가 되는데, 80여개의 꽃잎을 가진, 작약처럼 화려한 이 장미가 메종의 상징이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자연스러운 장미의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 꽃잎을 하나 하나 따로 세공하여 조립한 자연주의적 묘사의 장미부터, 장미꽃의 형상을 선으로 추상화해서 표현한 펜던트까지, 장미라는 상징물에 피아제만의 새로운 미학과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대표 디자인
팰리스(Palace)
피아제의 사부아페어를 대표하는 모티프 중 하나이다. 금으로 만든 주얼리를 수작업으로 불규칙하게 긁어내어 마치 촘촘히 짜인 옷감을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질감을 표현한 것을 “팰리스(Palace)” 또는 “팰리스 데코(Palace Decor)” 이라고 부르는데, 반지와 팔찌뿐만 아니라 시계의 금속 브레이슬릿에도 적용되는 기법이다.
재클린 케네디 전 영부인이 즐겨 착용했던 비취 다이얼의 시계 역시 팰리스 질감이 적용된 브레이슬릿이다. 나탈리 포트먼 주연의 전기 영화 <재키(Jackie, 2016)> 에서 포트먼이 착용한 시계는 실제로 재키 케네디가 착용한 그 시계로, 피아제가 영화를 위해 대여해준 것이다.
금으로 제작된 브레이슬릿의 시계를 착용하기가 부담스러운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포제씨옹” 이나 “피아제 썬라잇” 등, 주얼리 컬렉션의 반지나 귀걸이에도 팰리스 질감이 새겨진 모델이 있으니 일상적으로도 가볍게 즐길 수 있다.
포제씨옹(Possession)
1990년대에 처음 공개된 포제씨옹은, 손가락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반지라는 컨셉에서 시작된다. 안쪽 반지와 바깥쪽 반지가 마찰감 없이 부드럽게 돌아가는 디자인은 피아제가 언제나 자랑하는 기술력과 사부아페어의 증거와도 같다.
반지로 시작된 귀엽고 재치있는 이 디자인은, 이제는 색색의 준보석과 짝지워진 펜던트와 뱅글에도 널리 적용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포제씨옹은 깨끗한 화이트 골드로 만들어진 민반지같은 디자인이 가장 예쁘다. 걸릴 것 없는 매끈한 반지를 왼손 약지에 끼고 무심코 살살 돌리며 사랑하는 사람을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라임라잇 갈라(Limelight Gala)
피아제의 대표 주얼리 워치인 <라임라잇 갈라>는 살바도르 달리의 뮤즈이자 아내인 “갈라” 옐레나 이바노브나 디아코노바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다이아몬드가 베젤을 양쪽으로 부드럽게 감싸고 지나가는 디자인은, 출시된 1973년부터 지금까지 아이코닉한 존재감을 자랑한다. 시계의 케이스는 대체적으로 둥글거나 네모나기 마련인데, 점대칭인 라임라잇 갈라는 단연 독보적이다. 피아제의 인하우스 무브먼트 기술 덕에, 화려하면서도 또 부담스럽지 않은 부피감을 자랑한다.
내년에 150주년을 맞이하는 피아제는 1992년, 프랑스에서의 첫 부틱으로 방돔광장 16번지를 선택했다. 시계만큼 주얼리도 마찬가지로 긴 역사를 자랑하는 유일한 브랜드, 피아제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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