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호] AI가 시나리오를 쓰는 시대, 영화의 다양성을 말하다

🍧 인디&임팩트 33번째 뉴스레터입니다~ 

지난 8월 17일부터 19일까지 인디스페이스에서는 '2023 한국영화 다양성 주간' 행사가 열렸습니다. 한국영화의 다양성과 포용성 확대를 위해 (사)여성영화인모임과 영화진흥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 주관하는 자리였는데요. 올해 2회를 맞이하여 더욱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답니다~ 🔮

한국영화의 7대 포용 지표인 ‘성별’, ‘인종’, ‘연령’, ‘지역’, ‘계급’, ‘장애’, ‘성 정체성’을 기준으로 선정한 6편의 영화 상영과 함께 '미디어 다양성 포럼', '든든 5주년 보고회', '다양성 토크' 등이 열렸는데요. 모든 프로그램마다 많은 관객분들의 열띤 참여와 토론이 이어져 다양성에 대한 높은 사회적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

2023 한국영화 다양성 주간

📰 이번 호 인디&임팩트에서는 플랫폼과 AI 시대에 더욱 그 가치가 중요해지고 있는 영화의 다양성에 대해 질문하는 글을 준비했어요. 콘텐츠의 다양성을 넘어서 영화 산업 전반의 다양성, 포용성을 높이기 위해서 필요한 일이 무엇일지 함께 고민을 나눠보아요~ ✨

편집자주 | 이 글은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 발행하는 <든든칼럼> 8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든든칼럼>은 한국영화의 성평등 이슈를 다룹니다. 

[이슈] AI가 시나리오를 쓰는 시대, 영화의 다양성을 말하다

💌 뉴스레터 33호

지난 5월에 시작된 미국작가조합(WGA)의 파업은 소속 작가 11,500명이 참여하는 16년 만에 일어난 총파업이다.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플랫폼 자본에 대항하는 창작자의 지위와 권리에 대한 요구이자, 앞으로 전면화 될 AI 시대에 예술가들의 노동권을 지키기 위한 선언이다. 파업의 핵심 쟁점 중 하나인 AI를 둘러싼 문제들은 보다 실존적이다. AI 시대에 창작자들은 실직자가 되거나 AI의 엉성한 대본을 각색하는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미 넷플릭스 등 거대 제작사들이 시나리오를 위한 생성형 AI 툴 개발을 완료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AI 시대 노동의 문제는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의 문제를 내포한다. 집단과 조직의 정체성이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을수록 더 창조적이고 질적으로 더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듯이, 영화를 비롯한 콘텐츠 산업은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의 창조적인 에너지를 바탕으로 움직인다. 제작인력의 다양한 정체성은 콘텐츠의 다양성으로 나타난다. 또한 영화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은 자원의 독점과 양극화 해소, 평등하고 공정한 분배를 통해 가능하다. AI 시대 우리는 이러한 가치들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우선, 콘텐츠의 다양성 측면에서 살펴보자.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는 축적된 데이터의 패턴과 관계를 스스로 학습해서 새로운 합성 데이터를 생성한다. 수많은 시나리오 작품들을 AI에 학습시키는 과정처럼 생성형 AI의 핵심은 데이터에 있다. 그런데 그 데이터에 ‘편향(bias)’이 있다면? 인공지능 연구자들은 AI가 특정한 정치 성향 또는 특정 편향을 띠는 것은 학습하는 데이터에 이미 특정한 경향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후변화, 동성결혼, 이민 문제 등에 대한 AI 분석 결과,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2016년부터 인터넷에 올라온 데이터를 중심으로 학습한 인공지능은 정치적으로 더 극단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들어 발표된 콘텐츠산업 분야의 ‘다양성 리포트’들을 살펴보면, 성별, 인종, 연령, 종교, 소수자 등에 대한 왜곡 재현이나 특정 문화에 대한 혐오 등 콘텐츠의 다양성 측면에서 한계들이 여전히 지적되고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축적된 작품 데이터의 다양성 정도가 결국 AI에도 그대로 반영될 것이며 소외될 위험이 높은 그룹의 대표성은 더 부족해질 거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다. 콘텐츠의 다양성은 급속도로 변화하는 기술 혁신의 시대에도 중요한 가치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람’에 의해 계속 추구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파이낸셜타임즈 등 해외 언론들은 “AI에 기사 작성을 맡겨서는 안 되며, ‘인간’에 의해 계속 작성되고 보도돼야 한다”는 AI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다양성은 콘텐츠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화를 비롯한 콘텐츠 산업 생태계의 다양성의 문제를 포함하는 다중적인 다양성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한국영화에서 다양성의 위기는 산업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 측면이 크다. 영화 시장의 독과점 체제,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구조적 배제 등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되었다. 국내 산업의 구조적 모순도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이제는 넷플릭스와 같은 해외 OTT 플랫폼의 아웃소싱 기지로 전락할 거라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 미국 작가조합파업처럼 수익 배분이나 노동권 관련하여 공동의 목소리를 내기도 쉽지 않은 구조다. 거대 플랫폼에 대한 의존성이 심화되면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시켜줄 다양성이 위축될 뿐만 아니라 수익의 공정한 배분 등 경제적 정의를 실현하기도 어려워진다. 이는 결국 한국 영화산업, 콘텐츠 분야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핵심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전 세계 플랫폼 기업들은 지난 몇 년간 다양성과 포용의 가치를 내세우면서 다양성 책임자 고용, 자사 콘텐츠의 포용성을 정기적으로 평가하는 다양성 보고서 발표, 창작기금 확대 등 자체적으로 콘텐츠 생태계의 다양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진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넷플릭스는 다양성 프로젝트를 중단하고 다큐멘터리 등에 대한 제작 투자 및 구매를 축소하고 있으며, 포용 전략 책임자를 해고했다. 다른 OTT에서도 다양성이 위축되는 경향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도 거대 플랫폼 기업들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으나 이에 대한 사회적 규제는 빠르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이제 플랫폼 기업들의 선의에만 기대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프랑스, 독일, 호주, 캐나다 등과 같은 나라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자국 콘텐츠산업을 보호하고 다양성을 강화하기 위해 글로벌 OTT 기업들에 대한 규제 및 공적 기금 납부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28호] 글로벌 OTT에 대한 기금징수와 사회적 책임)

캐나다에서는 지난 4월 온라인스트리밍법(Canadian Online Streaming Act : C-11)이 통과됐다. 넷플릭스 외에도 유튜브, 스포티파이와 같은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기업에게 캐나다 콘텐츠의 대한 보조금 지급 및 다양성에 대한 지원을 의무화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에서 주목할 점은 온라인스트리밍 기업들을 포함한 미디어들이 “인종적 차이가 있는 커뮤니티, 다양한 민족 문화적 배경, 사회 경제적 지위, 능력 및 장애, 성적 지향, 성 정체성, 연령 등 다양한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캐나다인의 요구와 이익에 부응해야 한다”는 핵심 가치를 법안에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양성, 포용과 같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콘텐츠의 다양성을 위한 노력을 넘어 배급, 유통 등 산업 생태계 전반에서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질 필요가 있다. 또한 조직의 내부 시스템 및 국가적 수준의 제도, 정책 개선을 위한 지속적인 조치가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가족을 세상과 연결하는 코다의 성장 이야기를 담은 음악영화 <코다>(2021)는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조연상, 각본상을 받았다. 청각장애인이자 배우인 트로이 코처의 수상으로 더 큰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영화 <코다>의 오스카상 수상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장애인들의 70% 이상이 스크린에서 장애인의 정체성이 제대로 표현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며, 장애인 캐릭터의 수는 증가했지만 그 역할의 대부분은 여전히 비장애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진정한 변화는 한 편의 영화를 넘어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다층적 차원에서 다양성을 위한 조치들이 필요하며, 이는 콘텐츠 산업 생태계는 물론 결국 사회 전체의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증진시킬 것이다. 플랫폼과 AI의 시대에 지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다양성의 권리를 위한 연대다. 🔗

💫 글쓴이. 박채은 

3도 4촌의 노마드 생활자이자 영화프로듀서, 연구활동가로 살고 있다. 

본 뉴스레터는 미디어운동에 대해 새롭게 질문하고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여러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찾아가기 위해 발행됩니다.

미디어 환경이 빠르게 변화하고 각종 담론과 현상이 범람하는 가운데 과연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무엇인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있어 정작 중요하게 필요한 미디어의 변화는 무엇인지 관점을 제공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이름에 맞게 ‘임팩트’ 있는 뉴스레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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