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호] 영화제 수난시대

💌 뉴스레터 76호

🎦 인디&임팩트 76호에서는 최근 심각하게 퇴행하고 있는 영화제 지원정책의 문제점을 지역에서 가장 오랫동안 독립영화제를 개최해온 정동진독립영화제에게 들어보았습니다!😠

😾올해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제 지원사업을 작년에 비해 지원 금액으로는 1/2 수준, 지원 영화제 수로는 1/4 수준으로 대폭 축소하여 운영하였는데요. 이에 따라 그동안 지역 곳곳에서 척박한 문화 환경을 다채롭게 바꿔나가던 많은 영화제들이 그야말로 수난시대를 겪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내년에는 영화진흥위원회가 50년간 개최해오던 서울독립영화제 예산마저 전액 삭감되었는데요. 영화제가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인정과 제대로 된 지원정책이 하루 빨리 수립되길 바랍니다. 🎋

이번 호도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다음 호에 또 만나요~

[이슈] 영화제 수난시대

▲ 국회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영화 생태계를 위한 영화제 정책 토론회"(2024.9.20) (ⓒ필자)

저는 정동진독립영화제 사무국에서 12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입버릇처럼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이것보다 더 없을 때도 다 했는데, 하는 마음가짐으로 지금까지 왔지만, 시간이 갈수록 영화제 하나 건사하는 게 쉽지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2024년은 영화산업 관련 국가 예산의 변화가 크게 영향을 끼치면서 유독 고된 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2024년의 고됨은 지난해 영화제 관련 예산 계획을 보면서 예고된 어려움이었고, 올해는 그것을 묵묵히 견딘 것입니다. 2025년의 전망도 그리 밝아 보이지는 않는데, 나쁜 일도 처음엔 그럴 수 있다손 치더라도 두 번째에도 똑같이 나빠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은 비극일 것입니다.

영화에 관심이 있거나 축제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난해 9월에 국내개최영화제연대가 발표했던 2024년 영화제 지원 예산 삭감 철회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기억하실 겁니다. 이 공동성명은 2024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영화제를 지원하는 예산을 2023년 약 56억 원에서 2024년 약 28억 원으로 50%가량 삭감하고, 영화제를 규모별 세 구간으로 차이를 두고 심사 평가를 해서 40여 개의 영화제를 지원하던 기준에서 국내‧국제영화제를 통합하여 10여 개의 영화제만 지원하겠다는 방침에 반대하는 성명이었습니다. 영화와 영화제를 사랑하는 많은 단체와 개인들의 철회지지 성명이 이어지고, 여러 루트를 통해 예산을 복구하고 사업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2024년 사업은 변동 없이 시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제들은 예상했던 어려움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정동진독립영화제도 줄어든 예산으로 새롭게 설계된 ‘국내외영화제육성지원사업’에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국내 개최되는 모든 영화제를 같은 심사 기준에서 10개 내외로 선발한다는 기준 아래, 시원하게 탈락했습니다.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올해 26회를 맞아 지역 독립영화제 중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입니다. 이전에 지원을 받던 ‘국내영화제육성지원사업’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아 사업 시행 이래 꾸준히 지원을 받아오기도 했습니다. 그 덕에 2023년에는 지자체의 지원도, 영진위의 지원도 늘어난 터라 의욕적으로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여러 사업을 새롭게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해가 바뀌자마자 손바닥 뒤집듯이 예산이 대폭 줄어들어 정동진독립영화제가 고민하던 것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전체 예산이 지난해 대비 30% 정도가 줄어들면서 정동진 주민 상영회도, 마땅한 영화 교육기관이 없는 지역에서 영화 인재들을 길러내기 위한 강릉 지역영화 아카데미 사업도 접고, 지난해 처음으로 편수를 늘렸던 정동진독립영화제 단편영화 제작지원 사업의 지원 편수도 한 해만에 도로 줄여야만 했습니다. 최근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코로나 이후 관객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이것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비용과 리스크가 들어가는 일이라, 최소한 영화제로서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면 영화 상영 이외에 우리가 지역에서 필요한 부가적인 사업을 운용할 여력이 없는 것입니다. 정동진독립영화제는 2023년 약 8,000명 선의 관객에서 2024년 약 14,000명의 관객 수를 기록했습니다.

솔직히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이번 고비를 운이 좋게도 준수한 형태로 버텨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눈에 보이는 관객 수 같은 것은 마치 지원이 없이도 영화제가 잘 될 수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사례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통 예산과 행정에 있는 사람들은 영화제의 성과를 외적인 부분, 상영작 수, 관객 수, 영화제를 통해 지역에 미친 경제 효과 같은 정량적인 성과로만 판단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제를 직접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평가 범위가 그보다 넓어집니다. 정량적인 평가 항목은 (달성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영화제로서 당연히 수행해야 하는 기본적인 지표들입니다. 그렇기에 정량적 지표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영화제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상태로, 안정된 환경 속에서 영화제의 발전된 목표들을 건강하게 이루어나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결과를 만들어가는 데 ‘어떻게’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영화제는 한해 하고 말 것이 아니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개최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화제의 목표와 기능은 지속되어야 그 효과가 발휘됩니다.

영화제들이 예상했던, 그리고 감당해야 했던 예산 축소의 여파는 지난 9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지속가능한 영화 생태계를 위한 영화제 정책 토론회’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정책 토론회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영진위를 통해서 설계되고 집행되는 영화제 지원사업 예산 증액의 필요성을 피력하고자 만든 자리였습니다. 지난해 성명을 발표한 영화제연대 활동에 손을 보탰던 영화제 스태프들이 모여 영화제정책모임을 구성하고, 이대로는 지속할 수 없다는 강력한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입법과 행정기관에 구체적인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 만든 자리였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대구단편영화제의 스태프들이 2024년 영화제를 개최한 성과와 어려움을 나누었습니다. 영진위의 지원을 받은 영화제도, 예년 보다 덜 받은 영화제도, 전혀 받지 못한 영화제도 있었지만, 각자의 고충을 각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할 만했습니다. 특히 10개 영화제에 거의 들지 못한 지역 기반 영화제들, 자본적인 기반이 없이 독립영화제를 개최하는 영화제들의 사정은 배로 나빠져 있었기에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줄어든 예산이지만 최대한 예년 수준의 프로그램 규모를 유지하려고 했고, 인력을 줄이고, 인건비를 줄여가면서, 혹은 무상으로 일을 하기도 하면서 올해의 영화제를 개최해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대로 간다면 올해는 어떻게든 버텨내지만, 내년은 장담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책에는 분명한 철학과 방향성을 가지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최근의 영화제 정책, 영화 정책에는 K-문화산업에 대한 노골적인 욕망만 있을 뿐, 영화계 전체가 상생하며 발전할 방향성을 찾아보기 어렵고, 이를 향해 가는 실질적인 지원 정책 역시 그래야만 하는 근거가 없다시피 합니다. 예산이 절반이 삭감되었는데 지원하는 영화제는 왜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에 그쳐야만 하는지. 전 세계의 영화를 국내에 선보이고 창작자들과 교류하는 국제영화제가 왜 한국영화의 프리미어 상영을 기준으로 영화제 기획을 평가받아야 하는지. 정동진독립영화제와 같은 지역영화제가 어째서 부산, 전주국제영화제와 같은 선상에서 산업적인 영향력으로 평가받아야 하는지. 무엇보다도 어째서 영진위를 비롯한 상부 행정기관은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우려하던 일을 그대로 겪고야 마는 것인지, 정말 왜 이렇게 되고야 말았는지 그 답을 알고 싶습니다.

올해 50주년을 맞이하는 서울독립영화제의 2025년도 예산이 전액 삭감이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서울독립영화제는 영진위와 (사)한국독립영화협회가 공동주최하는 영화제로, 독립영화 발전을 위한 민관의 협치로 이루어진 상징적이고 유서 깊은 영화제입니다. 2025년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예산 삭감에 대한 공식적인 통보도 없이 일방적으로 50년의 역사가 담긴 사업의 지원이 없어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어려운 일입니다. 영화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행정가들을 만나면 많이 듣는 얘기 중의 하나가 있습니다. 영화제는 영화인들만의 축제가 아니냐는 것입니다. 영화제는 영화인만의 축제가 아닙니다. 음악제나 무용제, 체육대회 같은 것이 그 분야 플레이어만의 축제가 아닌 것처럼, 영화제도 늘 관객과 영화계 전체, 한국의 문화산업 전반과 함께 성장해 왔습니다. 그리고 전국의 수많은 영화제가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각자의 때에 각 지역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떠올려 보면 지금보다 더 잘 설계되고 충분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부디 올해의 어려움이 내년에도 이어지지 않도록 여러분의 관심과 지지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