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호] 다큐멘터리 제작의 윤리적 고민, 어디서 답을 찾을까

💌 뉴스레터 118호

🎥 다큐멘터리 제작의 윤리적 고민,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다뤄야 할까요? 🤔

이번 인디&임팩트에서는 미국 다큐멘터리 창작자그룹 DAWG(Documentary Accountability Working Group)이 만든 교육 가이드 〈From Reflection to Release〉를 소개합니다! ✨

📐 ‘윤리’, ‘가치’, ‘관계’를 중심에 두고 제작의 전 과정을 돌아보는 DAWG의 접근법을 통해, 창작자로서 우리가 마주한 질문들—“누구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할 것인가?”, “책임 있는 창작은 무엇일까?”—에 대한 실마리를 함께 찾아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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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제작의 윤리적 고민, 어디서 답을 찾을까

“이 이야기, 어디까지 밝혀도 될까?”

올 초, 새로운 다큐멘터리 프로젝트의 기획개발을 시작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처음에 화면에 나오는 것도, 실명을 쓰는 것도 원치 않았다. 감독과 오랜 시간 라포르(rapport)를 쌓는 과정에서 마음을 조금씩 열어가며 겨우 촬영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 여전히 조심스러운 지점이 많다.

해당 출연자에게는 법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얽혀 있는 여러 문제가 있다. 이런 복잡한 상황을 다큐멘터리에 어떻게 담아야 할까? 아니, 담아도 될까? 어디까지 밝히는 것이 참여자를 지키는 일이고, 어디부터가 위험에 빠뜨리는 일일까?

신입 프로듀서인 나는 매일 이런 질문과 씨름한다. 촬영 현장에서 감독이 참여자에게 한 발 더 다가갈 때, 나는 한 발짝 물러서서 묻는다. “이 질문을 지금 해도 괜찮을까?”. “이 장면이 나중에 참여자에게 해가 되지는 않을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위험은 없을까?” 앞서간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조언을 얻기도 하지만, 결국은 ‘케바케(case by case)’라는 답이 돌아올 때가 많다. 그러던 중 DAWG(Documentary Accountability Working Group)가 제시한 가이드를 발견했다.

“From Reflection to Release” - 다큐멘터리 윤리의 나침반

▲ DAWG 강의안 표지 ⓒDAWG

DAWG 강의안은 미국의 다큐멘터리 제작자, 학자, 참여자들이 함께 만든 윤리 교육 커리큘럼이다. ‘From Reflection to Release: A Framework for Values, Ethics, and Accountability in Nonfiction Filmmaking (성찰에서 개봉까지: 논픽션 영화 제작의 가치, 윤리, 책임을 위한 프레임워크)’ 즉, 처음 기획 단계의 성찰(Reflection)부터 완성된 영화의 배급(Release)까지, 제작의 전 과정에서 윤리를 고민하자는 것이다.

이 강의 가이드는 읽는 내내 내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이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것인가?”, “당신의 가치관은 무엇이고, 그 가치들은 어디서 온 것인가?”, “중요한 가치관이 충돌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참여자와의 신뢰를 어떻게 쌓을 것인가?”

다시, 제작 중인 프로젝트로 돌아가 보자. 취약한 상황에 있는 출연자의 삶을 담는 것이 과연 그에게 도움이 될까? 그의 이야기가 공개되었을 때,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그와 관계 맺고 있는 사람들은 괜찮을까? ‘흥미로운 소재’, ‘좋은 이야기’라는 이유만으로 촬영을 밀어붙일 순 없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나는 계속 질문해야 하고, 그 끝에 관객과 만나게 될 작품은 결국 내가 던진 질문들에 대한 답일 터이다.

DAWG 강의안의 핵심은 이렇게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참여자를 중심에 둔다. 그들은 단순히 ‘소재’가 아니라 이야기의 주인이며,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빌려서’ 전달하는 사람이다. 둘째, 권력관계를 직시한다. 카메라를 든 사람과 카메라 앞에 선 사람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권력의 불균형이 있다. 이를 인정하고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돌봄(care)의 윤리를 실천한다. 출연자뿐 아니라 스태프, 그리고 영화를 볼 관객까지, 모두를 돌보는 제작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내일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실천적 도구들

▲ 강의안 구성 모습 – 5주차: 출연자와의 관계 ⓒDAWG

DAWG 강의안은 총 15주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제작의 6단계(Reflection/성찰 → Research & Development/조사&기획 → Pre-production/프리프로덕션 → Production/촬영 → Post-production/후반 작업 → Release &Impact/개봉 및 사회적 파급)를 체계적으로 다룬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각 주차마다 액티비티(Activities), 스크리닝(Screenings), 리스닝(Listening), 리딩(Reading), 성찰(Reflection)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단순한 이론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해볼 수 있는 활동, 함께 볼 영화, 팟캐스트, 읽을 논문과 에세이, 그리고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좋을 질문까지 모두 제공한다. 이 모든 자료가 부록(Appendix)에 정리되어 있어, 시놉시스가 포함된 영화 목록, 추천 논문과 에세이, 팟캐스트 링크, 주차별 성찰 질문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영화학교 교수와 강사든, 제작사 내부 스터디든, 나처럼 혼자 공부하는 신입 프로듀서든, 누구나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최근 한국 다큐멘터리 현장에서 제작진 사이의 갈등이 공론화되기도 했고, 영화 상영 이후 내부 문제로 인한 2차 피해 사례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이는 개별 제작진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업계 전체에 체계적인 윤리 가이드라인과 교육이 부재한 것은 아닌지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배우는 사람으로서, 함께 길을 찾아가기

DAWG 강의안을 같은 산업에 종사하는 지인들에게 소개하고 공유하면서, “이런 강의가 있다면 내가 제일 먼저 듣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헤매고, 불안하고, 배워가는 중이다. 이런 내게, DAWG가 제시하는 가이드는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게다가 혼자가 아니라 전세계 수많은 제작자들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참여하는 사람들의 안전과 존엄이 ‘좋은 영화’보다 우선한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한국 다큐멘터리 현장에도 이런 논의가 더 활발해지면 좋겠다. 제작자 모임에서, 영화학교에서, 펀딩 심사 기준에서, 윤리적 제작에 대한 대화가 자연스럽게 오가는 문화 말이다. 혹자는 아직 순진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믿는다. 윤리적인 제작 과정이 결국 좋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을. 출연자가 영화를 관람하고 “내 이야기가 이렇게 전달되어 기쁘다”고 말할 때의 희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