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표기법 X 월말 산문] 2026-3月

솔직히 말할게요

2026.03.31 | 조회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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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이미지

↑표기식의 계절 표기법↑

 

-

솔직한 나무

 

 

🌱

3월

 

 

구독자 님께,

 

[인터뷰&레터] 매달 마지막 편지에는 두 개의 코너가 실립니다. [표기식의 계절 표기법]. 사진가 표기식의 카메라가 채집한 이달의 계절을 연재합니다. 그는 어디로든 떠나는 사진가입니다. 모바일로 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될 수 있으면 PC의 큰 화면으로 감상하시길 추천합니다. [임유청의 월말 산문]. 이번 달에 다녀간 하나의 생각에 관해 씁니다. 

[계절 표기법]과 [월말 산문]은 한 개의 단어를 공유합니다. [인터뷰&레터] 이달의 작가와의 시간 속에서 건져올린 단어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트랙에서 움직이며, 종종 마주칩니다.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와 보낸 3월. 
이달에 채집한 단어는 ‘솔직함’입니다. 


 

*

↓임유청의 월말 산문↓

 

-

 

솔직함에 관한 몇 가지 생각

 

1.

3월 한 달. 나는 영화 저널리스트 이은선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은선의 책을 읽고, 이은선의 SNS를 (어쩐지 떳떳하게) 살피고, 은선과 대화하고, 그 대화를 녹음하고, 녹음한 대화에서 몇 가지를 추리고, 같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카톡과 메일을 주고받았으며 이은선에 대한 글을 쓰고 이은선을 주제로 한 모임을 만들었다. 그의 곁에서 마음껏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 존경하는 동료이자 좋아하는 친구인 은선은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은 솔직한 사람은 못 된다고. 거짓말을 한다거나 누구를 속인다는 뜻이 아니라(은선은 오히려 그런 일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처럼 보인다) ‘자기 이야기’라고 이름 붙일 만한 에피소드를 쉽게 꺼내놓는 편은 아니라고. 약간은 체념한 듯, 노력했는데 잘 안됐습니다,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솔직하지 않다고 말하는 거, 엄청나게 솔직한 거 아닌가? 

내가 아는 그는 남의 눈에 들기 위해 마음에 없는 찬사를 건네지 않고, 설령 했다 해도 꽤 괴로워할 사람이다. 거짓 없는 태도를 솔직함이라 한다면, 그는 매우 솔직한 사람이다. 다만 그는 사려깊은 이다. 털어놓지 않는 이야기들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내 인생’이란 걸 얘기하기 위해 등장시킬 수밖에 없는 타인들,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다 말하기엔 너무 긴 세부 사항들, 자칫 실수로 오해의 여지를 남길지도 모르는 뉘앙스들이 이유일 것이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 차라리 ‘솔직하지 않은 사람’이 되길 선택한 그에게 나는 ‘솔직함에 대한 기준이 높은 사람’이라고, 본인은 결코 쓰지 않을 설명을 붙이고 싶다.  

 

2.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한때는 비밀을 공유해야지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그 비밀은 부끄러운 일, 슬픈 일, 두려운 일, 불행한 일, 말하자면 내 인생의 사건들이었다. 크고 무섭던 그 옛날 비밀들은 말과 생활 속에서 동글동글 닳고 바래, 이젠 오래 갖고 있던 조약돌 같이 됐다. 화분 위에 올려두고 까먹었다가 때때로 어, 여기 뒀었네, 하는 정도로 지니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말할 수 있는 것들로 내가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제 비밀을 나누며 친구를 사귀는 일은 줄었지만, 비밀이 비밀이 아니게 되는 동안 자라고 변화한 내 생각과 행동은 날 공통된 무언가를 지닌 사람들 곁으로 이끄는 것 같다. 그리고 이 편이 지금 내게 편안하다.  

 

3. 

그럼에도 굳이 한번 꺼내볼까. (**검색 중**)

 

4.

인생에서 풍파가 사라진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요즘 진짜 비밀은 이런 것들이다. 남에게 잘 보이려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는 나, 지금 욕하는 상대가 사실 부러운 나,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나, 과대평가와 과소평가를 오가느라 도무지 적절한 궤도에 안착하지 못하는 나,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다고 말하면서 실은 평균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무진장 애쓰는 나, 그러면서 평균은 허구야! 라고 외치는 나. 이런 내 모습을 이미 다들 알고 있을까 봐 걱정하는 나. 그치만 사람들에 내게 관심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나. 동시에 슬퍼하는 나. 아무튼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나.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말은 어쩌면 이런 거다. 나는 허세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닌 거 같습니다. 왜냐면 자신감이 실은 콩알만 하기 때문이죠. 와중에 마음먹은 대로 살지 않으면 불행한 기분이 듭니다. (여기서부턴 혼잣말) 대체 나는 왜 이렇게 생겨 먹었을까……. 이렇게 썼다 치자. 썼다 치자가 아니고 썼는데, 아무튼 

 

5.

누가 이런 걸 원한단 말인가? 이런 이슈는 그저 때 되면 돌아오는 봄철 비염과 같다. 해결하면 발생하고 해결하면 또 발생하는 주기적 관리 대상임을 나 정도 인생 경력이면 알게 된다. 더 이상 재밌지 않은 비밀들. 솔직해봤자 재미가 없을 거면 솔직한 게 솔직히 큰 의미가 있겠나, 싶은

(사람이 왜 이렇게 됐지) 

이게 요즘 나. 

 

2026/3/30

 

 

🎧NEWS! 

 

  1. [인터뷰&레터] 시즌2 '이야기 곁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 두 번째로 모시는 작가는 에세이집 『오춘실의 사계절』의 (🥁🥁🥁)김효선 작가입니다! (🎉🎉🎉) 온라인 서점 알라딘 소설 분야 (올해로) 17년차 MD, "책 읽고 수영하는 사람" 인 김효선 작가와 함께 할 4월의 첫 번째 레터는 4월 2일 발송 예정입니다. 구독자 님, 첫 번째 레터에서 공개될 모임 소식도 놓치지 마세요!
  2. "16년째 국내 문학을 열정적으로 소개해온 온라인서점 MD 김효선의 범상치 않은 데뷔작. 엄마 오춘실과 함께 헤엄치며 성실하게 귀 기울인 한 사람의 일대기를 사계절의 변화무쌍한 풍경에 담아낸 에세이이다. 50년을 쉼 없이 일하다 은퇴한 엄마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시간 위로 “억세게 고생”한 오춘실의 파란만장한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에게 닿으려 애쓴 마음이 빈틈없이 배어 있는 문장은 읽는 이의 마음까지 다정하게 물들인다. 일과 인간관계에 붙들린 중력의 세계에서 지친 몸과 다친 마음을 닦아 주는 부력의 세계로 이끄는 이야기의 신비가 갈피마다 작동한다."- 『오춘실의 사계절』책 소개 중 (도서 정보는 여기서)
  3. 텍스트 기획자 ㅇㅇㅊ의 일주일 즐거운 생활 팟캐스트 [까마귀의 모음: 스몰톡]도 매주 발행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25일,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와의 모임 후기도 최신 12화에서 살짝 들려드려요. 팟빵과 애플 팟캐스트, 스포티파이에서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구독과 댓글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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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 분주했던 3월, 마무리는 토토노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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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꼬마정어리의 프로필 이미지

    꼬마정어리

    0
    2일 전

    4.의 비밀들이 재미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건 어쩌면 그게 나만의 '특별한' 비밀이 아니라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 고백하신 비밀들........ 실은 세상 여러 사람들(모두...는 아닐지라도)의 디폴트 길티값으로...? 입 밖에 꺼낼 필요나 엄두를 못 느끼다가 이렇게 누가 대신 나열해 준 걸 보면서 '어머... 누가 내 일기 대신 써줬나봐! 🧏🏻‍♀️' 하는 사람이 여기 있습니다요. 그러다 생각해보니 어느 시절 나의 비밀은 누군가의 호기심을 사는 용도였다면 요즘은 공감을 얻는데 주로 써먹는 것 같아요. 그런 기분 또한 비밀이라면 비밀일까요? 일종의 영업비밀인가 ㅋㅋ 그런 의미에서 (??) 저는 요즘, 말할 때와 쓸 때의 단어는 꽤나 열심히 고르는데 생활은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게 또 한 축의 비밀이 된 것 같아요. 틀린 용어의 거북함에 비해서 일상의 망친 면은 괜찮게 넘어가는 삶의 면면이요. 그건 아무도 모르니까 헤헤. 이런 기분도 환절기 비염처럼 왔다 가는거겠죠? 하여간, 오늘도 좋은 사진과 재밌는 이야기 보내주신 덕분에 왠지 평균에 뒤처지지 않은 기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말씀 꼭 꼭 전하며...!! 서울에도 봄이 왔다는데 시작하는 꽃들 많이 보시고 틈틈이 좋은 공기 마실 수 있기를 멀리서 바랍니다 🌿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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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yoseon

    0
    1일 전

    유청님 효선이에요. 저도 내 비밀 나의 못남 나의 싫어함 등등 온갖 뾰족함으로 날 세우고 사십 평생 나를 깎고 볶았더니 지금의 저 생긴 모양이 되었어요. 그리고 제 생긴 모양대로 굴러굴러 왔더니 여기고 4월이고 유청님과 대화할 수 있게 되었네요. 잘 읽었습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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