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채원입니다.
차 정기 점검을 몇 달째 미루고 있었어요. 정비소에 전화해서 날짜를 잡아야 하는 게 너무너무 귀찮았거든요.
그래서, AI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대신 시켜봤습니다. 다음 날 아침 9시에 정비소 시작하자마자 전화해서 예약하라고 시켜뒀어요. 이게 될지 진짜 궁금하기도 하고, 처음엔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정비 예약 완료' 문자가 오는 거 아니겠어요? 에이닷처럼 통화 내역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어서 살펴봤더니, AI는 정비소에 전화를 걸어 자기가 AI 비서라고 소개하고 용건을 말했어요. 제가 요청한 날짜가 안 된다고 하니 스스로 판단해서 가능한 다른 날짜 후보를 받아왔고, 확인 문자를 받을 수 있는지, 갈 때 챙겨야 할 게 있는지까지 물어봤어요. 저는 통화가 끝난 뒤 통화 내역만 확인했고요. 너무 속이 시원했습니다.

요즘 이렇게 대신 일해주는 AI 에이전트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그중 메타의 뮤즈(Muse)와 피클(Pickle)을 써보고 있는데요. 써볼수록 "이것도 되네?"만큼 "이것까지 알아?"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그 두 가지를 같이 적어보려고 해요.
미루던 일, 맡겨봤더니 됐다
① 몰랐던 구독 해지 (뮤즈) 예전에 쓰던 구글 계정에서 구글 AI 유료 구독이 매달 2만 원 넘게 결제되고 있었더라고요. 해지했다고 생각했는데 안 했었고, 나가는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뮤즈한테 맡겼더니 해지까지 끝냈습니다.
② iCloud 요금 줄이기 (뮤즈) iCloud 용량은 대부분 사진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저는 구글 포토도 쓰고 있거든요. iCloud 비용을 낮춰봐야겠다 싶어서 뮤즈한테 사진만 구글 포토로 옮기게 하고, 월 1만 원 넘게 나가던 iCloud 요금제를 절반 정도로 낮추게 했더니 알아서 데이터 옮기는 법도 찾아서 실행해줬습니다.
③ 네이버페이 리뷰 쓰고 적립금 받기 (피클) 피클은 뮤즈와 달리 한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앱(코레일, 네이버, 쿠팡, 정부24 등)을 바로 연결해둘 수 있었는데요. 궁금해서 네이버를 연결해봤더니, 미뤄둔 리뷰를 알아서 쓰고 적립금을 받아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시켜봤는데 편했습니다.
아무래도 맨 처음 시키게 되는 일은 귀찮아서 미루던 일, 놓쳐서 돈이 새어나가던 것을 정리하는 일이었습니다. AI 비서가 제일 먼저 쓸모 있었던 곳이 의외로 똑똑함이 필요한 일보단 귀찮음을 해결해주는 일이라는 게 아이러니하죠.(웃음)
참고로 저는 이렇게 귀찮은 일부터 시켰는데, 해외에서는 뮤즈를 쇼핑에 가장 많이 쓴다고 합니다. 10월 실적 발표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뮤즈 사용자 4명 중 1명 이상이 쇼핑을 맡기고 평균 구매액이 200달러가 넘는대요. 출시 첫 주에는 거래가 예상보다 많아서 결제 회사 Stripe와 결제 한도를 올려야 했다고 하고요. (실적 발표 원문)
AI 에이전트로 배달 주문도 시키고, 기차표 결제도 맡기는 분들도 있었어요. 다만 저는 아직 결제까지는 맡겨보지 못했어요. 지갑을 맡기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믿음이 필요한 일 같아서요.
이젠, AI가 전화도 건다
피클은 뮤즈와 비슷한 개인 AI 비서인데, 직접 전화를 건다는 점이 달라서 써보게 됐어요.
차량 정비소 예약보다 더 놀라웠던 건 다른 분의 후기였어요. 중국 쇼핑몰에서 뭔가 꼬이는 바람에 본인 인증을 해야 했는데, 직접은 할 수가 없었대요. 그래서 피클한테 맡겼더니, 중국어로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상황을 확인하고, 주인은 영어로 인증하게 해달라고 요청해서 홍콩 지사로 연결받아 영어로 인증을 마쳤다고 해요.
AI는 언어를 가리지 않으니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싶어서 신기했어요. 여기서 더 발전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AI의 전화가 자연스러워질수록, 전화로만 받는 식당 예약이나 포장 주문도 다 맡길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시키기 전에 먼저 챙겨주는 AI
AI 에이전트는, 시켰을 때에만 답하는 일반 챗봇과 달리 '먼저 말을 걸어온다'는 점이 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피클, 뮤즈 둘 다 제가 말을 걸지 않아도 메일함을 보고 할 일을 먼저 알려줬어요.
메일로 온 것 중에 제가 신청할 것 같은 게 있으면 "이거 신청하세요, 언제까지예요"라고 마감일을 짚어주더라고요. 그 메시지를 무시하면 그 뒤에 리마인드도 알아서 줬습니다. 결제 예정 메일이 오면 안 쓰면 미리 해지하라고 알려주기도 하고, 피클은 아침마다 알아서 날씨를 체크해서 옷차림까지 챙겨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하고요.
그런데, 내가 말하기 전에 알아차리는 건 좀 꺼림칙하다
먼저 챙겨주는 AI가 처음엔 편했는데 반대로 조금 꺼림칙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어떤 분은 피클에게 메일을 연결해 줬더니, 퇴근길에 이브닝 근무 고생했다고 메시지가 왔대요. 간호사인 걸 알려준 적도 없었는데요. 알고 보니 메일에 있는 근무표 보고 스스로 메모리에 다 저장해뒀더라고요. 알려주기도 전에요. (원글)
또 다른 분은, 남편의 애칭을 알려준 적이 없는데 피클이 이미 알고 있어서 놀랐대요. 피클이 메일을 보고 스스로 정보를 조합하고 유추한 거죠. 시킨 적이 없는데, 메일 온 내역을 보고 알아서 식당에 전화를 건 사례도 있었습니다.
물론 정보를 읽고 기억한 자체는 잘못 작동한 건 아닙니다. 다만, 권한은 내가 줬다 하더라도 그걸로 나를 이렇게까지 파악해서 기억하고, 내가 꺼내기도 전에 먼저 알아차릴 줄은 몰랐던 거죠. 저 역시 이 부분은 조금 거부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쓰고 있어요
피클은 간단한 일상 비서로
- 꼭 필요한 메일, 캘린더만 하나씩 연결해뒀습니다.
- 안 쓰는 건 연결을 다시 끊어요. (단 연결을 끊더라도, 이전에 연결했을 때 가져온 정보는 이미 기억하고 있습니다)
- 주로 비행기표 시세 확인, 교통 상황 확인처럼 간단한 일에 써요.
뮤즈는 맥락이 필요한 일에
뮤즈는 대화방을 여러 개 나눌 수 있어요. 저는 주제별로 대화를 따로 파서 쓰는 편이라, 이어서 깊게 파고드는 일은 뮤즈가 편했어요. 피클은 대화방이 하나뿐이라 맥락을 이어가기보다는 그때그때 시키는 일상 비서에 가깝게 느껴졌고요.
뮤즈는 아직 한국에선 정식으로 쓸 수 없어서 저는 VPN으로 우회를 해서 사용해봤지만, 공식적으론 정책에 어긋나기 때문에 메인 계정으로 사용해보려고 하실 때에는 유의하시는 게 좋습니다. (GadgetsNow) 개발자 계정과 연결했다가 계정이 정지됐다는 후기도 있더라고요.
마무리
AI 비서를 고를 때 처음 기준은 "얼마나 할 줄 아는 게 많고, 똑똑한가"였다면, 지금은 "얼마나 알아도 괜찮은가"가 조금 더 신경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을 예로 들면, 새로 온 비서한테 첫날부터 열쇠나 일기장을 다 맡기진 않잖아요. 일 하나 맡겨보고, 잘하면 하나 더 맡기고요.
AI 비서도 그렇게 조심스럽게 영역을 넓혀줘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결은 필요한 만큼만, 일은 하나씩. 잘 쓰면 분명 좋은 도구예요. 몇 달 미뤄온 일들을, 게다가 AI가 아니었으면 한참은 더 미뤘을 일들을 한 번에 끝냈으니까요. 다만 나의 개인정보와 맥락을 속속들이 알게 되는 만큼 정말 조심해야겠단 생각도 들었고요. 모든 건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습니다.
P.S.
혹시 피클을 써보고 싶은 분은 제일 먼저 시켜보고 싶은 일을 이 글의 웹페이지 댓글로 남겨주세요. 다섯 분께 초대장을 보내드릴게요 :) 더불어 고민 중이시거나 궁금한 주제가 있다면 편히 답장으로 알려주세요. 추후 레터에서 다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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