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11년 전의 일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가 겨울에 개봉했다. 나는 당시 이 영화의 수입배급사에서 마케팅 담당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 회사는 정말로 바빴고 모두가 열심히 일했으며 그만큼 많은 일이 있었다. 정말로 많은 일이 있었다…. 아무튼, 영화 마케터의 백 한 가지 업무 중엔 ‘영화 속 명대사’를 뽑는 일이 있었다. 뽑아서 여기저기에 쓴다.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이 여운을 느낄 수 있도록, 아직 보기 전 관객들에겐 호기심이 일도록. 시놉시스 정리할 때도 쓰고, SNS에도 쓰고, 포스터에 넣기도 하고 그런다.
명대사에는 두 부류가 있다. 평범한 말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사용된 것. 예를 들면 “같이 살래? 넷이서.”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처음 만난 이복 여동생 스즈(히로세 스즈)에게 가장 큰 언니 사치(아야세 하루카)가 하는 말이다. 갈 곳 없는 어리고 먼 가족, 어쩌면 타인을 자기 삶에 들이기로 결심하는 말이기에 감동을 준다. 관객들은 새로이 시작될 스즈의 인생을 함께 기대하고, 기뻐하게 된다. 다른 부류는 그야말로… 그냥 뭔가… 그들은 스스로 외치고 있다. 나다! 내가 명대사다! 한다. 그러면 나는 예, 예, 알겠습니다 하면서 공손히 뫼셔다가 합당한 대우를 해드리면 되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라고.”
이 대사도 그 중 하나였다. 네 자매의 아버지가 죽음을 앞두고, 병원 창밖 벚꽃을 보며 스즈에게 했다는 말이다. 많은 관객들이 저 대사에서 감동을 받았고, 더러는 자신의 온라인 공간에 기록하기도 했다. 나도 저 말을 명대사 리스트에 올렸다. 그런데 한편으론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말, 잘 이해가 가진 않았다. 아름다운 풍경이 내 눈앞에 있어줘서, 그걸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느낀 거 아닌가? 그걸 조금 멋을 내서 표현한 걸까? 아니면 아직 살아있어서 행복하다는 말일지도? 느낄 수 있다는 건 살아있다는 뜻이니까. 뜯어보면 좀 이상한 대사군. 그러고 지나갔다.
2.
며칠전 낮에 안산 둘레길을 좀 걷고 독립문 공원쪽으로 내려왔다. 공원에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있다. 일제시대 때는 애국지사들이 많이 투옥되었던 곳이다. 1908년 경성감옥이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고, 마지막엔 서울구치소란 이름으로 1987년까지 이 자리에서 운영되었다고 한다. 공원으로 정비된 이제는 운동과 산책을 즐기는 동네 주민들도 많고 가족끼리 온 어린이들, 견학하러 온 학생들, 안산이나 인왕산에 등산하러 온 노인들도 북적인다. 지금 보면 참 양지바른 땅이다. 따갑도록 환한 햇볕 아래서 잔디는 푸르고 오가는 사람도 느긋해보인다. 형무소 역사관, 좁고 작은 창문을 단 넓고 붉은 벽돌 벽에 나뭇잎 그림자가 흔들리고 있다.
무성한 햇빛들. 나는 멈춰서 그 풍경을 보다가, 고통과 무력감 속에서도 기어코 아름다움을 느끼고 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낸다.
그리고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그 말을 아주 오랜만에 떠올리게 된다.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은 한 사람의 안에서 홀로 벌어지는 일이다. 아무도 모르고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오직 자기 자신의 것이다. 내가 놓지 않는다면 잃지 않을 수 있는 것. 나만은 알 수 있는 나라는 인간성. 그 결과가 행복이었는지 슬픔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에게 허락된 남루하고 비참한 것들로부터 잠시 자유로울 순 있는 순간들.
3.
그러니 사소한 아름다움조차 아주 먼 바깥이다. 나는 아름다움과 관련된 정동들을 그간 꽤 요란스럽다 여겨왔던 것 같다. 그 사실에 좀 부끄럽다.
2026/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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