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레터>의 10월의 작가
망가진 책을 수선하며 이야기하는
재영 책 수선가
그는 요즘 어떤 고민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할까요?
재영 책 수선가가 보내온 다섯 가지 키워드로
대화했습니다.
그 대화의 조각들을
구독자 님께 띄웁니다.
*
* 오늘 레터에는 재영 책 수선가가 직접 찍은 일상 속 장면과 짧은 글이 담았습니다.

태권도!

재영:
저 이거 끝나고 태권도 같이 다니자고 꼬실 수도 있어요. (웃음)
이제 곧 검은띠, 국기원 심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태권도 한 지 1년 좀 넘었는데요. 요즘 제 삶의 가장 큰 즐거움이고, 잘한 선택이에요. 책 수선이라는 일 자체가 집중도도 긴장도도 되게 높아요. 실수를 하면 안 되니까 몸이 항상 좀 긴장되어 있는 상태고 정신적으로도 스트레스가 큰데요. 원래 선천적인 성격은 그렇게 차분하지는 않은데, 이 일을 하면서 더 억눌리는 느낌도 없지 않아요. 그래서 발산하는 취미 활동을 가지고 싶고, 이왕 하는 거 건강해지면 좋으니까.
유청:
그러니까... 거기까지는 알겠거든요.(웃음)
근데 왜 태권도였어요? 보통은 러닝이라든가, PT 같은 걸 한다구요.
재영:
제가 화가 좀 많아서(웃음) 원래도 무도를 생각했는데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대부분의 무도는 땀에 절은 상태에서 남하고 부대껴야 되잖아요. 근데 태권도는 그렇지가 않은 거예요. 품새는 개인이 하고 겨루기도 다 보호복도 입으니까요.
유청:
아하!
재영:
가면 기본적으로 근력 운동이랑 유산소를 한 20분 하는데,
그게 되게 힘들어요. 뭐 윗몸 일으키기, 푸쉬업, 런지, 스쿼트, 달리기... 이런 걸로 몸에 열을 내죠. 초반 한두 달은 그래서 좀 힘들 수 있어요. 그 기간만 잘 버티고 나면 인제 태권도 안 다녀오면 몸이 무겁죠.
왜, 띠 있잖아요. 흰띠 노란띠 초록띠 파란띠 올라가는데요.
사범님이 성인이니까 기분 내라고 처음에 빨간띠를 바로 주셨어요.
유청:
월반이네요.
재영:
빨간띠는 검은띠 바로 밑이란 말이에요.
근데 그때 제가 뭔가,
이건 아니다. 이건 안 된다. (웃음)
사범님께 반납하면서, 저는 흰띠부터 하겠습니다.
제가 역량이 된다고 생각하셨을 때, 그때 다음 띠를 주십시오. 사범님이 너무 감동하셔가지고 그 뒤부턴 이름도 새겨셔 주시고요. 저 두 달에 한 번씩 합격 심사도 봐요.
유청:
(눈물을 닦으며) 너무 너무 진지하고 너무 너무 귀여워요...
AI


재영:
최근 손님들께 제일 많이 듣는 말이, 걱정 없으시겠다고. 책 수선은 AI가 침범할 수 없는 일인 거 같다, 대체될 수 없는 일인 거 같다고 말씀하시기도 해요.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사회가 너무 AI를 당연하고, 빠르게 습득하고 있고요. 이게 또 다 중요한 부분에만 쓰이는 건 아니잖아요. 유흥에도 많이 쓰는 것 같고. 너무 쉽고, 도덕적으로 책임지지 않는 무분별한 활용들을 보면서 "나는 저기에 끼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그러다가 이 사회에서 도태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동시에 들어요.
유청: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에는 e북 때문에 책 수선가라는 직업이 없어지면 어떡하냐는 걱정들을 많이 들었다고 쓰셨는데, 지금은 완전히 역전된 반응이네요. 우리가 겪고 있는 시대적 혼란들의 일화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재영:
SNS도 그렇죠. 나 혼자 싸우고 있는 거예요. 예를 들어 작업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해보려는데, SNS 알고리즘이 제 아이디어가 새롭지 않다는 걸, 이미 누군가가 만든 결과물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럼 되게 힘 빠지잖아요. 안 해요. 예전 같았으면 그냥 했을 거거든요? 몰랐을 테니까요. 이제는 시도해 보기도 전에 아무것도 못하고 있더라고요. 저는 제가 이런 상황을 이겨내는 정신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아요. AI가 발전하면서 그 현상도 더 극심해지잖아요. 그래서 그냥 다 끊어버리기로 했어요.
우주


네, 저의 자랑입니다.
유청:
AI가 미지라서 어렵다면, 우주야말로 전통적 미지의 대상이잖아요.
재영:
우주는 태권도 쪽이에요. 어릴 때부터 좋아했고, 여전히 제 삶의 활력이죠. 저는 사람이 탔든 안 탔든 우주로 로켓이 발사될 때 꼭 울거든요. 무조건 챙겨보고요. 이소연 박사님이 한국 첫 우주인이 되어 우주로 떠나실 때, 소유즈 호 도킹 해제되고 이럴 때도 혼자 막 눈물 흘리면서 봤어요. 영화를 봐도 우는 타입이 아닌데 말이죠. 이번에 아르테미스 2호가 달의 뒤편을 돌고 왔잖아요. 저한테 일생일대의 큰 이벤트였거든요. 일도 잠시 쉬고 일주일 내내 그것만 집중해서 봤어요. 우주는 내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원칙, 절대적인 어떤 법칙이 있는 공간 같아요.
유청:
그러고 보니 우주란 하나의 엄청나게 거대한 질서네요. 너무나 아름다운 질서이고, 그에 비하면 AI는 대혼돈 같기도 해요.
재영:
중력이란 건 절대 변하지 않는 원칙이죠. 빛은 직진한다는 원칙이 있고요. 변하지 않는 기준점이 있다는 게 되게 매력적이에요. 저는 성격이 좀 원칙주의적이고 보수적인 면이 있어서인지, 그런 데에 되게 많이 끌려요. 변화에 적응하는 데 속도가 더딘 사람이라 상대적으로 우주라든가, 원칙, 법칙, 이런 것들에 더 끌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우주 영화도 시리즈도 다 좋아하는데, 그 중에서도 <스타트렉> 시리즈를 가장 좋아해요.
유청:
롱 리브 앤 프로스퍼....
(Long live and prosper, 장수와 번영을 빕니다.)
(<스타트렉>에서 유일하게 알고 있는 말....)

공감(력)

유청:
공감과 공감력은 어떤 부분에서 나온 키워드일까요?
재영:
이건 약간 저의 치부를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한데, 제 딴에는 되게 노력을 하는데 주변에서 제가 공감 능력이 좀 부족하다는 평을 들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게 제대로 된 공감일까 고민하고 있어요.
유청:
저랑 비슷하시네요. 공감해야 하는데 해결책 고민하고.
재영:
책 수선을 하러 오시는 분들 중에 수많은 사연들이 있거든요. 저는 가능하면 사연들에 지나치게 공감하고 이입하기보다는 '이 책을 잘 고치기 위한 어떤 자료'로서 들으려고 해요. 감정이 섞이게 되면, 되게 힘들어져요. 손을 댈 수가 없어요. 책이 너무 귀중해져버리면 저는 떨릴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좀 더 거리를 두고 일을 하려고도 하죠.
뜨개


재영:
뜨개질을 그렇게 표현하시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마음의 차력쑈"라고요. (웃음) 뜨개질 처음 해보는 분들은 그 심정 아실 거예요. 막 답답하고 잘 안 되고, 계속 풀어야 하고. 해보셨어요?
유청:
시도는 해봤는데요, 저는 틀려도 안 풀어요. 구멍 있는 채로 넘어가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뜨개질을 못 하나 봐요.
재영:
뜨개질은 인내심을 필요로 해요. 양손이 가둬진 채 계속 움직이죠. 그렇게 정해진 규칙을 따라가다 보면 패턴이 만들어지고요. 어쩌면 우주를 좋아하는 마음이랑 닮았어요. 변하지 않는 질서와 규칙. 그런 걸 따라가는 게 좋아요. 마음을 차분하게 해줘요. 그래서 뜨개질 요즘 많이 해요. 심란할 때마다 옷 한 벌씩 뜨거든요.
유청:
옷이 막 이만큼 쌓여 있겠는데요!
일주일 문화생활 팟캐스트
‘까마귀의 모음: 스몰톡’
ep.40 재영 책 수선가의 요즘 키워드 5!
편에서 풀 버전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구독과 댓글은 사랑🖤
INFO!
재영 책 수선가와의 만남
날짜와 시간: 10월 25일 (일) 오후 4시
장소: 망원동 바 사뭇
* 구글폼을 제출하신 후 입금 완료해주시면 자동으로 신청 완료가 됩니다. (매진 시 구글폼 자동 종료) 모임 참석에 관한 자세한 사항은 2~3일 내에 메일로 안내드립니다.
🎧NEWS!
오래된 일기는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
-<무엇보다, 먼저 평범한 사람이 되어>, <같이 그리는 초상화처럼>
편집자와 함께하는 책 모임
10/27 (화) 저녁 7시 서대문 한옥 책방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에서
1973년 여름, 건축가 정기용의 7주간의 스페인 여행 일기 <무엇보다, 먼저 평범한 사람이 되어>를 중심으로 편집자(=저)가 함께하는 책모임을 열어요! 오래된 일기는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요? 책 만들기와 자기만의 시선으로 여행하기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신청해주세요. 신청 오픈되면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유할테니 많이 놀러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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