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 소리
내 믿음에는 언뜻 오류가 있다. 영혼을 봤다는 사람은 믿어도 영혼의 존재는 믿지 않는 식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기 때문이다. (00)님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 거겠죠. 그게 병증인지 꿈인지 자연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뇨, 진심이에요. 믿습니다. 당신의 경험을 믿어요. 살면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유독 당신 말을 안 믿을 이유가 있겠나요. 다만 경험했다고 사실인 건 아니라는 거죠. 님도 님의 경험을 너무 믿지 마세요. 누구보다 의심해야 할 대상이 자신입니다. 그래서요? 믿는다는 건지 안 믿는다는 건지?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그리하여 나는 불가지론자인가 무신론자인가, 혹은 스스로를 불가지론자로 믿는 무신론자인가… 뭐 여기에 관한 고민입니다. 미안합니다. 쓰고 보니 하나도 중요하지 않군요. 이 문제가 내게 진짜로 중요했다면 실은 내가 신을 믿고 있는 상태일테죠.
이런 답
표기식 사진가는 이번 달도 툴툴 카톡을 보내왔다. (작가님께: ‘툴툴대다’ 표현은 미안합니다 하지만 맞잖아요) 믿음이라니. 4월의 키워드가 너무 어렵다는 거다. 나는 그 반응을 예상하고 있었다. 왜냐면 그는 지난 달에도 어렵다고 했고 지지난 달도 기억 안 나지만 분명 그랬던 거 같고, 그러고서 항상 정답 같은 사진들을 보내오기 때문이다. 문제는 많아도 정답은 없는 인생의 관점에서도 아, 이건 정답이야! 하게 되는 사진들. 이번 달 사진도 더없이 ‘정답’이다. 한 나무를 세 위치에서 찍은 세 장의 사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무 밑동이 땅에 누워있다. 지금은 아물었지만 나무가 어릴 땐 줄기가 뻗어나간 반대편에 상처가 꽤 있었다고 하는데, 도로쪽으로 자라지 말라고 조경가가 계속 쳐낸 거 같다고 한다. 오래 지켜 보셨단 얘기군. 사진가는 두 마디 정도 덧붙인다.
- 스스로를 믿은 거 아닐까요?
- 홍제천과 불광천 합수부에서 한강쪽 20m 지점.
믿음
김효선 작가와 함께 한 4월. 내내 나를 사로잡은 키워드는 믿음이었다. 나는『오춘실의 사계절』을 태어나게 한 굳고 힘센 어떤 믿음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세상이 말하길, 엄마는 강하다. 동의하는 말이지만, 한편으론 영원히 돌봄 받고 싶어하는 비겁한 심보들의 가스라이팅으로 느낀다. 그녀들의 강인함은 니체적이다. 나를 죽이지 않는 고통은 날 더 강하게 만들고 어쩌고. 그리하여 그 모든 역사와 종교와 사회가 어머니들의 강인함을 칭송할 때, 딸들은 엄마를 강인하게 하는 바로 그 역사와 종교와 사회를 증오하며 자라난다. 우리 엄마 괴롭히지 마! 비명 지르는 딸들. 내 엄마를 죽이지 않은 고통을 향해.
엄마가 강하다고 말하는 믿음들이 그녀들의 삶을 파괴한다고 나는 믿었다. 그녀가 엄마인 건 자식을 낳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혹은 우리의) 믿음과 “덩굴처럼 얽힌 채 자라” 며 많은 걸 자주 혼동했다. 거리를 둬야 할 때 너무 가까이 있기. 무작정 받아도 되는 마음들 멀리하기. 쓸데없는 소리로 회피하기. 혹은 반드시 끝장을 보기. 과정 없이 단번에 해결하려 들기.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있자니 생각 하고 싶지가 않아졌고
생각하고 싶지 않음을 극복하고 싶다. 그러니 처음으로 돌아가,
내가 의심없이 믿는 것으로 무엇이 있을까?
(생각한다)
떠올린 것:
라면…?
육개장 사발면. 끓는 물을 붓고 청양고추 잘게 혹은 페페론치노 뿌셔서 넣고. 열라면. 2분 남았을 때 순두부 넣고 후추를 왕창 뿌리기. 너구리. 마른 미역 한 스푼에 고춧가루 반 스푼. 신라면. 정량의 물과 정량의 시간으로 끓인. 멸치칼국수. 물 650ml 붓고 10분 푹 끓이기. 달걀 참기름 휘휘.
라면의 틀림없는 맛을 떠올리며, 믿음의 반대말은 불신이 아니라 불안임을 깨우친다. 확신할 수 없다보면, 다시 말해 과거가 지속될 수도 있다는 의심과 과거로부터 지속될 미래에 대한 고민과 그저 그 과정일 뿐인 현재를 걱정하거나 걱정을 잠재우느라 진을 빼다 보면, 믿음에 관해 할 수 있는 말은 신뢰도, 사랑도, 헌신도, 용기도 아닌 딴청부리기와 라면이 전부가 된다.
그래도
조금 나아가 볼까요. 내 가장 큰 불안은 엄마의 행복을 믿을 수 없음에 있었다. 엄마가 행복할까?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초조함과 불안함을 동반한다. 무엇이든 자주 혼동했던 나는 그 불안을 떨치기 위해 너무 가까이 있거나 반대로 너무 멀리하거나 회피하거나 단번에 끝장을 보려하면서 그걸 ‘해결’하려는 방향성을 놓질 못 했는데, 잘리고 잘리면서도 도로 반대편에 믿음이라는 선택지가 있음을 풀어내질 못했다. 어째서 엄마를 믿어볼 생각을 하지 못한 걸까? 김효선 작가가 4년 동안 말 걸고, 듣고, 쓰고, 생각하고, 고치며 결국 도달한 엄마와 자신, 그리고 이후 나눌 시간에 대한 믿음을 한번에 깨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하필 ‘믿음’이란 낱말을 건져올린 걸 보면, 이번 『오춘실의 사계절』은 내게 꽤 중요한 실마리가 되어준 것이다.
엄마에게도 ‘엄마’와는 완벽히 관련 없고 확실히 행복한 순간들이 있겠지. 좋아하는 길을 혼자 운전할 때. 설거지하면서 경제 라디오 들을 때. 조리사 자격증 다섯 개를 모두 따기까지의 과정.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던 시간. 밀린 청소 끝내고 목욕탕 갈 때. 힘내서 운동장 트랙을 걸을 때. 병원 갔다가 문득 사람들 줄 선 중국집에 들어가 짬뽕 한 그릇 해치울 때. 어휴, 조미료 맛 밖에 안 나더라. 투덜댈 때. 모르는 사람과 수다 떨 때. 단골 가게 사장님한테 붕어빵 한 봉지 쥐어줄 때. 전화 너머로 엄마의 크고 작고 화사한 행복을 흘려들은 건 정작 내가 아닌가.
나를 좋아할 것을, 나를 사랑해줄 것을,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을 믿는 걸론 부족하다. 여전히 나는 정확히 알고 싶다. 타인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닌 오직 자기만의 확실한 행복을 모두가 지니고 있는지. 그런 생각을 하면 늘 슬펐다. 그런데 나이가 들며 좋은 일은, 나를 죽이지 않는 고통 어쩌구는 살아있다는 이유로 모두가 겪는 일이며 사람은 누구나 그에 대한 대비책을 지니고 있음을 알아가고 있다는 것. 인지하든 아니든, 그를 살게 하는 확실한 행복은 반드시 우리 안에 있다. 이제 내게 그 믿음이 생겨나고 있다. 문득 방향을 틀어 거침없이 솟구친 나무처럼 내 믿음도 그리 될지, 어쩌면 기대해볼 수도 있겠지.
2026/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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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oseon
유청님!! 덕분에 재미나게 4월 보내고 오늘 벌써 4월 30일이네요. 한달이나 제 생각을 해주시다니 흑흑 최진영 작가가 북토크에서 소설을 문장 하나까지 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다고 소설 바깥에서 독자가 더 읽어주실 거라고 믿고 써보자 발표하자 겁내지 말자 이런 뉘앙스로 해주신 얘기에 제가 참 큰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는데요. (정확한 기억이 아님) 유청님이 남겨주신 믿음 얘기를 읽으며 그날 생각이 갑자기 났어요. 우리 엄마 얘기가 이런 방향으로 읽혀서 유청님의 어머님 이야기로도 닿았네요. 이 얘기를 세상에 내놓을 때는 저는 읽는 사람이 어떻게 읽어줄 지, '믿음'의 영역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믿지도 않고 어떻게 용기를 냈나 신기할 노릇... 그 용기에 손 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이제 세상을 좀 더 믿어볼게요 세상은 조은 사람도 있다 유청님이 있다!
인터뷰 앤드 레터
효선 작가님과의 4월! 덕분에 활기차게 즐겁게 잘 보낸 거 같아요. 좋은 책, 좋은 작가님과 함께할 수 있는 게 인터뷰&레터다!!!! 레터의 마음 알아주셔서 감사해요. <오춘실의 사계절>과 김효선 작가님, 그리고 오춘실 선생님 더더 많은 분들과 더더 사랑 받으면 더더 행복해질 진심으로 바랄게요. 언제 어디서든 또 함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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