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레터]는 책과 영화를 아끼는 구독자 님께 띄우는 텍스트 기획자 임유청의 ‘읽고 쓰고 공유하기’ 활동 일지입니다. 온라인 레터 서비스를 통해 텍스트 사이에서 건져 올린 문장과 생각을 소개하고, 인터뷰 모임으로 작가와 독자가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조직합니다. 질문에서 이해로 나아가는 대화를, 멈춤 없는 글쓰기를 시작할 당신 작은 용기의 모티브가 되고 싶습니다.
[인터뷰&레터] 시즌2, 4월은
엄마라는 책, 그 곁에서 이야기하는 김효선 작가와
그의 첫 번째 에세이 『오춘실의 사계절』이 함께합니다.
*
구독자 님은
책에 밑줄을 긋는 독자인가요?


저는 대체로 아닙니다.
아무리 좋게 읽은 책이라도 깨끗합니다. 꼼꼼히 읽기보단 속도감 있게 읽어 내려가는 걸 좋아해서일 수도 있고, 책 한 권을 동생과 공유하던 어린 시절의 습관일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 그 문장이 태어날 수 있었던 배경-그것은 한 단락일 수도 있고 한 페이지일 수도 있겠죠-들에서 한두 문장만 눈에 톡 튀도록 똑 떼어낸다는 게 뭔가 불완전한 행위처럼 느껴집니다. 성에 차려면 그 앞 문장, 그 앞 문장의 앞 문장, 앞 문장의 앞 문장의 앞 문장… 결국 한 페이지 가득 밑줄만 긋게 될 것 같아 마침내 손에 들었던 연필을 다시 내려두게 되는 것인데요.
『오춘실의 사계절』은
그런 제가 흔치 않게 거리낌없이 연필을 휘둘러가며 읽은 책입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습관에 따라 맨손으로 읽었습니다. 4월 레터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연필을 들고 필요에 의한 밑줄을 치려고 하는데, 이상하게 위화감이 없는 겁니다. 뭐지? 이 편안한 밑줄감은? 눈물 훔치는 데 정신이 팔렸나? (아시겠지만 밑줄감이란 말은 세상에 없습니다. 온갖 행위에 대한 온갖 단어를 보유한 독일어에는 있으려나요? 제보 바랍니다.)
밑줄 친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제게 완전한 문장들.
여기엔 한때 거대했던, 내 어떤 비밀의 온전한 세계가 통째로 들어있습니다. 하나도 같지 않은 사연, 모두 다른 엄마를 둔 우리는 이 완전한 문장에 밑줄을 치는 순간 ‘딸’이라는 단 하나의 이름을 공유하게 됩니다. 우리는 일별만으로도 이 문장들의 전후를 우리 각자의 이야기로 채울 수 있습니다.
『오춘실의 사계절』을 쓴 김효선 작가는 ‘책 읽고 수영하는 사람’입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 17년차 한국소설 MD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와 짧은 인연이 있습니다. 다니던 회사에서 처음 영화 책을 출판하게 됐을 때, 그는 모르겠지만 초보 출판 마케터(를 겸하던 편집자)(아무튼 책 담당자)였던 저는 알라딘 김효선 MD께 참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출판사 담당자라는데 뭘 잘 모르는 사람(=저)이 서점 직원 입장에선 답답할 법도 한데, 그는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할 수 있는 것, 알려줄 수 있는 것들을 시원시원하게 내어주었습니다. 뭘 몰라서 스트레스 받다가도 그와 통화하고 나면 마음이 놓이곤 했지만, 직장인의 인연이라는 게 그렇습니다. 각자 맡은 일을 잘해내면 고마울 뿐 서로는 서로에게 스쳐가는 담당자일 뿐입니다.
어디서 봤더라?

아마도 신간 소개 코너에서였겠죠? SNS인지 인터넷 서점을 구경하다가 앗! 이거 내가 사고 싶었던 수영모자! 하며 한 책을 클릭하게 됩니다. 커다란 데이지꽃이 송이송이 달린 개나리색 수모에 꼭 세트 같은 개나리색 수영복을 입은 한 여성이 세상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동그란 얼굴에 마치 셔터 타이밍을 잘못 맞춘 듯 신나게 웃는 눈을 찰칵! 감았고요, 곱슬한 앞머리가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고요. 귀여운 목걸이까지! 초록색 보석 펜던트가 찰랑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오춘실의 사계절. 김효선 에세이. 어깨가 아픈 바람에 수영 수업을 못 가 초조하던 작년 여름이었습니다. 이분이 오춘실 씨인가 봐. 무슨 이야기일까? 표지에 반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책을 펴든 후에야 이 김효선이 그 김효선 님인 걸 알게 되었습니다.
“서점에서 일하는 건 인생을 걸어 볼 만한 일”
책과 책 파는 일에 몰두하던 김효선 작가는 직원의 일을 존중하지 않는 관리자와 갈등을 겪게 됩니다.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어 싸우듯 일하다 그만” ‘적응장애’라는 진단명을 받고 신경정신과 장기 환자가 됩니다. 알코올에 의존하지 않고는 잠을 자지 못하는 밤과 고통스럽게 출근하는 아침을 반복하던 어느 날, 엄마 오춘실이 정년퇴직을 두 달 앞두고 척추가 골절되는 큰 사고로 입원을 하게 됩니다.
각자의 부서짐을 계기로 함께 살게 된 딸과 엄마(와 아빠. 이번에 그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주 3회 엄마와 수영장에 다니는 동안 딸은 주 7일 술 마시던 밤에서 5일로, 3일로, 2일로, 아예 마시지 않고 잠드는 밤으로 나아갑니다. 고된 노동의 중력에 채여 자주 넘어지고 다치던 엄마는 수영장의 부력에 몸을 맡겨 보고, 자유형에 실패하고, 배영으로 75m를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마음을 다친 딸과 몸이 상한 엄마가
서로를 돌보며 회복해 가는 이야기가 『오춘실의 사계절』입니다. 수영장을 오가는 동안 책 읽는 사람 김효선은 한 사람의 오춘실을 읽어 나갑니다. 1978년 영등포, 2021년 마포, 1985년 안양, 2024년 종로, 1998년 안산에서의 이야기를 오가는 동안 내 오랜 비밀이었던 우리 엄마는 젊었고 나이 든 여성 시민이자 선배 노동자가 됩니다. 작가는 자신의 엄마를 개인적 사연으로 소유하는 대신 다시 세상의 것으로 공유하는 길을 택하고, 엄마라는 보편적인 비밀에 선연하리만치 정확한 문장을 입혀 『오춘실의 사계절』로 완성했습니다.
이런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오춘실 씨는 한 학교에서 오랫동안 환경미화원으로 일했습니다. 어느 날 오춘실 씨가 글씨에 뭔가 문제가 있었는지, 한 선생님이 흉을 봤답니다. 그러자 다른 선생님이 말합니다. 그러지 마세요. 저 여사님 딸이 서울대예요.
오춘실 씨가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겸업했다면 이 에피소드로 관객깨나 웃겼을 겁니다.
이 이야기에는 펀치라인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학력 핀잔을 학벌로써 갚아준(?)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노동자로서 당한 불쾌한 대우를 엄마라는 지위로 복수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한 사람의 삶은 여러 층으로 구성되고, 이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하려 들 때 이처럼 많은 어긋남이 생겨날 텐데요. ‘오춘실’이라는 인생의 목차도 마찬가지. ‘김효선의 엄마’ 하나로만 구성되지 않습니다. 여성의 가족, 여성의 노동, 여성의 가난과 여성의 성장과 여성의 나이 듦이 책 속에서 보글보글 호흡합니다. 마음대로 살아지지 않는 남편의 아내, 여성임이 상처였던 시대라 더욱 혹독했던 어머니의 딸은 외동딸을 “없는 집에서도 곱게” 키워낸 엄마입니다. 앓아누운 병실에서도, 놀러 간 호텔에서도 자본과 사회가 용을 쓰며 감춰둔 게 무색하도록 일하는 여성들의 존재를 단번에 알아채는 노동자입니다.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몸집이 작고 손이 느려 같은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종종 배제당하곤 했던 노동자의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일 잘한다’라는 말을 훈장처럼 달고 사는 우리(라고 해도 될까…)는 그 훈장을 그 누구도 아닌 ‘자본’이 주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공공 수영장에 가본 적 있으신가요?
처음 수영을 배우러 근처 공공 체육센터에 등록을 하고 샤워장에 들어선 날이었습니다. (수영 전에 꼭 비누로 온몸을 씻어야 하는 거 아시죠?) 맨몸이 부끄러워 쭈뼛거리는데, 아니 세상에. 김이 펄펄 나는 샤워장에 온갖 여자들이 활개를 치며 벅벅 씻고 있는 거예요. 큰 여자 작은 여자 늙은 여자 젊은 여자 시무룩한 여자 목소리 큰 여자, 하나도 같지 않은 몸. 그 틈에서 뜨거운 물을 맞으며 저는 마치 갑자기 고수 향이 아무렇지 않아지던 순간처럼, 처음으로 맨몸이 시원하다고 느낍니다.
『오춘실의 사계절』은 그날의 수영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가족이라는 이어짐을 받아들이되 엄마가 맺은 나 이외의 관계들을 상상하고 이해합니다. 엄마를 더이상 나만의 비밀로 묶어두지 않겠다는 의지입니다. 영원히 커다랄 줄로만 알았던 딸들의 비밀들. 오래 들여다보고 만져보는 동안 작고 동글동글해진 그것들은 이제 나와 타인의 이야기 사이로 경쾌하게 오가고, 마침내 딸에게서 놓여난 엄마의 자유로움도 페이지를 넘나들며 편안하게 유영합니다. 자유로움이란 어쩜 이렇게 시원한지! 활개 치는 맨몸처럼요!
그래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요?
그러고 보니 제가 책 읽어보시란 말을 잘 안 하더라고요. (리뷰 레터 실격…)
이번 레터부터는 후회 없는 선택! 꼭 읽어보세요! 이런 말도 열심히 해보려는데, 아무래도 책 곳곳에 숨어있는 온라인 서점 17년차 MD 김효선 님의 영업력에 감화된 듯합니다. 『오춘실의 사계절』모든 에피소드가 소설, 시, 에세이 등에서 다양한 책에서 발췌한 구절로 시작되며, 글 속에서 자주 <벌새><노매드랜드><서브스턴스><더 폴> 같은 영화들이 언급되기도 하는데, 팔꿈치로 툭, 한번 봐보세요, 하는 듯 홀린 듯 책을 검색하고 있더라고요. (다행히 영화는 거의 다 봤고요)(뿌듯) 레터 읽으시는 여러분도 홀린 듯『오춘실의 사계절』검색하시게 된다면 참 기쁘겠습니다.
그리고 만나요!
INFO!
엄마라는 책, 그 곁에서 이야기하는 사람
- 김효선 작가를 인터뷰하다.
날짜와 시간: 4월 25일 (토) 오후 4시
장소: 바 사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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