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3. 2023 독서기 中

- 23년 5월부터 23년 8월까지

2024.01.12 | 조회 5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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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늘 메일링을 보내기 전에 여러 번 읽어보면서 오타를 확인하는데 꼭...... 보내고 나면 오타나 이상한 문맥들을 발견해요.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이젠 23년 5월에서 23년 8월까지의 독서기를 좀 정리해볼게요. 저도 쓰면서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책을 두번 읽는 것 같아서 여러모로 좋습니다. 이런 걸 궁금해 해 주신 여러분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23년 5월은....... 다양하게 읽었네

정지돈, 스페이스 (논)픽션 : 공간 시간 이동 기억 역사 자유, 정지돈의 에세이와 짧은 소설
은희경, 장미의 이름은 장미
론 마라스코, 슬픔의 위안
유지혜, 우정도둑
나쓰메 소세키, 마음

첫번째 책은 정지돈 작가의 <스페이스 (논)픽션 : 공간 시간 이동 기억 역사 자유, 정지돈의 에세이와 짧은 소설>입니다. 책 표지도 흥미롭고 뒤에 붙은 부제도 흥미로워요. 

그럼에도 우리는 이 진실을 자주 잊는다. 진실은 너무나 미묘하고 다루기 어려운 것이어서 들을 때는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실제로 적용하려 들면 뭔가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도와 규칙을 만들고 때로는 신봉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진실이 어렵다고 잊어도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는 순간 공간은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옥죄기 시작하니까. 여기 실린 글들은 공간에 대한 각자의 진실을 상기하기 위해 쓰였다. 읽는 사람들에게도 그런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지돈, 스페이스 (논)픽션

이 책의 서문입니다. 재밌어보이지 않나요? 저는 정지돈 작가의 책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요, 늘. 하지만 그럼에도 재밌습니다. 흥미로운 교차 지점들, 충돌 지점들을 짚어 나가다 보면 저도 모르게 다양한 방식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되어요. 이 책은 시집처럼 얇아요. 그렇지만 생각해야 할 내용은 벽돌책과 같은...... 이 책을 읽으며 지하철을 타고 1시간 동안 공상하며 갈 수 있었습니다. 서점에 가서 일단 좀 읽어보세요. 계속 궁금해지신다면, 저처럼...... 

다음 책은 은희경 작가의 <장미의 이름은 장미>입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눈 앞이 자꾸 뿌얘지고, 도망가고 싶어지고...... 책을 덮으면 마음 시리지만 그럼에도 삶의 어떤 부스러기들은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는 소설책들요. 이 책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아파해요. 끝을 말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끝이 있고, 시작하지 않아도 시작되는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등장해요.

종종 화자가 주변 풍경이나 인물을 응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한 다섯 번씩은 읽은 것 같아요. 뒤에 붙임된 작가의 말조차도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책입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편은 아래 인용된 단편이 아니라 '장미의 이름은 장미'에요. 그건 여러분이 직접 첫눈에 읽으시면 좋을 것 같아서 조금 아껴봤어요. 대신 제가 두번째로 좋아하는 장면을 보여드릴게요. 

현주는 잠시 그쪽을 돌아보았다. 눈으로 현주를 배웅하고 있었던지 코베인이 맥주병을 든 채로 한 손을 조금 들어 보였다. 한낮의 햇빛과 쏟아지는 록 음악을 등진 실루엣은 마치 외따로 떨어진 나무 아래 홀로 흔들리고 있는 조용한 그림자 같았는데 너무 자연스러워서 우주 같은 곳으로 떠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은희경, 장미의 이름은 장미

다음은 고등학교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은 <슬픔의 위안>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슬픔들이 몇 개 있어요. 아니, 딱 하나 있습니다. 그건 정리할 수도 없고 정리해서도 안 되는 슬픔이라고 생각해요. 슬픔을 이겨낼 것이라는 생각도 없고, 슬픔을 이겨내야한다는 당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것들을 이 책을 읽으며 더욱 강렬히 느꼈어요. 결국 우리는 슬픔 안에서 특정한 위안을 느낄 수도 있구나. 그저 함께 살아가도 괜찮은 거구나. 어설프게 재봉해두었던 것들을 꺼내어 말하니 눈물도 쏟아지고. 고백의 독서였습니다. 은사님도, 선배들도 따듯한 말을 해주셨어요. 괜찮단 말 한마디, 내려간 눈꼬리와 모아진 손들로도 충분히 마음이 따듯해질 수 있구나 느꼈습니다. 슬픔과 슬픔 이후의 삶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께 추천드려요. 언젠간 우린 슬퍼질 거니까요! 

유지혜 작가의 <우정도둑>은 제가 미리 블로그에 독서 기록을 올려두었어요. 그 내용을 잠시 첨부합니다. https://blog.naver.com/realvibe127/223181443632 

제가 사랑하는 독서 모임의 5월 책은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이었습니다. 이건 저와 급속도로 친해진 소녀, 민 양이 골라주셨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매우 재미있게 읽은 뒤에 이 책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 즐거운 마음으로 읽고 모임에 참가하였어요. 외로움과 괴로움, 그리고 성장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우리 모임은 그 모든 고충에도 나아가겠다는 말로 모임을 마무리해요. 늘 그렇다는 점에서 수치화할 수 없는 아주 강한 힘이 이 모임에 깃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23년 6월은....... 뭐지

이장욱, 정오의 희망곡
벵하민 라바투트,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W.G. 제발트, 이민자들

6월에도 이장욱 시인의 <정오의 희망곡>을 들고 다녔네요. 익숙하시죠? 신년 인사 때 소개했던 시가 바로 이 시집에 수록되어 있어요. 이쯤되면 그냥 왓츠 인 마이 백에 나와도 되겠습니다. 실제로 다양한 영감을 얻게 되는 것 같아요.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을 확대해서 보여주실 때도 있고 전혀 부딪히지 않았던 것들이 낸 사고를 지켜보게 될 때도 있어서 여러 번 읽어도 흥미진진합니다. 시인의 말부터가 아주. 이렇게만 말하고 인용 안 하면 좀 궁금하시겠죠? 서점으로 갑시다! 

사랑하는 독서모임의 6월 모임 책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입니다. 한 바퀴를 돌아 호스트가 모임의 구심점인 수박이로 돌아왔습니다. 이 책을 읽고 생각했던 것들은 제가 적어둔 게 좀 있거든요....... 제가 조금 개인적인 생각을 쓰는 공간에 적어두었던 글들을 좀 긁어왔습니다. 

과학적 사실을 기반으로 소설을 써내려간 이 책은 충격적이기도 했고 읽는 재미도 있었다.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가…… 고민하게 되기도 했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챕터도 재밌었지만, 앞선 <프러시안 블루>나 <심장의 심장>도 재밌었다. 프러시안 블루를 읽을 때만 해도 정말 과학 교양서인가? 싶을 정도로 고증도 잘 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논픽션처럼 픽션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적 사실에 더해진 허구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생각해봤을 때 과학적 발견을 통해 알게되는 것들은 찬란하지만 그 빛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인간은 어떤 사실을 발견해 기뻐하고, 의기양양해 하지만 또 다시 자연이 던진 새로운 문제를 앞에 두고 우울해한다. 또, 그 사실을 발견하는 과정 또한 신화처럼 아름답지 않다. (슈뢰딩거 이야기는 진심..... 보다가 덮고 물 한 잔 먹고 다시 읽음 그리고 실제로 이 인간의 삶이 그닥 아름답지 않다는 점에서 물 한 컵을 더 마셨어야 했음)

나는 후반부에 나오는 <밤의 정원사>가 이 책을 잘 마무리하고 있다고 느꼈다. 참나무는 밤새 썩어가지만 가지 위로 새로운 이파리를 만들기도 한다. 과학의 발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가스 살포로 목숨을 잃지만, 우리는 결코 가스 연구를 멈출 수 없다. 핵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는 원자폭탄을 터뜨려야했지만, 결국 그 연구가 양자역학으로 이어져 현대의 편리한 삶을 창조했다. 결국 과학은 누군갈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가지를 자르려고 했으나 할아버지의 만류로 자르지 못한 뒤 나무 가지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잎을 달고 봄을 맞이한다. 나는 이 글을 보면서 ‘결국 인간은 썩어가는 과학조차도 자르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건가?’라고 생각했다.

나무를 통째로 베어 그 속을 봐야 얼마나 살지 알 수 있지만, 나는 나무가 얼마나 살지 알기 위해 살아있는 나무를 베고 싶지는 않다. 자연도 똑같다. 인간은 자꾸 자연의 영원함과 신비함을 단칼에 잘라 관찰하고 싶어한다. 자연을 관조하고 싶어하고, 모든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자 할 때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시기가 실제로 있지 않았는가? 세상을 그 자체로 바라보지 않고, 자연의 구성원이 오만함으로 관조자가 되고자할 때 수많은 희생과 발견이 되풀이된다고 생각한다. 썩어가는 나무 밑둥과 영원히 피어나는 나무가지처럼.

모임날 수고롭고 복잡스럽더라도 무언갈 이해해보려고 하는 노력에 대해 이야기했던 게 좋았다. 우리는 날마다 짜증나고 기분 나쁜 일과 대면하지만, 그런 일들을 가만 들여다보는 바보 같은 일들이 정말 '바보'같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노력이 필요하다. 유해한 상황에서 무해해지려는 노력이. 남을 진심으로 이해해보려는 심지가 말이다.

고등학교 독서모임에서 읽은 책은 W.G. 제발트의 <이민자들>입니다. 사실 저는 이 모임이 아니었다면 이런 책들을 읽어보지도, 읽을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읽었고, 역시나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어디가 소설이고 산문인지 구별하기 어려운데요, 중간 중간에 들어간 흑백 사진이 그 현실감을 더해줍니다.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아름다운 가정, 행복하게 웃는 아이들, 해변을 홀로 걷는 검은 코트의 남자......

전쟁 당시 가족과의 생이별은 화자에게 트라우마를 유발합니다. 화자는 이별하는 당시의 공항 바닥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페인트를 사용했는지 명확히 기억하지만 이별하는 가족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슬픔이라는 게 이렇게 막막하고 답답한 것이며, 전쟁이라는 것이 이렇게 추악하고 서러운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23년 7월은....... 다독했네! 

이현호,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알랭 바디우, 행복의 형이상학 (건들어보았습니다 24년에 다시 도전)
윤고은, 밤의 여행자들
이디스 워튼, 여름
존 페리, 개인의 동일성과 불멸성에 대한 대화
아니 에르노, 여자아이 기억
김종봉, 제갈현열, 돈 공부는 처음이라
지야 통, 리얼리티 버블

이현호 시인은 <라이터 좀 빌립시다>로 처음 알게 되었는데, 서점에서 읽기만 하고 사지 못했던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를 드디어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표지 색도 예쁘고.... 좋았던 시는 정말 많지만 그 중 하나만 공유합니다. 

양들의 침묵
그대가 풀어놓은 양들이 나의 여름 속에서 풀을 뜯는 동안은 삶을 잠시 용서할 수 있어 좋았다
기대어 앉은 눈빛이 지평선 끝까지 말을 달리고그 눈길을 거슬러오는 오렌지빛으로 물들던 자리에서는
잠시 인생을 아껴도 괜찮았다 그대랑 있으면
그러나 지금은 올 것이 온 시간꼬리가 긴 휘파람만을 방목해야 하는 계절
주인 잃은 고백들을 들개처럼 뒤로하고다시 푸르고 억센 풀을 어떻게 마음밭에 길러야 한다
우리는 벌써 몇 번의 여름과 겨울을 지나며
두 발로 닿을 수 있는 가장 멀리까지네 발 달린 마음으로 갔었지
살기 위해 낯선 곳으로양들이 풀을 다 뜯으면 유목민은 새로운 목초지를 찾는다
지금은 올 것이 오는 시간양의 털이 자라고 뿔이 단단해지는 계절

이현호, 양들의 침묵

현재 저의 숙원사업과 같은, 저를 스쳐지나갔던 책도 한 권 소개합니다. 알랭 바디우의 <행복의 형이상학>입니다. 책 표지는 파스텔 오렌지 색이고, 귀여운 사이즈의 양장본입니다. 바디우 책을 정말 읽고 싶은데, 무엇부터 읽어야할 지 몰라 교수님께 질문했더니...... 잡히는 것부터 읽고 그곳부터 공부를 시작하면 된다고 하셔서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건만! 어려운 책이 맞았습니다. 올해 다시 읽어볼 예정입니다. 의미 있는 문장 한 문장만 보여드릴게요.

분석적 흐름에서 일차적인 질료는 언표들로, 요컨대 철학은 규칙의 힘에 따라 일반화된 일종의 문법이며 주어지는 것은 문장, 단편 혹은 담론의 종류들이다. 

알랭 바디우, 행복의 형이상학

다음은 윤고은 작가의 <밤의 여행자들>입니다. 이 책은 오후부터 저녁 먹기 전까지 엉덩이 떼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다 읽었어요. 미스터리한 사고로 시작된 이 소설은 결국 재난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 재난의 발원지가 어디인지, 우리 사회의 어떤 부분과 지극히 닮아 있는지 생각할 때면 마음이 시끄러워집니다. 주인공 요나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이 소설을 덮고 나면 마음이 이상해집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요나를 생각하고, 요나의 일과 사랑과 슬픔과 공포를 떠올리게 되어요. 여운이 길다는 뜻이겠죠. 

이디스 워튼의 <여름>은 오랜만에 읽은 해외 고전 소설이었습니다. 고전 소설 속 전형적 러브스토리와는 조금 다른 전개에 더욱 흥미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과외를 가는 지하철, 대기하며 들렸던 카페에서 순식간에 다 읽어버렸어요. 주인공 채리티는 감정에 솔직하지만,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사회적 신분이 높은 남자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주 조금씩 그 사람을 알아가고 그 사람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확정지으려 노력하죠. 주인공인 채리티의 마음과 심리에 대한 묘사가 매우 재밌습니다. 

사랑하는 독서모임의 7월달 책은 존 페리의 <개인의 동일성과 불멸성에 대한 대화>였습니다. 순번이 돌아와서 찬이 언니가 다시 골라주었는데요. 언닌 사람과 사람이 영유하는 삶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인 것 같아요. 저는 주로 한국 책을 많이 읽는데 7월은 자의, 타의적으로 다양한 국적의 작가를 만나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책은 시집 분량의 아주 짧은 책입니다. 우리의 존재, 기억에 대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책이에요. 

당신도 인정하듯이, 사람의 같음에 대한 우리의 앎은 불가해하지 않고, 아마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안전한 지식이며, 모든 이성과 행동의 근원이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바로, 사람의 같음에 대한 우리의 앎이 비물질적인 영혼의 동일성에 대한 앎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지.

존 페리, 개인의 동일성과 불멸성에 대한 대화

이 책에서는 입장이 상반된 두 사람의 대담을 상세히 보여줍니다. 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모른다고, 자기 자신과 영혼의 동일성을 알 수 없다고 말하고 한 사람은 어찌 모르냐, 그것이 가장 정확한 지식인 것을.... 하고 아주 신비하고 복잡한 논박을 펼치게 됩니다. 문득 연극 대본 같기도 했어요. 그래서 더욱 재밌게 읽었습니다. 독서 모임에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겠지요.... 저는 이 날 개인 사정으로 참가하지 못했거든요. 눈물.... 다음 번엔 제가 철학 책을 읽자고 말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아니 에르노의 <여자아이 기억>을 읽었습니다. 작년의 노벨상 수상자. 저는 또 너무 궁금한 마음에 수상작이나 여타 다른 유명한 작품을 읽기 전에 중고 서점에 산 이 책을 먼저 읽어버렸어요. 이 책 또한 시끄러운 마음을 마주해야 합니다. 이 어린 아이의 부산하고 서글픈 마음,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섬찟하고 속상한 저의 마음을요. 여름 캠프에 있었던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기억을 잘라내고 싶어하지만, 잘라내야 하기 때문에 그 꼬투리를 붙잡고 있는 여자 아이가 있습니다. 

물론, 미래에 대해서, 1958년의 여름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알지 못해야 한다. 단숨에 나는 내 삶의 역사와 세계의 역사에 대해서 기억상실증에 걸려야만 한다. 

아니 에르노, 여자아이 기억

그 삶을 따라 가다 보면, 왠지 이 여자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픈 마음이 들어 성실히 책을 읽게 됩니다. 중간에 마음이 힘들어져 덮고 싶기도 했지만 끝까지 읽어냈습니다. 

그리고 제 독서 리스트에서 잘 찾아보지 못했던, 돈에 대한 책도 읽었습니다. 베스트 셀러길래 궁금했거든요. 김종봉, 제갈현열의 <돈 공부는 처음이라>입니다. 돈을 관리하고, 돈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이라 재밌었어요. 길지 않아서 읽기에도 좋았고요. 

7월의 마지막 책은 지야 통의 <리얼리티 버블>입니다. 이 책은 우리가 얼마나 현실을 외면해왔는지 얼얼하게 꼬집습니다. 우리는 보기 좋은 뉴스만 뉴스라 여기고, 보기 불편하고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을 위협할 문제들은 뉴스 취급하지 않아 왔습니다. 거품 속 우리는 얼마나 오만하게 삶을 살아왔던 걸까요. 많은 반성을 하게 됩니다. <식사에 대한 생각>과 <날씨와 얼굴> 이후로 또 다시 낯뜨거운 얼굴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습니다. 


23년 8월에는..... 눈 수술로 인해 대폭 줄어든 독서량..... 회복! 그리고 일본 여행 

김연수, 너무나 많은 여름이
발터 벤야민,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폭력비판을 위하여/초현실주의 외
이장욱, 기린이 아닌 모든 것
장석주,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한스 페터 발머, 철학적 미학
김윤관, 아무튼 서재

사랑하는 독서모임의 8월의 책은 제가 선정했는데요. 김연수 작가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입니다. 여름 말미에 그래도 여름 들어간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책은 제가 7월에 구매해서 미리 읽어봤는데, 우리 독서 모임 원들도 한 권씩 갖고 있다고 말을 하길래 냉큼 정했습니다. 수박이가 저번에 김연수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좋다고 말해줬었거든요. 

제가 적어두었던 소감을 첨부할게요.

일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다정을 건네는 것이다. 특히 보장된 사랑과 우정이 있는 사이라면 다정과 더 서먹해진다. 다시금 이유 없는 다정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독서였다. 또한 누군가를 등대처럼 보낸 뒤 맞는 칠월과 팔월이 끔찍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김연수 특유의 다정을 챙긴 것 같아 마음이 부르다. 정말 이유 없는 다정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준 책.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폭력비판을 위하여/초현실주의 외> 도 읽었습니다. 무척 재밌었어요. 일부를 발췌해 적어둔 블로그 글을 제출합니다. 

https://blog.naver.com/realvibe127/223233775965  원전 텍스트인 만큼 읽기에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이 책을 필두로 발터 벤야민의 굵직한 책을 읽어볼 용기가 생겼어요. 고맙다! 

다음으로는 시인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이장욱 작가의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을 읽었습니다. 시나 소설에서 등장하는 동물들은 이장욱 작가의 트레이드 마크인 것 같기도 하고, 저에겐 매우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제목을 지켜보는 일도 재밌고, 재미 있어 보이는 그 책을 들여다보는 것도 참 재미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단편은 '절반 이상의 하루오' 입니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의 흐름이 중요한 것 같아서 따로 인용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정말로 이장욱 작가의 세계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장석주 시인의 <헤어진 사람의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은 몇 년간 저의 위시 시집이었어요. 늘 구매하고 싶었는데 어쩐 일인지 서점에 가면 좋은 상태의 시집이 없고, 온라인 쇼핑을 할 때에는 자꾸 까먹더라구요. 네이버 박스에서 중학교 때 찍어두었던 사진을 보고는 생각이 나서 바로 시켜버렸습니다. 소원 성취!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구월의 기분-연남동2'에요. 어떤 문장으로 시작하냐면....... 

구월에는 눈썹이 희어집니다. 강물은 유속이 느려지고 사랑의 변수는 줄어들지요. 

장석주, 구월의 기분 - 연남동 2

궁금하시죠? 제가 정말 좋아하는 시집 중 하나입니다. 

다음은 한스 페터 발머의 <철학적 미학>입니다. 서점에 가서 홀린 듯 구매했는데요. 매우 재밌게 읽었습니다. 전공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저는 참 적성에 잘 맞는 것 같아요. 

미학은 삶이 폭력적이거나 피상적으로 되지 않도록 우리를 늘 깨어 있게 만드는 작업이자, 우리의 삶 속에서 평등과 자유를 실현하는 하나의 실천학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저자는 미학의 정점을 헤겔이 아니라 니체에게서 발견한다.

한스 페터 발머, 철학적 미학

이번 학기에 운이 좋게도 니체와 헤겔 모두를 들춰볼 수 있었어요. 그래서 올해 이 책을 다시 읽어보려고 합니다. 그때보다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아지지 않았을까요? 기대가 됩니다.

다음은 아주 재밌었던 에세이에요. 목수이자 작가인 김윤관의 <어쩌다 서재>입니다. 저는 관심 가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의 서재가 궁금해지는 편이었거든요. 어떤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을까? 그렇다는 점에서 서재 이야기를 하는 이 책이 너무 재밌었어요. 

나는 서재와 책상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한다.되도록 크고 넓은, 당신이 당신의 생각과 사물을 마음껏 늘어놓을 수 있는 크고 넓은 책상을 먼저 가져보라고. 세상에서 당신이 온전히 당신 자신으로 살아가는 첫걸음이 뜻밖에도 그 책상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김윤관, 어쩌다 서재

이렇게 8월기까지 끝이 났습니다. 좋네요. 무엇보다 책을 읽었던 당시가 생각나니 애틋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어떤 책을 읽었고, 이 책을 읽고 어떤 번잡스러운 생각을 했었는지 생각이 납니다. 이 메일링에 모든 걸 담지 못했어요. 너무 개인적인 생각들은 담기 무섭더라구요. 하지만 꽤 많은 부분들을 떼어 내어 써내리니 커다란 무서움들은 가시고 작은 무서움만 남았습니다. 제 글과 제 생각들을 재밌게 읽어 내려주시는 여러분이 있어서 그런 것이겠죠?

이렇게 두번째 독서기가 끝났네요. 이제 9월부터 12월의 마지막 편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렇게 정리해보니 저에게도 참 도움이 됐습니다. 2024년에는 어떤 책을 더 읽어봐야할지, 어떤 책을 다시 들추어 봐야할지 생각 정리도 됐구요. 

저 좋자고 시작한 메일링이지만 글이 좋다, 생각을 하게 된다, 고맙다, 재밌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막 날아갈 것만 같습니다. 여전히 나아가야 할 길이 많은 저에게 응원이 되는 말이 많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남은 1월 동안 또 부지런히 써 볼게요. 아직 보여드릴게 많아요. 다음 메일링에서 2023 독서기를 잘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양서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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