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취향은 뭘까? 가끔 취향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입는 옷, 읽는 책, 듣는 음악, 좋아하는 영화..... 이런 것들을 살펴보고는 내게 취향이 좋다는 말을 건네주신다. 그런 얘기들은 듣고 또 들어도 좋다. 막 날아갈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꺼려하는지 질문하는 일에서 나의 취향 개척은 시작된다. 싫어하는 것의 이유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좋아하는 이유들을 짚어내는 것을 더 선호하는 듯 하다.
직관적으로 '좋다'라고 느낀 것들의 세부를 들여보는 일은 늘 즐겁다. 내가 이런 것들을 좋아하게 된 당위를 살피는 일이 결국 취향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라는 질문을 통해 나는 나의 선택과 주관을 확인한다.
취향이 참 좋으세요. 이런 말에는 내가 나의 것을 만들기 위해 들였던 수많은 시간에 대한 칭찬도 들어가 있다. 그래서 더 날아갈 것만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무언갈 좋아하고, 좋아해서 구매하거나 소장하는 일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예를 들어 안경을 살 때, 빈티지 아우터를 구입할 때, 만년필 잉크를 구매할 때, 하다 못해 다이소에서 수납 용품을 살 때에도 나는 구매할 물건의 쓸모와 당위를 고민하려 노력한다.
나는 오래 잘 관리된 물건들이 좋다. 이런 성향에는 부모님의 영향도 있다. 부모님은 무언갈 아껴 쓰고 관리하는 데에 도가 튼 사람들이다. 아버지의 15년된 니트와 20년된 시계. 어머니가 혼수 때 장만한 접시와 컵, 여전히 짝이 잘 맞는 귀걸이와 잘 관리되어 반짝이는 목걸이. 이런 것들은 소유자의 취향과 세월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그런 것들을 보면 괜히 욕심이 난다. 그 물건 자체도 욕심이 나지만, 물건을 고이 간직해 온 부모님의 세월이 부럽다. 나도 오래 쓴 물건들을 갖고 싶어진다. 언젠간 내 손을 탄 물건들을 자랑할 일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면 취향이 생성되고 다듬어지는 과정은 타인의 취향을 보고 감격을 느낀 이후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부모님이 자주 입는 옷, 걸치시는 액세서리, 아버지가 자주 읽었던 철학 서적, 어머니가 좋아했던 에세이와 시집, 좋아하는 밴드가 있는 친구, 꾸준하게 어떤 연예인을 좋아하는 친구, 패션 브랜드나 유행을 성실히 모니터링하는 친구, 좋아하는 앨범에 관한 디테일을 설명할 수 있는 친구, 좋아하는 영화 감독이나 음악 감독이 있는 친구, 좋아하는 가구 브랜드가 있는 인플루언서, 빈티지 옷을 멋스럽게 매치하는 배우, 라이카 카메라로 흑백 사진을 찍는 배우....... 이런 사람들이 쌓아 올린 취향들은 보자 마자 탐이 난다. 나도 그들처럼 고유한 것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고유함에 대한 열망이 취향의 시작점이다. 나를 잘 관리하고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것이 명확하지 않을 때에는 타인을 살펴 보는 것도 좋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입은 특이한 색감의 셔츠는 어떤 색감의 바지와 입었을 때 아름다운지, 친구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공유한 밴드의 다른 앨범은 어떤 느낌인지, 친구가 좋아하는 감독은 어떤 영화를 계속 만들어 왔는지....... 타인이 열심히 가꾸어 온 취향들을 들여다 보면 그곳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을 수도 있다.
그렇다는 점에서 내 취향은 온전한 내 것이 아니다. 내가 지켜본 수많은 사람들의 조각이 뭉쳐 내 취향이 탄생한 것이다. 별 게 다 있는 골동품 가게에서 나는 내 마음에 드는 것들만 골라 나온다는 생각으로 타인의 취향을 탐험한다. 눈에 걸리는 것들을 몇 개 집어 가지고 나온다. 물론 가게를 아예 사거나, 강탈할 욕심은 없다. 그것은 그 사람의 취향인 걸, 내 것도 아니고 말이야...... 난 누군가의 취향 그대로를 갖고 싶은 게 아니라, 내 스스로 고유함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가져온 몇 개만으로도 취향을 건설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도둑질일까? 빌려왔다고 표현할까. 미래에 내가 내 취향을 건네줄 수 있을 만큼 건실한 전문가가 되는 것으로 값을 지불하기로 결심한다.
스스로 영감을 찾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서로의 레퍼런스가 되고, 다음 세대에게 또 다른 선례가 될 것이다. 다음에는 내가 더 좋은 노래를 찾아 알려주어야지, 끝내주는 빈티지 가게를 찾으면 바로 공유해야지, 나중에 이런 시구를 담은 편지를 써 주어야지. 품앗이처럼 취향을 수집한다고 해서 고유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따라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우리는 레퍼런스들을 조합하여 스스로의 취향을 건설한다. 그러니, 고유함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취향이 생긴다는 것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향성이 생기는 것과 다름 없다. 삶은 단편 영화가 아니다. 따라서 때에 따라 다양한 방향성이 존재할 것이며, 방향성에 변화가 생기는 일도 잦다. 그럼에도 기준은 하나. "어떻게 해야 내가 더 행복할까?" "어떤 방식으로 내가 나의 삶을 가꾸고 꾸려나가야 내가 더 행복해질까?" 이런 고민들이 취향에 담겨 있는 것이다. 나는 필름사진이 좋고, 빈티지 의류가 좋고, 책과 시집이 가득한 서재가 좋고, 월넛색 원목 가구들을 좋아하며, 일렉 기타보다는 베이스를 더 좋아한다. 피아노 협주곡을 더 끈기 있게 듣고 싶고, 바이올린에 대해 더 알아가보고 싶다. 절기마다 어떤 음식이 맛있는지 알고 있었으면 좋겠고, 이와 곁들일 와인의 풍미와 전통주의 씁쓸함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몇 년전만 해도 나는 취향이 없는 것만 같아 슬펐다. 내가 가진 고유함이 없는 것 같아서 아쉬웠다. 어떤 친구는 이런 노래를 즐겨 듣고, 이 감독에 대해 말하고, 이 시인에 대해 알려주는데 나는 그 앞에서 감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내게도 무언가 있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그 이면에는 유구한 나의 것이 없다는 슬픔과 비통함이 녹아있었다. 그런 삶의 세부가 내게는 없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낀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 취향은 마음 먹으면 먹은 대로 금방 생긴다. 어느새 나는 나의 취향이라는 것을 갖게 된다. 소리 소문도 없이 내 손에 어떤 책이 쥐어져 있고, 어떤 옷이 내 몸 위에 머물고 있었다. 귀로는 자주 듣는 노래들이 모이고 좋아하는 향을 한 번 찾으면 노트들을 파악해 더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어느새 나는 나의 취향으로 칭찬을 받은 경험도 생겼다.
심을 씨앗이 생기면 결국 어떤 모양의 잎과 가지를 갖고 자라날지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취향의 씨앗을 발견하면 그 이후로는 아주 잘 풀린다. 이 나무가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나무로 자랄 수 있을지 자꾸 기대하게 된다. 나는 얼마나 근사해질 수 있을까, 행복한 상상을 시작한다.
나의 취향을 돌아보다 보면 결국 '지금은 이런 취향을 갖고 있지만, 미래에는 이런 취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 같은 바람이 숨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취향은 어쩌면 미래형일지도 모른다. 온갖 좋은 것들을 나의 삶에 끌어들이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 그 마음을 보존해 실천에 옮기면 정말 내 취향이 된다. 그 마음을 보존하는 데에 수많은 고민과 쓸모에 대한 질문이 이어질 것이며, 금전적인 사정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그것을 선택해 내 취향으로 만든다는 것은, 취향이란 우리에게 그만큼 소중하고 중요한 것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요즘은 그 소중한 것들을 보여주는 대화들이 아름답다. 무엇을 싫어하는지 말하는 사람보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말하는 사람의 얼굴이, 그 눈동자가 더욱 빛난다. 무언갈 오래 좋아한 사람의 이야기라면 그가 지켜온 시간들을 짐작하게 되어 좋고, 지금 막 무얼 좋아하게 된 사람이라면 그 취향 생성의 찰나를 발견하게 된 것만 같아 기쁘다. 새로 태동하는 우주를 발견한 기분이다.
손에 쥔 블랙윙 연필 덕에 몇날 며칠을 고민했다. 너무 비싼데, 그래도 디자인이 예쁘고 글씨가 잘 써지잖아...... 결국 또 다른 내가 이겼다. '지갑 사정을 담당하는 자린고비인 나'가 조금은 양보해주어 손에 이 연필을 쥘 수 있게 되었다.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솔직히 가계부를 쓸 때 '블랙윙 연필: 3800원'을 기입하는 일은 힘들었다.) 이렇듯 치열하게 고민한 뒤 얻게 되는 것들이 바로 취향이다. 치열하게 취향을 쌓아올리고 조합하는 모습이 고유함을 만든다. 나를 더 들여다보려는 마음.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질문. 그런 마음과 질문에서 우리의 고유함과 근사함이 시작된다.
적어도 내가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취향을 가꾼다.
드르륵거리며 돌아가는 연필깎이와 나의 아름다운 연필. 그 세부를 들여다보면 작고 작은 나의 마음이 돌아가고 있다. 성글은 내 마음은 들여다보는 내가 좋은지 생글생글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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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e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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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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