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2. 2023 독서기 上

- 22년 12월부터 23년 4월까지의 독서 일기

2024.01.09 | 조회 5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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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의 독서 생활을 돌아보며 '2023 독서기' 라는 한 편의 글을 작성하기 이전, 가장 후회되는 한 가지가 있다면 노션에 독서 기록을 게을리했다는 점입니다. 읽은 책은 꽤 되는 것 같은데, 제대로 된 기록을 한 건 반의 반도 안 되는 것 같아서 조금 서글퍼졌습니다. 스무 살 독서의 미련함과 미숙함이었다고 변명해보겠습니다. 이런 깨달음이 있어서 그런지 저는 2024 독서 기록을 매우 순탄히 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기록을 성실히 하시길 바랍니다.

       2023년은 저에게 아끼는 수첩의 첫 페이지 같은 해였습니다. 고등학교 생활을 마무리하고 이제 정말 자유인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올해 저는 개인적인 독서와 함께 함께 독서할 수 있는 기회를 생겼습니다. 두 개의 독서모임에 참여했는데요, 하나는 졸업한 학교의 졸업생들과 은사님 한 분으로 이루어진 모임이고, 하나는 뜻이 맞는 친구들끼리 모여 결성한 모임입니다. 모두 달에 한 권의 책을 선정해 미리 읽어오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개인적 독서와 더불어 독서 모임에서 있었던 재미나고 천진난만한 일화들도 함께 소개드리겠습니다. 

       서론이 길었죠? 그럼 저의 2023 독서기를 시작합니다. 가독성을 위해 독서 내용과 기록, 소감, 사진 등등을 월별로 정리했습니다.


  • 2022년 12월은......  소설, 소설, 소설! 

12월은 소설의 달이었어요. 고등학교 전반을 차지했던 무겁고 학술적인 책과는 잠시 이별하는 시간이었답니다. 읽고 싶어 잔뜩 쌓아두었지만 읽지 못했던 소설들과의 만남이 시작되었어요. 사진의 도움을 받아 리스트를 복원해보았어요.

한정현,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
이슬아, 가녀장의 시대
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비 윌슨, 식사에 대한 생각
외에 시집 몇 권과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기억 나는 건 이정도. 아마 많은 책을 들춰보았지만, 이 책들만이 꾸준하게 살아남아 완독하게 된 것 같아요.

<나를 마릴린 먼로라고 하자>라는 책은 역사적 사건에 존재했던 성적 폭력들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현재의 이야기로 이끕니다. 마냥 밝은 소설은 아니었지만, 그 안의 메세지를 들여보고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아파하게 된다는 점에서 제게 의미가 있는 책이었어요. 무엇보다, 이 책은 제게 많은 영감과 사랑을 주었던 한 언니가 선물로 준 거거든요. 그래서 더욱 뜻 깊었고 그 언니가 바라보던 따듯하고 정 많은 세계가 이런 단면들을 면밀히 지켜보고 기억했기 때문에 성립될 수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가녀장의 시대>는 제가 정말 사랑하는 독서모임의 첫 시작 책이었어요. 이 모임은 한 친구가 초대장을 보내어 시작된 매우 흥미로운 모임입니다. 그 친구의 별명은 수박이에요.  이 독서모임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아예 한 편을 빼서 쓸 예정이라 조금 기다려주세요. 이 책은 수박이가 고른 책인데, 수박이와 저는 이슬아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했어요. 수박이는 특히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을 좋아한답니다. 작가님이 수박이에게 많은 영감이 되어주시는 것 같아요. 여튼, 가녀장의 시대는 이슬아 작가님의 소설이지만 실제 이슬아 작가님의 가족과 지인이 등장해요. 그리고 에피소드나 상황이 현실적이지만 재치발랄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이게 소설인지, 현실인지 가끔 헷갈릴 정도랍니다. 

이슬아 작가님의 글은 늘 아름다워요. 사람을 미워했던 마음도, 정리하지 못해 부산했던 시절도, 쉽게 상처주고 슬퍼했던 날들도 작가님의 글 안에선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저는 가끔 이슬아 작가님의 글을 읽고 우린 분명 더 아름다워질 구석이 있다고 다짐하게 되어요. 다음 문장을 보고 그걸 확실히 깨달았어요.

"아름다움은 중요한 가치야. 나는 아름다운 것이 좋아. 그치만......."아이가 슬아를 본다."무엇이 아름다운 건지는 우리가 직접 정할 수 있어. 너는 너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발명하게 될 거야.

이슬아, 가녀장의 시대

어때요. 아름답지 않나요? 읽고 싶어지지 않으세요?

최승자 시인의 산문집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는 제가 고등학교 시절 한 번 읽었던 책이에요. 최승자 시인의 시를 너무 좋아하게 되어 에세이까지 읽어보고 싶었어요. 행복과 불행, 도착과 떠난다는 것, 이런 단편적인 것들에 대한 시인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떠난다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자기 자신의 현실 속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것이다. 끝과 시작처럼 떠난다는 것과 되돌아온다는 것은 하나이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최승자, 한 게으른 시인의 이야기

그리고 이어지는 그 다음 문단이 아주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떠나는 게 역설적으로 우리에게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라면...... 우리는 아파서 종종 떠나버리잖아요. 아픔이 느껴지지 않게요. 우리를 아프게 하는 모든 것들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최승자 시인의 생각이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세요. 저는 이 산문집을 읽고 아주 펑펑 울었답니다. 새벽에 간접등, 그리고 양초 키고 읽기 딱이에요! 

다음은 비 윌슨의 <식사에 대한 생각> 이건 고등학교 독서 모임에서 읽게 된 책이에요. 책 편식이 심한 편이라, 이런 책을 독서 모임에서 읽을 수 있어서 매우 행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우리 식탁에 올라가는 음식이 무엇으로 만들어졌고, 어디서 왔는지 말할 수 없어요. 이런 것들은 우리의 식습관의 균열을 보여줍니다. 건강한 지구와 식사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꼭 읽어보세요. 글이 쉬워서 술술 잘 읽혀요.

그리고 이병률 시인의 시집을 좀 건들여봤고,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자기 전에 몇 챕터씩 읽었어요. 정말 좋아하는 책입니다. 연거푸 추천드립니다. 


  • 2023년 1월은....... 바빴다!

김영하, 작별인사
정지돈,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리처드 할러웨이, 세계 종교의 역사
크리스티앙 보뱅, 작은 파티 드레스

사랑하는 독서모임의 두번째 책은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였습니다. 이건 찬이(본명은 있지만 이렇게 부를래요.) 언니가 고른 책이에요. 수박이를 통해 알게 된 언니인데요, 고심 끝에 이 책을 골라주었습니다. 김영하 작가가 쓰는 SF 소설은 어떨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었는데, 정말 재밌었습니다. 동시에 많은 고민도 들었어요. 찬이 언니가 "인간다움은 무엇이며 무엇을 인간이게 하는가?"라는 질문도 가져와주었는데, 이 대화가 참 재미있었어요. 덧붙여 후반부의 묘사가 정말 눈물나게 아름답고 쓰라려요. 반짝거리고 아름답지만 날카로운 유리 파편을 맨 손으로 잡는 느낌. 김영하 작가님은 SF도 잘 쓰시는구나, 다음엔 어떤 책을 내실까 너무 기대가 되었답니다. 

정지돈 작가는 제가 요즘도 흥미로워하는 작가님인데요. 글 자체가 굉장히 비정형적이고 재밌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지만, 아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 덕분에 제가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길을 걸으며 생각한 일상적인 것들과 철학적인 사유가 부딪히는 부분들이 근사합니다. 더 많이 배워서 정 작가님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다 이해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참고로 저는 철학을 전공하고 있는 철학 소녀입니다. 여기서 처음 밝히게 되어 조금 부끄럽고...... 오래도록 말씀드리지 않은 이유는 그냥 조금 부끄럽고 여기저기 알려지는 것이 꺼려졌기에 그랬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은 적어도...... 제 학교, 학과보다는 저라는 사람에 대해 더 관심이 있으신 것 같아서 조심스레 밝혀봅니다. 전공에 대한 이야기는 추후에 또 써볼게요.

리처드 할러웨이의 <세계 종교의 역사>는 고등학교 독서모임 책입니다. 이 책은 굉장히 길고 벽돌같이 생겼지만, 그만큼 방대한 지식이 담겨 있는 책입니다. 다양한 종교와 종파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 분산되어 있던 지식들을 모으는 중대한 역할을 해주었던 책입니다. 종교와 신학에 대해 관심이 있으시다면 적극 추천! (단! 이 책 소화하느라 다른 책들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독서모임의 세번째 책은 제가 선정했는데, 크리스티앙 보뱅의 <작은 파티 드레스>입니다. 한 달에 두 권을 하진 않은 것 같은데, 제가 사진을 이곳 저곳에 저장해둔 탓에 엉망이네요. 여튼,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개인적으로 크리스티앙 보뱅의 글이 궁금했고, 그의 문체가 아름다워서 함께 읽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에세이는 읽을 때는 정말 좋지만 막상 모임을 가지면 할 말이 없을 때가 많은데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특히 사랑에 관한! 

사랑 밖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사랑 안에는 알 수 없는 것들 뿐이다.

크리스티앙 보뱅, 작은 파티 드레스

모호한 문장에 동의할 수 있으신가요? 이 날 사랑을 몇 번 발음했는지 모르겠어요. 입에 굴릴 수록 더 어려워지는 느낌이었지만, 사랑에 대한 정의가 풍성해진 밤이었습니다. 


  • 2023년 2월은......여행!

사와다 도모히로, 마이너리티 디자인
김리윤, 투명도 혼합 공간
이성복, 그 여름의 끝

<마이너리티 디자인>은 독서모임의 영빵 언니(이것 또한 내 맘대로 부르겠다)가 정한 책입니다. 언니는 다양한 곳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영화도 많이 보고, 책도 많이 읽고, 생각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으며 유약하고 부러지기 좋은 부분들을 애써 숨기지 않고, 그걸 강점으로 두고 살아가는 용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생각해봤습니다. 약점을 활용한 프로젝트들이 일회적인 반항이 아니라 번듯한 생태계를 구성하는 것을 보며 너무 놀라웠어요. 강한 자만이 살아남지, 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책. 약한 육체를 가져도 강한 내면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인간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알지 못했던 세계를 알게 되어 기쁘기도 했고 한 편으로는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괌으로 여행을 가버려요. 그곳에서는 시집 밖에 읽지 않았습니다. 겨울과 다름 없는 시기에 여름을 누리다니. 이런 선물이 또 어디 있을까요? 구매해놓고 읽지 못했던 이성복 시인의 <그 여름의 끝>을 읽고 돌아왔습니다. 김리윤 시인의 <투명도 혼합 공간>은 비행기에서 더 잘 읽혔어요. 비행기는 빛을 잘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이에요. 일상적인 고도가 아닌 상황에서 마주하는 빛은 더 뜨겁고 눈부십니다. 그런 걸 구경하며 읽다가, 곧 노을이 지기 시작했어요. 순식간에 어두워져서 그 많던 빛이 한 줄처럼 보이더라구요.

사진은 선물! 

괌에서 인천으로, 2022 iPhone se2
괌에서 인천으로, 2022 iPhone se2
  • 2023년 3월은....... 개강

에바 메이어르, 이토록 놀라운 동물의 언어
요시모토 바나나, 사우스 포인트의 연인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이토록 놀라운 동물의 언어>는 고등학교 독서모임의 두번째 책입니다. 아주 흥미로워요. 인간은 '정치'를 인간만의 것으로 정의해왔습니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아주 유명한 정의에 빗대어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동물도 정치적 공동체를 꾸려왔다면요? 이 책은 우리가 시선을 조금만 바꾸기만 하면, 동물이 하고 있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해 줍니다. 추천!

친구들과의 독서모임, 세번째 책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사우스포인트의 연인>입니다. 이건 제 고등학교 친구인 kang 양이 골라주셨는데요. 도대체 사랑은 뭘까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이 책은 줄거리가 엄청나게 흥미진진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최대한 언급을 줄이려고 합니다. 따듯한 하와이와 꿈, 사랑 그리고 사람이 궁금하시다면. 우쿠렐레 연주 같은 사랑이 바로 여기에!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꿈이나 퀼트가 필요한 것이리라. 가끔 달콤하고 그립고 풍요로운 것이 피어오르는 추억이.

요시모토 바나나, 사우스포인트의 연인

그리고 3월에는 최은영 작가님의 작품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어요. 제가 읽었던 첫 작품은 <쇼코의 미소>였는데, 대학에 올라오니 최은영 작가님의 소설들이 또 생각이 나더라구요. 3월부터 다시 읽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최은영 작가님의 <내게 무해한 사람>은 제게 소중한 작품입니다. 최은영 작가님의 글은 누구보다 일상적이지만, 너무 내 삶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문장 하나에 큰 숨을 내뱉게 되어요. 아프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글을 읽다보면 종종 "나도 이런 글을 써보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최은영 작가님이 쓰는 '끝'에는 슬프고 무기력한 마음만 있는 게 아니라, 혼신의 힘을 다해 계단을  오르는 인물들이 존재합니다. 

언니, 어두운 쪽에서는 밝은 쪽이 잘 보이잖아. 그런데 왜 밝은 쪽에서는 어두운 쪽이 잘 보이지 않을까. 차라리 모두 어둡다면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서로를 볼 수 있을 텐데.

최은영, 내게 무해한 사람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서로를 볼 수 있을 텐데......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이 문장을 가장 많이 곱씹었습니다. 어떻게 밝은 쪽에서는 어두운 쪽이 잘 보이지 않지만, 어두운 쪽에서는 밝은 쪽이 잘 보일까, 라는 아주 간단한 이치로 이렇게 울림을 줄 수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는 너무 밝아서 타인의 불행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우리는 너무 어두워서 타인의 행복만 바라보며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이 문장 속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다시 최은영 작가의 소설집이 되어요. 

이 순간들은 세상 앞에서 그들의 세계를 방파제처럼 세워보아도 이를 온전히 지켜나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어떻게든 침범당하고 파괴당할 것을 예고하는 것만 같다.

강지희, 해설 

이 글에서는 다양한 인물의 자신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세계는 대체로 무해해 보이는데, 세계의 무해함은 자기 스스로를 위한 것이기도 하고, 타인과의 관계 안에서 무해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소설 속에서 그런 다짐과 결심은 지켜지지 않아요. 아무리 무해하려 노력해도 나는 결국 스스로에게 유해하며, 우리는 서로에게 유해해지고 맙니다. 그런 나와의 단절과, 타자와의 단절, 나아가 세계와의 단절이 주는 상실감이 너무 잘 느껴져서 그런지 저는 가끔 최은영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 잠시 도망가고 싶어집니다. 끝은 왜 이렇게 슬플까요? 작가님은 얼마나 많은 끝을 보셨길래 이런 글을 쓰시는 걸까요. 

시작도 끝도 분명치 않은 그들의 사랑과 이후의 삶은 여름날의 불꽃놀이보다는 이 불꽃놀이가 끝난 후의 기나긴 여운과 닮아 있다. 하지만 이미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이 주는 적막한 위로에 기대면서, 우리의 평범한 삶은 그 짧은 여름을 영원히 살아간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이 끝나고 강지희 문학평론가님의 해설을 읽으면 또 앞으로 돌아가 해설에 등장하는 부분들을 다시 읽게 됩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불꽃놀이를 바라본 뒤 아름다웠다 읖조리는 사람들을 닮아 있습니다. 불꽃이 터지는 그 아름다운 순간이 다시 올지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결국 돌아가야 합니다. 불꽃이 터지지 않는 평범한 날의 하늘로 말입니다. 어떤 사랑, 어떤 마음, 어떤 관계는 불꽃처럼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이 영원하지 않다는 점에서 정점에서의 아름다움이 보장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여전히 아름답지 않은 삶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최은영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아름답지 않은 그 나머지의 생조차도 위로가 됩니다. 


  • 2023년 4월은....... 시험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최은영, 밝은 밤
이슬아, 날씨와 얼굴
이기리, 젖은 풍경은 잘 말리기

친구들과 함께하는 독서 모임의 네번째 책은 수박이의 친구 진 양이 골라주었습니다. 에리히 프롬은 제가 고등학교 때 자주 읽었던 작가여서 유독 반가웠어요. 저는 <자유로부터의 도피>, <소유냐 존재냐>, <사랑의 기술>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읽어서 그런지 기존에 에리히 프롬의 사상이 간결하게 잘 정리되어 있다는 생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도 추천드립니다. 여기서 관심이 생기신다면, 에리히 프롬의 조금 더 무겁고 세밀한 책으로 뻗어나가는 독서를 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최은영 작가님의 <밝은 밤>을 또 읽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엔 온전히 구매해 제 책장에 두고 싶었어요. 이 책을 읽다보면 제 인생의 시작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저의 시작은 저이기도 하고, 저희 어머니이기도 하고, 저의 외할머니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의 시간은 유한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누군가의 자식으로 존재하며 그 사랑을 지속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제 연대기는 사랑하는 할머니로부터 시작된다고 믿고 있어요. 그래서 이 삶을 더욱 잘 경영해 살아가고 싶다고 느낍니다. 모두 다 사랑의 힘! 

이슬아 작가의 <날씨와 얼굴>은 지구와 생명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책입니다. 슬아 작가님은 기후 위기는 단순히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외면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고 말합니다. 녹아내리는 빙하와 더워지는 공기에는 우리가 외면한 수많은 얼굴이 있는 것이며, 이는 사라져버린 동식물의 얼굴일 뿐만 아니라 택배 노동자, 이주 여성, 그리고 '나'의 얼굴이라는 것입니다. 누락된 목소리에 대해 적어내리겠다는 이슬아 작가님의 결심에 저는 감동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올해 문학과 글이 가지는 정치성, 글이 갖는 힘에 대해 느꼈습니다. 규명되지 못한 것들,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풀어낼 수 있는 힘이 글에 있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읽고 느끼고 싶어졌던 것 같습니다. 이런 작업들은 제가 가장 흥미로워하는 미학자 자크 랑시에르와도 연결되어 있는데요, 나중에 공부를 좀 더 하고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그리고 이기리 시인의 <젖은 풍경은 잘 말리기>를 읽었습니다. 저는 종종 마음이 축축해질 때면, 마음을 잠시 꺼내 있는 힘껏 빨래하고 쨍쨍한 햇빛에 말리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햇빛 냄새가 스밀 때까지 둔 다음 잘 접어 다시 넣어두고 싶어져요. 그런 의미에서 이 제목이 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젖은 풍경은 잘 잘리기. 가장 좋았던 구절은 이것입니다. 

얇은 창호지 문 너머로 한 사람의 실루엣이 걸어오는 것을 발견하자 더 이상은 안되겠다, 도망칠 곳이 없다ㅡ 목숨을 부지하는 것도 여기까지다, 생각하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문을 열었다. 첫사랑이었다. <중략> 

이기리, 오지 말아요 - 꿈 속이기 

시집이 분홍색이에요. 귀여워서 구매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게 4월까지의 독서 기록입니다. 아마 중간에 몇 권 더 있었던 것 같은데 기록과 기억이 없는 것을 보니, 그것은 읽지 않은 것으로 치는 게 낫겠어요! 독서 기록을 매우 기다리셨던 것 같아서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네요. 이 메일을 포함해 총 3편 정도로 보내드릴 예정이에요. 다음 글은 5월부터 8월, 그 다음 글은 9월부터 12월이 되겠네요. 그 다음으로는 신년 독서 보고가 이어집니다. 또 부지런히 읽고 정리해야겠어요. 

좋은 책이 있다면 댓글에 남겨주세요. 타이밍이 맞으면 꼭 읽어서 신년 독서 보고에 기록을 추가하겠습니다. 좋은 건 나눌수록 좋은 거니까. 

지금 눈이 아주 많이 오네요. 곧 날씨가 많이 추워지겠어요. 목을 포함한 발목, 손목으로 열이 빠져나가면 감기 걸리기 좋다고 합니다. 잘 동여매고 다니세요. 빙판길도 조심하시고요.

늘 감사합니다. 

양서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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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n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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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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