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신문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에 관한 글을 보던 중, 이 문장에서 멈추었다.
프루스트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쉰한 살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그러니까 그냥 젊은 게 아니라 비교적.
일주일 뒤 마흔세 살 되는 내가 죽으면 이제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말을 듣게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글에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 언급됐는데, 이 책은 '젊음과 아름다움에의 집착'이라는 주제 자체는 흥미롭지만, 결말이 결국 파멸이라서 영 읽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 욕망의 결과가 파멸인 이야기는 너무 진부하다.
대신 지피티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어떤 미소>와 아니 에르노의 <젊은 남자>를 추천해줬다. 오늘 당장 읽고 싶어서 바로 주문했다. 책을 산 게 얼마만인지. 오랜만에 책을 읽을 생각에 설렌다. 이 책들을 읽고 나면 또 쓰고 싶은 말이 생길 것 같다.
그래, 나는 운동하고 춤추는 사람이지만, 여전히 본진은 '생각하는' 일에 있는 것 같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
사강은 펭귄출판사의 소개처럼 "delightfully amoral(도덕 관념이 없어서 매력적)" 해서 좋다. 에르노도 미화하지 않고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정확하게 쓰려고 하는 태도가 좋다. 나는 욕망을 도덕적으로 정리하지 않는 태도를 좋아한다. 사강은 나처럼 아름다운 사람을 좋아하고 육체적 매력을 중요하게 여긴다. 심지어 <슬픔이여 안녕>에서 주인공의 입을 통해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육체적으로 전혀 매력없는 사람들을 대하면 일종의 거북함을 느끼거나 무관심했다."
사강 같은 인간이 있다면, 믿고 의지할 존재는 아니겠지만 무척 흥미롭고 영감을 주는 존재일 것 같다. 나는 이런 인간을 만나보고 싶다.
언젠가 지금은 연락이 끊긴 친구가 나에게 감탄하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넌 정말 솔직해."
그러나 나는 대화할 때 의미 없는 겉껍질을 빨리 걷어내고 알맹이로 바로 진입하기를 원했을 뿐이다. 세상에는 나를 헷갈리게 하는 빈말과 의미 없는 말들이 넘쳐났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느끼는 걸 너도 느끼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느끼는 건 세상이 하는 말과 너무 달라서 나만 이런 건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화의 욕구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아서 나는 이렇게 글을 쓰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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