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니 에르노의 <탐닉>을 읽고 있다. 한 남자 때문에 모든 게 멈춰버린 생활.
<단순한 열정>이 정제된 버전이라면, 이 책은 날 것 그대로의 일기다.
그는 전화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화요일처럼 나락에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P89
그와의 관계 중에 걸린다면 에이즈라도 상관없다.
P94
너무나 그를 원하기에 울고 싶을 따름이다. (...)
이따금 더는 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P98
<베니스에서의 죽음>의 아셴바흐도 아름다운 소년 타지오 곁에 머물기 위해 전염병이 창궐한 베니스를 떠나지 않는다. 그는 결국 병에 걸려 죽는다.
내가 즐겨 보는 유튜버 '사운드 사운드 다니엘'은 아무리 이상형이라도 200번 섹스하면 질린다고 했다. 자기에게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고, 엄청나게 많다면서.
고등학교 때 좋아하는 남자애에게 아니 에르노 못지 않게 집착해본 사람으로서 말하건대,
상대방 주위를 공전하면서도 스스로의 삶을 굴리며 자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못 했다)
아무리 좋아해도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사력을 다해.
열정은 양날의 검이다. 엄청난 희열과 고통.
열정의 순간은 드물고,
나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베어버릴 수도 있다.
상대방에게 끌리는 힘이 강할수록 필사적으로 내 힘을 방어해야 한다.
일부러 다른 관심사나 새로운 흥분원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상대 없이도 좋은 기분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다시 중심을 잡게 되면,
욕망의 대상을 멀리서 바라보며,
'이 얼마나 아름답고 흥미로운 세상인가'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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