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되지 말라던 선생님의 말씀

2023.05.15 | 조회 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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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잘조잘

매일 아침, 당신 곁의 이야기

오늘은 스승의날입니다. 구독자님은 기억에 남는 선생님이 있으신가요?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오래 기억에 남는 선생님들은 계십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쌤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 당시 전 책 읽는 걸 정말 좋아했었는데 선생님께서 문학에 조예가 깊으시기도 하고 수필 작가셔서 더 좋았던 것도 있네요.

하지만 선생님께선 1학기가 지난 후에 은퇴를 하셨습니다. 건강 상의 이유였는데 선생님께서 정말 다정하셨기도 했고, 당시 제가 반장이어서 선생님과 이래저래 대화나눌 일이 많아서인지 정이 더 깊이 들어서 정말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선생님께서 되려 당황하셨었네요.

참 좋아했던 선생님인데 딱 하나 서운했던 게 있었습니다. 제가 기자가 되고 싶다는 걸 아시고는 늘 기자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 이유로는 제가 마음이 너무 여려서 기자를 하면서 상처 받을 일이 많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두번도 아니고 자주 그런 말씀을 하셔서 한편으론 불퉁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당시 생각으론 아무리 여려도 공사는 구분하고 일적으로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선생님이 나에 대해 어떻게 다 알고 그렇게 말씀하시냐는 사춘기스러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선 그만두시면서 반 아이들에게 본인이 쓰신 책에 싸인을 해서 선물해주셨습니다. 짧은 글귀도 함께였는데요. 각 아이들의 특성에 맞춘 글에 다들 감동했습니다. 과연 제겐 어떤 글을 써주셨을지 기대했죠.

그런데 제게 적힌 글은 '법의 길을 가라' 딱 여섯 글자로 가장 짧았습니다. 당시 선생님께선 제가 법조인이나 외교관이 됐으면 좋겠다고 자주 말씀하셨거든요. 슬픈 마음은 그 글귀를 보고 황당한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대학에 간 이후 연락을 한번 드렸습니다. 4학년때였는데 선생님께선 연락을 받으시곤 혹시 외무고시 합격했냐고 말씀을 꺼내시더군요. 저야 모르지만 그 시기가 외무고시 합격자 발표시즌이었나봅니다. 참 저도 저지만 선생님도 그만큼 진심이셨구나 싶더라고요. 심지어 제가 선생님 그만두신다고 울 때에도, 보라면서 이렇게 여린데 어떻게 기자를 하려고 하냐고 말씀하셨죠. 아마 울면서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고 말대답한 기억이 나네요.

결론적으로 선생님 말씀은 맞았습니다. 일간지 사회부 인턴을 하면서 저는 멘탈문제때문에 기자를 못하겠다는 결론을 내렸거든요. 사건 피해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가다듬어 전하는 일이 제겐 너무 괴로웠습니다. 반드시 세상에 알려져야 하는 일을 전하고 다른 피해자들을 낳지 않도록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내는 업에 대한 존경은 강해졌지만 그 일을 하는 기자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제 마음이 많이 해졌습니다. 선생님께서 참 선견지명이셨죠?

그래도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고 양질의 정보로 변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비즈니스 분야 기사를 쓰는 지금이 행복한 이유죠. 하지만 이것도 항상 쉽지는 않습니다. 저는 제가 만난 기업이나 인물에 대한 악플이 달릴 때, 정신적으로 소모되더라고요. 특히 타당한 이유도 아니고 인신공격하는 내용이나 악의적인 목적으로 쓴 댓글을 보면 안 먹어도 될 욕을 기사때문에 괜히 듣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선배들께 여쭤보면 시간이 지나고 일이 익숙해지면 마음을 갈무리하는 능력도 는다고 합니다. 아직은 멀었나 봅니다.

아무튼 그래서인지 가끔 그 선생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한편으론 그런 점때문에 제가 개인적으로 속상하고 힘들어 할 수는 있지만 기사를 쓸 때에 이게 정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기사인지를 몇번이고 더 곱씹어서 쓸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다 장단이 있는 거겠죠.

오늘은 글이 길어졌습니다. 지금 하는 일을 많이 좋아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이런 저런 생각때문에 미련 아닌 미련도 많이 남아서인지 일 얘기를 할 때면 늘 글이 길어지는군요. 여하튼 구독자님, 이번주도 다시 산뜻하게 가봅시다. 좋은 하루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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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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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ver 1 year 전

    스승의 날,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에 다녀와 2학년 복학을 하면서 대학 3년 공부해서 <공무원>이 되겠다는 나름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계획은 전공 교수님께 설득을 당해서 전공으로 진로를..... 그렇게 교수님 연구실에서 3년, 졸업 후 1년을 숙식을 해결하며 살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지금 공무원도 전공 관련 직업도 아닌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이 계셨기에 지금의 제가 있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것은 운이 좋게도 저는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었다는 것입니다. 그리운 시절입니다. ^^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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