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그간 잘 지내셨나요? 저는 15일이 언제쯤 올까 기다리다가도 눈 깜짝할 새 10일대로 진입한 바람에 허겁지겁 글을 쓰러 달려왔습니다.
사실 일 때문에라도 글을 매일 쓰기는 하지만 이렇게 청자를 둔, 또 제 이야기지만 동시에 제 이야기가 아닌 글을 쓰는 것은 오랜만입니다. 저는 지난 1월 동안은 사적인 글은 정말 아예 쓰지 않았거든요. 지난해에도 염불외듯이 말씀드렸다시피 공부를 시작하기도 했고요. 대단히 집중을 하지는 않더라도 우선 앉아 있는 데 의의를 두고 있습니다. 그것만 해도 쉽지 않더라고요.
2년 넘게 습관이 된 조잘조잘을 멈추면 삶이 많이 달라질줄 알았지만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글을 쓰던 시간은 또 다른 일과로 채워지고, 글로 풀던 생각은 또 다른 방식으로 풀리더라고요. 요즘은 노션에다가 계획을 세우는 식으로 머릿속 망상을 늘여놓고 있습니다. 하고 싶다고 말을 하던 것들을 언제 어떻게 할 지 구체화하고 있죠. 이런 것들은 왜 이리도 재미있을까요.
그렇게 매일 뉴스레터를 쓰던 게 별 다를 바 없었다고 말을 면서도 아니었나봅니다. 쓰고 싶은 말이 중구난방으로 쏟아지네요. 다음 글은 좀더 주제의식을 갖고 찾아올 테니 오늘은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전화할 때 곧잘 녹음을 하곤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닥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혹시 구독자님께서 저와 통화하셨다 해도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꼭 기억해두고 싶은 말을 들을 때는 녹음 버튼을 누르지 않았더라고요. 아쉽습니다.
얼마전 엄마랑 전화를 하다가 참 듣고 싶었던 말을 들었습니다. 주말에 공부하고 기숙사로 들어가던 길이었는데, 엄마가 새삼스럽게 너는 하고 싶은 일을 늘 실천으로 옮기는 삶을 살고 있다며 대단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러고 가끔 엄마가 타박하고 걱정하는 말을 해도 늘 마음 속으로는 너를 응원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걸 꼭 기억해달라고 했습니다. 완전 감동이죠. 요즘 대부분의 일상적인 것들은 머릿속에서 휘발되는데 녹음도 하지 않은 이 말은 하루에도 수차례 재생됩니다. 나름대론 굳건하게 갈 길 가고 있다고 생각해도 누군가의 무조건적인 지지가 필요했나 봅니다. 이왕이면 그 지지가 가족이 해주는 것이라 더 좋았고요.
요즘 저희 가족은 제가 근래 바라고 있는 미래가 이미 다가온 것처럼 저를 대하고 있습니다. 대화도 자연스레 그렇게 흘러가고요. 엄마도 아빠도 오빠도요. 그런 대화 속에서 저도 자연스레 그런 미래 속에 살고 있는 저를 그리게 되고, 별다른 걱정은 사라집니다. 그래서 요즘 스트레스가 없나봅니다. 유일한 스트레스는 시험 문제를 잘 못푸는 저^.^지만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고 공부를 하면 해결될 문제니까 그닥 큰 문제로 느껴지진 않습니다. 구독자님, 정서적 지지가 이토록 중요합니다.
그래요, 요즘 스트레스가 크게 없습니다. 단발적인 스트레스는 있어도 마음을 짓누르는 고민은 없습니다. 지난 28년의 시간을 통해 저는 이같은 상황이 굉장히 운 좋은 시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충분히 만끽해야겠죠. 괜스레 힘들었던 시기에 봤던 점사를 다시 보며 2024년 이후 좋아질 것이라는 문장을 몇번씩이고 읽는 까닭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글을 잘 안 쓰나 싶기도 합니다.
구독자님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사실 글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자기파괴적인 성격도 갖고 있어서 고통을 글밥삼아 더 잘 자라기 때문입니다. 힘든 시기에 쓰는 글은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좋은 역할도 하지만 때때로 고통을 심화시키는 이유입니다. 지난 시간을 곱씹고 내면의 서글픔을 들추고 반추하는 과정은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습니다. 그 끝에는 분명한 카타르시스가 있지만, 이를 느끼기까지는 지난한 시간이 필요하죠.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오늘은 글을 쓰면서도 별다른 부정적인 마음은 들지 않네요.
요즘의 좋은 점 중 하나는 하고 싶은 것이 많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늘상 하고 싶은 것 투성이인 저라서 별다른 신뢰가 안 들지도 모르지만요. 지금은 할 수 없는, 또 지금은 딱히 하고 싶지도 않은 것들을 나열하다 보면 언젠가의 그 시간이 벌써부터 기대가 돼서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미래만을 바라고 사는 것이 대단히 현명한 것은 아니지만 미래를 그리며 현재를 채워가는 것은 꽤나 생산적인 일입니다.
느끼셨을지 모르겠지만 오늘 글은 꼬아서 쓰고 있습니다. 이런 글을 좀 쓰고 싶었나 봐요. 일로 쓰는 글은 쉽고 누구나 읽을 수 있게 쓰는 것이 정답이지만 사적으로 쓰는 글은 몇번 읽어야만 이해할 수 있게 쓰고 싶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 역시 자기파괴적인 성격을 담고 있기 때문일까요.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어제 2호선으로 한 바퀴 순환했습니다. 집에 가는 열차를 반대로 탔기 때문입니다. 이어폰도 안 꽂았는데 약 열 정거장을 지나치고서야 깨달았습니다. 그제서야 부랴부랴 집가는 길을 다시 찾았는데, 되돌아가는 것보다 그대로 가는 게 더 빠르더라고요. 일년을 오간 길인데도 어떻게 이걸 헷갈릴 수 있나 싶다가도 늘 2호선을 다니는 친구 몇도 그런 적이 있다길래 그러려니 해봅니다. 이참에 그날 공부는 말았습니다. 눈비가 온 날이었는데 회사 앞 역에 가는 길에도 몇번 미끌렸던 찰나라, 만약 공부하러 갔으면 크게 넘어졌을 거라 하늘이 학교에 못 가게 막으려고 열차를 반대로 태웠나보다 라는 오컬트적인 상상도 했습니다. 그런 합리화라도 있어야 기분이 말끔하니까요.
아무튼 그런 하루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마감에 시달리지도 않고 있어요. 1년을 해보면서 마음의 근육이 자란 건지, 단지 종강을 했기 때문에 여유가 생긴 건지, 업무 조정의 영향일지 알 수 없습니다. 이따금 마음을 찌르는 불안이 있기는 하지만 적당히 모르쇠하고 있습니다. 한 살 더 먹었다고 마음이 좀 커진 걸까요. 급급하면 살아봤자 대단히 달라지는 건 없다 싶습니다. 어차피 주어진 일은 그대로고 해야 할 일도 그대로입니다. 화다닥 할 이유가 없죠.
새삼 올해 29살, 연나이로는 28살이 됐다는 걸 곱씹게 되네요. 만 나이로 27살이니 마음을 한층 가볍게 먹어보지만 이상하게도 사회적 자아는 29살에 벌써 적응했습니다. 제가 상상한 29살의 저는 굉장한 어른이었는데 저는 밖에서 어른인 척만 잘하는 애가 됐습니다. 29살의 초입이라 그럴까요. 끝자락이 오면 좀 달라지려나요. 글쎄요. 79살이 돼도 어쩐지 할머니인 척하는 애로 살고 있을 것 같은 기분입니다.
모쪼록 올 한 해는 더 자주 기뻐하고 덜 슬퍼하고, 감정에 덜 젖어있는 시간으로 채우고 싶습니다. 회복탄력성이 더 강해지길 바라고요. 남의 시선에 좀 덤덤해지길 바랍니다. 경중을 잘 따질 수 있으면 좋겠고요. 이렇게나 욕심이 많은 만큼 성취도 따라주면 좋겠네요. 모쪼록 2025년의 1월도 절반이 지났습니다. 어쩐지 올해 조잘조잘은 올해가 얼마나 지났는지 알람시계 역할을 할 것 같은 예감이네요.
쓰려면 꼬박 1만자는 더 적을 수 있을 텐데 아침부터 구독자님의 기운을 빼고 싶지는 않아 이만하겠습니다. 아참, 올해부터는 적게 보내는 대신 꽉 채워 보내는 일환으로 사진도 같이 보내려고 합니다. 재미있었던 순간들을 곁들이는 것은 다음 글의 몫으로 넘기겠습니다. 남은 1월도 온전하게 잘 살아내길 바라요. 화이팅!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의견을 남겨주세요
디듀
이렇게 기분 좋은 글이 올해의 알람시계가 되어주다니, 저는 완전 행운아네요><
조잘조잘
이렇게 다정한 댓글이 올해의 첫 댓글이라니!! 저도 완전 행운아🥹🤍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