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자유도를 평가합니다. 다음 질문에 대해 O.X로 답하시오.
- 오늘 아침 잘 만큼 자고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났나?
- 기상 후 씻고 안 씻고를 선택할 수 있나?
- 출근 길 루트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나? 걸음 걸이 속도는 맘대로 낮출 수 있었나?
- 근무 중 원하는 시간에 쉴 수 있나?
- 점심 메뉴는 자유롭게 고를 수 있나?
- 오후 근무 중 잠이 오면 잘 수 있나?
- 퇴근할 때 차 막히는 것을 피할 수 있나?
- 귀가하면 저녁 메뉴는 맘대로 정하나?
- 안 씻고 쉴 수 있나?
- 쉬기나 할 수 있나? 눈치 보지 않고 쉴 수 있나?
- 주말이라고 크게 다르나? 자유를 느끼나?
이런 질문은 끝도 없이 할 수 있다. 반면 O라고 표시할 수 있는 항목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알고 당신도 안다. 자유가 인간이 누려야 할 최고의 가치라는 것은 너무 당연해 보이지만 실상 현대인은 자유와 거리가 멀다. 우리에게는 항상 해야 할 일이 있고, 일의 순서도 주어지며, 방식도 정해져 있다.
어쩌면 당신이 가지고 있는 자유는 기껏해야 넷플릭스에서 뭘 볼 것인가, 빵집에서 팥빵과 크림빵 중 어떤 빵? 짜장면 짬뽕? 이 정도뿐일지 모른다. 이것들 역시 완전한 자유는 아니다. 제한된 조건에서 선택 가능한 옵션일 뿐이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사회계약론, 장 자크 루소
인생의 자유도가 기대 이하로 낮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 하드웨어의 제약: 유전적 결정론 (Biological Data)
인간의 자유도는 태어나는 순간 이미 상당 부분 고정 매개변수(Fixed Parameters)로 설정된다.
- 지능과 성격의 유전율: 행동유전학의 수천 개 메타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능(IQ)의 50~70%, 성격 특성(Big 5)의 40~50%가 유전에 의해 결정된다.
- 초기값의 위력: 어떤 '연산 장치(뇌)'를 가지고 태어날지는 선택 불가능하다. 이는 개인의 일 처리 속도와 스트레스 내성, 보상에 대한 민감도(도파민 수용체 밀도 등)가 이미 설계된 채로 인생 게임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
2. 신경과학적 제약: 의식의 지연 (Neurological Data)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믿는 선택의 순간조차 실제로는 뇌의 선제적 연산에 의한 결과라는 연구가 있다.
- 리벳 실험(Libet's Experiment)과 후속 연구: 뇌파(EEG)와 fMRI를 통한 실험에서, 인간이 "나는 이 버튼을 누르겠다"고 의식적으로 결정하기 최대 수 초 전에 뇌의 준비 전위(Readiness Potential)가 이미 활성화되는 것이 확인됐다.
- 이 실험은, 의식은 결정의 주체가 아니라 '뇌'라는 블랙박스가 내린 결정을 사후에 내 선택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즉 내 의식은 내 선택에 관여하지 않고 구경할 뿐이다. 마치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의 극중 행위를 내가 선택한 것이라 믿는 것과 유사하다.
3. 구조적 제약: 사회경제적 경로 의존성 (Socio-economic Data)
사회라는 시스템 내에서의 이동 자유도(Social Mobility)는 통계적으로 매우 낮다.
- 부모의 배경과 상관관계: 한국을 포함한 OECD 국가들의 '세대 간 소득 탄력성' 지표를 보면, 부모의 소득 수준이 자녀의 최종 소득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잘 사는 집안 자녀가 주로 고소득 직업을 구한다.
- 시간 자원의 수탈: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 데이터를 보면, 성인 남녀의 하루 24시간 중 생존을 위한 필수 시간(수면, 식사)과 의무 시간(노동, 이동)을 제외한 가용 자유 시간은 평균 3~4시간에 불과하다.
- 제약 조건: 이 3~4시간조차 육체적 피로도와 사회적 압박(가족, 관계)이라는 변수에 의해 통제되므로, 순수한 선택의 자유도는 극히 제한적이다. 좀 쉴 만하면 가사를 처리하거나 자녀 케어를 해야 한다. 실제 자유 시간은 0에 수렴한다. 잠자기 전 침대 위에서 스마트폰 보는 시간 정도 아닐까?
4. 물리적 제약: 엔트로피와 확률 (Statistical Data)
자유도가 높다는 것은 선택 가능한 상태(State)가 많다는 뜻이지만, 실제 인간이 도달 가능한 유의미한 선택 가능한 상태는 극소수다.
- 내쉬 평형(Nash Equilibrium): 사회 시스템 내에서 개인이 생존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전략은 대개 '남들과 비슷한 경로'를 따르는 것이다. 이 경로에서 이탈할 경우 발생하는 리스크(사회적 고립, 빈곤)가 너무 크기 때문에, 사회라는 시스템은 각 개인을 가느다란 확률적 경로로 강제 정렬시킨다.
- 블랙 스완의 희소성: 시스템을 전복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 확률은 통계적 아웃라이어로 0.3%에 불과하다. 즉, 99.7%의 인간은 통계적 예측 범위 안의 경로를 벗어나지 못한다.
위와 같은 근거에 따라 인생이 만약 게임이라면 자유도가 극히 낮은 레일로드 시스템에 가깝다.
그러면 자유도가 낮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따져 보자.
- 인생의 결과값이 제한된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보잘 것 없으니 아무리 노력해도 내 결과물은 거기서 거기인 것이다. 대학에 가서 등록금 벌려고 알바만 하다 보면 인턴을 못하고 인턴을 못하면 취직이 안된다. 똑같이 의대를 가도 개업할 여유가 없으면 페이 닥터로 살아야 한다. 뭐 이런 식이다. 물론 아웃라이어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 아웃라이어가 되는 것조차 유전적으로 정해져 있다면?
- 보상이 랜덤으로 주어진다. 비슷한 조건에서 태어나서 비슷한 성장 환경을 가진 개체가 만약 전혀 다른 결과값을 얻었다면 그건 개인의 노력보다 운의 영역일 가능성이 높다. 어쩌다 눈에 띄었거나 어쩌다 트렌드에 맞았거나 뭐 이런 식이다. 똑같이 여행 유튜버를 해도 누구는 백만 구독자의 인플루언서가 되고 누구는 거지가 되는 것이 꼭 노력의 차이겠나? 대중의 관심으로 성패가 좌우되는 분야에서 행운은 가장 큰 변수가 된다.
그럼에도 이 사회는 우연히 보상을 받은 특정 개인을 내세워 "그가 노력을 통해 보상을 쟁취했다"고 선전한다. 이는 다른 구성원들이 낮은 자유도 안에서도 계속 에너지를 소모하며 사회가 지속될 수 있는 톱니바퀴를 돌리게 만드는 심리적 최적화 기법이다. 노력하면 잘 산다? 대부분 개소리다. 노력하면 잘 살 가능성이 조금 높아진다. 이게 팩트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조금이라도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당신의 리소스를 무한 투입할 것인가? 적정선에서 포기하고 주어진 상황을 즐길 것인가? 아니면 시스템 전복을 노려볼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자유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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