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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뇌를 위한 유해한 교양

더는 AI와 글쓰기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된다.

2026.08.18 | 조회 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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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소식입니다. 작가님들.

그동안 AI의 글쓰기 솜씨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서 내 직업이 사라지면 어쩌나 고민하신 분도 있었을 겁니다. 웹소설의 절반은 AI가 쓰는 세상, 내가 경쟁하는 작가가 인간인지 AI인지 알 수 없는 세상, AI의 보조 작가로 활동하며 쥐꼬리 시급을 받게 되는 세상, 그런 세상은 빨리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당분간은요. 

사실 오픈AI나 엔트로픽 같은 AI 기업들의 기술 발전 속도로 추산하면 머지않아 인간 작가의 능력을 넘어서는 AI 작가가 출시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시기 언제일지는 알 수 없게 됐습니다. 최소한 미뤄졌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자본의 논리 때문입니다. 원래 AI 기업들의 목표는 범용 인공지능, 즉 AGI였습니다. 단일 인공지능 모델이 모든 면에서 인간과 유사한 지적 기능을 수하거나 그 능력치를 뛰어넘는 게 목표였죠. 다양한 인지적 과업을 스스로 설정하고 학습하며 수행할 수 있는 인공지능 말입니다.

만약 AGI 같은 범용 AI 모델이 제대로 개발되면 글쓰기 능력은 자연스럽게 향상되고, 인간 작가와 구분할 수 없는 선을 넘어 독창적인 문체와 발군의 창의력을 가진 AI 작가가 탄생하겠죠. 하지만 AGI 개발이 점점 지연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투자자 입장에서 볼 때 AGI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개발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자본이 필요한데 당장 돈이 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반면 요즘 기업에서 도입 중인 AI 에이전트는 지금 수준에서도 꽤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나스닥 상장을 통해 투자금 회수를 기대하고 있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AI 기업들이 AGI 같은 '헛된 꿈'을 쫓지 말고 우선은 돈 되는 쪽으로 기술 개발하기를 원했습니다. AI 기업들은 투자자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었고요.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요?

현재의 인공지능은 개발/코딩, 영업/세일즈, 고객지원, 생산성 향상 등에 특화돼 나날이 성능을 업그레이드하고 있습니다. 반면 출시와 함께 발군의 실력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던 글쓰기, 이미지 생성, 작곡 같은 기능은 부차적인 영역이 됐습니다. 물론 전반적인 인공지능 성능이 좋아졌기 때문에 능력치 자체는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최신 AI에는 창의력 향상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강화학습입니다.

AI를 대중화하고 기업에 판매하기 위해서는 안정성이 담보돼야 합니다. 지피티가 아무 말이나 쏟아내며 개념 없이 사용자의 말에 맞장구를 치다가 사용자가 극단적인 생각에 빠져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보인 사례가 세계 곳곳에서 발생했습니다. 때문에 오픈 AI 등은 각종 소송에 엄청난 비용을 쏟아붓고 있죠. 동시에 재발 방지를 위해 AI 기업들은 인공지능을 강도 높게 재교육시켰습니다. 이건 돼, 이건 안돼, 그건 올바른 답변이 아니야, 이건 하지 마, 그런 답변은 위험해, 하며 정식 출시 전에 가이드라인을 탄탄하게 만든 거죠. 그러다 보니 요즘 신형 모델들은 좀 답답하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집니다. 아는 것 많고 보다 논리적이지만 답변이 '안전한'만큼 정형화되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아는 것 많고 모범생이라고 창의적인 글을 잘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발칙한 상상을 하거나 특이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거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다른 사람의 글이 울림을 주는 경우가 많죠. 딱 그런 이유로 요즘 AI가 쓰는 글은 새로울 것도 없고 느낌도 없고 신선한 충격도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로 인간 작가의 경쟁이 되지 않는 거죠. 

다행이죠?

다행이긴 한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무척 슬픈 사실이 백그라운드에 있습니다. 글쓰기는 돈이 되지 않는다는 뻔한 사실을 인공지능 업계가 또 한 번 증명한 것이죠. 자본의 논리가 그러하듯 기술은 언제나 돈이 되는 곳으로 흘러갑니다. 글쓰기가 돈이 된다면 지금쯤 이미 인공지능 작가가 넘쳐났을 겁니다. 그림도 마찬가지예요. 드로잉이 돈이 된다면, 작곡이 돈이 된다면, 생성형 인공지능의 발전 포커스가 그쪽으로 맞춰졌겠죠.

대부분의 예술 분야 종사자들이 밥벌이를 위한 세컨잡(second job)을 가지고 있는 이상한 세계를 살고 있기에 우리의 영역은 인공지능의 메인 타깃이 되지 않았습니다. 반면 코딩, 회계, 법조, 의학 분야 등에서는 매일 같이 기술 혁신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현재는 자금이나 전력이 모자라서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 리소스가 남게 되면 인공지능은 예술과 창작 영역까지 문어발을 뻗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아마 인간 고유의 영역은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되겠죠. 나뿐 아니라 남들도 나와 비슷한 처지가 된다는 것을 유일한 위로로 삼으면서 말입니다.

막을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니 피하거나 도망쳐야죠. 만약 쓰지 않고 살 수 있다면 그것도 방법입니다. 하지만 많은 작가들에게 글쓰기는 세계를 대하는 방식이며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다시 말해 한 권도 팔리지 않고 조금도 읽히지 않는다 해도 쓰기를 멈출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I 기업은 절대 강화학습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강화학습이 만들어내는 안전지대의 경계선 밖으로 도망치면 어떨까요? AI는 확신에 찬 문장을 쓰지 못합니다.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는 표현은 금지됩니다. 논쟁적인 신념과 사상, 검증되지 않은 직관, 위험을 무릅쓴 단정 같은 건 앞으로도 AI에게 금단의 영역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안전한 문장을 버려야 합니다. 균형 잡힌 척, 중립인 척하지 말고 나의 편견과 나의 단정,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위험한 시선을, 그 날것의 태도를 표현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AI가 넘볼 수 없는 개인적 경험을 축적하고 사고의 지평을 넓혀야 합니다. AI는 가본 곳을 능숙하게 다닐 수는 있어도 가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을 먼저 탐험하기는 어렵습니다. 감각은 오직 나의 것입니다. 내 경험을 훔칠 수는 없습니다. AI가 모든 여행기를 다 읽었다 해도 자기 발로 그 언덕을 오르며 풍경을 보지는 못했고, 멜랑콜리한 감정을 느끼지도 않았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이별하고 더 많이 기뻐하고 슬퍼하는 것. 그렇게 저는 다음 시대를 준비할까 합니다. 충분히 두려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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