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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AI야, 이거 가격승인 문서랑 이메일 작성해줘?

그런데 승인권자도 AI에게 "이 문서 요점만 정리해줘"라고 하네요

2026.09.30 | 조회 1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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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보고서의 완성도를 자기 능력으로 착각하지 않도록 우리는 더 사고하고, 행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저도 실험을 해보고 있습니다.

글을 기획하고, 아이디어와 경험을 토대로 초안을 쓴 뒤, 시장조사와 자료조사, 문법과 표현의 정확성을 위해 AI 도구를 사용합니다. 어떨 때는 AI가 고치자는 대로 다 바꿔보고, 어떨 때는 그냥 제가 쓴 대로 발행도 해봅니다.

그러면서 생긴 능력(?)은 어떤 글을 AI가 썼는지 아닌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겁니다. 또 AI가 하자는 대로 할수록 공격받을 만한 표현은 줄어드는데, 반대로 색깔도 없어지는 걸 느낍니다. 

시중의 많은 글들도 읽으면서 속으로 생각합니다.

‘이 글은 AI 말투가 있네? 그럴듯한데 요지가 뭐지?’

‘이 글은 내용은 좋은데 AI가 써준 그대로 낸 것 같네?’

‘하긴 뭐 내 글도 그럴 수 있는데 뭐’ 하면서 말이죠.

그런 어색함이 있다고 AI를 안 쓸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지난 글에서 내부 보고 시 분석 뒤에 숨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AI는 그 숨을 자리를 훨씬 그럴듯하게 만들어 줍니다. 다양한 자료와 근거를 가지고 말이죠. 그런데 읽다 보면 그래서? 가 되는거죠.

비슷한 현상에는 이미 Workslop이라는 이름도 붙어 있더군요. 2025년 Harvard Business Review에 소개된 단어인데, 겉보기에는 그럴듯하지만 실제 일을 진행시키기에는 내용이 부족하고, 받은 사람에게 다시 생각하고 고치는 일을 떠넘기는 AI 산출물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미국 사무직 근로자 조사에서는 약 40%가 최근 한 달 안에 이런 산출물을 받아봤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읽는 사람이 다시 챙겨야 하는 이 상황만큼, 작성하는 사람에게서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도 신경 쓰입니다. 결과물은 그럴듯한데, 내가 무슨 문제를 풀려고 하는지,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그래서 뭘 해야 하는지는 덜 생각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하고요.

물론 AI가 결과물의 속도와 품질을 높이는 효과는 분명합니다. 

MIT의 Shakked Noy와 Whitney Zhang이 전문직 종사자 4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글쓰기 실험에서는 ChatGPT 사용 집단의 평균 작업시간이 40% 줄고, 결과물의 평가 품질은 18% 높아졌다고 합니다.

특정 과제에 한정된 결과지만, 우리가 왜 AI를 쓰는지는 잘 보여줍니다. 더 빨리, 더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도 더 좋아지겠죠.

그런데 재밌는 현상을 보게 됩니다.

실무자는 AI로 보고서를 만들고, 승인권자는 그걸 다시 AI로 요약하고 확인합니다. 고객에게 자료를 보내면 고객도 AI에게 요약시키고 더블체크를 시킵니다.

이 모습을 보면 우리는 AI Agent 시대를 기다린다고 하면서, 인간이 먼저 AI Agent가 된 것 같습니다.

AI가 작성해준 내용을 가운데서 API나 MCP처럼 전달하고, AI가 정리한 행동을 수행하는 것 같으니까요.

영어 이메일처럼 내가 몰랐던 문법이나 문화적 맥락을 배우는 데 AI를 쓴다면야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겠죠.

그런데 습득을 넘어 사고의 과정까지 맡기고 있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고민하고 훈련하지 않은 내용을 아는 걸로, 할 줄 아는 걸로 착각하면 실제 상황에서 그 간극을 메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Microsoft Research와 카네기멜론대 연구진의 조사도 흥미롭습니다. AI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비판적 사고에 들이는 노력이 줄어드는 연관성이 나타났습니다. 동시에 AI를 사용하면서 사람의 사고 역할이 정보를 직접 만들어내는 것에서 결과를 검증하고, 여러 정보를 통합하고, 전체 업무를 감독하는 쪽으로 이동하는 모습도 관찰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연구는 자기보고에 기반한 조사여서 AI가 사고력을 떨어뜨린다고 단정하는 연구는 아닙니다.

저에게는 오히려 사람이 해야 할 생각의 역할과 포인트가 달라지고 있다고 읽힙니다.

예를 들어 AI를 쓰다 보면 정말 그럴듯한 표현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건지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AI는 뭔가 스스로 하고 싶은 게 없는 것 같거든요. 

내가 정해준 방향이 다 맞다고 하면서요.

사실 AI로 시장조사, 자료 작성, 디자인까지 빨라지면서 일잘러가 된 기분이 드는 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모두가 그걸 하고 있으면 결국 거기서 다른 무언가를 찾아내는 사람이 새로운 일잘러가 되겠죠.

그 차이는 하고 싶은 게 있고, 그걸 위해 고민하고 사고하고 행동하는 데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거창한 목표까지 안 가더라도, 지금 만드는 자료나 문서가 뭘 위한 건지는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수단을 잘 다루는 것과 일을 잘하는 건 같지 않습니다. 일을 잘한다는 건 결국 목적을 가지고 행동해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렇다면 AI 시대에는 보고서나 고객 자료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문서를 쓰기 전에 이 문서가 누구의 어떤 판단을 돕기 위한 것인지부터 고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가격에 대한 대화가 이렇게 오갈 때죠.

“이번 건은 15% 할인 승인 좀 부탁드립니다.”

“왜요?”

“고객 예산이 부족해서요.”

“고객이 그렇게 말했어요? 깎아만 주면 산다고 합니까?”

“...안 그러면 일단 검토가 어렵다고 해서...”

그런데 우리는 사실 15% 할인을 잘 받아내는 보고서에만 집중하면 안 되겠죠.

여기서 “예산이 없으니 15% 할인을 승인받는 보고서를 만들어줘”라고 AI에게 요청하면, 답을 정해놓고 이유를 맞추는 문서가 나옵니다. 그것도 아주 그럴듯하게요.

그 전에 확인할 게 있을 겁니다.

정말 가격만이 이 사업 기회를 막고 있는 건가?

그 판단의 근거는 고객의 의견인가, 상황인가?

가격을 낮추는 것 말고 다르게 접근할 방법은 없을까?

물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 보고서로 할인 승인받고 계약하면 된 거 아니냐고요.

그쵸. 클로즈할 수도 있습니다. 가격이 정말 답인 딜도 있죠.

다만 두 가지가 남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가격을 가지고 이야기해야하죠. 리뉴얼 때 또 깎아달라고 하면 그때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싶죠. 저도 그래요.

다만 그 딜이 왜 클로징됐는지 회사에 남는 기록이 ‘15% 할인’뿐이면 안 되겠죠.

시간이 없다는 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확인하는 데 드는 시간이 보고서 쓰는 시간보다 짧은 경우도 많습니다. 전화 한 통이면 될 걸 안 하고 소설을 쓸 수도 있죠.

이 질문을 거친 뒤에도 가격이 문제라면 그때는 AI에게 더 적극적으로 일을 시켜도 될 겁니다.

확인한 내용을 정리하고, 반대 논리를 찾고, 선택지를 비교하고, 승인권자가 빨리 판단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되겠죠.

내부 보고라면 지금 어떤 문제가 있고, 왜 그렇게 판단했고, 어떤 결정이나 자원이 필요한지가 보여야 합니다. 목적은 내가 얼마나 많이 일했는지를 설명하는 게 아니라 조직이 다음 결정을 하게 만드는 거니까요.


고객에게 보내는 자료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제품을 이해시키는 것도 필요하지만, 결국 고객이 왜 우리와 함께 의사결정을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근거가 되어줘야 하니까요.

Reference에 유명한 고객 로고 하나만 넣으면 고객 입장에서는 스무고개를 해야하죠.

어떻게 쓴 거냐. 왜 쓴 거냐. 우리랑 비슷한 환경이냐. 그래서 뭐가 좋아졌냐.

어떤 Use case인지, 적용 환경은 어땠는지, 실제로 어떤 결과가 있었는지를 확인해야 그제서야 고객 내부에서도 근거 자료로 쓸 수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이 선택을 해도 되는가’를 판단하는 근거 자료가 돼야 합니다.

그간 수많은 컨설팅펌들이 해온 일 중 하나도 고객의 의사결정에 필요한 신뢰 있는 근거를 만들어주는 것이었구나 싶습니다. 고객이 혼자 조사하기 어려운 시장을 조사하고, 선택지와 전략을 비교하고, 의사결정자가 판단할 근거를 만들어주는 일이었으니까요.

이런 일은 AI가 훨씬 빠르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시장조사, 사례·경쟁사 비교, 요약, 반론 찾기, 영어 다듬기, 임원용 한 페이지까지 말이죠.

그래서 반대로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일도 생깁니다.

이 고객이랑 뭘 하고 싶은가, 그리고 안 풀릴 것 같은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이건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 정해야 하는 거죠. AI가 준 자료를 참고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 판단에 필요한 중요한 사실 중 상당수는 직접 알아봐야 합니다. 고객이 무엇 때문에 멈췄는지 물어봐야 하고, 담당자와 의사결정권자의 생각이 같은지도 봐야 합니다.

AI는 이런 사실을 모르면서도 꽤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 줍니다.


AI는 보고서를 만들 수 있지만, 그 방향과 근거는 사람이 고민해야 합니다

내부 보고서는 우리 조직이 더 좋은 결정을 하도록 만들어야 하고, 고객 자료는 고객이 더 좋은 결정을 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려면 적어도 문서를 만들기 전에는 세 가지 정도는 답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 나는 지금 무슨 문제를 풀려고 하는가.
  • 내 판단과 그 판단의 근거는 무엇인가.
  • 이걸 받은 사람이 다음에 무엇을 결정하거나 행동하기를 바라는가.

어쩌면 사람이 API가 되지 않는 방법도 이런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정보를 받아 그대로 다음 사람에게 넘기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왜 이 정보가 필요한지 판단하고, 부족한 사실을 직접 확인하고, 해야 할 행동도 고민해보는 것.

AI가 더 많은 정보를 정리하고 제공해줄수록, 의도적으로 더 ‘내가 지금 뭘 하려고 하는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다음부터 AI가 도와주면 됩니다.

어쩌면 AI 시대의 좋은 보고서는 AI 없이 쓴 보고서가 아니라, 사람이 현장에서 알아낸 것과 자기 생각을 가지고 AI를 제대로 써서 다음 의사결정을 더 잘하게 만든 보고서일 겁니다. 양식이나 형식만 멋진 보고서 말고요.


다시 AI앱을 띄워놓고

앞에서 AI가 쓴 글인지 아닌지가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쓰다 보니 그것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AI가 썼는지 아닌지가 아니라, 이 문서 안에 작성자의 고민과 의사결정이 있는가. 그리고 그 고민이 누군가의 다음 의사결정과 행동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가.

그게 중요한 거죠.

저도 이 글을 쓰면서 자료조사도, 검증도, 문장 정리도 AI의 도움을 받습니다. 그래도 무엇을 문제라고 볼지, 무엇을 말할지는 결국 제가 정해야 함을 매번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읽고, 그래서 뭘 어떻게 하자는 건지 한 가지 정도는 남도록요.

우리가 AI가 정해준 걸 받아 전달하는 Agent가 되지 않도록, 같이 고민해가보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 한번 해볼 일

AI로 자료를 만들기 전에, 내가 이미 정해놓은 답과 반대되는 가정이나 다른 가능성을 먼저 한번 떠올려보면 좋겠습니다.

가격 할인이 답이라고 생각했다면,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는 가정부터 해보는 거죠.

그걸 따져보고도 여전히 디스카운트만이 답이라면, 그때 원래 쓰려던 보고서를 쓰면 됩니다.

5분만 써봐도 됩니다.


다음 글 소개

고객에게 좋은 자료를 준다는 건 결국 고객이 더 좋은 판단을 할 수 있게 돕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도 듭니다.

고객이 ‘이 선택을 해도 되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시장마다 같을까요?

한국에서 Enterprise 고객을 만나면 자주 듣게 되는 질문이 있습니다.

“국내 레퍼런스 있으세요?”

글로벌에서 수백, 수천 개 고객이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해도 다시 국내 사례를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 해외의 더 유명한 기업들도 많이 쓰는데 왜 굳이 국내를?’이라고 생각하게 되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고객이 정말 궁금한 건 유명한 회사가 썼느냐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우리와 비슷한 환경에서도 이 선택을 해도 괜찮다는 걸 내가 회사 안에서 설명할 수 있는가.’

그걸 묻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다음 화에서는 한국 B2B 고객이 구매할 때 무엇을 확인하고, 왜 글로벌에서 잘 팔리는 제품도 한국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그들의 조직 내부를 들여다보며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참고자료

  • Shakked Noy & Whitney Zhang, Experimental Evidence on the Productivity Effects of Generative Artificial Intelligence, Science, 2023. 전문직 종사자 453명을 대상으로 한 사전등록 글쓰기 실험.
  • Hao-Ping Lee et al. (Microsoft Research·Carnegie Mellon University), The Impact of Generative AI on Critical Thinking: Self-Reported Reductions in Cognitive Effort and Confidence Effects From a Survey of Knowledge Workers, CHI 2025. 지식노동자 319명이 제공한 936개의 실제 GenAI 업무 사례 조사. 자기보고 기반이므로 인과관계를 직접 증명한 연구는 아니다.
  • Kate Niederhoffer 외, AI-Generated “Workslop” Is Destroying Productivity, Harvard Business Review, 2025년 9월. BetterUp Labs와 Stanford Social Media Lab이 미국 사무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수행한 설문 조사이며, 학술 논문이 아닌 업계 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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