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이 뭐지? 그리고 어떻게 하지?

회복 경쟁에서의 불리함

멈춘 시간 속에서

2025.12.19 | 조회 1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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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네 마음약국

정신건강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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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우의 이야기로 여는 글

 

다른 친구들이 대학교 입학을 준비할 때,

저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전공을 고르고,

캠퍼스 생활을 상상하고,

새로운 출발을 이야기할 때,

저는

오늘 기분은 어떤지,

약은 잘 맞는지,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지를

하나하나 점검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시간은 분명 앞으로 흐르는데,

제 마음은 그 자리에 멈춰 선 것 같았습니다.

한 번은 용기를 내 동창 모임에 나갔다가

“조우야, 요즘 뭐 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딱히 내놓을 말이 없어

그저 웃고 넘겼던 기억이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

“저 사람들은 앞으로 달려가는데,

나는 계속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오늘의 이야기는

그 질문에서부터 시작됩니다.


[2] 이해하기 – 치료와 회복이 길어지는 동안 생기는 심리

 

⏳ 조울증의 치료는 ‘마라톤’입니다

조울증(양극성 장애)은

단기간의 치료로 끝나는 병이 아닙니다.

정신건강의학에서는 조울증을

“삶 전반에 걸친 장기적 관리가 필요한 만성 재발성 질환”으로 정의합니다.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Practice Guideline for the Treatment of Patients With Bipolar Disorder, 2020)

 

많은 분들이

“입원 한 번 하면 괜찮아지는 병”

“약 몇 달 먹으면 끝나는 병”으로 오해하지만,

실제 임상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조울증의 치료 과정에는 보통 다음과 같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 급성기 증상을 안정시키는
  • 약물이 몸에 맞는지 확인하는
  • 증상이 가라앉은 이후에도 재발을 막기 위한
  • 병에 대한 이해와 병식(Insight)을 형성하는

연구에 따르면,

조울증 환자의 약 60~70%는 치료를 받더라도

평생 여러 차례의 기분 삽화를 경험합니다.

(Gitlin, 2018, Maintenance treatment for bipolar disorder)

 

이 말은 곧,

조울증의 회복이 “전력 질주”가 아니라

속도를 조절하며 오래 달려야 하는 마라톤이라는 뜻입니다.


🏃‍♂️ 하지만 세상은 ‘단거리 경주’처럼 흘러갑니다

문제는,

조울증의 치료 리듬과

이 사회가 요구하는 삶의 리듬이

너무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말합니다.

  • “몇 살에는 졸업해야 하고”
  • “몇 살에는 취업해야 하고”
  • “이쯤 되면 결혼도 해야 하고”

이른바 정상 발달 궤도(normative life trajectory)입니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가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생애 시간표”라고 설명합니다.

(Neugarten, 1979)

하지만 조울증을 겪는 사람의 삶은

이 시간표에서 종종 이탈하게 됩니다.

  • 입원으로 학업이 중단되기도 하고
  • 약물 부작용으로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하고
  • 재발로 인해 다시 멈춰 서야 하는 시기가 오기도 합니다

이때 사람은 단순히 “늦어졌다”는 느낌을 넘어서

존재 자체가 어긋난 것 같은 감각을 경험합니다.

상담 장면에서 많은 내담자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제 인생만 멈춘 것 같아요.”

“다들 앞으로 가는데, 저는 정지 화면 같아요.”

이 감정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질병의 리듬과 사회의 리듬이 충돌할 때 생기는 구조적 고통에 가깝습니다.


🧠 비교와 자책 – 회복보다 더 무서운 병

조울증 회복을 가장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는

의외로 ‘증상’ 그 자체가 아닙니다.

바로 비교와 자기비난입니다.

  • “나만 뒤처진 것 같아”
  • “왜 나는 이것밖에 못 하지?”
  • “이 나이에 이 정도라니, 너무 한심해”

인지행동치료(CBT)에서는

이런 사고를 자동적 부정 사고(Automatic Negative Thoughts)라고 부릅니다.

(Beck, 1979)

문제는,

이 사고들이 단순한 생각을 넘어서

뇌의 회복 시스템 자체를 약화시킨다는 점입니다.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지속적인 자기비난과 비교는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을 증가시키고,

기분 조절과 관련된 전전두엽의 기능을 저하시킵니다.

(McEwen, 2017)

 

즉,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뇌 회복을 방해하는 생물학적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상담심리학에서는 이 지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회복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한 리듬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IPSRT(대인관계·사회리듬 치료)는

조울증 치료에서 특히 중요한 접근인데,

이 치료의 핵심은

남들과의 비교를 줄이고, 나만의 생활 리듬을 안정화하는 것입니다.

(Frank et al., 2005)


🌱 그래서 회복에는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조울증 회복의 목표는

남들보다 빨리 가는 것이 아닙니다.

  • 다시 무너지지 않는 방향으로
  • 재발을 줄이는 방향으로
  • 나를 해치지 않는 방식으로

조금씩, 그러나 지속 가능하게 가는 것입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심리학이

공통으로 강조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늦은 회복은 없습니다.회복에는 각자의 시간표가 있습니다.”

지금 멈춰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그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닙니다.

그 시간 동안

뇌는 회복을 배우고,

마음은 다시 균형을 익히고,

삶은 새로운 속도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조울증의 치료는 마라톤입니다.

그리고 마라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끝까지 살아남아 걷고, 다시 달릴 수 있는 힘입니다.

조우네 마음약국은

그 마라톤을 혼자 뛰지 않도록

곁에서 함께 걷는 공간으로 남아 있겠습니다.


[3] 마음약국 노트 – “다들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만 정체된 기분이에요”

“저보다 한참 후배였던 친구가 지금은 팀장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축하해 주고 싶은 마음보다 먼저 가슴 한쪽이 조용히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육아 이야기를 하고, 집을 사고, 휴가 계획을 세우며 삶을 확장해 가는 것 같은데,
저는 여전히 병원비를 계산하고 약을 챙겨 먹으며 하루를 버텨내고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게 내 속도라고 스스로를 설득해 보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서, 마음은 자꾸만 흔들리고 다시 비교의 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한 청년 조울러의 고백

[4] 회복 가이드 – 사회적 경쟁 대신 ‘나의 리듬’으로 살기

 

✅ 오늘부터 할 수 있는 작은 실천

– 상담 장면에서 실제로 회복을 돕는 방법들 –

회복은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상담심리학에서는 조울증과 같은 기분장애의 회복을

“삶의 통제감을 다시 회복해 가는 과정”으로 설명합니다.

이 통제감은 아주 사소한 실천에서 자라납니다.


1. 비교의 프레임을 ‘기록의 프레임’으로 바꾸기

사람의 마음은 본능적으로 비교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비교의 방향입니다.

타인과의 비교는 자존감을 깎아내리지만,

자기 자신과의 비교는 회복을 촉진합니다.

인지행동치료(CBT)에서는 이를

‘기준점의 전환(reference point shift)’이라고 부릅니다.

남의 인생을 기준으로 삼는 대신,

나의 어제를 기준으로 삼는 연습입니다.

  • 어제보다 식사를 한 끼 더 했는지
  • 어제보다 조금 더 웃을 수 있었는지
  • 하루를 버텨낸 것 자체는 어땠는지

이런 기록은 사소해 보이지만,

뇌에게는 분명한 메시지를 줍니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고, 움직이고 있다.”

상담 현장에서는

이 기록이 반복될수록 무기력과 자기비난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2. ‘지금 이 순간’을 중심에 놓는 연습

많은 내담자들이 회복을 힘들어하는 이유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오늘의 기준으로 끌어오기 때문입니다.

  • “이 상태로 사회생활이 가능할까?”
  • “이 나이에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은 자연스럽지만,

회복기에는 오히려 회복을 방해합니다.

마음챙김 기반 상담(MBCT)에서는

이를 ‘미래 투사로 인한 현재 소진’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상담에서는 이렇게 안내합니다.

  • 오늘의 목표는 ‘완벽한 하루’가 아니라
  • 오늘 잘 쉰 것도,약을 챙겨 먹은 것도,무사히 하루를 넘긴 것도모두 회복의

미래를 포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말자는 제안입니다.


3. 내가 걸어온 시간을 되돌아보기

조울증을 겪는 분들은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상담자는 종종 이렇게 느낍니다.

“이분은 이미 엄청난 시간을 버텨 오셨구나.”

회복 상담에서는

‘서사 재구성(narrative reconstruction)’이라는 작업을 합니다.

과거를 실패의 기록이 아니라

생존과 견딤의 기록으로 다시 읽는 연습입니다.

  • 입원했던 시간
  • 무너졌던 시기
  • 다시 일어나려 애썼던 순간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지금의 내가 여기까지 왔다는 사실을 바라볼 때,

자기혐오 대신 자기연민(self-compassion)이 자라납니다.

그리고 이 시선이

다음 발걸음을 내딛게 하는 가장 현실적인 용기가 됩니다.


❗ 피해야 할 자기비판의 언어

  • “나는 낙오자야.”
  •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 “사람들이 날 뒤처진 사람으로 볼 거야.”

상담심리학에서는

이런 문장들을 ‘내면화된 낙인(internalized stigma)’이라고 부릅니다.

이 언어들은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확대 재생산하는 사고 습관에 가깝습니다.

이 언어가 반복될수록

우울과 무기력은 깊어지고,

회복을 시도할 에너지는 줄어듭니다.


☝️ 다시 정리하면

회복은 인생에서 탈락한 증거가 아닙니다.

회복은

다시 달리기 위해

몸과 마음의 균형을 맞추는 정비의 시간,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전략적 휴식입니다.

지금의 속도는 실패가 아니라,

다음 구간을 안전하게 가기 위한 준비입니다.


🛠️ 도움이 되는 실제 도구들

  • 하루 루틴 달력 만들기
  • 나만의 회복 이정표 그리기
  • SNS 거리두기

회복은 특별한 사람이 해내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을 버텨낸 사람이,

내일도 다시 시도할 수 있게 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분명히 진행 중입니다.


[5] 조우의 편지 – 당신의 속도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사람마다 걷는 길이 다르고,

속도가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꾸 세상의 속도에

나를 맞추려 하죠.

 

그러다 보면

‘지금 이 순간 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남들이 원하는 내 모습’에 맞춰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추게 됩니다.

 

조울증과의 싸움은,

당신을 잠시 멈춰 세웠을지 몰라도,

당신을 실패자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

회복이라는 아주 소중한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단단하게.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의 리듬’으로

걸어가면 됩니다.

 

그 길을 함께 응원합니다.

여러분의 동료지원 크리에이터,

조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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