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이 뭐지? 그리고 어떻게 하지?

나는 같은 사람인데, 왜 사람들은 나를 다르게 기억할까?

사람들이 다르게 기억해도 변하지 않는 나

2025.09.26 | 조회 2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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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네 마음약국

정신건강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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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우의 이야기로 여는 글

조증기에는 친구가 많았습니다. 모임에서 중심이 되었고, 농담도 잘하고, 적극적이었죠.

“너, 정말 에너지 넘치고 멋지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러다 몇 개월 후, 우울기로 빠져 말수가 줄고 눈을 피하고 모임에 나가지 않았을 때, 같은 사람들이 저를 보며 이렇게 말했어요.

“요즘 왜 이렇게 싸늘해졌어? 예전엔 그렇게 밝더니.”

그 순간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인데… 왜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다르게 보지?”

그 질문은 조울증이 만들어내는 착시와 외로움을 처음 깨닫게 했습니다.

 

[2] 이해하기 –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만드는 사회적 혼란

🎭 조증기의 첫인상, 왜 그렇게 빛나 보일까요?

조증기(혹은 경조증기)에는 일상이 눈부시게 확장되는 듯한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약속이 생기면 먼저 나서서 자리를 주도하고, 대화의 공백을 재치 있는 농담으로 채우며, 낯선 사람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갑니다.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떠오르니 회의에서는 새로운 제안을 연달아 내놓고,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는 자연스럽게 분위기 메이커가 됩니다. 말투는 단정하고 또렷해지고, 표정은 밝아지며, 몸짓은 커집니다. 사람들은 이 모습을 “자신감 넘치는 카리스마”로 해석합니다. “와, 저 사람 참 멋지다”, “에너지가 다르다”는 첫인상이 빠르게 굳어지지요.

이 시기에는 주의 집중과 사회적 감수성이 과열처럼 상승해, 타인의 반응을 재빨리 읽고 거기에 맞춰 자신의 표현을 조절하는 능력이 일시적으로 강화되기도 합니다. 상대가 미소 지으면 더 크게 웃고, 누군가가 주춤하면 앞장서서 길을 터줍니다. 결과적으로 ‘매력적이고 추진력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짧은 시간 안에 형성됩니다. 주변인들은 그 모습을 “본래 성격”으로 기억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본 가장 강렬한 순간이 바로 그 ‘빛나는’ 장면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뇌는 강한 인상을 기준점(앵커)으로 삼아 이후의 정보를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증기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오래, 깊게 각인됩니다.


🌧️ 우울기의 반전, 갑자기 달라진 사람이 되어버리는 순간

하지만 계절이 바뀌듯 우울기가 밀려오면, 같은 사람의 일상은 전혀 다른 색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몸을 일으키는 일 자체가 버거워지고, 머릿속에는 안개처럼 생각이 흩어져 말문이 자주 막힙니다. 상대의 눈을 마주치는 일이 불편해지고, 대화에 참여하는 것보다 조용히 빠져나오는 쪽을 선택합니다. 이전에는 자연스럽던 미소가 어색해지고, 필요 없는 말을 줄이려다 보니 필요한 말마저 삼키게 됩니다. 모임 초대 알림이 울리면 ‘오늘만 쉬자’고 스스로를 설득하다 결국 며칠, 몇 주를 건너뛰게 되지요.

이 변화는 의지 부족이나 성격 결함 때문이 아니라, 말 그대로 뇌의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에서 일어나는 생리적·인지적 현상입니다. 생각의 속도는 느려지고, 감정의 색감은 탁해집니다. 말수가 줄고 표정이 무표정해지는 것은 방어가 아니라 버티기 위한 최소한의 생존 전략입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눈에는 급격한 반전으로 보입니다. 어제까지 모임의 중심이던 사람이 오늘은 눈을 피하고 말수를 줄이니, 그들은 당혹스럽습니다. “내가 뭔가 실수했나?”, “알고 보니 까다로운 사람이었나?”와 같은 관계 중심의 오해가 고개를 듭니다.


➡ 오해는 어떻게 생기나: 인상 고정과 설명의 공백

주변의 오해는 보통 두 단계로 진행됩니다.

첫째, 강렬한 첫인상 고정입니다. 조증기에 형성된 ‘밝고 추진력 있는 사람’이라는 기준이 머릿속에 고정되면, 그와 다른 모습이 나타날 때 이유를 내면이 아닌 성격·태도로 설명하려 합니다.

둘째, 설명의 공백입니다. 당사자가 상태를 설명할 언어를 갖추지 못했거나, 설명할 힘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주변은 각자 익숙한 틀로 해석해버립니다. “기분파네”, “사람을 가려 대하네” 같은 낙인성 판단이 그 공백을 메웁니다.

이 과정에서 작은 오해들이 쌓여 관계의 미세 균열이 생깁니다. 메시지에 답이 늦어진 날이 몇 번 반복되고, 모임 불참이 늘어나며, 표정이 차갑다는 피드백이 돌기 시작하면, 어느새 누군가는 거리를 둡니다. 사실은 상태 의존적 변화가 원인인데도, “성격 때문”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되는 것이지요.


❗ 정체성 혼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외부의 오해는 곧 내부의 혼란으로 번집니다. 우울기에 접어든 당사자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에서 조증기의 ‘나’를 찾지 못하고, 조증기에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 우울기에 주저앉아 있던 ‘나’가 낯설어집니다. “진짜 나는 누구인가? 활활 타오르던 내가 진짜인가, 침잠해 있던 내가 진짜인가?”라는 질문이 마음을 점령합니다.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자기 개념의 흔들림, 즉 정체성의 파열을 의미합니다.

정체성 혼란은 대인관계에도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관계가 느슨해지면 “나는 관계에 실패한 사람”이라는 결론으로 자신을 규정하기 쉬워지고, 이 자기 낙인은 다시 관계 회피를 부릅니다. 그 사이클 속에서 당사자는 더 고립됩니다. 사실 변한 것은 ‘나’가 아니라 ‘상태’인데도, 사람들의 기억과 기대, 그리고 나 자신의 판단이 한목소리로 “네가 달라졌다”고 말하는 듯하여,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가 깎여나갑니다.


👉 왜 이것이 중요한가: 감정의 병이 사회적 ‘나’와 자기 이해를 흔드는 방식

조울증은 본질적으로 기분(정동)의 조절 장애입니다. 그런데 기분은 단지 마음속에서만 머물지 않습니다. 우리의 말투·표정·속도·시선·결정 방식·체력 같은 사회적 신호를 통해 바깥으로 끊임없이 발산됩니다. 따라서 감정의 파동은 곧 사회적 인상을 바꾸고, 그 사회적 인상은 다시 타인의 반응을 통해 나의 자기 이해에 되돌아옵니다. 이 왕복 운동이 빠르고 강하게 반복될수록,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아프게 자주 떠오릅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 첫째, 변하는 것은 감정의 상태이지, 인격의 본질이 아닙니다.
  • 둘째, 설명되지 않은 변화는 타인의 오해를 부르고, 그 오해는 내 정체성에 상처를 냅니다.
  • 셋째, 그러므로 우리는 ‘상태의 언어’를 마련해 오해를 줄이고, 관계의 안전망을 만들어야 합니다.

조증기의 눈부심과 우울기의 정적 사이에서 당신은 한 사람입니다.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사회적 혼란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것이 당신의 가치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설명(언어), 이해(관계), 조절(도구)입니다. 이 세 가지가 갖춰지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두 개의 다른 사람이 아니라, 파도를 건너는 한 사람의 여정이 남게 됩니다.

 

[3] 마음약국 노트

 

“조증기에는 친구가 많았어요.
우울기가 오면 연락을 끊고 사람들을 피했죠.
회복된 뒤 사람들은 말했어요. ‘예전엔 그렇게 밝더니, 요즘 왜 그래?’
저는 여전히 같은 사람인데, 마치 두 사람의 인생을 번갈아 사는 느낌이었어요.
이제는 말할 수 있어요. ‘내 감정이 바뀌는 거지,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고.’”

한 조울러의 고백

 

[4] 회복 가이드 – ‘한 사람의 나’로 살아가기

조울증을 겪다 보면 가장 큰 혼란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비롯됩니다. 어떤 날은 누구보다 활기차고, 또 어떤 날은 모든 에너지가 고갈된 듯 침묵하게 됩니다. 이처럼 감정의 파도는 외부에서 보기에 전혀 다른 사람처럼 비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감정의 기복이 크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의 동일한 존재라는 점입니다. 감정의 굴곡이 ‘진짜 나’를 바꾸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본질을 붙잡고 지켜나가는 것이 회복의 핵심입니다. 아래의 가이드는 그런 본질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작은 연습들입니다.


✅ 오늘부터 할 수 있는 실천

1. 내 감정 상태 기록하기

감정의 변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기록이 가장 좋은 도구입니다. 조증기에 나는 어떤 말투를 쓰고, 표정은 어떻게 달라지며, 행동은 어떤 패턴을 보이는지 세세히 적어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조증기에는 말이 빨라지고 손동작이 많아질 수 있고, 우울기에는 시선을 회피하며 답변이 짧아질 수 있습니다. 안정기에는 상대적으로 차분하고 균형 잡힌 모습을 보일 수 있지요.

이렇게 기록해두면, 단순히 “내가 달라졌다”라는 막연한 느낌이 아니라, ‘상태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라는 구체적인 자기 이해로 이어집니다. 더 나아가 의사나 상담사에게 이 기록을 보여주면 치료 과정에서도 큰 도움이 됩니다.

2. 가까운 사람에게 설명하기

가장 힘든 순간 중 하나는, 주변 사람들이 내 변화를 성격 문제로 오해할 때입니다. 이때 침묵하면 오해는 쌓이고, 관계는 멀어집니다. 하지만 아주 짧게라도 말해주는 것만으로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내가 때로는 다르게 보일 수 있어. 그건 기분의 파도 때문이야.”

이 짧은 한마디는 상대방이 나의 변화를 ‘개인의 고집이나 무관심’이 아니라 질환의 특성으로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설명을 길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간결하고 솔직할수록, 상대는 방어적 태도 대신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오해를 줄이는 안전장치가 생기는 것이지요.

3. 정체성 문장 만들기

정체성이 흔들릴 때마다 자신을 붙잡아 줄 ‘정체성 문장’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 “나는 감정이 변해도 본질적으로 따뜻한 사람입니다.”
  • “나는 흔들릴 수 있지만, 결국 다시 중심을 찾는 사람입니다.”
  • “나는 파도를 타고 있지만, 파도 자체가 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이처럼 나를 정의해주는 한 문장을 스스로 정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할 때마다 떠올리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자기 위로를 넘어,

❗ 피해야 할 생각

감정의 파도가 거셀 때 가장 흔한 함정은 스스로를 ‘실패한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 “사람들이 나를 싫어해. 나는 실패했어.”
  • “나는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이야.”

이러한 생각은 사실이 아니라 왜곡된 해석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멀리하는 이유가 반드시 당신의 본질 때문은 아닙니다. 단지 감정의 변화와 그것을 설명할 언어의 부재 때문에 생겨난 오해일 가능성이 큽니다. 즉, 당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감정의 변화를 이해하고 표현할 언어를 충분히 마련하지 못한 탓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단정 짓는 대신, “내 감정은 변하지만 나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라는 믿음을 계속 붙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 도움되는 도구

작은 연습과 도구들이 이런 과정을 지탱해 줍니다.

  • 감정 상태별 특징 체크리스트
    • 조증·안정·우울기에 각각 어떤 말투, 행동, 표정을 보이는지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면 변화 패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 ‘거리두기 일기’ 기록
    • 힘든 순간마다 대인관계를 완전히 끊기보다, 그때의 감정과 원인을 일기에 적어봅니다. 그러면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 다시 관계를 회복할 여지를 남길 수 있습니다.

💡 정리

조울증 속에서 ‘한 사람의 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조증과 우울이라는 두 개의 얼굴 사이에서 본질을 잃지 않고 지켜내는 과정입니다. 기록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짧은 설명으로 관계의 오해를 줄이며, 정체성 문장을 통해 내면의 중심을 붙잡을 때, 비로소 감정의 파도는 더 이상 나를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5] 조우의 편지 – 당신은 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몸과 마음을 가졌지만, 때로는 둘 이상의 인생을 사는 것처럼 느낍니다.

어느 날은 빛처럼 반짝이고, 어느 날은 그림자처럼 웅크리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변하는 건 감정이고, 흔들리는 건 표현이며, 본질은 그대로 당신 안에 있습니다.

그 본질을 지켜주는 언어와 관계, 그리고 여정을 함께 걸어주는 사람이 필요할 뿐입니다.

저도 그 곁 중 하나가 되고 싶습니다.

조증기에도, 우울기에도, 언제나 당신 편입니다.

여러분의 동료지원 크리에이터,

조우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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