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자에겐 골드비자를

'타이베이 체류기'

2026.08.02 | 조회 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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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yhard

2년 전 실직해 있을 때 한 달간 상해에 머물면서 중국어 공부를 하고 있었단 말이지요.

중국어 단어 외우다 지루해지면, 우선 취업이 급선무이므로 여기저기 회사에 이력서 던져넣고 있었는데, 우연히 디지털 노매드 골드비자가 검색창에 떴어요.

 

Digital Nomad: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디지털 유목민. 대개 IT 기업 종사자들.

Gold Visa: 인재 확보를 위해 국가에서 세금 감면등을 혜택으로 외국인들에게 제공하는 장기 체류허가 비자.

 

골드 비자를 도입한 국가들은 대개 재정 및 인력확보를 목적에 두고 있는 것 같고요, 비자 지원자들에게는 관광 명소로 유명하여 디지털 노매드들이 몰리는 중동, 유럽, 동남아의 국가들이 인기있지요. 세계 여권 파워 지수 조사로 종종 뜨는 Henley Global사이트 가면 골드비자 제공하는 국가들 나와요. 대부분은 투자용 골드비자에요. 즉 현금으로 부동산을 투자하거나 현지 기업에 투자하면 비자를 발급하는 형태에요.

 

이와는 달리 투자금 없이 자격 심사만으로 이루어지는 비자 형태가 두바이, 포르투갈, 대만에서 제공하는 골드 비자입니다. 일정 소득 증명, 해당 국가에서 필요한 산업군 충족, 아마 이정도였던 거 같지, 내가 대만 골드 비자 신청할 때 썼던 자격서 요건이?

 

2년 전에 상해에서 심심풀이로 신청했던 대만 골드 비자는 그 해에 발급이 되긴 했는데, 원래 나의 원대한 포부로는 2025년 말 투자 청사진 대로 몇 배 수익의 대박이 터져 반 은퇴생활을 시작할 것이니 올해부터는 대만에 한 달 살이 들락 날락 하며 중국어도 배우고 현지 골드비자 커뮤니티와 왕래하며 화장품 사업하는 내 친구 브랜드 대만에 소개라도 해주고 그렇게 살자 했건만,

 

그랬건만.

 

투자는 대대적인 손실로 지난 4년치 수익을 다 말아먹어 원점으로 돌아왔고, 지금 다니는 회사는 재택이긴 하지만 고객과 파트너사에 자주 얼굴을 내비추지 않으면 안 움직이는 구조라 긴 시간 어디 숨어서 원격 근무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요. 한편 2년 전 발급 통보 받은 대만 골드 비자는 대만 입국후 외국인청 가서 실물 수령해 오지 않으면 연말에 폐기된다고 하기에 시간 더 지체하지 말고 이번 회사 출장길에 잠시 비행기 돌려 타이베이 1박 2일로 들렀다 가자는 취지로 대만 국적기 에바 항공(Eva Air)편 티켓을 끊기는 했는데, 아 그래도 아깝잖아 다른 나라 가는데 사람도 만나고 음식도 먹고 해야하지 않겠어? 하여 1박 더 늘려 이번 주 목금토 타이베이에 있었단 말이죠.

 

제 뉴스레터에 지난 주 캐나다 떠나려는 중국인 이민자 사연 사진으로 소개드린 적 있지요? 그 때 같이 실어드린 중국어는 중국 본토에서 쓰는 간체(简体)입니다. 오늘도 비슷한 포맷으로 사진과 함께 여행기(記) 진행하려 하는데 대만은 참고로 문법 발음 동일하나 번체(繁体)씁니다. 어렸을 때 한자 배운 분들은 탁 보면 아~ 이거 이런 뜻이겠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번체 표기는 간체표기보다 우리와 더 친숙해요. 아래 사진들로 증명해 드리지요.

 

우선 대만 지하철. 捷运[jiéyùn] 첩운으로 불립니다. 지름길 첩경 할 때 과 운송할 때 (첩경이라고 말했던니 뭐 첫경험? 하며 받아치던 지인 있었는데 무더운 여름 음란마귀 조심하자).

 

우리 정서에 맞게 아래 그림 표기 뜻으로 읽어봅시다.

소심월대간극(小心月台間隙): 소심하게 월대 간극을 지나자. 월대는 플랫폼이라는 뜻.

관문시물강행진출(關門時勿強行進出): 관문시(문 닫을 시), 하물며 진출 강행 말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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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안에서.

예양진출(禮讓進出): 예의를 갖추고 양보하는 마음으로 문 열리면 진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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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버스 안에서.

하차령(下車鈴): 하차 방울. 누르면 딸랑딸랑 울리니까. 참고로 이 방울 령(鈴)자는 일본으로 건너와 뜻 읽기하여 스즈끼(鈴木)의 스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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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 휠체어 놓는 자리.

륜이사용자 우선전용구(輪椅使用者 優先專用區): 바퀴의자 사용자 우선 전용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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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사 뒤에 놓여 있는 소화기.

멸화기(滅火器): 불을 멸!해야 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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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딴 얘기 하께요. 이 멸(滅)자, 중국어 발음은 [miè]에요. 간체로 쓰면 灭이고요.

중국어 공부할 때 봤던 장예모 감독 공리 주연 1991년작 홍등(중국어 원제 大紅燈籠高高掛 따홍등롱까오까오꽈: 큰 홍등롱불 높이높이 걸어라)에 이 글자가 나와. 죽을 때까지 못 잊을 장면으로. 어떤 씬이었는고 하니, 대감집 제 3부인으로 들어온 공리가 대감의 사랑을 듬뿍받다가 이에 양이 차지 않아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한 것이 발각되어 대감의 명으로 '제 3부인 방엔 내 더 이상 출입 않겠으니 부인 방의 등을 영원히 멸하라'는 분부가 떨어지는 장면이에요. 

 

멸등(滅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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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감은 오늘부로 줄곧 제 4부인 방에 출입하겠으니 그 방 등을 높이 밝히시오, 라며 등롱불쟁이에게 명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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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滅)자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와 어제 탔던 타이베이 시내 버스 소화기 안내문에 자리를 틀었단 말이지.

 

다음 사진 넘어갑니다.

 

버스는 타이베이 여고 정류장을 지나갑니다. 넓직넓직하게 현수막이 정문을 도배했어요.

 

축 합격!

국립 대만 대학

국립 양명교통대학

국립청화대학(베이징 칭화 아님. 대만에도 같은 이름의 칭화 있음).

전인 의과 대학

타이베이 의과대학

 

내가 누누이 얘기했지. 동아시아 한자 문명 국가들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열여덟 살때까지 공부 공부 공부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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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동네 부동산 광고 사진입니다. 내가 머물렀던 Beitou(北投)구.

그림 반사되어 잘 안보이죠? 평수와 가격만 알려드리면:

大安區(Da An) 40평 2788만 TWD = 12억 5천

信義區(Xin Yi) 47평 5568만 TWD = 24억 9천

大安區(Da An) 56평 7500만 TWD = 33억 5천

大安區(Da An) 59평 7300만 TWD = 33억

大安區(Da An) 47평 5350만 TWD = 24억

大安區(Da An) 16평 1999만 TWD = 9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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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체류 2박 3일 일정 잡았다 했잖아요. 첫날은 밤에 도착했으니 바로 숙소 직행하여 그 옆 해선면(海鮮麵)집에서 저녁먹고 땡. 다음 날은 아침 일찍 이민청가서 사람들 몰리기 전에 골드비자 카드 수령하고, 낮엔 까페에서 회사 일 좀 하다가 저녁때 골드카드 비자 커뮤니티를 통해 통성명만 한 어느 인도인 체류자를 만나기로 했어요. 이름은 Monish라고.

 

어디서 만나면 좋을까, 난 잘 몰러 니가 알려줘, 물었더니 대뜸, 니가 묵고 있는 그 동네 좋아, Tam Sui(談水)에서 보자는 거에요.

이번이 나에게는 대만 아마 네번째 방문인가 되었거든. 그래서 타이베이 시내 박물관 기념관 고궁, 딘타이펑, 파인애플 쿠키 맛집, 그리고 멀리 Jiufen(九份), Taichung(臺中) 도 한 두번씩은 다 다녀왔어. 그런데 탐수이는 처음이네. 거기에 뭐가 있길래?

 

거기엔 노래하는 방랑시인 가라오케 할머니가 있어요.

팝송 원어민 발음으로 노래 잘 하시더라. Just like me, They long to be, Close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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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수이의 수이는 물 수(水)자 잖아요. 타이베이시 북서쪽으로 강줄기 따라 바다로 이어지는 곳이야. 그래서 경치가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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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지는 모습도 멋있었고, 저녁 때 되니까 연인들 가족들이 강변이자 해변 길 따라 선선한 날씨속에 산책나왔어요. 사진으로 담아두고 싶어서 셔터를 눌렀는데 상당히 흔들렸네 초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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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수이에서 만난 인도 청년 모니쉬(Monish)는 바로 2주 전에 입국했대요. 인도에서 태어나고 자라 올 해 서른 셋이고요, 인도 IT 산업의 중심지인 방갈로르에서 부모님과 함께 생활했어요. HCL이라고, 인도의 핵심 산업인 IT consulting업계의 대기업중 하나지요, 거기서 일하다가 대만에서 골드 비자를 발행하고 있다는 걸 우연히 알고 혈혈단신, 반도체 기업 TSMC 입성하리라는 목표로 이 나라말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단 몸만 온 것이지요.

 

솔직히 걱정되더라. 호주나 캐나다, 아니면 아쉬운 대로 싱가폴이나 말레이시아 정도만 되어도 영어 쓰는 외국인은 어렵지 않게 현지 정착할 수 있을 것인데 대만은 한국이나 일본처럼 문화와 언어가 서양화 국가들과는 틀려서 상당히 불편할 텐데.

 

본인 말로는 현재까지 대만족이래. 방갈로르가 인도 도시들 중에선 살기 좋은 곳이긴 하지만 사람 너무 많고 무질서하고 공기는 탁하고 시끄럽고 치안도 별로고. 여긴 봐라, 사람들 친절하고 지하철은 깨끗해 제 시간에 탁탁 오고 길거리에 쓰레기 없고 밤늦게 혼자 다닐 만한 이런 해변 거리도 있고 안전하단 말이야. 그는 외동아들인데 부모님 오시라해서 한 1년이라도 여기 살게 했으면 좋겠다고. 부모님은 아직까지 인도 밖을 나가본 적이 없으시다 합니다.

 

이 놈 효자네. 지난 주 캐다나 이민자 중국녀 스토리가 잠깐 생각나 울컥했다.

 

여자는 안 그립니? Tinder같은거라도 하냐, 물었다.

 

괜찮대. 지금 새로운 생활 적응하느라 외로울 겨를 없대. 그런데 기회 되면 대만 여자 만나고 싶대요.

 

그래서 또 물었지. Are the Taiwanese girls pretty?

 

그의 답. Well, I think they are caring.

 

이쁘냐고 물었다니 대만녀는 케어를 해 준다는 거야. 이번에 대만으로 원웨이 티켓 끊어 넘어 올 때 홍콩에 경유했는데 어떻게 환승해야 할 지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어느 대만녀가 다가오더니 친절히 가르쳐줬대요. 너 혼자서 대만 생활 잘 할 수 있겠어, 걱정하듯 우려 섞인 눈초리로.

 

오~ 야, 걔랑 만나라. 마음씨 따뜻한 사람이네.

 

그 여자는 대만 안 산대요. 멕시코에 산대요. 잠깐 환승길에 만난 것 뿐이래요.

 

Monish는 그 날 저녁 해변 앞에 같이 앉아 맥주 캔 따며, 생전 해외 경험 한 번 못한 부모님 데려와 이 나라 구경해 드리고 싶다는 얘기 몇 번을 되풀이했거든. 얘 사람 되었어. 키도 크고 꼭 발리우드 배우같이 생겼다고. 아마 높은 확률로 조만간 pretty & caring한 여자가 그의 앞에 나타날 것 같지 싶다. Good luck du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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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하여 2박 3일 짧은 체류 마무리하고 골드 비자 받아 저는 출국합니다. 자, 공항을 향해 진출(進出).

 

공항이름 멋지다. 도원!

도원기장첩운(桃園機場捷運): 무릉도원할 때 그 도원이에요. 공항(비행기장=>기장)가는 첩경(첫경험) 운송 표지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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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같아서는 20박 30일이라도 머물 수 있는 도시였던 것 같아요 타이베이는. 여행 강추합니다. 자 그럼 전 이만 謝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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