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줄 요약: 새로운 걸 배우는 책이 아니라, 알던 걸 한 달에 한 번씩 다시 꺼내 보는 책.
사실 이 책은 크게 기대하지 않고 펼쳤다. 애자일이라는 단어에 선입견이 강한 편이다. 처음 접했을 때 인상이 별로였고, 애자일을 '코칭'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사기꾼 아닌가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애자일이든 코칭이든 따로 떼어 보면, 혹은 둘을 섞어 봐도 나름의 합리성은 있다. 다만 그걸 말로 포장하고 상품으로 만들어 팔고, 별도로 훈련까지 받아야 하는 개념인가에는 의문이 있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애자일은 결국 일하고 협업하는 방식에 대한 얘기인데, 조직 구조가 같이 바뀌지 않으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코칭도 마찬가지다. 코치가 가르쳐 주는 내용은 대부분 우리가 이미 머리로는 알고 있는 것들이다. 몰라서 못 하는 게 아니라 현실의 여러 사정 때문에 못 하는 건데, 공자왈 맹자왈을 한 번 더 배워야 하나. 그런 삐딱한 시선으로 읽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 삐딱한 시선보다는 훨씬 좋은 책이었다. 물론 나쁘게 말하면 그래봤자 책이다. 첫인상은 많이 나아졌지만, 이 책이 나한테 엄청난 깨달음을 줬다기보다는 이미 갖고 있던, 혹은 갖고 있었지만 까먹었던 개념들을 다시 상기시켜 준 쪽에 가깝다.

책이 하는 말은 심플하다. '자라기' 쪽은 이렇다. 꾸준히 학습해라. 너무 편한 영역에 머물지 말고 조금 바깥의 어려운 걸 해보면서 역량을 키워라. 실수를 안 하려고 방어적으로 일할 필요는 없다. 실수를 막는 것보다 실수를 관리하는 게 낫다. 그리고 학습은 내가 따낸 타이틀이 아니라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는 서술형 단어라서, 꾸준히 공부하고 빠르게 개선하는 수밖에 없다.
'함께' 쪽은 이렇다. 조직은 끊임없이 공유해라. 공유하는 과정 자체에서 신뢰라는 자본이 쌓인다. 무언가를 제안할 때 객관적인 제안은 없고 내 감정도 배제할 수 없으니, 잘 정리해서 상대방을 고려해 제안해라. 팀을 짤 때 능력 좋은 사람만 모아서는 안 되고 서로 케미가 맞는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서 핵심이 심리적 안전감이다. 쉽게 말해 내가 삽질해도 괜찮고, 삽질했다고 깨질 일이 없다는 안정감이 있을 때 퍼포먼스가 좋아진다는 얘기다. 구글이 아리스토텔레스 프로젝트로 확인했다는 그 결론이다.
이 내용들은 사실 여러 책에 파편처럼 흩어져 있고, 어떻게 보면 저자 페이스북에 가면 다 있는 이야기일 거다. 그래서 이 책의 쓸모는 새로운 걸 배우는 데 있지 않다. 좋게 말하면 이 일을 하면서 한 달에 한 번씩 펼쳐 보고 스스로를 반성하기 좋은 책이고, 나쁘게 말하면 이걸 왜 읽어야 하지 싶은 책이다. 책값을 12개월 할부로 낸다고 생각하면 딱 맞다. 한 달에 한 번 상기시켜 주는 값.
그래도 제목만큼은 곱씹게 된다. 함께 협업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계속 학습하고 업그레이드한다. 좋든 싫든 AI가 나오면서 조직 안의 암묵지마저 학습할 수 있게 된 상황이다. 잘하는 건 예전에도 중요했지만 이제는 더더욱 의무가 됐다.
근데 '함께'는 잘 모르겠다. 『어쩔수가없다』에서 보듯이 말이다. 조직이 구조조정되고 개편된다는 건 그만큼 핵심 자리만 남긴다는 뜻인데, 모두가 그걸 알고 있는 상태에서 같이 협업하는 판이 만들어질까. 함께 자라기는 정말 좋은 말이지만, 그게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시대가 아니게 됐다는 데서 좀 좌절감이 든다. 옆자리 동료가 같이 자랄 파트너이면서 동시에 다음 개편 때 남을 자리를 두고 겨루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누가 읽으면 좋을까도 생각해봤다.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글쎄다. HR 권한은 팀이 아니라 대부분 HR팀에 있고, 내가 원하는 대로 팀을 꾸릴 수도 없고, 내 일의 생산성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이 발현될 만한 조직 구조도 아니다. 읽고 고개는 끄덕이겠지만 써먹을 데가 마땅치 않을 거다. 반대로 작은 스타트업이나 TF 단위라면 읽어볼 만하다. 팀 구성과 공유 방식을 스스로 정할 수 있는 곳에서는 이 책의 이야기가 바로 행동이 된다.
그러니까 결론은 이렇다. 새로운 걸 배우려고 사면 실망할 거고, 알던 걸 까먹지 않으려고 사면 본전은 뽑는다. 나는 후자로 치기로 했다. 다음 달에 한 번 더 펼쳐 볼 생각이다. 딱 12분의 1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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