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 수 있는 일을 잘하는 것이 현명하다.”
원하는 직장과는 달랐던 첫 직장에서 현장 교육을 받던 때. 나름 신입사원의 의욕을 보여줬다고 생각했지만 다 티가 났나 보다. 나를 교육하던 부장은 식사를 하다 불쑥 이런 말을 꺼냈다. 그렇다. 물론 바라던 곳에서 일하면 좋겠지만, 사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흔하지 않겠나? 일단 이 곳에 속해 일하기로 결정했다면 우선 지금의 곳에 적응하고, 또 그 안에서 내 쓸모를 찾으면 된다는 것. 그게 첫 직장에서의 마음이었다.
일터가 내게 바라는 것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노동자의 자세라 생각했다. 노동의 댓가로 임금이 주어지는 것이니 말이다. 일단 일이 흘러가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판단했기에 기존의 방식을 익혀 나갔다. 내게 주어진 상황의 정상 유무를 따지는 것은 어느 정도 일에 익숙해졌을 때 가능하지 않을까? 말의 행간을 읽고 전체를 파악해야 센스 있다고 평가 받지만 사회생활 몇 년 동안은 그저 위에서 하는 이야기가 맞겠거니 혹은 지금 고착화 된 이 방식이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하면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 참으로 아둔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서서히 조직의 시스템, 가치관을 흡수했다. 적당히 타협한 거다. 대리 연차 때쯤, 대통령과 대기업 CEO 인사말을 작성한 이력으로 유명했던 작가의 북토크에 참여했다. 당시 작가는 인사말의 최종 발화자 심중을 알기 위해 계속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고, 알려주지 않는 의중까지 파악하기 위해 레이더를 열어 정보를 수집하고 생각의 궤를 맞춰야 한다고 했다. 유쾌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작가의 이야기에 매우 공감했다. 내가 겪은 팀장급 이상의 사람들은 자기 의견과 반대 되는 의견에 적대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직급이 높을 수록 이런 현상은 더 두드러졌다. 보고서를 다음 단계로 넘기기 위해서는 결재권자의 평소 입장이 가장 중요한 요소였기에 나 또한 결재권자가 남긴 회의록을 정독하고, 어떤 경영 기조를 강조하는지를 꾸준히 살폈다.
그 때 한 관객은 ‘본인이 원하는 대로 인사말을 작성해 인사말 당사자를 설득할 수도 있지 않겠냐’는 질문을 했다. 당시 나도 직장에서 CEO 인사말을 작성한지 4~5년차 쯤 되어 가고 있었는데, 그 질문의 내 대답은 ‘되겠냐?’ 였다. 작가는 웃으며 쉽진 않겠지만 정말 그렇게 된다면 탁월한 글쓰기일 거라며 도전해보라 했다. 그 때의 나는 확신했다. 저 질문을 한 사람은 아직 회사 생활을 못해본거라고. 물론 내가 꼬인 것일 수 있으나, 조직 안에서 나라는 한 사람은 참 무력하고 하찮음을 수시로 느끼기에 비대한 자아는 부대낄 뿐이라는 매력없는 결론을 내릴 뿐이다. 그 후로 십 년 쯤은 지난 것 같은데 북토크 속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쉽진 않을거다’ 다. (그래도 젊은이의 패기를 조금은 응원하고 싶다.)
그러니까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은 결국 ‘사회 생활은 원래 어려운 거다’라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 속에서 나를 지키며 일한다는 것은 얼마나 패기 넘치는 꿈이냐는 거다. 나와는 나이와 성별은 물론, 성향도 가치관도 다양한 타인이 한 데 섞이게 되는 곳이 조직이고, ‘왜 저래?’를 부르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도 부지기수다. 나의 상식과 그 또는 조직의 상식이 다름을 하루에도 수십번 확인하게 되는 곳, 바로 일터 아닐까?
그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아주 미미한 나만의 것에 기대, 눌러둔 나 자신을 잠깐씩 마주한 것. 그 찰나들이 나를 한 곳에서 12년 동안 일하게 하는 숨구멍이었다. 파티션에 달아 놓은 작은 키링, 공짜인 회사 달력을 두고 굳이 돈을 주고 사는지 동료는 이해 못했던 좋아하는 작가의 탁상달력, 월요일마다 출근 길 꽃시장에서 사온 꽃 한송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일터 곳곳에 두고 이따금 바라보며 나라는 사람을 상기했다. 내 취향은 결국 나라는 사람의 지문 같은 거니까. 회사가 점점 흐릿하게 만드는 나 자신에게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말했다. 너는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나의 신념을 확고하게 지키며 일할 수 있는 방법을 멋지게 소개한다면 참 좋을텐데 그저 평범한 노동자가 가진 방법은 하찮다. 회사 속 흐려진 자아의 선명도를 높여줄 취향의 물건들을 주변에 두는 것. 물론 사람이면 더 좋겠다. 서로의 신념을 존중하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은 내가 아닌 더 큰 누군가(아마도 지난 북토크의 질문하던 젊은이)가 할 수 있겠지. 난 스스로를 조금 죽이고 적당히 타협하며 버티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라고 결론 내렸으니까.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내 정신엔 도움이 된다* ㅎㅎ.

부디 구독자님은 들끓는 분노에 키보드를 내리칠 일이 없기를, 또 누군가에게 가스라이팅 당하는 일도 없기를, 그저 강단있게 자기 만의 일로 뚜벅뚜벅 걸어가길 응원합니다. 물론 구독자님께도 이말은 통용됩니다. 때론 도망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ㅎㅎ
*일본드라마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逃げるは恥だが役に立つ)’ 의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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