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일기

이론대로 세상이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브랜딩과 마케팅의 이상과 현실

2026.10.14 | 조회 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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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딩과 마케팅의 이론과 현실을 바라보는 장면
브랜딩과 마케팅의 이론과 현실을 바라보는 장면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이론과 현실은 다르다. 이론도 정말 많이 바뀐다. 반도체 기술은 몇 년 단위로 완전히 뒤집히고, 컴퓨터공학도 마찬가지다. 어제 맞았던 이론이 오늘은 구식이 되는 게 특이한 일이 아니다. 근데 그 바뀌는 이론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경영학 이론대로 경영이 됐으면 세상 모든 회사가 성공했을 거다. 실제로는 같은 이론을 읽은 사람들 중에서도 성공하는 회사와 망하는 회사가 갈린다. 이론은 변수를 통제한 상태에서의 설명이고, 현실은 그 변수들이 동시에 날뛰는 상태라는 차이가 있다.

브랜딩도 마찬가지다. 이상은 이렇다. 브랜딩이 잘 된 브랜드만 살아남는다. 잘 만들어진 브랜드가 그저 그런 브랜드보다 낫다. 사람들은 브랜드를 알아본다. 근데 현실은 그럴 리가 없다. 브랜딩의 첨단을 달린다는 K뷰티도 결과적으로는 저렴해서 잘 팔린 거다 (애널리스트도 대개 이렇게 평가). 브랜드의 시대라고 다들 떠드는데, 정작 우리가 구매할 때 브랜드를 고려하는 횟수는 그리 많지 않다. 화장품만 봐도 이 브랜드 저 브랜드 옮겨다니는 메뚜기족이 태반이다. 오늘은 이 쿠션, 다음 달엔 저 세럼, 가격과 후기만 보고 옮겨다니는 소비자가 훨씬 많다. 브랜딩이 그렇게 중요하다면서, 정작 우리가 돈을 내고 사는 건 브랜드가 아니라 제품 단위다. 브랜드가 진짜 그렇게 뛰어나면 나이키가 왜 온한테 대체되겠나. 수십 년 쌓아온 브랜드 파워도, 기능과 착화감에서 밀리는 순간 시장 점유율을 그대로 내주는 걸 보면 브랜드는 생각보다 훨씬 얇은 방패인 거 같다.

이론의 질서와 현실의 복잡성을 비교하는 관찰 장면
이론의 질서와 현실의 복잡성을 비교하는 관찰 장면

마케팅도 비슷한 괴리가 있다. 이상은 이렇다. 상품의 USP를 고객 언어로 바꿔서 끊임없이 노출시키고 설득하는 것. 근데 현실은 결국 돈싸움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표시광고법이라는 괴랄한 법령으로 인해 FM대로 하면 문제되는 표현이 수두룩하다). 고객을 360도로 잡아서 메시지를 던지려면 그만큼 돈이 든다. 고객의 인지 퍼널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으니, 마케팅 퍼널을 과학적으로 짜는 것 자체가 원래 어렵다. 인지, 관심, 구매 사이에서 고객이 실제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결국 추정치일 뿐이다. 이론대로면 제품이 안 팔릴 때 제품을 개선해야 하는데, 실제로 제품 개선은 절대 빠르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제조 라인을 바꾸고, 재고를 소진하고, 다시 검증하는 데만 최소 몇 달이 걸린다. 광고 소재를 바꿔서 A/B 테스트를 한다고 쉽게 말하지만, 그 테스트 자체를 제대로 돌리는 것도 꽤 어려운 일이다. 표본이 충분히 쌓이기도 전에 예산이 먼저 떨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내가 내린 해석은 이렇다. 브랜딩은 살 만한 아주 조그마한 이유 하나를 더 얹는 것 정도다. 이렇게 보수적이고 모호하게 정의하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브랜딩 하나 때문에 물건을 사지 않는다. 이런저런 구매 이유가 이미 있고, 거기에 플러스 알파로 있으면 좋은 게 브랜딩이다. 브랜딩 하나 때문에 브랜드가 성공하고 기업이 크는 일은 절대 없다. 다만 커지는 과정 어딘가에 이런 자그마한 요소가 끼어 있을 뿐이다. 없다고 망하지는 않는다. 근데 없으면 아쉽다. 그 아쉬움의 크기가 결국 브랜딩 예산의 크기를 정당화하는 유일한 근거 아닌가 싶다.

마케팅은 그나마 돈을 과학적으로 써보는 시도다. 마케팅이나 콘텐츠나 사실 비슷하다. 잘 되면 왜 잘됐는지 궁금하고, 망하면 왜 망했는지 궁금하다. 좋게 해석하면, 우리가 가진 예산을 매출로 바꾸기 위해 최대한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전략을 짜는 일이다. 마케팅은 결국 비용을 매출로 바꾸는 과정이고, 그걸 위해서는 최대한 과학적인 기반 위에서 이런저런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수밖에 없다. 완벽하게 측정할 수 없다고 해서 아예 측정을 포기하면, 그건 과학이 아니라 그냥 감이다.

이론이 좋긴 하다. 지금 내 현주소를 마케팅 교과서 관점에서 리뷰해보면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이 있다. 잊고 있던 기본 개념 하나가 지금 하고 있는 실수를 정확히 짚어줄 때가 있다. 근데 거기서 멈춰야 한다. 이론에서 배운 걸 바탕으로 지금 상황을 리뷰하거나, 현실에 있는 자원을 쓰는 데까지만 써먹으면 된다. 이론을 실행 매뉴얼로 착각하는 순간부터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 현실과 이론이 적당히 대꾸하면서 같이 발전하는 게 맞다. 그러니까 이론을 너무 무시하지도 말고, 너무 떠받들지도 말고, 적당히.

이론대로 세상이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그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세상이었으면, 애초에 브랜딩이나 마케팅이라는 직업 자체가 필요 없었을 거다.

그럼에도 삶은 꽂히면 가는 거고, 답은 구하기 나름이며, 중요한 것은 미래를 추론하기보다 만들어가는 것이다. 

웬만하면 맞춤법 틀린 부분 없을 텐데, 있으면 봐주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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