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매드(nomad)’ 유목민 또는 유동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 단어는 21세기 인간의 새로운 전형을 뜻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정해진 주거지역 없이 자유롭게 이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최근 미나리와 함께 영화계의 주목을 받은 '노매드랜드'. 이 영화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클로이 자오 감독은 영화 속 주인공인 펀의 시선을 통해 노매드의 삶을 들여다본다.
펀은 죽은 남편과의 추억이 깃들어 있지만, 경제가 무너져 폐허가 된 도시를 떠나게 된다. 밴을 타고서 언제가 끝일지 모를 유랑길에 오른 펀은 그 여정 속에서 자신보다 먼저 노매드의 길에 올라탄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들과 우정과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길 위의 만남 또한 매 순간 이별로 이어진다.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지나쳐 또다시 혼자가 될 때마다, 펀은 다시금 작아진 모습으로 자신의 밴에 오른다.
펀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지 않고, 노매드의 삶에 뛰어든 것은 남편과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편과의 시간과 기억이 깃들어있는 도시를, 모든 추억으로부터 떠나 온 것은 매 순간 낯설기만 한 이별 때문이었다.
하지만 도망치듯 찾아온 길 위의 삶에서, 펀은 다른 노매드들의 삶 또한 무언가로부터 도망쳐 온 것임을 깨닫게 된다. 모두 서로 닮아있는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그 길 위에서 겪게 되는 이별이 더 잦다는 것을, 노매드들과의 만남을 통해 펀은 알게 된다. 노매드의 삶은 어쩌면 이별을 이해하고 연습하기 위한 여정 일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나는 마지막 인사(Final good bye)를 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람들과 헤어질 때 이렇게 인사합니다. ‘길 위에서 다시 만납시다’ 그리고 실제로 한 달 후이던, 6개월 후이던, 1년 후이던 길 위에서 그들을 다시 만났어요. 그리고 내 아들도 언젠가는 그렇게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노매드들의 정신적 지주 와도 같은 산타클로스를 닮은 남자 밥 웰스(실제 본인의 역할로 영화에 등장한다.)는 노매드의 방식으로 이별을 맞이할 때, 펀과 이런 내용의 말을 나눈다. 자살로 아들을 떠나보냈던 밥 웰스와 같이, 노매드들은 이별의 아픔을 이 같은 길 위의 인사로 위로한다. 영원히 이별하지 않는, 약속 같은 믿음의 인사로 서로를 위로하고 떠나보낸다.
이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 또한 그들과 다를 바 없이 이별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이라는 주거공간에 대한 개념만 다를 뿐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길 위에서 다양한 이별을 지나치며 살아가고 있다. 다만 길 위에서의 인사 같은, 이별을 소화하는 분명한 방식이 없기 때문에 이별을 맞이하는 것이 노매드의 삶보다 조금 더 복잡하고 힘들 뿐일지도 모른다.
노매드의 삶을 통해 발견한, 이별을 대하는 그들의 방식대로 우리의 지나간 이별과 다가올 이별들에게 인사한다면 어떨까. ‘언젠가 길 위에서 다시 만나.”
글쓴이: 호모루덴스
소개: 낭만이 밥을 먹여주진 않지만, 밥을 맛있게는 해줍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