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당신에게.
시골에서 맞는 세 번째 가을입니다.
서울에 살 때와는 계절 감각이
아무래도 조금 다를 수밖에 없는데요.
어제는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양파 심을 준비를 하시는 어르신을 봤습니다.
그리고 퍼뜩 생각이 났지요.
아, 수선화!
양파처럼 생긴 수선화와 튤립의 뿌리는
가을에 심어야 겨울을 땅속에서 보내고
이른 봄에 예쁜 꽃을 보여주거든요.
작년에는 너무 일찍 심었는지
싹만 나고 꽃은 몇 송이 못 봤지만,
내년 봄에는 좀 잘 피어줬으면.

여름에 캐놓은 수선화 뿌리를 꺼내봅니다.
몇 개는 썩었지만, 대부분 잘 있네요.
이 중에 튤립도 섞여 있던 것 같은데,
어떤 게 튤립이고 어떤 게 수선화인지
초보 정원사는 구분을 못 하겠습니다.
일단 그냥 다 심기로 합니다.
봄소식을 알리는 기분 좋은 꽃이니
마당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심습니다.
심는 법은 간단합니다.
깊이 8센티쯤 되는 구멍을 파고,
뿌리를 넣어준 후, 흙을 덮으면 끝.
냉해를 심하게 입지 않으면서도
싹이 잘 나올 정도의 깊이가 중요하다는데,
아 몰라, 그냥 묻어버리기로.
저의 농사 철학(?)입니다.
일단 심고, 열리면 좋은 거고
안 열리면 어쩔 수 없는 것.

열 개가 넘는 알뿌리를 심었는데
과연 이중에 몇 개가 싹이 틀까요.
그리고 몇 송이의 꽃이 필까요.
그리고... 이 중에 어떤 게 튤립일까요.
스스로도 참 대책없다 싶으면서도
내심 즐기고 있기도 합니다.
계획한 대로 정원이 만들어져도 좋지만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이 생기는 것도
꽤 재미있을 것 같아서요.
시골 생활은 그런 것 같습니다.
환경을 원하는대로 바꾸기는 어렵고,
최대한 적응하면서 조율하는 게 최선이죠.
그렇지만 그 속에서 의외의 기쁨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날씨가 추워졌지만, 꽃 한송이 덕분에
다시 봄을 기대하며 설레게 되는 것처럼요.
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벌써 봄을 기다리는
임효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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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쩡이
우왓 진짜 양파 같아요~수용 받아들임을 배울 수 있는 시골생활이네요~내맘대로 되는건 없다 그저 가능한 최선을 다할뿐...왠지 육아랑 비슷한 농사짓기입니다^^
한쪽편지
육아 경험이 없어서 감히 비교하기는 좀 어렵지만, 확실히 시골생활은 도시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을 배우는 효과가 있더라고요. 특히 환경과 계절에 순응하는 태도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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