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당신에게.
오늘은 11월 11일, 빼빼로데이입니다.
상업적인 것을 싫어하시는 분들께는
'농민의 날'임을 기념해서 가래떡을 먹는
'가래떡데이'로 불리기도 하지요.
그래서 저는 오늘,
낮에는 간식으로 과자를 먹고
저녁에는 떡볶이를 먹기로 했습니다.
빼빼로데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게 있어요.
이제는 아마도 누군가의 아빠가 되어 있을
제 첫 번째 남자친구, 과거의 그 남자(?).
연애 후 처음으로 싸웠던 게 하필
빼빼로데이 때문이었거든요.
지금 생각나면 그냥 웃깁니다만.

사실 별 일도 아니었습니다.
한창 풋풋한 20대 연애의 초반이었으니
뭐라도 꽁냥꽁냥 하고 싶었는데요.
그래도 나름 개념있는(?) 대학생이고 싶어서
기업 상술에 놀아나지 않겠다며
빼빼로를 사지 않고 직접 만든 과자를
선물로 준비했답니다.
하지만 정작 선물을 받은 그는
'고맙다' 한마디뿐 딱히 뭐가 없었습니다.
하다못해 (당시에는) 천원밖에 안하는
빼빼로 하나도 없는 게 어찌나 서운하던지.
하지만 그때는 왠지 쿨한 여친이고 싶어서
서운하다는 말도 못 하고 꾹 참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 쫌 귀여웠군요.
그래도 뭔가 꿍한 걸 눈치챘는지 그가 계속
뭐 때문에 그러냐고 캐물었고, 저는 결국
"네가 빼빼로 하나도 준비 안 한 게 서운하다"고
솔직히 털어놨습니다.
그의 반응은 단순했습니다.
그냥 제과회사가 마케팅하는 건데
뭐 대단한 날이라고 그러냐며,
먹고 싶었으면 말하지 그랬냐고,
이따가 집에 가는 길에 하나 사주겠다고.
그 말이 저의 발작버튼을 눌렀어요.
아니, 내가 지금 그깟 빼빼로 하나를
못 사먹어서 이러는 줄 아나!
빼빼로가 중요한 게 아니지,
그 작은 거 하나를 준비하느냐 아니냐로
평소에 내 생각을 얼마나 하는지
알 수 있다는 거지!
... 대강 이렇게 말했던 거 같은데
아마 훨씬 횡설수설 했겠지요.
여전히 그가 이해하지 못한 걸 보면.
저는 팩 토라져서 집에 와버렸고,
나중에 들어보니 그는 다른 친구에게
술자리에서 하소연을 했다네요.
아니, 내가 빼빼로 사준다고 하는데도
왜 계속 화를 내는 거냐면서.
그리고 친구의 대답은 이랬답니다.
"야, 그거 얼마나 한다고,
아몬드 박힌 걸로 사주지 그랬냐."
... 그래요.
초록은 동색이라잖아요.
20대 남자애들이란 참 단순합니다.
그의 말도 맞긴 합니다.
제과회사의 상술에 우리가 왜 넘어가는지.
예전에는 저도 똑같이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상술이면 어떻습니까. 이렇게라도 핑계김에
평소에 전하지 못했던 마음을 무심하게
툭 하고 전해보는 거지요.
그 과정에서 제과회사가 돈을 벌든,
떡볶이장사가 잘 되든 뭐 어때요.
그런 게 바로 시장주의인 것을.
나는 그냥 마음만 전하면 되는 것을.
그리고,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이제는 그에게 서운하지 않을 것 같아요.
마음을 전하는 게 중요한 거라면
반드시 빼빼로가 아니어도 된다는 걸
지금은 아니까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의 저는 쫌 귀여웠네요.
오늘은 빼빼로를 준비하지 않았지만
다른 방법으로 한번 마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과 눈빛과 행동으로.
상대방이 충분히 알 수 있도록.
그래서 이렇게 말하려고 해요.
당신은 저에게 정말 고맙고
소중한 사람입니다.솔직한 제 마음이에요 :)
빼빼로보다 당신이 훠얼씬 좋은
임효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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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꼬
오늘 글 아주 풋풋하고 재미있네요. 덕분에 미소짓는 아침입니다.😊
한쪽편지
그러게요. 다시 생각해도 참 풋풋했어요. 우리도 그럴 때가 있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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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쩡이
20대 록산님도 넘 귀엽고 남자분들 대화 넘 웃겨요ㅋㅋㅋ추억이 방울방울♡ 관전하는 여성들이 있다면 그게 아니잖아~~~다 소리 질렀을듯요ㅋㅋㅋ 지금 생각해보면 20대는 에너지가 넘쳐서 서운한것도 생기는듯? 지금은 만사 귀찮습니다ㅋㅋㅋ우째!!!
한쪽편지
그 기분 알지요. 서운함도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에 공감 ㅋㅋ 그래도 또 우리때는 우리 나름의 사랑이 있지 않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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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케이크
빼뺴로 쏴드려야 겠어요..직접 전해드려야 제맛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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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깨비
전 제가 정성스럽게 만든 빼빼로를 한입에 다 먹어버려서 뭔가 서운했던 기억이 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아껴먹어야지, 저렇게 와구와구 먹어버리다니!
한쪽편지
아.. 그것도 좀 서운하겠네요 ㅎㅎㅎ 아무튼 풋풋한 연애는 이래저래 귀엽습니다. 그런 에너지가 쫌 부럽기도 하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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