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당신에게.
당신은 아침에 글이 잘 써지는 편인가요,
아니면 저녁에 잘 써지는 편인가요?
저는 아침에 고정적으로 시간을 내서
편지를 쓰려고 노력중입니다만,
사실은 저녁에 더 잘 써지는 편이랍니다.
저녁에는 감성이 뿜뿜 터지는 시간.
생각도 많아지고, 글도 팍팍 나오지요.
여기에 맥주 한 캔이 더해지면?
아주 그냥 진도가 쭉쭉 나갑니다.
일필휘지로 만족스럽게 글을 쓴 후
뿌듯한 마음으로 푹 자고 나면
다음날 아침에 어떻게 되느냐?
오글거리는 손발로 비명을 지르며
삭제 버튼 엔딩.
그래서 늘 궁금합니다.
밤에 쓰는 글 vs 아침에 쓰는 글,
뭐가 더 나은 걸까요?

일단, 수많은 흑역사를 통해 얻은
저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쓰는 건 밤에,
편집과 발행은 아침에."- 흑역사 예방 캠페인
저는 뭔가 쓰고 싶은 충동이 생기면
일단 블로그에 끼적입니다.
생각나는 대로 마구마구,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요.
이때 반드시 주의해야 할 점은 절대
'발행'을 누르면 안 된다는 것.
대신 우리에게는 '임시저장'이라는
아주 좋은 기능이 있잖아요.
이렇게 임시저장된 글을 다음날 열어보면
정말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젯밤에는 그렇게 뿌듯했던 글이
차마 유치해서 눈뜨고 못 봐주겠는, 그런 경험.
괜찮습니다. 아직 아무도 안 읽었으니까요.
'멀쩡한 정신'일 때 다시 읽으면서
너무 나갔다 싶은 부분은 지우고,
오글거리는 표현은 순화하고,
추가할 부분은 추가한 후
드디어 발행을 누르면 됩니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인데,
글을 쓰는 것은 창조의 영역이라서
충동적이고 감성적인 '우뇌'가
관장한다고 하더군요.
반면에 편집은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좌뇌가 관장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스위치를 켰다 끄듯이 쉽게
우뇌와 좌뇌를 왔다갔다 할 수 없다는 거죠.
새로운 글을 쓰느라 우뇌를 실컷 사용했다면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합니다.
그렇게 우뇌가 진정되고 나면
좌뇌가 다시 활동을 시작할 수 있다네요.
과학적으로 증명된 건지는 모르지만
제 경험을 비춰봐도 꽤 그럴듯합니다.
초고를 쓸 때는 이것저것 재다 보면
절대 써지지 않더라고요. 그냥 막 써야지요.
반면에 글을 편집할 땐
창의적이기만 해서는 곤란합니다.
독자들이 이 글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냉철하게 따져보며 수정해야 하니까요.
물론 글쓰는 태도나 방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저처럼 생각날 때 한번에 잔뜩 써뒀다가
조금씩 편집해서 완성하는 사람도 있고,
매일 다섯 쪽씩 꾸준히 써나가는 게
편한 사람도 있을 거예요.
중요한 건, 어떤 쪽이든 지치지 않고
꾸준히 하면 된다는 겁니다.
아침이든 밤이든, 나에게 맞는 시간대에
맞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도
글쓰기 훈련의 중요한 과정이에요.
물론 게으르고 충동적인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하루키처럼
날마다 꼬박꼬박 쓰지는 못할 겁니다.
그래도 어쨌든 쓰긴 씁니다.
그럼 된 거 아닌가요?
아마 당신도 그러시겠지요.
어떤 식으로든 계속 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의 글쓰기는 지금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까요.
아침마다 손발 오글거림에 고생하는
임효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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