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받은 것

프랭크 로바크의 일기에서

2026.03.15 | 조회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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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ening Heart

관상적 기도, 경청, 그리고 삶 (contemplative prayer, listening, and life)을 위한 글

"이미 받은 것은 배경이 되었고, 없는 것만 빛나 보였다." Generated by Gemini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

더 깊은 통찰, 더 많은 인정, 더 영향력 있는 일. 아니면 그냥내가 하는 이 작은 일이 아무 증명 없이도 괜찮다는 자유.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평안.

 

"가져라" 하면 잊어버린다

프랭크 로바크(Frank Laubach) 1930년대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일기를 썼다. 마흔여섯 살의 선교사. 그는 그날 오후, 두 눈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태어난 고아 소년에게 알파벳을 가르치려 했다. "i"를 가르치면 "a"를 잊어버리고, "a"를 가르치면 "i"를 잊어버렸다. 그러다 소년이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자기에게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다고.

로바크는 그날 일기 끝에 이렇게 썼다.

나도 이 아이들과 똑같다. "가져라" 하면 잊어버린다. "안 된다" 하면 매달린다.

 

없는 것만 빛나 보였다

하나님이 이미 주신 것들이 있다. 깊은 기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함께 앉아 듣는 시간. 침묵이 깊어지고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 자리에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들. 이것들은 이미 내 앞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나는 자꾸 다른 곳을 보았다.

어느 날 다른 기관의 영성 프로그램 안내문을 받았다. 잘 알려진 강사들. 탄탄하게 짜인 커리큘럼. 오래 쌓인 이름. 그것을 보는 순간, 내가 한 주에 서너 명과 조용히 앉아 나누는 시간이 갑자기 너무 작아 보였다. 이것이 정말 충분한가. 이 정도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그 마음 아래에는 더 오래된 목소리가 있었다. 더 증명해야 한다는 압력.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습관. 이미 받은 것은 배경이 되었고, 없는 것만 빛나 보였다.

그 망각 아래에는, 이것으로는 충분히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오래된 두려움이 있었다.

 

사랑이 태어나는 자리

로바크는 타자기에 기대어 앉아 하나님께 물었다.

이 모든 잔해와 실패와 초라함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그때 그 안에서 한 음성이 들렸다.

이 잔해들이 사랑이 태어나는 산고이다.

그는 그 소년을 팔로 안아 주고 싶었다. 바로 그 마음이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그 마음 하나가이미 사랑이 태어나는 자리였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한 사람. 지금 이 마음.

작은 사람들을 돕지 못하게 만드는 "중요한 의무"라는 것들은, 어쩌면 의무가 아닐 수 있다.

중요해 보이는 것들이 자꾸 나를 지금 이 자리에서 끌어낸다. 더 큰 무대, 더 많은 영향력, 더 인정받는 일. 그것들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향해 있는 동안, 내 앞에 이미 놓인 것을 잊는다. 방금 전 함께 앉아 있던 사람. 지금 이 문장. 지금 이 침묵.

 

그냥 그 공간 안에 놓여지는 것

기도도 그랬다.

나는 오랫동안 기도를 내가 하는 것으로 알았다. 말하고, 구하고, 채우는 것. 더 간절하게, 더 오래, 더 많이. 기도조차 증명의 자리가 되었다. 얼마나 깊이 기도하는가. 얼마나 오래 머물 수 있는가.

관상기도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났다. 비우려고 비우는 게 아닌데 비워졌다. 머물려고 머무는 게 아닌데 그 자리에 있게 되었다. 해결하거나 얻으려 하지 않았는데, 그저 함께 있는 것으로 충분해지는 순간이 왔다.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공간 안에 놓여지는 것이었다.

그 순간, 더 얻으려는 손이 내려갔다. 증명하려는 목소리가 조용해졌다. 이미 받아 쥐고 있었던 것이, 그때서야 처음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져라" 하신 것들이, 그때 비로소 손 안에서 살아났다.

 

나는 지금 어디를 보고 있는가

나는 지금 "가져라" 하고 이미 놓여 있는 것 앞에 서 있는가. 아니면 아직 오지 않은 것을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는가.

나에게 이미 주어진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이 아직 내 손 안에서 살아 있지 못하다면, 무엇이 그 사이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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