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미지입니다. 오늘 제가 있는 곳은 날씨가 정말 좋았어요. 봄이다, 하고 느낄 수 있을 정도루요. 여러분들의 날씨는 어땠나요? 부디 포근함 한 줄기가 깃들고 있기를!
이전에 번외 느낌으로 제가 지형과 주고받았던 편지를 기억하고 계신가요?
2회에 걸쳐 보내 드린다고 했었는데, 오늘 그 두 번째 편지를 배달해 보려고 해요. 흑심은 앞으로도 이렇게 미지와 주연, 따로 또 같이 쓰면서 굴러갈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는 주연과 사랑에 대한 대담이 예정되어 있어요. 물론 정리해서 여러분들께도 닿을 수 있도록 할 거구요.
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만남도 기대해 주세요! 또 만나요.
총총.
언니에게
겨울 잘 보냈어? 본의 아니게 해의 시작과 겨울의 종점을 찍는 편지가 돼 버렸지만,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쓰고 있습니다. 사실, 편지 자체는 1월 말 즈음에 마무리된 상태였어.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핑계가 먹히지 않을 정도로 쉬기도 했고, 처음으로 어른의 사정이라는 걸 몸소 겪어 보면서 거나한 숙취의 세계에 대해서도, 가족과의 이별에 대해서도, 하고 싶은 얘기가 정말 많았는데, 퇴고하는 과정에서 뭔가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어. 그냥, 이런 이야기는 어울리지 않아 보였어. 나한테는 이 편지가 조금 무거웠나 봐. 이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누가 궁금해한다고, 싶었던 거지. 내가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줄 만한 위치도, 자격도 없는데 의미를 담은 글을 쓰기 위해 쥐어짜고 있었어. 이래서는 죽도 밥도 안 된다. 결국 편지를 지우고, 생각해 봤어. 언니에게 내 스물의 어떤 모습을 알려 주고 싶었는지. 스물만이 쓸 수 있는 글은 무엇인지. 명료하게 답이 떠오르질 않아서 며칠 골머리 좀 썩히다가, 포기 상태에 접어들기 직전에 생각이 난 거야. 그냥 쓰면 되는 거 아닌가? 하고. 너무 어렵게 받아들이고 있었어. ‘그냥’이 전부였는데.
이십 대로 접어들고 처음 맞는 겨울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나 뭐 했더라?’. 모든 계절을 통틀어서라도, 이번 겨울은 우울할 틈도 없이 정신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는데, 남는 게 없었어. 아무리 돌이켜 봐도 선명한 기억이나 찰나의 기분 같은 게 떠오르질 않아. 어떤 하루는 글만 쓰고, 어떤 하루는 잠만 자고, 또 어떤 하루는 약속이 연달아 잡혀서 종일 밖에서 고생만 하고. 아주 단편적인 사실만 남고, 정작 기억하고 싶었던 것들은 모두 사라졌더라. 좀, 허무하다고 해야 할까. 실은 지내온 일흔여섯 개의 계절 중에 거창하게 보낸 계절이 더 드물었는데도. 시간에 의미 부여 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도 모르게 그러고 있었나 봐. 그래도, 아직 포기하긴 이르지. 내 스물에는 아직 세 개의 계절이 더 남았으니까.
아, 정말 선물 같은 일이 있긴 했어. 우리처럼 변화에 기민한 사람들은 겨울이 유독 힘들잖아. 폐부까지 들어차는 숨이 너무 차가워서 우울하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낙엽도 없을 정도로 거리가 비어 있어서 외롭고. 그런 걸 계절 탄다고 하던가. 여하간, 나는 그게 심했어. 겨울 맞을 생각에 가을부터 힘들었고, 뜨거운 여름을 보내다가 날씨가 조금 풀어지면 곧 가을이 온다는 생각에 슬펐어. 그만큼 겨울이라는 게 나한테는 큰 공포였어. 여태 살고 싶던 나를 생사기로로 밀치는 그 계절이. 아니나 다를까. 12월 끝자락에 나는 애인과 헤어지게 됐고, 집은 여러 문제로 시끄러웠고, 나는 여전히 우울했어.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지. 그런데, 1월을 맞고 나니 문득 이번 겨울은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거야. 다가올 미래의 어떤 겨울에 죽더라도, 이 겨울은 내가 살아야겠다고. 거창한 이유도 없이 든 그 생각이, 본능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 생존 본능만큼 큰 부피를 차지하는 게 자살 욕구니까. 중요한 건, 이번 겨울은 내가 살았다는 거. 살고 싶었고, 아주 잘 살아남았다는 거. 꽃봉오리가 갈라지고, 퍼져나가는 걸 언니와 함께 볼 수 있다는 거.
꽤 좋았어. 내가 가진 삶에 대한 열망을 여과 없이 느낄 수 있는 계절이었어. 겨울은 원래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시기라고도 하잖아. 남들이 보기엔 별거 없고, 형편없을 수도 있지만, 살고 싶었구나, 그 하나를 깨닫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엄청난 준비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거 있지?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은 늘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고? 완전 손해다!’ 하기도 했는데. 뭐, 어쩌겠어? 지금이라도 깨달은 것에 의의를 두고 열심히 살아가려고. 과거를 곱씹는 일보다 미래를 그려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걸 알았으니까.
언니의 겨울은 어땠어? 서른이 맞는 겨울은 어때? 이번 겨울이 언니에게도 조금은 살고 싶었던 계절이었으면 좋겠다. 어제 정현우 시인의 시집 『소멸하는 밤』을 읽었어. ‘기도밖에 할 수 없는 / 마음 위로 마음은 왜 쌓이는가.’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그게 어쩐지 나 같더라고. 나처럼 신앙심이 얄팍한 사람도 없을 텐데, 난 언니를 생각하면 기도하게 돼.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신에게 자꾸 매달리게 돼. 더 기쁜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언제나 풍요로운 마음을 갖게 해 달라고. 해 줄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는 무능력한 동생이라니, 좀 그런가? 언젠가, 언니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많아지는 날이 오더라도 기도는 멈추지 않을게. 나는 그게 꼭 이뤄졌으면 좋겠거든. 일시가 아니라, 아주 오래. 영원히.
세상과 싸우는 무기로 다정을 고른 만큼, 우리 올해는 더욱 굳건한 마음으로 살아가자. 늘 같은 마음으로 사랑하고, 사랑할게. 내 편지 받아 줘서 고마워.
ps.
왜 울고 난 뒤 두 눈은 따스할까
그토록 뜨거운 심장을 가져본 적이 있다고 믿기 위해
정현우, 『스콜』 中
지형에게
안녕. 식상한 날씨 인사가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때가 왔어.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그 사실을 누군가와 함께 나눈다는 건 어쩐지 지는 계절 속에 그 사람이 있었고, 피는 계절 속에도 있으리라고 말하는 것 같지 않니. 그래서 말인데, 네가 있는 곳은 어땠어? 오늘의 내가 봄 기운을 느낀 것처럼 너도 느꼈을까?
어떤 시기의 끄트머리에 닿으면 지나왔던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되지 않니. 겨울이 어땠냐는 너의 물음이 아니더라도 나는 이 겨울을 회고했을 텐데, 네가 그렇게 물어봐 주어서 혼잣말에 그치지 않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어. 가까운 과거를 돌이켜보는 일련의 과정들이 외롭지 않게 진행되었다는 말이야.
네가 그러했듯 나 역시 녹록치 않은 겨울이었어. 집안 상황, 나 개인의 무력함과 우울함, 쉽지 않은 재취업의 여정까지. 하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어제까지의 일인 것 같아. 오늘의 나는 알 수 없게 후련해. 명확히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는데도. 어째서일까?
나는 내가 스물까지 살아 있을 줄 정말 꿈에도 몰랐어. 천재지변을 당하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어떻게든 그 전에 죽을 것만 같았거든. 그런데 너무도 멀쩡하게 스물이 되었지. 그걸 받아들인 후에는 어렴풋이 서른을 예감했던 것 같아. 나는 또 서른이 되겠구나. 그리고 정말 서른이 되었지. 지난 편지에서 말했었나? 서른이 기껍다구. 정말 그래. 어릴 때였으면 더 길고 깊게 아파했을 일들을 서른의 나는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어. 그래, 불행은 때로 극복이 아니라 수용의 문제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해.
살아 있다는 게 죄스러웠던 과거의 나는 사실 특출나지 않은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그걸 숨기고 싶어서 모든 것에 과한 자격을 부여했던 것 같아. 그러고는 그 자격에 미달됨을 마음껏 슬퍼했지. 지금은 어떻냐구? 그냥, 나는 나인 그대로 나라는 생각을 해. 어떠한 자격이나 기준 같은 것 없이. 단지 나. 그냥 나.
우리는 그냥 우리로 살자. 조금은 더 단순하게. 유연하고 단단하게. 딱딱한 건 부러지기 일쑤지만 단단한 건 구부러질 수 있는 이미지니까. 그렇게 서로를 향해 늘어지고 기울어지자.
나 역시 기도할게. 신은 믿지 않지만, 세상의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는 너를 믿으니까. "기도란 떼쓰다의 정중한 말"(조시현)이라고 하던데, 정중하게 떼쓰는 언니의 말을 너는 꼭 들어줄 테니까.
또 편지할게. 그때까지 안녕하자.
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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