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해가 나자
약을 먹고 오래 잠들었던
당신이 창을 열었습니다
어제 입고 개어 놓았던
옷을 힘껏 털었고
그 소리를 들은 저는
하고 있던 일을 덮었습니다
창밖으로
겨울을 보낸 새들이
날아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온몸으로 온몸으로
혼자의 시간을 다 견디고 나서야
겨우 함께 맞을 수 있는 날들이
새로 오고 있었습니다
─ 「84p」 부분
대단한 것이 아니다. 아니, 대단한 것이다. 당신의 기척에 반응한다는 것은. "그 소리를 들은 저는 / 하고 있던 일을 덮었습니다". 이런 행동은 "그 소리"를 (자기가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 기다려 온 사람의 것이다. 보살피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으리라. 우리말 '보살피다'는 '살피다'를 품고 있다. 그러니까 살피지 않으면 보살필 수 없는 것이다. 무엇을 살피는가? 다가올 시간이 초래할 결과를 살핀다는 것이다. 이런 보살핌을 우리는 돌봄care이라 부른다. (현대사회학 / 여성학에서 돌봄은 중요한 이슈이지만 여기서는 단지 박준의 시가 알려주는 대로만 이해해 보기로 하자.) 돌봄이란 무엇인가. 몸이 불편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그가 걷게 될 길의 돌들을 골라 내는 일이고, 마음이 불편한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그를 아프게 할 어떤 말과 행동을 걸러 내는 일이다.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조금 미리 사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미래를 내가 먼저 한 번 살고 그것을 당신과 함께 한 번 더 사는 일.
‘돌봄’을 생각하면 박준의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에 수록된 신형철의 이 발문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시집에 수록된 시들도 좋았지만, 나에게 더 강렬하게 와 닿았던 것은 뒤편에 실린, 시집에 대한 해설이었다─나는 원래 해설을 읽는 편이 아닌데, 이 시집은 ‘신형철이어서’ 고민 없이 발문까지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누군가를 돌보고 싶어 하고 있고, 나만의 방법으로 누군가를 돌보면서 살아온 것이었다─우스갯소리를 덧붙이자면, 나의 별자리인 게자리의 특성으로 강한 모성애가 꼽히기도 한다─. 이 글이, 정확히 말하자면 이 글의 작자인 신형철 평론가가 내가 지향하던 사랑의 방식에 이름을 붙여 주었고, 그때 나의 사랑이 조금 더 단단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나도 가족 외의 누군가에게 돌봄을 받았던 때가 있다. 아무리 말해도 부족하지 않을 그때를 간략하게 읊자면, 우리는 20대 초중반이었고,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끄럽고 죄스러웠으며, 매일이 불안했고, 문자 그대로 서로를 살리기 위해 곁을 지키는 날들이 많았다. 그때처럼 서로를 심신양면으로 살뜰히 보살피던 때는 다시 오지 않았다. 사실 오지 않는 게 더 좋은 일이긴 하지만. 시간을 아낌없이 주었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비슷하게 가난하면서도 용돈을 주고받았고,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네가 있어 주어야 한다. 그것도 행복하게.’라는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나는 그때에서야 타인에게 받는 애정을 믿을 수 있었다. 그 시절에 진 빚들을 어떻게 갚으면 좋을지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가장 힘들 때 나를 버텨 주었던, 나아가 나를 끌어올려 주었던 사람들. 그리고 이런 고마움을 마음 깊이 깨닫고 나서야 나는 타인을 진정으로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주연을 만났다.
주연과 나 사이에는 7년이라는 시간이 존재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주연을 단숨에 알아보았던 것 같다. 그간 받아온 돌봄을 돌려 줄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말하자. ‘돌봄을 돌려 줄 사람’이라는 건 결국 나이기도 했지만, 그때의 나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상담 교수님이 “미지 씨는 미지 씨 나이였던 사람들에게 그때의 미지 씨가 필요했던 것, 원했던 것들을 해 줌으로써 과거의 미지 씨를 치유하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그러니까 나는 주연을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바라던 스물을 보았고, 그 모습을 통해 나의 스물이 미화되고 치유되는 듯한 기이한 경험을 한 것이다.
나는 이 일련의 사랑과 관계들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나를 돌본다는 것이라고. 그렇게 힘들었던 시기였지만 나 이외에 보살피고 싶은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더 무너졌을지도, 그래서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주연을 비롯하여 혜윤과 같은 동생들을 새롭게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아직도 20대 초반의 나를 미워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그 나이를 살아 봤기 때문에, 힘껏 힘들어해 보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무엇을 해 주어야 할지 알고, 또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더 큰 사람이 되는 중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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