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은 언제 은퇴하실 건가요? 아니, 질문을 바꿔 보겠습니다. 언제 은퇴가 여러분에게 찾아올 것 같으신가요?
한국에서 '은퇴'란,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에 가깝습니다. 법정 정년은 60세이지만, 가장 오래 다닌 일자리를 실제로 떠나는 평균 연령은 52.9세.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준비하기도 전에 주된 일자리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저희 보살핌 팀이 케어파트너를 운영하면서 매일 만나는 분들이 바로 이 현실 속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고, 교육을 이수하러 오시는 분들. 이 분들의 평균 나이는 60세를 넘습니다. 처음에는 이 분들을 '돌봄 인력'이라는 프레임으로만 바라봤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매칭하고, 더 오래 현장에 머물게 할 수 있을까.
그런데 대화를 거듭할수록 깨닫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70대까지 일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통계청 조사에서도 55~79세 고령층의 평균 희망 근로 연령은 73.4세로 나타납니다(통계청, 2025년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실질 퇴직 52.9세, 희망 근로 73.4세. 이 사이에는 20년의 격차가 있습니다.
이 분들의 절실한 이야기를 듣고 시니어를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 바라보니, 이 20년의 공백이 복지 이슈가 아닌 거대한 시장의 문제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중장년들의 일자리 현황을 데이터로 들여다봅니다.
1. 55~64세, 10명 중 7명이 일하고 있다
2025년 기준, 한국의 55~64세 고용률은 70.5%를 기록했습니다. 1983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70%를 돌파한 수치입니다(고용노동부, 2025년 고령자 고용동향). 55~79세 전체로 넓히면 경제활동인구가 사상 최초로 1,001만 명을 넘어섰고, 이 중 69.4%인 약 1,142만 명이 "앞으로도 계속 일하고 싶다"고 응답했습니다(통계청, 2025년 고령층 부가조사).
이 숫자가 한국만의 특이한 현상은 아닙니다. OECD 국가들도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한국은 특히 눈에 띕니다.
| 국가 | 55~64세 고용률(2024) | 제도적 뒷받침 |
| 일본 | 약 78% | 65세 계속고용 의무, 70세 노력의무 |
| 독일 | 약 74% | 연금수급 67세로 단계적 상향 |
| 한국 | 69.9→70.5%(2025) | 법정정년 60세, 실질퇴직 52.9세 |
| OECD 평균 | 64.6% | — |
| 미국 | 약 65% | 정년제 없음(1986년 폐지) |
주목할 지점은, 한국의 55~64세 고용률이 OECD 평균을 5%p 이상 상회하면서도 법정 정년은 60세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65세 의무에 70세 노력의무, 독일은 연금수급 67세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제도적 뒷받침 없이 개인의 의지와 필요만으로 이 고용률을 끌어올린 셈입니다.
65~69세로 범위를 넓히면 한국의 특수성은 더 두드러집니다. 이 연령대의 고용률은 50.4%로 일본과 비슷한 최상위 수준이며, OECD 평균(24.7%)의 약 2배입니다(국회도서관, 노동시장 인구구조 변화 브리프).
2. 왜 이렇게 많은 중장년이 일을 하려는 걸까
"은퇴 후에도 일하고 싶다"는 사람이 69.4%, 1,142만 명. 이 사람들은 왜 일을 멈추지 않으려는 걸까요? 55~79세 근로 희망자의 사유별 비율을 보면 답이 보입니다.
| 근로 희망 사유 | 비율 |
| 생활비에 보탬 | 54.4% |
| 일하는 즐거움 | 36.1% |
| 무료해서 | 4.0% |
| 사회가 필요로 해서 | 3.1% |
| 건강 유지 | 2.3% |
'생활비 보탬'(54.4%)과 '일하는 즐거움'(36.1%), 이 두 가지가 전체의 90%를 차지합니다. 먹고살기 위해 일해야 하는 현실적 필요와, 일 자체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욕구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머지 사유까지 합산하면, '돈'만이 이유인 사람은 절반을 겨우 넘고, 나머지 절반 가까이는 돈 이외의 이유로 일하기를 원합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구조적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 공적연금의 미성숙입니다. 2024년 국민연금 평균 수령액은 약 66만 원. 1인 가구 월 최저생계비(134만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55~79세 중 연금을 아예 수령하지 못하는 비율이 48.3%에 달합니다. 서구 선진국처럼 "연금 받으면 일 그만둬야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국민연금연구원 분석에서도 한국에서는 국민연금이 노동 공급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없거나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매일경제, 2025.5).
둘째, 기대수명의 증가입니다. 2023년 기준 한국인 기대수명은 83.5세. 주된 일자리를 떠나는 52.9세부터 기대수명까지 약 30년. 연금도 부족하고, 체력은 아직 남아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일을 통한 연결감을 원하는 중장년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셋째, 2차 베이비부머 세대의 본격 은퇴입니다. 1964~1974년생 약 954만 명. 한국 전체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이 거대한 세대가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법정 정년(60세)에 도달하기 시작했습니다(한국은행 이슈노트, 2024.7).
2차 베이비부머는 이전 세대와 결정적으로 다릅니다. 교육 수준이 높고, 수십 년간 쌓아온 전문성이 있으며, 스스로 "아직 충분히 일할 수 있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입니다.
다만, 이들의 재정 상태는 겉보기만큼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하나금융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의 58.5%가 은퇴 후 재정 상태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으며, 평균 총자산의 83%가 부동산에 묶여 있어 정작 생활에 쓸 수 있는 유동자산이 부족합니다(글로벌이코노믹, 2023.12; 겟뉴스, 2025.8). 거기다 대부분이 자녀 또는 부모를 부양하고 있어, '끼인 세대'로서의 경제적 부담도 큽니다.
정리하면, 2차 베이비부머는 '일할 능력도 있고, 일할 의지도 있고, 일해야 할 이유도 있는' 세대입니다. 단순히 '돈이 필요해서'만이 아니라 '경력을 활용하고 싶다',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아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복합적인 동기가 이전 어떤 세대보다 강하게 작동합니다. 이 954만 명이 향후 11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은퇴 연령에 진입한다는 것 — 이것이 한국 중장년 노동시장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꿀 가장 큰 변수입니다
3. 73세까지 일하고 싶다 — 하지만 현실은
희망 근로 연령 73.4세, 가장 오래 다닌 일자리를 그만둔 평균 연령 52.9세. 이 사이에는 20년의 격차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20년을 실제로 어떻게 채우고 있을까요?
재취업의 현실적 경로 세 가지
① 자격증 취득 후 경력 전환
자격증은 더 이상 청년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2024년 기준 전체 국가기술자격 시험 응시자 약 390만 명 중 50대 이상이 65만 명. 지게차운전기능사(6만 7,417명), 굴착기운전기능사(3만 8,750명), 한식조리기능사(3만 3,657명) 순으로 중장년 응시자가 몰립니다. 자격 취득 후 6개월 이내 취업률이 가장 높은 종목은 공조냉동기계기능사(54.3%)와 에너지관리기능사(53.8%)입니다(이데일리, 2026.1; 고용노동부·한국직업능력연구원).
② 공공 직업훈련과 취업 연계
고용노동부의 '중장년 경력지원제'는 50세 이상에게 1~3개월간 직무교육과 현장 수행 기회를 제공하며 월 최대 150만 원의 참여수당을 지급합니다. 한국폴리텍대학의 '신중년 특화과정'은 2025년 2,800명에서 2026년 7,700명 규모로 확대 예정입니다(고용노동부 정책 소개; 농민신문, 2025.9).
③ 자영업 전환
임금 일자리를 얻지 못한 중장년 상당수가 자영업으로 전환합니다. 60세 이상 자영업자 수는 2015년 142만 명에서 2024년 210만 명으로 급증했고, 2032년에는 248만 명까지 늘 수 있다는 추산입니다(한국은행 보고서; 연합뉴스, 2025.5). 진입장벽이 낮은 소매업, 음식점업에 쏠리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젊을 때는 풀타임, 나이 들면 파트타임"
재취업의 경로만큼 중요한 것이 일하는 방식입니다. 케어파트너에서 만나는 분들도 "하루 4시간이면 된다", "주 3일만 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분들은 '일을 하고 싶지만, 예전처럼 일하고 싶지는 않은' 것입니다. 통계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 연령대 | 전일제 선호 | 시간제 선호 |
| 55~59세 | 65.7% | 34.3% |
| 60~64세 | 58.9% | 41.1% |
| 65~69세 | 45.9% | 54.1% |
| 70~74세 | 29.8% | 70.2% |
| 75~79세 | 18.0% | 82.0% |
(통계청, 2025 고령층 부가조사; 국회도서관 브리프)
패턴이 뚜렷합니다. 55~59세에서는 3분의 2가 풀타임을 원하지만, 65세를 넘어서면 과반이 시간제를 선호하고, 75세 이상에서는 82%가 시간제를 원합니다. 연령이 올라갈수록 '완전한 은퇴'가 아니라 '점진적인 은퇴' — 일의 강도는 줄이되 사회적 연결은 유지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장년 일자리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줍니다. 이 시장에서 필요한 것은 '좋은 풀타임 정규직'만이 아닙니다. 연령대와 체력,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유연한 시간제 일자리 — 주 3일, 하루 4시간, 오전만, 집 근처에서. 이런 세밀한 매칭이 가능한 구조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중장년 일자리 시장은 아직 이 니즈에 맞는 인프라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마무리하며
정리해 보겠습니다. 55~79세 경제활동인구 1,000만 명 돌파. 55~64세 고용률 역대 최초 70% 돌파. 69.4%가 계속 일하기를 희망하며, 그 희망 연령은 평균 73.4세. 그리고 한국 전체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2차 베이비부머 954만 명이 향후 11년에 걸쳐 은퇴 연령에 진입합니다.
모든 숫자가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중장년의 근로 수요는 이미 거대하고, 구조적으로 줄어들 수 없습니다. 오히려 더 빠르게, 더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넘어옵니다. 이 거대한 수요를 받아줄 일자리는 충분한가? 있다면, 왜 연결이 안 되는가?
Part 2에서는 공급 측의 현실을 들여다봅니다. 해외 주요국은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한국 중장년 일자리의 미스매칭은 어디서 발생하는지, 정부 정책은 어디까지 와 있는지 — 그리고 이 격차가 만들어낼 비즈니스 기회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