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머릿말
왜 갑자기 e스포츠 토토 얘기를?
e스포츠는 코로나 팬데믹과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 이슈를 통해 주가가 올랐습니다. 온라인으로도 경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코로나 팬데믹 당시 경기가 중단되었던 다른 스포츠들과 비교가 되었죠. 덕분에 국민체육진흥공단과 한국e스포츠협회는 지난 2023년 LCK를 스포츠 토토 종목으로 편입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5월 문체부가 게임산업진흥종합계획을 발표했는데요. e스포츠 산업의 수익성 개선을 위한 실효성 있는 진흥책에 대한 질의응답 과정 중 e스포츠 토토, 협회, 업계를 부정적으로 언급한 것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문체부 발표에 대한 해석
얼마 전 창간 16주년을 맞이한 데일리e스포츠에서는 '정부가 e스포츠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기획 기사와 함께, 제도권 정책 담당자들의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놓았고, 이도경 더불어민주당 강유정 의원실 보좌관의 특별 기고를 싣기도 했습니다.
특히 이 보좌관의 기고는 인상적이었습니다. e스포츠 토토와 지역 연고제에 대한 문체부의 발언을 조목조목 반박하는게 통쾌했습니다. 그러나 업계인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이야기를 이렇게 반박해야 한다는 것이 한 편으로는 슬펐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하는 생각과 함께요.
하지만 냉정하게 e스포츠 산업의 현실을 바라보게 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특히 문체부의 발언 중 일부는 다른 스포츠들에 비해 수익성과 자생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LCK와 프로게임단들의 현실을 꼬집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문체부 입장에서는 '돈도 못 벌어서 힘들다 힘들다 하는 리그로 무슨 스포츠 토토를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수익성 개선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진흥책이나 e스포츠 토토 같은 제도적 지원에 대한 공론화는 필요합니다.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지속가능성이라는 숙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겠죠. 다만, 그 전에 제도권에서 e스포츠를 인정할 수 밖에 없도록 탄탄한 산업으로 키워나가는게 우선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스포츠 토토에 대한 환상과 현실
e스포츠 토토가 현재 적자 경영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LCK 프로게임단의 수익성 개선에 큰 도움이 될거라 여기는 분위기도 일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스포츠토토는 국민체육진흥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운영되는데, 이 기금은 프로 스포츠단을 지원하는 것보다 유소년, 아마추어, 장애인, 생활 체육 등 국민들의 건강한 스포츠복지 환경을 만드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e스포츠 토토 역시 이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수익금의 10%가 주최 단체에게 간다고는 하지만, 출전 팀들에게는 얼마나 돌아가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즉, 'e스포츠 토토가 되면 게임단 재정에 큰 도움이 될거야'라는 말은 일부 맞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치트키처럼 상황을 반전시켜 줄거란 기대는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e스포츠 토토는 'e스포츠가 게임이라서, 스포츠가 아니라서'로 안 되는 이유를 단순화시키기 어렵습니다. 이도경 보좌관의 다른 매체 기고문을 보면 행정과 법률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더 많은 이유를 찾을 수 있는데요.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이 반대하고 있고, 콘텐츠국은 전향적이었으나 새로운 국장 부임 이후 반대로 입장을 틀었다. 장관도 한 때 긍정적이었다가 최근 부정적인 자세로 바뀌었다.
- 스포츠토토에 편입되고자 하는 경쟁 종목이 너무 강력하다. 대표적으로 바둑과 당구를 들 수 있다. 바둑은 거의 될 뻔 했는데 바둑계 내부에서 '이미지 실추'를 이유로 반대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 당구는 요즘 프로 대회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고, 국민체육진흥법 시행령에도 부합되는 종목이라서 다크호스다. e스포츠는 시행령을 개정해야 한다.
- 스포츠토토 총량제도 걸림돌인데, 이는 다른 신규 진입 종목에게도 마찬가지다(칼럼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진 않지만, 1년 동안 낼 수 있는 스포츠토토의 매출 총량이 정해져있다는 것. 실제로 매출 총량을 지키기 위한 발행 중지 기간이 생길 때도 있다).
이렇듯 e스포츠 토토는 넘어야 할 산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스포츠는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가 많고, 온라인 시청자 숫자 같이 수치화 할 수 있는 팬덤이 존재하며 '페이커', '젠지', '롤드컵' 등 국제적인 이슈가 주기적으로 터져 나온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계속 언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e스포츠협회의 역할
그러면 업계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행정부, 입법부의 인식이 바뀔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아니면 로비라도 해야 할까요? 저는 이럴 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정공법에 한 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영역에서는 특정 게임사가 아니라 대한체육회 준회원인 한국e스포츠협회의 역할이 필요됩니다.
지난 2023년 국민체육진흥공단과 LCK 토토를 논의하던 과정에서 알려진 사실이 있습니다. e스포츠는 스포츠와 달리 게임사라는 명백한 'IP의 주인'이 있고, 게임사는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공익사업에 참여하기 어렵습니다. 해외 게임사일 경우에는 더 어렵겠죠. 그래서 게임사와 MOU를 맺고 협회가 LCK 공동 주최를 하는 방법이 거론됐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문체부의 e스포츠 토토에 대한 부정적 발언이 나온 뒤 한국e스포츠협회가 관련해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국민체육진흥공단과의 논의를 통해 e스포츠 토토라는 어려운 미션을 주도할 수 있는 유일한 단체가 협회 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 만큼 신중할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협회가 e스포츠 토토 이슈를 쟁점화시킬 필요는 없으니까요. 쟁점화가 된다면 오히려 타스포츠에 비해 부실한 한국 e스포츠 업계의 현실이 더 드러났을 겁니다.
협회는 e스포츠 토토에 대해 오래 전부터 TF를 통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관계 부처와도 꾸준히 소통을 하고 있었을테니 계속 내실을 다지는데 집중하면 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e스포츠 토토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e스포츠 토토보다 중요한 것들
사실 저는 'e스포츠가 꼭 스포츠처럼 되어야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e스포츠가 스포츠 제도권으로 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최근 협회가 아마추어 e스포츠, 대학리그, 국가대표 관리 등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협회 다운 일을 잘하고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 눈에는 프로게이머들의 e스포츠가 잘 보일겁니다. 이는 프로야구, 프로축구 등 다른 프로 스포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사실 스포츠를 지탱하는 것은 생활체육입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은근히 스포츠 동호회가 많은데요. 조기축구나 사회인 야구가 대표적이지만, 배트민턴, 탁구, 당구, 게이트볼 등 종류가 다양합니다. 이런 분들이 실업 리그나 프로 스포츠를 소비하고, 그런 분들이 있기에 프로 출신 경기인들은 생활 체육 지도사라는 직업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협회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일들은 이런 e스포츠의 기초 인프라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e스포츠가 제도권으로 진입하기 위해서, e스포츠 토토보다 선행되어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프로씬은 프로씬대로 건강하게 유지되어줘야 합니다. LCK와 LCK 프로게임단이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인기를 유지해야 <리그오브레전드> 프로게이머를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학원 스포츠, 아카데미 등 유관 산업이 발전할 수 있겠죠.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위해서도 협회가 할 일이 있을 것입니다.
e스포츠 토토의 문제는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LCK의 인기가 더 많아지고, 우리나라 선수들이 롤드컵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대회에서 잘해서 국위를 선양한다고해서 제도권, 기득권에서 e스포츠를 바라보는 시선이 극적으로 변하진 않을 것입니다.
선거철만 되면 e스포츠에 대한 공약을 내세우는 정치인, 정당들이 많이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e스포츠의 제도권 진입은 정치적인 이슈이며, 현재는 이런 정치 권력의 도움이 있어야만 제도권으로 진입할 수 있는 수준의 산업이라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정리하자면, 한국 e스포츠 업계에게는 더 중요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LCK는 LCK대로 지속가능한 구조를 위해 더 고민해야 하고, 협회는 협회대로 아마추어, 학생 인프라를 만들어야 합니다. e스포츠 종목 다양화와 국산 게임 종목사들과의 협력 역시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문체부가 e스포츠 토토를 못하게 했다고 해서 한국 e스포츠가 위기인 것도 아니고, 제도권이 e스포츠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위기가 더 커지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 e스포츠는 원래 위기였습니다. 스스로 그 위기를 넘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e스포츠 토토는 그 다음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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