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주최하고, 한국e스포츠협회(이하 '협회')가 주관하는 e스포츠 지역 리그(가칭, 이하 '지역 리그')가 출범한다고 합니다.
사실 이 대회는 대중적으로 큰 화제가 되고 있진 않습니다. 게임사가 직접 개최하는 LCK, VCT 같은 대회들이 인기와 권위를 모두 갖고 있는 상황이라서, 아무리 정부가 주최한다고 해도 단숨에 빅이슈로 떠오르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세금이 들어가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오히려 비판적,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존재하죠.
그래도 지역 리그는 몇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우선, 이 대회는 그 동안 협회가 주최해온 KeG, 대학리그처럼 아마추어들을 대상으로 한 대회가 아니며, 단순히 1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에 게임단을 유치하여 '지역 연고제'를 시도하고자 하는 또 다른 목적이 존재합니다.
때문에 이 프로젝트가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인지, 세금이 투여되는 만큼 다수의 e스포츠 팬들을 위한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인지, 비록 당장의 성과가 없더라도 우리나라 e스포츠 산업의 지속가능성과 경쟁력 재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지 등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최근 발표된 지역 리그에 대해서 다각적인 분석을 해보고자 합니다. 아직 세부 사항들이 발표되지 않은 상태인 만큼 현재 시점이니만큼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기보다, 왜 이런 대회가 기획 되었는지, 어떤 대회가 될 것인지, 이 대회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어떤 부분을 고민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지역 리그에 대한 예고편들
사실 지역 리그가 올해 출범할 것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측 됐습니다. 지난 2024년 5월에는 문체부가 '게임산업진흥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e스포츠 지역 연고제와 실업팀 운영이라는 방향성을 발표한 바 있고, 2025년 정부 예산안에 'e스포츠 내셔널리그 출범'이라는 명목으로 8억 원의 예산이 편성되었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e스포츠 크리틱에서는 당시 '뭔가 하려는 움직임이 관측된다', '내셔널리그라는 이름을 사용 중인 이터널리턴 내셔널리그에 8개의 지역 연고 팀이 출전하기 때문에 8억 원의 예산이 이터널리턴에 사용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내용으로 이 소식들을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또한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대한민국 e스포츠 팀이 좋은 성적을 거뒀고, e스포츠의 위상이 국제적으로 크게 상승하고 있다는 것은 문체부가 우리나라 e스포츠 산업 진흥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되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막대한 세금을 들여 전국에 총 4개의 e스포츠 경기장(부산, 대전, 광주, 경남)이 마련됐지만 취지에 맞게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문체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이 2023년 발표한 '지역 e스포츠 상설경기장 파급효과 및 성과지표 연구'에 따르면 당시 기준 지역 e스포츠 거점인 대전, 부산, 광주 경기장의 가동률은 각각 41%, 39.5%, 37.8% 수준이었다. 그마저도 대회가 아닌 행사나 교육 프로그램을 포함한 수치다. 한때 'e스포츠 성지'로 꼽혔던 부산의 연간 누적 방문객 수는 6330명에 불과했다.
출처 - 글로벌 이코노믹(2025.02.19)
이런 배경을 생각해본다면 지역 리그라는 컨셉은 우리나라 e스포츠 산업을 진흥하고, 지역 e스포츠 인프라를 활성화하기에 적합합니다. 다만, '어떻게 할 것인가'와 '정말 필요한 것인가' 측면에서는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역 리그, 어떤 대회가 될 것인가?
발표된 내용에 따르면 지역 리그는 5월부터 8월까지 온라인과 지역 e스포츠 경기장에서 진행됩니다. 종목은 펍지모바일, FC모바일, 이터널 리턴인데요. 이터널 리턴의 경우는 10월까지 열리면서 별도의 타임라인을 갖게 됐습니다.
우선, 눈에 띄는 점은 이 대회가 기존 게임사들이 운영하고 있는 e스포츠 시스템과 직간접적으로 연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펍지 모바일 종목에는 결선 상위 팀에 PMGC(펍지 모바일 글로벌 챔피언십) 포인트가 지급되고, FC 모바일 결선 상위 2명에게는 최상위 글로벌 대회 'FC 프로 챔피언스 컵'의 한국 대표 자격이 주어집니다. 이터널 리턴의 경우 '서포트 패키지'와 '팀 패키지' 판매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 연계들은 지역 리그가 단순히 아마추어들이 출전하는 대회가 아니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 동안 협회는 KeG, 대학리그 등 많은 아마추어 대회를 개최해왔습니다. 특히, KeG는 지역 예선-결선 구성된 토너먼트 이후에 조별 리그-플레이오프로 이어지는 이중 구조로 운영되면서 아마추어 대회 치고는 상당히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아마추어 대회들은 e스포츠 팬들에게 인기 있는 콘텐츠가 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 리그가 아마추어들이 출전하는 대회가 된다면 KeG와 별로 다를 것이 없습니다. 때문에 지역 리그는 게임사들이 주최하는 대회와 긴밀하게 연결된 형태로 기획된 것으로 보입니다.
펍지 모바일과 FC 모바일은 연계된 국제 대회의 포인트와 출전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 프로들이 출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이터널 리턴은 지난 2024년 파일럿 시즌을 진행한 내셔널 리그가 통째로 지역 리그로 편입되었습니다. 그래서 이터널 리턴 종목만 대회 기간이 5월부터 10월로 다른 종목보다 길게 잡힌 것이죠.
이터널 리턴 내셔널 리그에 대한 지원은 충분히 예측 범위 내에 있었지만, 펍지 모바일과 FC 모바일까지 끌어들여 판을 키운 것은 상당히 인상적입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님블뉴런이 지역 인프라를 적극 활용하는 형태의 내셔널 리그를 출범시켜준 덕분에 문체부와 협회도 보다 수월하게 지역 리그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정리하자면, 지역 리그는 최소한 '그들만의 리그'를 표방하진 않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리그 오브 레전드나 발로란트 e스포츠를 좋아하는 팬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역부족이겠지만, 최소한 펍지 모바일, FC 모바일, 이터널 리턴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확실히 어필하겠다는 의지가 읽힙니다.
지역 연고제, 어떤 형태가 될까?
e스포츠 지역 리그는 지방자치단체, 지방 체육단체, 지역 공공기관이 신청할 수 있다. 3개 종목의 지역 연고 팀 창단 시 최대 4년간 팀 운영에 필요한 급여 및 비용 일부를 지원한다. 또한 지역 대표성을 인정받은 종목사 선정 파트너 팀과 법인 팀에게도 단년간 일부 운영 비용을 지원한다.
출처 - 국민일보
지역 연고제는 두 가지 카테고리로 나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는 지자체 등이 주도하여 창단하는 팀, 또 하나는 기존 팀과 지자체의 파트너십이죠.
완전히 새롭게 창단하는 전자의 경우에는 최대 4년 동안 비용을 지원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단년 계약으로 비용을 지원합니다. 이는 궁극적으로는 지역 리그를 위한 새로운 팀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현실적으로 예상되는 어려움을 대비하기 위한 설계로 해석됩니다.
예를 들어서, 지난 2024 KeG 전국 결선에서 종합 우승을 차지한 전라북도가 지원을 받으면서 지역 리그에 참가하고자 한다면, 이터널 리턴, FC 모바일, 펍지 모바일 팀을 모두 창단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자체가 이런 결정을 2~3개월에 내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때문에 지자체 등이 기존 게임단과 손을 잡는 것이 가장 빠르고 쉬운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부산을 연고로 하고 있는 BNK FearX의 경우 이미 이터널 리턴 내셔널리그에 참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 지역 리그에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단, 여기서 예상되는 변수는 3개 종목을 모두 창단한 경우에만 운영 비용 지원이 가능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부산 팀이 지원을 받고자 한다면 BNK FearX가 FC 모바일, 펍지 모바일 팀을 추가로 꾸려야하는 것이죠. 때문에 실제로 어느 정도 규모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지가 중요할 것 같습니다.
펍지 모바일의 최상위 티어 팀을 운영하고 있는 DRX나 디플러스 기아도 지자체들의 러브콜을 받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경우 지자체의 요청에 따라 DRX, 디플러스 기아가 이터널 리턴, FC 모바일 팀을 추가로 꾸리는 것을 고려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지자체가 기존 팀을 완전히 흡수하는 형태로 팀을 창단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내셔널 리그에는 이미 지난 2024년 8개의 지역 연고 팀이 출전했으므로, 그 팀들을 기반으로 다른 종목을 추가 창단하여 '4년 지원'을 받을 요건을 충족하는 것이죠. 대표적으로 FN Esports(구, 미래엔세종)는 세종시와 포천시 연고를 표방하고 있고, 이터널 리턴, 펍지 모바일, FC 모바일 팀을 운영 중이므로 세종시 또는 포천시와 원활한 협의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지역 연고제와 관련해서는 오는 24일 한국e스포츠협회가 설명회를 개최한다고 하니까, 그 이후에 발표되는 소식들을 통해 더 자세히 살펴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지역 리그 왜 해야해?
어쩌면, 이게 가장 중요한 질문일겁니다. 세금을 투입해서 문체부가 e스포츠 리그를 왜 해야하는가. 그리고 이 리그가 진정으로 우리나라 e스포츠 산업 진흥 및 지속가능성 재고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선이 존재할 것입니다.
우선, 지역 리그가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많은 메이저 종목을 포함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것은 인지해야 합니다. 문체부가 최소 8억 이상의 세금이 들여 출범하는 e스포츠 대회에 외국 게임사의 종목이 들어오는 것은 명분상 맞지 않는 것이죠. 더구나 리그 오브 레전드, 발로란트는 이미 자신들의 자체 생태계가 확실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지역 리그와 연계할 여지도 많지 않습니다. 참고로, FC 모바일은 EA가 제작하긴 했으나, 국내 서비스를 넥슨코리아가 단독으로 하고 있으므로 국산 종목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지역 리그가 우리나라 e스포츠 종목의 생태계 안정화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게임사들도 자체적으로 e스포츠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지역 리그가 엄청나게 큰 도움이 안될 수도 있지만, '지역 리그'라는 타이틀에 펍지 모바일, FC 모바일, 이터널 리턴이 한 자리에 모인다면 이전보다는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됩니다.
또한 지역 리그의 핵심은 대회 그 자체보다 '지역 연고제'를 표방한 '팀 지원'에 맞춰져 있습니다. 아무래도 펍지 모바일, FC 모바일, 이터널 리턴 e스포츠의 '팀 생태계'는 다소 불안한 면이 있습니다.
DRX, BNK FearX, 디플러스 기아 등이 해당 종목의 팀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소규모 팀입니다. 실제로 과거 카트라이더 e스포츠에서도 광동프릭스, 리브샌드박스 외에는 소규모 클럽 팀들이었는데요. 시즌마다 출전 팀이 바뀌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임금 체불, 지원금 미지급 이슈 등이 터지는 경우도 있었죠. 때문에 지역 연고제를 통해 지원을 받는 해당 종목 팀들은 이전보다 안정적이면서 투명한 운영이 가능하게 됩니다.
e스포츠 지역 인프라를 활성화하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현재 전국에는 4개의 거점 e스포츠 경기장이 있고, 충청남도처럼 새롭게 시설을 준비하는 지자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큰 예산을 들여 시설을 구축했으나 콘텐츠가 부족해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지역 리그를 통해 콘텐츠를 수급하고, 지역 연고 팀들의 연습 공간 등으로 추가 활용될 수 있다면 지역 e스포츠 경기장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됩니다.
사실 지금은 지역 리그와 지역 연고제에 대해서는 정확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시기가 아닙니다. 그래도 현재까지 공개된 내용들을 살펴보면, 시작하기도 전에 '망할 것이다', '무의미하다'라고 단언할 정도로 명분과 개연성이 부족한 것 같진 않습니다.
물론, 우려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총 3개 종목에 몇 개의 팀이 지원할지, 어떤 팀이 새롭게 창단되거나 협력 전선을 구축할지는 모르겠으나 현재까지 알려진 약 8억 원의 예산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예산으로 팀 지원, 대회 운영, 방송 제작 및 마케팅 등을 모두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죠. 추가 재원 마련에 대한 계획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연 연고제도 우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 지방 체육단체, 지역 공공기관의 신규 창단이 얼마나 될지, 이들과 민간 팀들과의 파트너십, 협력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입니다. 명분이 아무리 좋더라도 팀을 세팅하고 운영하는데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주최 측이 모든 운영 비용을 지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지자체나 민간 팀이 어느 정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할텐데, 수익성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아직 없는 현재 상황에서는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힐 가능성도 있습니다.
준비 기간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지역 리그는 앞으로 굉장히 바쁜 준비 일정에 돌입할 것입니다. 24일 지역 연고제 설명회를 시작으로 대회의 운영과 방송 제작을 위한 대행사 비딩 등을 진행해야 하는데요. 대회 개막 시기로 알려진 오는 5월까지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때문에 문체부와 협회의 체계적인 리드가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2025년 1회성 이벤트가 아니라면 향후 이 대회가 궁극적으로 어떤 목표와 명분을 지향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입니다. 이를 통해 지자체들의 더 적극적인 참여, 민간 기업들의 스폰서십 또는 파트너십 참여를 독려해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문체부와 협회의 지역 리그와 지역 연고제에 대한 소식은 발표가 될 때마다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