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이하 2026 아시안게임) e스포츠의 세부 종목들이 발표되었습니다. 아시아 올림픽 평의회(이하 OCA)가 지난 22일 총 11개의 e스포츠 종목을 발표했는데요.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어떤 게임들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이 되었는지, 어떤 주목할 포인트들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식 종목 역대 최다, 11개? 아니 14개?
우선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이번 아시안게임 종목의 갯수가 역대 최다라는 점입니다. 첫 대회였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시범 종목)에서는 6개,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는 7개였으나, 이번 대회에서는 정식 종목이 11개로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게임 타이틀을 기준으로 보면 2026 아시안게임는 무려 14개의 게임이 등장하게 됩니다. 이 부분이 특이점인데요. OCA는 스트리트 파이터, 철권, 킹 오브 파이터를 하나로 묶어 '격투 게임'이라는 신규 종목으로 채택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실 e스포츠 팬들에게는 다소 의아한 결정입니다. 특히, 스트리트 파이터와 철권은 격투 게임계에서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e스포츠 종목들이기 때문이죠. 각 게임을 개발한 회사들 입장에서는 단독으로 종목이 되지 못한 점이 상당히 아쉬울 것 같긴 합니다.
어쩌면 이번 아시안게임이 일본에서 개최된다는 점이 이러한 결정을 가능케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최국 일본의 주도하에 캡콤, 반다이남코, SNK가 이런 대화합에 동의했을 것 같은데요. 지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단독으로 정식 종목이 됐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캡콤 입장에서는 아쉬운 결정이겠으나, 결과적으로 일본이 자랑하는 격투 게임 시리즈들이 모두 아시안게임 무대에 서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격투게임에서는 상당히 독특한 조합의 국가대표를 만나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각 게임을 대표할 만한 유명한 프로게이머들나 인플루언서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인데요. 특히, DRX 같은 팀은 이미 정상급 철권, 스트리트 파이터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안게임을 대비해 킹오파 선수를 영입한 뒤 격투게임 국가대표를 모두 DRX 선수로 채우는 대업에 도전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격투게임이 3개의 게임을 하나로 묶어 정식 종목으로 신설됐다는 소식과 함께 전체적으로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격투게임(스파, 철권, 킹오파)
- 포켓몬 유나이트
- 아너 오브 킹즈(왕자영요)
- 리그 오브 레전드
- 펍지 모바일 - 아시안 게임 버전
- 모바일 레전드 : 뱅뱅
- 제 5인격 - 아시안 게임 버전
- 나라카 : 블레이드포인트
- 그란 투리스모 7
- E풋볼 시리즈
- 뿌요뿌요 챔피언스
MOBA 종목이 대세?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MOBA 종목의 비중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포켓몬 유나이트, 아너 오브 킹즈, 리그 오브 레전드, 모바일 레전드 : 뱅뱅까지 11개 종목 중 4개 종목이 MOBA 종목입니다. 그 중 PC 기반 MOBA는 리그 오브 레전드가 유일하고, 나머지 게임들은 모두 모바일 기반 MOBA(포켓몬 유나이트는 모바일 & 스위치 기반)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
아무래도 MOBA가 현재 대중적으로 가장 인기가 많은 e스포츠 장르이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지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에도 도타 2, 리그 오브 레전드, 몽삼국 2, 왕자영요까지 4개 종목이 MOBA 장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번 2026 아시안게임에서는 전체 종목 갯수가 늘어나면서 MOBA 장르의 퍼센티지는 낮아졌습니다.
MOBA는 리그 오브 레전드를 제외하면 지역마다 즐기는 게임이 확실하게 다르지만, 워낙 인기 장르다보니 각 게임의 유저 숫자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대표적으로 모바일 레전드 : 뱅뱅의 경우 동남아시아, 특히 인도네시아, 필리핀 지역 최고의 인기 게임으로 그 화력이 리그 오브 레전드의 인기에 맞먹을 정도입니다.
다만, 포켓몬 유나이트 같은 경우는 일본에서 열린다는 특수성으로 인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것으로 보입니다. 전체적인 유저 풀은 지난 2022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었던 도타2가 더 넓지만, 이번에는 도타2를 밀어내고 포켓몬 유나이트가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포켓몬 유나이트의 경우 지난 2024년 포캣몬 월드 캠피언십에서 XORA TIGERS GAMING이라는 팀이 해당 종목의 준우승을 차지한 바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금메달을 노려볼 만한 종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시안 게임 버전
또 하나의 특이점은 아시안 게임 버전으로 표시된 종목들입니다. 대표적으로 펍지 모바일은 지난 2022 아시안게임에 이어 다시 한 번 정식 종목으로 채택 되었는데요. 당시 총기로 적을 사살해야하는 FPS 장르의 특성상 아시안게임에서는 대인 사격이 금지된 모드로 대회를 치렀습니다. 선수들 4명이 한 팀으로 협력해서 운전을 하고, 사격을 하는 형태로 자웅을 겨룬 것이죠. 아마도 이번 2026 아시안게임에서도 이와 비슷한 모드로 대회가 진행되지 않을까 예상이 됩니다.
이번 대회에서는 아시안 게임 버전으로 진행되는 게임이 또 하나 늘었는데요. 바로 '제 5인격'이라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은 우리나라에서 인기작은 아니지만 찾아보면 상당히 익숙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요. 살인마를 피해 도망다니면서 생존해야 하는 공포-호러 서바이벌 게임 '데드 바이 데드라이트'와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중국 게임사인 넷이즈에서 '데바데'의 정식 판권을 확보해 개발되었다고 하죠. 때문에 이 게임 역시 별도로 개발된 모드를 활용해 아시안게임에 도입될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인 e스포츠 대회와 달리 아시안 게임의 경우 과한 폭력성을 최대한 피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를 위해 게임사 역시 OCA의 기준에 맞도록 별도의 모드를 개발하고 있는 것이 눈길을 끕니다. 게임사 입장에서도 어찌되었든 자사의 게임이 아시안 게임을 통해 노출되는 것이 홍보 측면에서 좋은 일이기 때문에 적극 협력하는 모습입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런 시도가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다소 의문입니다. e스포츠에서는 유저가 하는 게임과 보는 게임의 괴리가 있을 경우, 시청 선호도 및 몰입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인데요. 아시안 게임이라는 무대를 위해 폭력성을 배제하더라도 본연의 게임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새로운 모드를 기획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본 개최국 프리미엄?
원래 아시안 게임은 개최국 프리미엄이 상당히 강력하게 발동되어 왔습니다. 특히, 종목 선정에 있어서 개최국의 의지가 크게 반영되는 경우가 많았죠. 때문에 아시안 게임은 대회 때마다 정식 종목의 변화폭이 상당히 큰 편입니다. 대표적으로 2010 광저우 때는 바둑, 드래곤보트, 댄스스포츠가 들어가고 보디빌딩이 빠졌지만, 2014 인천 때에는 당구, 바둑, 드래곤보트, 댄스스포츠가 바로 제외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아시안게임은 올림픽과도 상당히 다른 정식 종목 구성을 보입니다. 2011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개최국 카자흐스탄은 컬링과 스노보드를 통째로 삭제하고, 알파인 스키 종목도 절반 이상 줄였습니다. 1974 테헤란 때에는 개최국 이란이 '올림픽의 메인 이벤트'라 불리는 마라톤을 삭제한 적도 있습니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일본의 영향을 받은 듯한 정식 종목 채택이 눈에 띄는데요. 앞서 이야기 한 격투게임들과 포켓몬 유나이트 외에도 그란 투리스모와 뿌요뿌요 챔피언스, eFootball 시리즈는 일본이 강세를 보이는 자국 e스포츠 종목이라는 평가입니다. 그래도 일본향 종목들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만한 역사와 전통 그리고 e스포츠 저변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가 있어서 나름대로 납득이 가는 개최국 프리미엄이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eFootball이 들어오면서 넥슨코리아가 서비스 중인 FC온라인이 정식 종목에서 제외되었고, 덕분에 우리나라 게임이라 부를 만한 종목은 펍지 모바일이 유일하게 되었습니다.
벌써 3번째 맞는 아시안 게임 e스포츠
아시안 게임 e스포츠는 벌써 세 번째 대회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이번 2026 아시안 게임은 종목이 11개(게임 타이틀 기준으로는 14개)까지 늘어나면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 동안의 아시안 게임에서 e스포츠가 나쁘지 않은 성과를 올렸다는 사실을 방증합니다.
아시안 게임 입장에서 e스포츠는 플러스 요소입니다. e스포츠를 도입하면서 10대~20대의 어린 연령대들이 아시안 게임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이죠. 우리나라에서도 e스포츠를 통해 아시안 게임에 더 몰입하고, 스타 플레이어들의 금메달과 병역 혜택 여부에 관심을 갖는 e스포츠 팬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때문에 앞으로 OCA가 e스포츠를 꾸준히 확대하는 방향성을 유지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특히, 올림픽 e스포츠 게임즈가 구체적인 방향을 잡지 못했고, 올림픽의 일부가 아닌 독자적인 대회 출범을 선언한 상태이므로 아시안 게임 e스포츠가 한 동안 더 큰 권위와 흥행을 이어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반대로 IOC 입장에서는 OCA의 행보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종목 선정에 있어서 확실히 아시안 게임은 나름대로 진보적인 결정을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대인 사격 같은 과도한 폭력성을 기피하고는 있지만, 이를 우회하기 위해서 아시안 게임 전용 모드를 준비하는 등 게임 개발사와도 긴밀하게 협력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OCA는 종목 선정에 있어서 스포츠 기반의 게임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이번에도 스포츠 기반의 게임은 굳이 꼽자면 축구(eFootball)와 모터스포츠(그란 투리스모)가 전부입니다. 즉, 아시안 게임 e스포츠는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게임들을 선택하는데 주저함이 없고, 덕분에 아시안 게임은 e스포츠 팬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게임사 입장에서도 아시안 게임 정식 종목 채택은 상당히 좋은 마케팅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수익성을 고려해야겠지만 FPS 게임 중에서는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 e스포츠 채택을 염두에 두고 대인 사격이 배제된 형태의 모드나 미니게임을 미리 개발하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협동 플레이를 통해 보스 레이드나 던전을 공략하는 PVE 콘텐츠가 있다면 아시안 게임 같은 정통 스포츠 대회에 무리 없이 진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시안 게임은 참가하는 국가들의 e스포츠 산업에도 큰 영향을 줍니다. 국가대표를 선발하고, 국가대표 팀을 운영하기 위한 협회, 연맹 등 e스포츠 단체나 기구들이 본연의 역할을 찾고 노하우를 고도화하게 됩니다. 물론 e스포츠 산업이 국가 주도의 체육과는 다르고 민간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게 강조되긴 하지만,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 e스포츠 게임즈 같은 대회들의 존재는 국가별로 선수 풀 확보와 인재 양성의 필요성으로 연결됩니다.
아직은 이른 전망이지만(틀릴 수도 있습니다...), 게임사들의 e스포츠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최근 e스포츠 월드컵(EWC) 출범과 함께 게임사들이 점점 자체 e스포츠 시스템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관측되고 있습니다. e스포츠 산업의 패러다임이 게임사에서 서드파티 대회 쪽으로 다시 이동할 가능성을 예측하는 전문가들도 많은데요. 아시안 게임이나 올림픽 e스포츠 게임즈 같은 대회들의 존재가 이러한 경향에 촉매 역할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대회들이 열리는 해에는 자체 리그를 일정을 축소하거나, 조율하는 방식으로 e스포츠 운영의 효율성을 꾀할 수도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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